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남자 (121/154)


  • #121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남자
    2022.08.25.


    *

    신전에 도착한 직후, 헤르한과 리엘라는 일단 루도비코 대주교의 집무공간에 마련해 둔 자리로 안내 받았다.

    호기롭게 그들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대주교는 꽤 긴장한 채 마주앉은 상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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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황제를 어떻게 구슬려야 할까.’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었다.

    욕심 많은 젊은 황제는 손에 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갖은 술수와 협박을 다 할 것이니까.

    그런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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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 판별 절차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리엘라 블리니테가 제 발로 먼저 나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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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지금 말씀은……. 이견 없이 판별에 응하시겠다는 뜻,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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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도비코 대주교는 당황스러웠다.

    겁도 없이 당당한 여인의 붉은 눈동자는 몹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한한 생명력이 가득했다.

    굳이 판별을 거칠 것도 없었다.

    리엘라 블리니테가 뿜어내는 강한 기운은 그녀 스스로가 신의 후손임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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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절차에 성실하게 응하겠습니다.”

    리엘라가 강단 있게 대답하는 동안 황제는 딱딱하게 앉은 채로 그 대답을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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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순순히?’

    대주교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이 바뀔세라 얼른 손을 뻗어 바깥쪽의 사제들을 불렀다.

    바로 그때 황제의 뒤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근위대장이 다가왔다.

    아까 정문 앞에서 제 팔을 쳐냈던 그 괘씸한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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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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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절차를 진행하기에 앞서서 중앙 신전 측이 양지해야 할 사항입니다.”

    얼결에 받든 문서의 내용을 훑은 대주교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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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그렇지.’

    문서 안에는 그들이 ‘리엘라 블리니테’를 대함에 있어 지켜야 할 지침이 언뜻 스무 가지는 넘게 적혀 있었다.

    판별 과정에 동원되는 신관의 신상 명세를 미리 제출할 것에서부터, 리엘라 블리니테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 금지. 필요 이상의 대화도 금지.

    게다가 모든 절차에 황제를 포함한 황실의 호위 인력이 동행할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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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을 하는 것인가?”

    대주교는 황당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근위대장에게 문서를 되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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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신의 사당일세. 이곳엔 이곳의 법도와 절차라는 것이 있는 거고, 신전이 건립된 이래로 수백 명의 후손을 판별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이런 특혜를 베푼 적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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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혜가 아니라 격에 맞는 마땅한 대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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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격?”

    대답 대신 근위대장이 내민 것은 리엘라 블리니테와 황제 헤르한의 혼인 서약서였다.

    황실의 붉은 인장. 또 명확한 두 사람의 서명.

    리엘라가 명실상부 엘슈바이크 제국의 황후임을 공인하는 그 서류 앞에 루도비코 대주교는 얼이 빠져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내 침묵하던 황제가 입을 연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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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가 아름다울수록 신랑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지. 알다시피 난 그리 인내심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아무리 그래도 이럴 수 있는 것인가. 황제씩이나 되는 자가 번듯한 예식도 치르지 않고 도둑결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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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혼 전에 일을 끝내려고 일부러 서둘렀건만!’

    루도비코 주교의 주름진 입술이 노기 어린 신음을 흘려 냈다.

    헤르한은 몸을 거만하게 늘이며 서늘한 시선을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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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언짢아 보이는군. 루도비코 주교. 뭔가 문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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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닙니다. 폐하. 구, 국혼을 감축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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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 대신 양해를 구하지.”

    헤르한의 말과 동시에 그의 근위대장이 주교가 뿌리쳤던 지침서를 다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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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내 황후와 잠시라도 떨어지고 싶지가 않거든. 다른 놈들이 내 황후를 건드는 꼴도 못 보겠고. 신혼이니 이해해 줄 수 있겠지?”

     

    *

    대주교와 담판을 짓고 난 후, 헤르한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리엘라가 신전의 절차에 따르도록 하되, 그녀보다 더 성실한 호위 기사들을 가는 데마다 앞장세웠다.

    중앙 신전 안에는 결계가 흐르고 있어서 헤르한이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대신 미리 받아낸 명단을 일일이 대조해, 조금이라도 수상한 자는 리엘라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손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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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별에 임할 예정이었던 신관들 중 몇 명이 급히 빠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명단까지 확인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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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전에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 걸 보면 분명 켕기는 게 있는 놈들인가 보군. 하나도 빠짐없이 다 확인해서 조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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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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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아시온은 헤르한의 물음에 주변을 한번 살핀 뒤 속삭이듯 작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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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령하신 조사 작업 중입니다. 보안상 단독으로 움직이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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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헤르한의 표정이 영 개운치 않았다.

