소설리스트

137 이본느 (137/154)


#137 이본느
2022.10.20.


*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연맹과 한패거리냐니? 전 그들을 고발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아. 그래요. 압니다. 아는데…….”

제스는 인상을 쓰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마주 앉은 아멜리아 사제는 시종일관 절박했다.

혹시 연맹의 사주를 받아 황실에 접근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을 땐, 분노에 가까운 감정까지 내비치며 사실을 부인했다.


‘아무리 봐도 정말 결백한 사람 같긴 한데.’

문제는, 그렇게 결백한 사람이 어째서 ‘목걸이의 출처’에 대해선 대답하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상대는 신관이라 특별한 금제 때문에 주군의 힘도 통하지 않았다.


“저야말로 제스 경께 묻고 싶습니다. 그 물건은 이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잖아요. 어째서 갑자기 제 목걸이에 대해 따지시는 겁니까?”

“상관이 왜 없습니까? 그건 우리 황후 폐하가 어릴 적 잃어버린……!”

“……네? 뭐라고요?”

아뿔싸.

제스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가 그냥 한숨을 푹 쉬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었다.

어차피 아멜리아 사제는 그 물건에 얽힌 사연을 알기 전엔 절대 입을 열 것 같지도 않고.


“그건 블리니테 황후 폐하가 어릴 적에 잃어버린 가족의 유품입니다. 얼마 전까지 연맹 측이 그 물건을 가진 걸 확인했고요. 그런데 오늘은 사제께서 그걸 품 안에서 꺼내셨습니다. 자. 이래도 계속 입 꾹 닫고 계실 겁니까?”

제스는 목걸이에 관한 정보를 먼저 열었다.

그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아멜리아의 푸른 눈동자는 경악에 차서 동그랗게 떠올랐다.


“황후 폐하의 물건? 연맹이 가져갔다고요? 말도 안 돼…….”

‘그러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게 대체 뭐냐고. 나도 좀 알자고.’

말을 마친 제스는 팔짱을 끼고서 아멜리아의 동요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다행히, 아멜리아가 숨을 가다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휴. 드디어 입을 열겠다는…….”

“그전에 황후 폐하를 뵙고 싶습니다. 그분 앞에서 직접 진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

리엘라가 다시 병영의 격리실로 돌아왔을 때, 아멜리아는 차분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초랍시고 험한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래도 잠시나마 결박당했던 손목이 붉게 부었기에, 리엘라는 그걸 빤히 보다가 물었다.


“손목, 괜찮아요?”

그러자 아멜리아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아직 목걸이에 대한 오해는 하나도 풀지 않았는데,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라니.


‘황후 폐하, 정말 당신이 그분의…….’

아멜리아는 울컥했다.

답은 벌써 찾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멜리아는 꾹 숨을 삼키고 결연하게 입을 열었다.


“블리니테 황후 폐하. 송구하오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황당한 요청이었다.

심문 당하는 이가, 그것도 난데없이 황후의 얼굴을 반듯하게 대면하겠다니.

보다 못한 아시온이 아멜리아를 저지하려는데 그전에 리엘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멜리아에게로 가까이 나아갔다.

헤르한은 일단 상황을 주시했다.

혐의가 있어 일단 잡아 두긴 했지만, 아멜리아가 리엘라에게 흉기나 휘두를 악인은 아니란 걸 그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올해 스물넷이라고 하셨습니까?”

리엘라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아멜리아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뭔가를 물었다.

리엘라의 출신지, 유년 시절, 리엘라가 기억하는 모든 것.

조사의 대상은 아멜리아였는데 어느새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멜리아는 눈을 질끈 감고 한참을 홀로 심호흡했다.

아멜리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전과 달리 눈가가 촉촉했다.

어떤 감정인지, 혹은 어떤 기억인지 모를 것을 잔뜩 머금고 일렁이는 동공 안이 아득했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멜리아는 헤르한이 쥔 푸른 보석 목걸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건 두 분 폐하께서 찾으시는 그 목걸이가 아닙니다.”

“응? 이봐요. 아멜리아 사제! 말이 다르잖습니까? 황후 폐하 앞에 진실을 고하겠다면서요!”

제스가 인상을 쓰고 아멜리아에게 덤벼들었다.

