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 속이는 자만 있고 속는 자는 없는 (110/154)


  • #110 속이는 자만 있고 속는 자는 없는
    2022.07.17.



    ‘제기랄!’

    황제가 직접 들이닥쳐서 리오타 왕궁을 점거했다는 얘기는 엊그제 들었다.

    거기서 상황이 더 끔찍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자 신문에는 페오도르나 왕가가 공식적으로 퇴진하고 브레니케 공작을 앞세운 제국의 섭정 내각이 들어서리란 소식이 보도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거야. 이렇게 내 나라를 먹을 생각이었던 거지!’

    그레타는 보던 신문을 갈기갈기 찢어서 팽개쳐버렸다.

    거기서 머리를 쥐어뜯고 몸부림을 쳐봐도 답답함은 풀리질 않았다.

    황제와 리엘라는 또다시 코앞에서 자신을 농락하는데, 정작 저는 그들에게 소리 내서 짖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처지.


    ‘답답해……. 짜증나…….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 거냐고!’

    그레타의 원망은 자연히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내에게로 향했다.


    ‘사실 황제의 끄나풀인 거 아니야? 나를 여기에 멍청하게 가둬두려고?’

    그레타는 발을 절뚝거리며 사내의 방으로 향했다.

    이곳에 숨어든 지도 벌써 몇 주.

    사내는 여전히 수상했다.

    말도 없이 며칠씩 외출했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방에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오늘은 꼭 담판을 지어서 뭐라도 알아낼…….’

    그때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안에 있는 그가 보였다.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혼자 여유를 부리는 꼴이 같잖다고 생각했는데.


    ‘저거……?’

    와인잔에 얕게 출렁이는 푸른 액체가 그레타의 신경을 잡아끌었다.

    검푸른 색이 감돌면서도 달빛이 들면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저 독특한 빛깔.

    그레타는 그 액체의 정체를 아주 잘 알았다.

    파비안의 입술에 숱하게 물려주었던 것이니까.

    그건 능력자들의 폭주를 막는 억제제였다.


    ‘설마 당신도 후손이었어?’

    짜증과 지루함에 돌아버릴 듯하던 그레타의 새까만 눈이 그제야 흥미로 반짝였다.

    그래. 그래야 당신의 그 음흉함이 말이 되지.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게 다 설명되는 건 아니었다.

    그레타는 파비안을 뺏긴 뒤에야 알았다. 이 세상엔 정체를 감추고 숨어 사는 능력자들이 꽤 있다는 것을. 그러니 그 존재는 그리 대단한 무기도 되지 않는 것을.


    ‘그걸로는 부족해. 당신도 나처럼 헛물 켜는 건 아니어야 할 텐데?’

    그때, 사내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늘이자 와인을 든 손의 반대쪽 손이 보였다.

    신문을 넘기며 보는 것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신문을 넘긴다기 보다는 지면의 어느 한 부분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까 내가 본 거랑 같은 신문인 것 같은데.’

    이맛살을 찌푸려가면서 사내의 손끝이 어루만지는 부분을 확인한 그레타는 곧 입을 턱 벌렸다.

    사내의 가느다란 손끝이 부드럽게 쓸고 있는 부분은 굵은 글씨의 헤드라인이었다.

    [……블리니테 황후가 이룬 쾌거!]

    그 순간, 며칠 전엔가 사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속셈이 뭐냐고? 나에게 뭔가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나는, 당신이 내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와주길 바라요.”


    “그게 뭔데?”


    “차차 알게 될 거예요.”

     


    ‘설마. 다시 찾으려 한다는 것이.’

    그레타는 입을 꽉 틀어막고 사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수상한 간계를 꾸미는 주제에 애틋하게 무언가를 꿈꾸며 반짝이는 눈을.


    ‘그게 설마, 리엘라였어?’

     

    *


     
    황제 헤르한의 명령으로 브레니케 공작이 공식적인 자리에 오른 뒤, 왕궁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기존 왕가의 퇴진, 또 제국의 섭정과 지원 결정이 알려지자 성난 민심은 일단 화를 가라앉혔다.

