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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로리엘의 목적 (104/154)


  • #104 로리엘의 목적
    2022.06.26.


    제 정수리에서부터 뚝뚝 흘러내리는 것의 정체를 그레타가 깨달은 것은 몇 초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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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꺄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동궁 안에 울려 퍼졌다.

    그레타는 펄펄 뛰면서 얼굴을 뒤덮은 것을 마구 털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끈적끈적한 오물들은 그레타의 손바닥에 더 진득하게 엉겨 붙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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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제기랄! 욱. 우욱……!”

    그레타의 비명은 이내 구역질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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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여기 아무도 없어? 여기 웬 미친년이 있단 말이야!”

    소리를 꽥꽥 질러보아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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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년이요? 제가 미친년이라고요?”

    그때 상대가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복도 창으로 들어선 달빛에 웃는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너무 망가진 몰골이라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마른 오물이 엉겨 붙은 가느다란 금발이 보였다. 일부러 분칠이라도 한 것처럼 뿌옇게 먼지를 덮어쓴 얼굴에 유일하게 제 색을 잃지 않고 있는 갈색 눈동자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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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설마, 로리……!”

    그레타는 차마 그 이름을 다 말하지도 못하고 굳어버렸다.

    대체 로리엘이 여기엔 어떻게?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가 멍해져서, 기절할 듯한 역한 냄새도 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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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이에요. 왕녀님. 제가 왕녀님을 얼마나…….”

    로리엘이 입을 열었다.

    아깐 악을 써서 몰랐는데, 저 상냥한 듯한 목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그녀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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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애타게 찾았다고요?”

    그레타의 입이 턱 벌어졌다.

    로리엘은 완전히 나사가 하나 빠져 있었다.

    언뜻 보고서도 ‘미친년’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던 것이 괜한 게 아니었다.

    턱턱 다가온 로리엘이 손목까지 꽉 움켜쥐기에 그레타는 그것을 당장 내치고 몸을 밀쳐낸 뒤 앞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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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이 왜? 어떻게 여길?’

    숨이 터지도록 무작정 앞으로 뛰면서 그레타는 이를 악물었다.

    로리엘 이그드니스.

    저 멍청한 게 결국 제대로 일을 그르쳤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황제의 독살을 시도한 죄로 제국의 이그드니스 일가가 하루아침에 멸문해버린 건 온 세상에 알려진 일이니까.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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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 처형당한 게 아니었어?’

    그럼 뭔가. 저게 죽은 로리엘의 유령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그레타는 주먹을 꽉 쥐었다. 계속 도망을 치면서, 복도 창의 커튼을 하나 거칠게 뜯어내어 온몸에 뒤집어쓴 오물도 대충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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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젠장할!’

    분하고 두려운 가운데, 속이 미친 듯이 메슥거렸다.

    이 끔찍한 냄새는 ‘진짜’였다. 당연히 저것도 유령 따위일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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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가 보냈나? 내 덜미를 잡은 건가? 아니야! 그랬으면 날 공식적으로 고발했겠지. 어차피 아무 증거도 없는데 뭘 어떻게 알겠어?’

    그러니 황제 독살 건에 대해선 완벽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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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라! 에, 엠마! 아무도 없어!?”

    그레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녀들의 방을 벌컥 열었다.

    시녀들이 자고 있어야 할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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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다들 어딜……! 오늘따라 호위병도 하나도 없고!’

    그레타는 급한 대로 계단을 올랐다.

    로리엘과는 거리를 벌렸으니 옥상 테라스 안에 숨으면 못 찾겠지,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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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발자국이……. 젠장할!’

    오물을 뒤집어쓴 덕택에 복도 바닥과 계단에 자신의 족적이 아주 선명히 남은 것이었다.

    급한 대로 테라스 문이라도 잠그려고 했지만 하필 걸쇠가 망가져 있었다.

    그레타는 덜덜 떨면서, 차마 울지도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로리엘이 발자국을 따라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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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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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보게.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가!?”

    국왕은 온갖 용기를 다 끌어모아 한껏 진노한 음성을 뱉어냈다.

    하지만 제국의 병사들은 전부 침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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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왕실에 탈주범이 있다는 말은? 그 말은 대체 무슨 뜻이야?”

    다시 목청을 키워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국왕은 그저 병사들에게 이끌려가기만 했다.

    따로 사슬에 결박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방에 칼을 든 자들이 천지였다.