뭔가가 의미심장하게 굴기에 분위기 다 맞춰 줬더니 사기당한 거였나.


“다 알고 있으니 거짓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제국의 태양 앞에 제가 어찌 감히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건 제가 어릴 적에 선물 받아 지금까지 간직한, 아주 소중한 물건입니다. 본디 한 쌍의 물건이었어요. 황후 폐하께서 찾으시는 건 아마 제 것과 같은 모양의 나머지 한쪽일 겁니다.”

한 쌍의 물건이라고?

선물을 받아? 대체 누구에게?


“이본느 사제님.”

모두의 의문에 아멜리아가 대답했다.


“그분께서 제게 이것을 남겨주셨습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셨고, 제가 많이 사랑한 분이었습니다. ……제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셨어요.”

‘어머니’라는 그 말에 모두의 가슴이 함께 덜컥 내려앉았다.

불꽃같은 눈동자를 파르르 떨며 가장 동요하는 건 물론 리엘라였다.

아멜리아는 그런 리엘라를 향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어딜 감히 지고한 황후의 얼굴을 멋대로 보겠느냐마는, 그 무례함을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참 아름다운 분이셨습니다.”

아멜리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에서 그걸 닮았던 누군가의 온기를 읽어냈다.


“지금, 제 앞에 계시는 블리니테 황후 폐하처럼요.”

아멜리아의 목소리엔 벅찬 울음이 묻어났다.

***

‘아멜리아’라는 이름은 이본느 사제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아니, 이본느 사제! 또 대책 없이 아이를 주워 왔어?”

“대책이 없긴요? 먹일 것도 충분하고 입힐 것도 충분한데, 우리 신전에서 가여운 아이를 거두지 않으면 그게 더 대책 없는 일 아닌가요?”

이본느 사제는 로마노 대주교의 호통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대주교님. 그러지 마시고 이 아이의 눈을 보세요. 맑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잘 가르치면, 분명 훌륭한 신관이 될 거예요.”

“글쎄. 나는 모르겠다만.”

“어휴. 그러세요? 이 총기가 안 느껴지신다고요? 어쩌나. 대주교님의 신성력도 이제 한물간 건가?”

“이, 이본느!”

오히려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여인.

그녀는 어린 아멜리아에겐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단단하고도 빛이 나는 사람이었다.


“아멜리아. 움츠러들 것 없단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

“하지만……. 제가 여기 있어도 되나요?”

“물론이지. 대신 밥값은 해야 해.”

밥값을 하라는 말은 거리를 떠돌던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는 조금 어려운 말이었다.


“그,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열심히 공부하면 돼.”

“공부……. 저거……요?”

아멜리아가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것은 책이 빼곡히 꽂힌 책장이었다.

정답을 잘 골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본느 사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있어.”

그러면서 이본느 사제가 가리킨 것은 창문 밖.

키가 큰 신관들이 멋스러운 걸음으로 다니기도 하고, 그 사이를 아멜리아 또래의 아이들이 뛰어다니기도 하고.

또 기도하러 온 이가 정성스럽게 제단을 오르기도 하고, 그 위로 밝은 햇살이 쏟아지기도 하는 곳.


“저긴 그냥 바깥이잖아요.”

“그래.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저 세상에, 사람들에게 있어. 너도 언젠간 알게 될 거란다.”

이본느 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멜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 어린 아멜리아의 눈에 비친 그녀는 방긋 피어난 꽃처럼 참 화사하고 향기가 그윽했다.

그 뒤로 아멜리아는 이본느의 가르침을 받았다.

아멜리아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영특했고 그만큼 욕심도 많았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노라 우쭐댈 때면, 이본느는 오히려 아멜리아를 따끔하게 훈육했다.


“신의 일꾼은 언제나 겸손해야 하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거란다.”

아멜리아는 이본느가 가르치는 신과 이본느가 가르치는 세상을 사랑했다.


“신관님들은 정말 대단해요. 다 착하고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그래?”

“네! 병든 후손들도 치료해 주잖아요. 그 사람들은 나쁜 짓을 저질러서 저주를 받는 사람들인데. 신관님들이 그 사람들을 다 보살펴 줘요.”

“아멜리아. 벌써 엔릴과 안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아멜리아는 자신이 칭찬받을 거로 생각했다.

벌써 대단한 신의 섭리를 깨우쳤으니까.