    바로 몇 발 맞은편에선 신관들에게 둘러싸인 리엘라가 애써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다 잘 될 거예요, 난 당신을 믿어요, 헤르한을 안심시키듯이.

    그래서 헤르한은 가슴 속이 더 뻑적지근했다.

    결전의 순간이 숨통을 조이듯 다가왔다.

    리엘라가 저 억지웃음이나마 잃어버리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땐 정말 미쳐버리고 말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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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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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그날 당직이었다고 분명 말씀하셨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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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그렇긴 한데……! 제보자니 뭐니 그런 건 절대 모른다니까요. 그날은 방문객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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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이랑 말이 앞뒤가 다르지 않습니까? 이보세요. 신관님. 신관님!?”

    제길.

    신관은 개뿔이, 신도 네놈들 같은 타락한 인간은 마다하겠다. 돈만 밝히는 순 음흉한 것들.

    또 홀로 남은 제스는 신전 복도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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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이번엔 정말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닿을 듯 말 듯, 주군의 명으로 제스가 찾고 있는 ‘진실’은 리엘라를 안투의 후손으로 고발한 ‘제보자’에 관한 정보였다.

    황실이 관련 정보를 요청했을 때 신전은 ‘익명의 제보를 받아 제보자를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순 궤변이었다.

    아무리 신전이 멍청하다고 해도 제보에 대한 검증도 없이 감히 황실에 출두 명령서를 보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

    문제는 만나는 신관들마다 제보자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싹 닫아 버린다는 것이었다.

    정체를 감추고 은밀히 캐물어 봐도, 아예 돈으로 대놓고 꼬드겨 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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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체로 그렇게 작당들을 하시니까 더 오기가 생기잖아. 대체 무얼 감추고 있는 거야?’

    제스는 한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신사다운 방식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이라니 더 구미가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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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아무 신관 하나를 납치해서 고문해? 마침 테스트 해 볼 시약도 있고.’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것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제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한 여신관이 제스에게 다가온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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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를 따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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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구인 줄은 알고 따라오라는 겁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아느냐는 제스의 물음에 신관은 주저 없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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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신전 사제들의 뛰어난 연구 실적을 견학하러 황성에서 온 열성 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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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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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도로 해두면 적당하겠죠.”

    순간 제스는 신관의 의도를 깨닫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묵묵히 그녀를 뒤따라 간 곳은 신전의 별관, 그중에서도 경비가 삼엄한 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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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사전 약속을 한 자이다. 신분은 내가 보증한다.”

    신관은 그렇게 문지기들을 아주 가볍게 물리치고서 제스를 더 깊은 지하로 이끌었다.

    아무나 섣불리 신뢰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할 수도.

    하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도 제스가 걸음을 멈추지 않은 까닭은 묘한 ‘직감’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지금껏 만났던 이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직감.

    아니나 다를까. 끝내 어두운 길 끝에 멈춰선 여인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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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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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원하는 것이 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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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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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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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가요?”

    제스는 눈을 잠깐 크게 떴다가 이내 피식 비소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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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 참 웃기군요. 분명 같은 곳에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을 모시는 신관들이면서. 누구는 진실을 감추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또 누구는 그걸 열심히 흘리려고 애를 쓰고.”

    그러자 신관이 제스를 따라 웃었다.

    살짝 접힌 눈이 맑은 바다빛인 것과는 달리 씁쓸함이 잔뜩 배어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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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어느 집안에나 말 못 할 속사정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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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궁금하군요. 이 집안에 있는 그 ‘말 못할 속사정’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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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중에요. 우선은 이쪽 일이 바쁘실 테니.”

    신관이 그렇게 말하며 음습한 지하의 벽 어딘가를 두드리니, 막다른 벽이 열리며 비밀 공간을 드러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벽 안. 새로이 드러난 밀실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제스는 기겁해서 신전의 음모니, 신관들이 편이 갈려 싸우는 것이니, 하는 것을 다 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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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저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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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움직이세요. 판별식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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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제스가 급하게 돌아온 건 판별이 모두 끝나고 헤르한과 리엘라가 함께 막 홀로 이동하기 전이었다.

    시간이 촉박함을 안 제스는 다짜고짜 본론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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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저희의 예상대로였습니다.”

    리엘라는 눈을 살포시 감았다.

    자신을 몰아세우는 모든 벼랑의 끝마다 있는 ‘그녀’의 존재에, 이제는 더 가슴이 내려앉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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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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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도망친 것 같습니다. 그녀의 뒤를 봐주는 놈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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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맹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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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지금이라도 뒤를 쫓겠다며 아시온이 이를 갈았다.