    앞장선 병사의 태도도 그러했다. 국왕에게 경칭을 쓰며 공손한 듯 말하고 있지만, 여차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께 칼을 휘두를 수도 있다는 듯 싸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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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했잖은가! 국가적인 협조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그 뜻에 긴밀히 따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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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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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 우리 페오도르나 왕가의 명예를 걸고 내 약속하네! 그러니 부디 다들 군장을 풀고, 말로…….”

    으름장이 먹히지 않아 시도한 회유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앞장선 병사가 돌연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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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가시지요. 전하.”

    그것은, 그만 입을 다물고 얌전히 따르기나 하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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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얀 놈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설명은 해주어야 할 것 아니야!’

    자신을 향해 섬뜩하게 빛나는 칼날에 차마 불평도 더 못하고 인상을 쓰던 국왕은 순간,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를 깨닫고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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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보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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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다 왔습니다. 전하.”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멈추어 선 국왕에게 칼을 든 병사가 다시 한번 고갯짓을 했다.

    앞을 터 준 병사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것은 동궁.

    그레타 왕녀의 거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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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국왕은 눈앞이 캄캄했다.

    *

    로리엘은 맨발이었다.

    오물에서 독이 오른 모양인지 다 곪아 터져 있었다. 꼭 무덤 속에서 살아 돌아온 시체처럼.

    그레타는 독기를 가득 품고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로리엘을 피해 뒷걸음질 쳤지만, 이제 더는 발을 뻗을 공간이 없었다.

    뒤는 아찔한 난간 아래.

    이를 악물고 덜덜 떨던 그레타는, 이내 표정을 싹 바꾸고 다짜고짜 뒤가 아닌 앞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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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 다시 보니 로리엘이 정말 맞네. 그렇죠?”

    자길 피해 도망치던 이가 역으로 다가오는 것에 당황한 로리엘이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레타는 그 틈을 더 비집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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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그게 다 무슨 꼴이에요? 황실에서 수모를 당한 거예요? 안 좋은 소식은 들었어요. 어찌나 마음이 아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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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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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움이 필요해서 온 거죠? 내가 도와줄게요. 내가 로리엘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어요. 난 왕녀잖아요. 내가 로리엘을 무사히 탈출시켜주고, 치료도 해줄게요. 숨어서 지낼 만한 거처도 알고 있으니 나만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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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풉……. 푸하하하!”

    잘 되어가나 싶었는데, 로리엘이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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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수작 그만해. 왕녀, 왕녀 대접해 주니 아직도 사리 분별이 안 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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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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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 너나 나나 똑같이 거지꼴인 거 안 보여? 그런데 누가 누구를 도와?”

    아.

    이번엔 안 속네.

    그레타는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입안으로 역겨운 맛이 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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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

    그레타는 그제야 가면을 집어 던지고 어깨를 반듯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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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뭐 하자는 건데? 이딴 지저분한 짓이나 하고. 급 떨어지게.”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두 사람의 눈동자가 정면에서 부딪쳤다.

    로리엘은 그런 그레타가 못내 반가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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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다 알고 날 이용한 거였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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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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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묘약이라고 하면, 내가 그걸 폐하에게 먹일 거란 걸 알고 일부러 날 속인 거잖아. 아니야?”

    로리엘이 눈을 번뜩였다.

    구역질나는 짐칸 안에 몸을 밀어 넣고, 죽지 않으려고 제 뺨을 스스로 때려가면서 버틴 게 무려 열흘이 넘었다.

    그 안에서 로리엘은 온갖 생각을 했다.

    자신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꼴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고, 처음부터 황실 문턱은 밟지도 말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가장 뜨겁게 치미는 감정은 분노였다.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다 알면서, 그런 자신을 황제를 골탕 먹일 도구로 쓰고 버린 그레타를 향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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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그걸 이제 알았어? 너도 머리가 어지간히 안 좋구나. 하긴. 그러니 하찮은 리엘라 옆에서 멍청하게 시녀 짓이나 하고 있었겠지.”

    그레타는 뻔뻔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로리엘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그 몰염치에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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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찮은 리엘라 하나 어쩌지 못하고 거지꼴 된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레타. 입술 삐죽거리면 귀여울 줄 아나 봐? 너 지금, 나만큼 냄새나고 되게 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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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네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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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비안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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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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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그 ‘멍청한 시녀 짓’ 하는 사람들이 소문은 제일 빠르잖아? 왕녀씩이나 되는 명함을 들고도 남자 간수 하나 제대로 못 해서, 네 애인은 결국 리엘라 꽁무니나 쫓다 도망쳐버렸다지?”