그런데 이본느 사제는 웃지 않았다.

언제나 활짝 따뜻하게 웃던 사람이, 그 순간만큼은 어쩐지 굉장히 슬프고 먹먹한 얼굴이었다.


“아멜리아.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도 있어.”

아멜리아가 기억하기로는 그즈음부터였다.

이본느 사제의 얼굴에 수심이 날로 깊어져 가던 것이.

아멜리아는 어린 마음에 조마조마했다.

어쩌면 이대로 이본느 사제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직감대로, 어느 날 밤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는 이본느 사제를 발견했다.

아멜리아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서 종종걸음으로 그녀를 따라 나갔다.


“사제님. 어디 가세요?”

“아멜리아!”

그대로 말을 몰아 떠나버릴 것 같던 이본느는 망설이다가 말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아멜리아 앞까지 와서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추운데, 어둡고 위험한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나왔느냐며.


“어디 가시는 건데요?”

“아멜리아, 나는…….”

“가지마세요. 사제님. 제가 말 더 잘 들을게요. 속도 안 썩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까……. 흐윽.”

“아. 이런. 아멜리아…….”

이본느 사제는 아멜리아를 꼭 안아 주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면, 또 악몽을 꾸는 밤이면, 언제나 저를 안아주던 따뜻한 품이었다.

그 온기에 기대 서럽게 울면서 아멜리아는 직감했다.

이대로 이본느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그녀가 왜 떠나는 것인지, 어디로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내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무슨 일인데요?”

“꼭……. 지켜야 할 사람이 생겼단다.”

별을 박은 듯 이본느의 붉은 눈이 반짝였다.

살포시 고개를 숙인 그녀는 자신의 평평한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마냥 이본느를 붙잡았다.


“저도 같이 가면 안 되나요?”

“아멜리아는…….”

어리니까 안 돼. 위험해서 안 돼.

그런 대답일 줄 알았는데.


“아멜리아는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그 말이 어쩐지 아멜리아에겐 커다란 힘과 위안이 되었다.

어른들이 으레 그러는 것처럼 대충 자신을 떼어놓기 위해 핑계를 대는 게 아니라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아멜리아. 그때까지 이걸 증표로 갖고 있겠니?”

 

 
이본느는 아멜리아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이본느 사제가 목에 건 것과 똑같은, 한 쌍의 보석이 달빛에 푸르게 빛났다.


“아멜리아. 바른길을 걷는 사람이 되렴. 그러면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



“그땐 제가 어려서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본느 사제께서 어디로 떠나셨는지. 왜 떠나야 하셨는지. 또 제게 걸으라던 바른길이 대체 어떤 것인지.”

울음에 젖었던 아멜리아의 목소리는 어느새 다시 단단해져 있었다.


“세월이 흐르고 저 역시 사제직에 올라 신을 받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본느 사제의 말씀대로 가장 중한 가르침은 성서 안에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고, 세상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끝끝내 이본느 사제가 그때 왜 신전을 떠나셔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황제조차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아멜리아의 말에 집중하는 때에, 아멜리아는 짙은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저에게는 바른길을 걸으라고 했으면서. 나만 혼자 두고, 자기는 도망쳐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원망도 했었습니다.”

그런 아멜리아가 이본느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린 건, 안투의 현신임을 드러내고자 스스로 신전에 찾아온 그녀와 대면한 순간이었다.

온 세상이 저를 노리고 있다는데, 잔떨림에도 그들 앞에 맞선 담대한 불꽃을 품은 붉은 눈을 본 순간.

어쩌면 그녀의 편에 서는 것이 이본느가 말했던 바른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판단했다.


“그런데 정말 그 길이 맞았던 거군요.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아멜리아가 눈을 들었다.


“신의 일꾼으로 세상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이본느 사제께서 제게 지키라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확실하게 알겠어요.”

옛날.

마냥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아멜리아가 이본느의 눈동자 안에서 세상을 보았듯이.

이제 아멜리아는 리엘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본느의 것과 꼭 닮은 붉은 눈동자가 아멜리아를 담아냈다.


“그게 당신인가 봅니다. 블리니테 황후 폐하.”

내내 입술을 꾹 물고 버티던 리엘라가 신음 같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이었다.


“이본느 사제께서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떠나셨던 것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