    폭도였던 자들은 다시 백성의 자리로 돌아갔고, 헤르한은 제국의 기사들을 왕성으로 보내 피해를 당한 민가의 보수를 도왔다.
    리엘라는 브레니케 공작의 옆에서 그녀의 일을 도왔다.

    가까이에서 사귄 브레니케 공작은 의외로 리엘라와 죽이 잘 맞았다.


    “이제 왕국은 제게 맡기시고 어서 제국으로 돌아가십시오.”

    “아직 정리해야 할 일들이 남았잖아요?”

    “그건 제가 할 일입니다. 듣자 하니 황후 폐하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도중에 이곳으로 오셨다지요?”

    “결혼 준비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폐하가…….”

    “어찌 그리 생각이 짧으십니까? 친정국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국민들에겐 하루빨리 정식으로 황후를 맞는 것이 가장 급한 소원임을 모르십니까?”

    조금 엄하고, 잔소리가 많은 편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도 리엘라는 어째선지 그런 잔소리가 하나도 싫지 않았다.


    “휴……. 하긴. 이제 정식으로 황후가 되시면 더 바빠지실 테니, 지금이 마지막으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때일지도 모르겠군요.”

    공작은 마냥 엄격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사려 깊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곧 돌아갈 예정이에요.”

    “…….”

    “공작의 말씀이 맞아요. 이젠 정말 바빠지겠죠? 이번에 떠나면 언제 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시원섭섭한 생각에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자, 브레니케 공작은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거리는 좀 둘러보셨습니까?”

    “네?”

    “왕궁 침실과 회의실만 왔다 갔다 하는 것 말고, 바깥 경치는 조금 보셨냐는 말씀입니다.”

    “아. 아뇨.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던지라.”

    “흠.”

    그날 오후였다.

    새로 꾸린 내각과 오전 회의를 마친 헤르한이 리엘라를 찾아와서 대뜸 함께 외출 하겠느냐고 물었다.


    “브레니케 공작이 그러더군. 떠나기 전에 왕성 시찰을 한번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공작이요?”

    “그래. 거리 복구 작업이 잘 되어 가는지도 직접 확인할 겸. 이제는 리오타 왕국의 백성들도 폐하의 백성이니 살뜰히 보살펴야 한다나 뭐라나.”

    역시, 이건 공작의 큰 그림이겠지.

    리엘라는 빙긋 웃으면서도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좋지만 거창하게 행차하는 건 번거롭지 않겠어요? 왕성 시민들도 정신없을 텐데, 괜히 우리가 들쑤시는 건 아닌지…….”

    “공지 없이 조용히 나갈 거야. 기사들은 사복으로 따라오게 하고.”

    “네? 정말요?”

    “그래. 어차피 왕성 시민들은 우리 얼굴을 모를 거라 괜찮을 거라던데?”

    그 말도 물론 브레니케 공작이 한 말이겠지.

    리엘라는 헤르한의 손을 맞잡은 채로 신나서 펄쩍 뛰었다.

    ‘역시 브레니케 공작은 대단한 분이셨어.’ 하고 흐뭇하게 웃는 것도 잊지 않고.

    *



    “보수 작업은 생각보다 잘 되어가고 있네요.”

    “폭도들도 애초에 왕궁에 불만이 있어서 몰려든 거라 민가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하더군.”

    “다행이에요. 아. 저쪽 거리는 장사도 하나 봐요!”

    왕궁에 가까운 가게들 대부분이 문을 닫고 주변 거리를 청소하거나 정비 중이었지만, 비교적 피해가 덜한 근교 쪽은 나름대로 소탈하고 화기애애한 일상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리엘라는 들뜬 걸음으로 헤르한의 손을 잡아끌었다.


    “여긴 황성이랑은 꽤 다르네요. 좀 더 어수선한데 더 정겹기도 하고.”

    “지금 내 나라가 정 없이 메말랐다고 흉보는 건가?”

    “헉. 아니에요! 치사하게. 여기서 네 나라 내 나라 나누는 게 어디 있어요?”

    “비교는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리엘라.”

    어이없이 시비를 거는 헤르한을 보다가 리엘라는 그만 웃어버렸다.