    그레타는 졸도할 듯이 바들바들 뛰었다.

    다른 시비는 다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파비안 얘기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건드려선 안 될 부분이었다.

    곪아 터진 로리엘의 맨발처럼. 아직도 시시각각 썩어들어가고 있는, 가장 아프고 깊은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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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신 나간 게…….”

    그레타는 손을 들어 로리엘의 뺨을 후려쳤고, 고개가 홱 돌아간 채로 실실거리던 로리엘은 이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레타의 머리채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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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거 안 놔? 난 왕녀야. 네까짓 게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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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미 황제에게 독까지 먹였는데, 네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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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진짜 갈 데까지 갔구나. 하긴. 이러니 부모에게도 버림받지. 로리엘. 네 아버지는 천민이 되어 변방으로 쫓겨났다며? 널 제명할 테니 자기들은 살려달라고 빌다가 황제에게 더 밉보여서?”

    파비안이 그레타의 약점이었듯, 로리엘에게는 가문이 그러했다.

    황실에 들어간 것도, 황제의 눈에 들 결심을 했던 것도, 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탐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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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 안 둬.”

    로리엘의 손아귀에 힘이 더 바짝 들어갔다.

    그대로 그레타의 머리털이라도 다 뽑아버릴 듯 드잡이를 하던 그때, 로리엘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로리엘은 멈칫했다.

    극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없던 영리함도 나타난다던가.

    순간 로리엘의 머릿속이 번개가 치는 것처럼 번쩍하더니, 모든 조각이 짜 맞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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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래서였구나. 아. 그때도 그래서. 그것도.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온 거구나. 아니. 내가 온 게 아니라 저들이 날 여기로 보냈다고 해야 하나.’

    로리엘은 허탈한 마음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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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타. 재밌는 걸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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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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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뒤를 봐.”

    로리엘은 그레타의 머리채를 잡은 손을 휙 휘둘러 그레타가 뒤를 보게 했다.

    그레타의 뒤쪽. 테라스로 올라오는 계단 아래.

    둘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수십 개의 머리가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레타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가운데 무수한 구둣발 소리가 계단을 올랐다.

    가장 앞에 선 것은 엘슈바이크 제국의 문장을 어깨에 새긴 무장 병사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보이지 않던 왕궁 시종과 시녀들, 또, 국왕 타란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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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버지…….”

    그레타가 얕게 탄식했다.

    국왕은 분노조차 잃은 텅 빈 눈으로 그레타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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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버지! 잠깐만요! 이 미친 여자 말씀을 믿는 건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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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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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너희. 다들! 지금 이 여자 말 믿는 거 아니지? 어?”

    그레타와 눈이 마주친 시녀들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 검을 빼든 병사만 그레타를 향해 한 발 내밀었다.

    그레타는 로리엘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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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러려고 온 거였구나? 이러라고 황제가 널 보낸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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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

    로리엘이 자조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황제는 그 모든 기막힌 우연을 설계하고 자신을 그 안에 밀어 넣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로리엘은 기분이 이상했다.

    그레타에게 이용당한 것을 알았을 때는 그렇게 화가 나더니, 지금은 황제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고서도 별로 분하지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로리엘은 그 이유를 알았다.

    두 경우의 차이는 ‘목적을 달성하느냐’와 ‘달성하지 못하느냐’의 차이였음을.

    그레타의 술수는 실패했고, 자신이 그 모든 일의 덤터기를 썼지만.

    이번에는 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테니 황제는 저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와준 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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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 아까 했던 말 빈말 아니야. 날 좀 도와줘. 이번만 잘 해명해주면 내가 널 정말로 구해줄게. 도주로를 알고 있다는 거, 그거 진짜야! 그러니까 제발. 응? 내가 시킨 일이 아니라고 모두에게 말해줘.”

    그레타가 로리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란 거 알면서도 이러는 것을 보니 확실히 왕녀도 남은 수가 없긴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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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싫어. 난 따로 목적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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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 그게 뭔데? 내가 도와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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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랑 같이 죽는 거.”

    로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뜬 그레타를 가소롭게 비웃어준 뒤, 그레타를 꼭 붙들고 난간 아래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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