    제스는 그런 아시온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보고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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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맹 놈들은 아직 신전 안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쯤 홀 안에서 리엘라 님의 판정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장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도 모자를 판에 일부러 남아 있다는 것.

    그건 헤르한에게 있어 엄청난 도발인 동시에 선전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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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는 숨어 있지 않겠다는 건가. 무조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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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아마도…….”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디를 물어뜯을까.

    놈들의 어디를 어떻게 찢어발겨야,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그것들의 숨통을 가장 빠르고 고통스럽게 끊어 버릴 수 있을까.

    심지어 아시온마저도 당장 홀 안으로 군대를 들여보낼 준비를 하는데, 오히려 머뭇거리는 건 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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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드릴 말씀이 아직 더 있는데…….”

    제스는 어지러운 얼굴로 몇 마디를 더 이어갔다.

    제스와 헤르한.

    둘 사이에 참 무서운 진실과 무거운 결심이 오갔다.

    신전의 하인은 그로부터 몇 분 뒤에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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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폐하. 황후 폐하. 준비를 다 마치셨으면 이제 홀로 안내하겠습니다.”

     

    *

    리엘라는 그렇게 신전의 단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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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엘라 블리니테……. 감정 결과……, 성녀가 맞습니다. 상금 구원자의 자질을 지닌, 명백한 안투의 후손입니다!”

    원로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적막하던 홀은 순식간에 경매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리엘라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이탈해 단상 근처로 모여들었고, 곳곳에서는 황제를 힐난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신의 보물을 독점하려는 엘슈바이크 황실의 행태는 절대 가만히 용납할 수 없다면서.

    소란을 진정시키려던 신관과 성기사들도 한 덩어리로 섞여 들더니, 곳곳에서 서로 드잡이가 시작되었다.

    전부 예상했던 상황들이었다. 그러니 크게 두렵지는 않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다른 것이었다.

    단상에 오르기 직전, 제스가 심각한 얼굴로 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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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연맹 세력이 이미 이 중앙 신전 내부까지 침투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니, 확실히 그렇습니다.”

     
    때마침 성기사 몇몇이 리엘라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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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니테 님.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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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긴 너무 소란스럽습니다. 저희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들의 눈이 저 단상 아래에서 서로 멱살을 잡으며 침을 튀기는 이들의 눈빛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서.

    리엘라는 두려움에 뒷걸음질쳤다.

    검은 머리에 눈이 매섭게 찢어진 남자 하나가 단상 위로 올라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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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진정하시오! 대륙 연맹의 협약을 잊었소이까?”

    호기로운 목소리. 야욕이 가득한 눈.

    얇고 비열한 입술이 자랑스럽게 빚어낸 ‘연맹’이란 단어에 리엘라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런 리엘라와 눈이 마주친 순간, 사내가 입맛을 다시듯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그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 대단한 보물은 연맹이 가져야겠노라고.

    그때야, 헤르한은 몇 발 앞에 서서 저를 바라보는 리엘라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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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정말 그 방법뿐인가요?’

    헤르한은 침묵으로서 그의 뜨거운 분노와 단호한 결심을 전했다.

    눈빛만은 여전히 강건했다.

    단상에 오르기 전, 제스의 마지막 당부 앞에 냉정하게 대답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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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십시오. 폐하. 연맹은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넓게 뻗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릴 여기에 불러들인 것도, 신전과 세계 여론을 움직인 것도 전부 다 놈들의 짓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놈들 중 누군가가 오늘 폐하 앞에 모습을 드러낸대도, 참으셔야 합니다. 일단 후일을 도모한 뒤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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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더 참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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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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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와 있는 놈들은 졸개들이야. 정작 머리가 큰 자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 어딘가에 숨어서 우리를, 이 순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욱 나의 뜻을 분명히 보여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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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한이 빼 든 검이 밝은 빛을 튕겨내며 울었다.

    리엘라는 눈을 질끈 감았고, 헤르한은 오만한 사내가 뒷걸음 칠 틈도 주지 않고 팔을 크게 휘둘렀다.

    내내 귀를 더럽히듯 앵앵거리던 사내의 말소리는 일시의 단말마를 끝으로 멎었다.

    몇 초간 침묵이 일었다.

    이내 사방에서 기함하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천장을 뚫을 듯했다.

    리엘라의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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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내 보물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놈들은 오늘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리엘라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천천히 눈을 떴다.

    단상 바닥을 적시는 붉은 선혈을 따라 고개를 든 리엘라의 눈에 헤르한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미치광이가 되길 결심한, 참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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