    아무 의미 없는 말싸움이나 하면서 이렇게 손을 잡고 걷는 게 얼마 만인지.

    아니, 이런 여유가 있었던 적은 있는지.

    네 나라 내 나라를 나누지 말자고 했지만 사실 고향 땅의 길거리를 걷는다는 건 리엘라에겐 참 반갑고 애틋한 일이었다.

    헤르한이 평소보다 더 짓궂게 장난을 친 것도 그런 리엘라의 마음을 잘 알아서였다.


    “와. 이 브로치 예쁘지 않나요? 폐하 눈동자 색이랑 잘 어울려요.”

    그렇게 다정하게 웃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며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어느 매대 앞에 멈춰 섰다.

    리엘라의 눈을 사로잡은 건 푸른 보석이 박힌 은빛 브로치였다.

    사실 황실엔 그보다 더 값나가고 귀중한 보석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길을 가득 메운 상인들과 이곳 백성들의 손때 묻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리엘라의 눈에는 전부 다 소중하고 예뻐 보였다.


    “하나 사시겠습니까?”

    “네!”

    “10골드입니다.”

    “네. 10골…….”

    리엘라는 기꺼이 값을 치르려다 말고 멈칫했다.

    쇼핑은 생각도 못 했던 터라 돈을 따로 챙겨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수중에 있는 건 잔돈인 금화 하나뿐.

    심지어 헤르한은 더 했다. 황제는 직접 돈을 들고 다니면서 물건값을 치르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이 헤르한이 저쪽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는 아시온을 부르려는데.


    “아. 제가 잘못 봤습니다. 1골드입니다.”

    “네? 여기 10골드라고 가격표가 붙어있는데요?”

    “아닙니다. 1골드입니다. 확실합니다.”

    아닌데. 아무리 봐도 10골드가 맞는데.

    그런데 상인은 리엘라가 손에 쥔 1골드만을 가져가더니, 브로치를 건네고는 뒤를 돌아버렸다.


    “특가 할인인가 보지.”

    “이렇게 뜬금없이요?”

    뜬금없는 행운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이어졌다.


    “이거 받으세요.”

    “응? 꼬마야.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 줄 돈이 없는데.”

    “그, 그냥 드리는 거예요!”

    갑자기 저쪽 꽃집에서 달려 나온 꼬마 아이가 아주 풍성하고 예쁜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겨주고는 후다닥 도망가 버리질 않나.


    “두 분의 앞날에 행운을 기원합니다.”

    “잠시만요. 축복의 값으로 드릴 것이 마땅히…….”

    “이미 받았습니다.”

    어디에서 온 지 모를 떠돌이 집시가 헤르한과 리엘라에게 축복의 기도를 하더니 대가도 받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


    “폐하.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죠?”

    그때 또 뒤의 빵집에서 나온 부인이 리엘라에게 다가왔다.


    “시식입니다. 좀 드시겠어요?”

    “아…….”

    거리에서 나누어주는 음식을 함부로 먹기도 주저되거니와 시식을 한다고 해도 빵을 사드릴 수 없으니 망설이는데, 오히려 헤르한이 먼저 대담하게 손을 뻗었다.

    시식용 빵 조각을 건네받는 척하면서 부인의 손을 살짝 스친 헤르한은, 그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엿보았는지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리곤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고맙게 받겠습니다. 부인.”

    어쨌든 그건 안심해도 좋다는 뜻이기에 리엘라도 마음을 놓고 부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부인은 대놓고 가게 안에서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오더니 두 사람 앞에 내려놓았다.


    “부인. 이게 뭔가요?”

    “……시식입니다.”

    “네? 아니, 부인. 이렇게 많은걸……!”

    “……시식이에요. 그러니 부디 받아주세요.”

    사람의 키만한 바구니를 가득 채운 건 아주 정성 들여서 구운 향긋한 케이크와 빵들.

    얼마 전까지 환난을 겪었던 백성이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을 귀한 과일도 담겨 있었다.

    리엘라는 그 앞에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아까 헤르한이 웃었던 것과 똑같은 의미의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들킨 거죠?”

    “글쎄. 처음부터 속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하죠? 지금이라도 모두에게 제대로 인사해야 할까요?”

    “그냥 모르는 체 해주자. 저들도 저렇게 열심히 우리를 모른 척 해주는데.”

    참 어설프고도 정답게.

    속이는 사람만 있고 속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왕성 거리의 저녁이었다.


    “아시온. 그만 숨고 이리 와. 바구니를 들어라.”

    리엘라는 활짝 웃으며 헤르한과 맞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었다.

    오늘 저녁은 공짜 빵이다! 하고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

    어느덧 이별의 시간이었다.

    브레니케 공작과는 그새 정이 들어서, 리엘라는 서운함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황후는 지엄한 모습을 보이셔야 하는데 그렇게 훌쩍거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설마 만민이 지켜볼 결혼식에서도 그런 얼굴을 하실 건 아니시죠?”

    “공작. 결혼식에 와주실 거죠?”

    “물론이지요. 얼마나 훌륭한 모습이실지 꼭 보러 가겠습니다.”

    “네. 곧 다시 뵈어요. 꼭.”

    공작은 마지막까지 말을 엄격하게 하면서도 리엘라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리엘라는 그렇게 제국으로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예전에 떠날 땐 계속 뒤를 돌아봤는데.’

    하지만 이제 리엘라는 앞만을 똑바로 보았다.

    이 길의 끝, 자신의 새로운 땅이 될 제국을 향해서 가는 길이 두근거렸다.


    “아까 사실 살짝 초조했어.”

    그때 옆자리에 앉은 헤르한이 엉뚱한 이실직고를 했다.


    “왜요?”

    “네가 계속 고향에 있고 싶다고 버틸까 봐. 다시 제국으로 안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농담인 것 같으면서도 헤르한의 얼굴은 제법 진지했다.

    살짝 힘이 들어간 눈썹이나 제 대답을 기다리며 앙다문 입술이 참 사랑스러워서, 리엘라는 산뜻한 웃음을 보였다.


    “그건 안 되죠. 가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저 얼른 정식 황후가 되어야 하거든요.”

    헤르한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리엘라는 보석처럼 영롱하고 바다처럼 깊은 그의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면서 다시 고백했다.


    “빨리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요.”

     

     
    마차 문이 닫히고 행렬이 출발했으니, 해 질 녘 거점에 닿을 때까지는 쉼 없이 달릴 것이었다.

    골치 아픈 문제는 다 해결되었고, 둘을 방해할 사람도 없었다.

    이제 다정한 두 연인에게 남은 것은 마음껏 이 좁은 공간 안을 저들의 온기로 데울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폐하!”

    침실 앞에서만 자중할 줄 알았지, 아직 그 눈치가 마차까지 이르지는 못한 아시온이 문을 벌컥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헤르한은 아시온이 난입했던 것을 알면서도 리엘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처럼 맞이한 오붓한 시간 속에 달콤한 입맞춤을 이어가는데 문밖에서 아시온이 계속 헛기침을 했다.


    “후……. 무슨 일이지?”

    리엘라와 헤르한은 그제야 깨달았다.

    어느새 마차가 멈추어 서 있었다는 걸.


    “수상한 자들이 우리 행렬을 쫓아오기에 붙잡았습니다.”

    “뭐라고?”

    헤르한이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한껏 느른하게 헤르한에게 기대어 있던 리엘라도 곧장 겁에 질려 눈을 치켜떴다.

    자객? 폭도? 아니면 연맹에서 보낸 자들인가?


    “전부 붙잡았나? 누구지?”

    “예. 폐하도 아실 만한 자들입니다만……. 확실하게는 리엘라 님께서 확인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리엘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먼저 밖을 나가 포박한 자들을 확인한 헤르한은, 몹시도 복잡한 얼굴로 다시 되돌아와 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폐하. 왜 그런 얼굴을 하세요. 무섭게…….”

    헤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을 대신한 건 아시온과 기사들에게 붙들린 채 끌려온 이들.


    “리엘라! 오오! 이게 대체 얼마 만이냐, 응?”

    “……행크. ……칼.”

    용병단 동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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