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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태양을 살리신 영웅 (96/154)


  • #96 태양을 살리신 영웅
    2022.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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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 하겠어요. 못 해요!”

    리엘라가 외쳤다.

    10분은 벌써 지났다.

    어느덧 연회장은 황제의 등장을 기다리는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고, 리엘라 앞에 쳐진 커튼은 아무리 두꺼워도 당연히 그 연회장의 긴장감 어린 분위기를 다 가려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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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폐하만 입장하세요. 저는 나중에 뒷문으로 슬쩍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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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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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빙 돌아서 정문으로 들어가든지……. 아, 아무튼 폐하랑 동시 입장은 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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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엘라.”

    헤르한의 낮은 채근에는 리엘라를 향한 걱정이 반, 리엘라가 귀여워 웃긴 것이 반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내가 악랄하다고 하려나? 언제나 차분하던 연인이 잔뜩 긴장해서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라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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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엄청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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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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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 다 저만 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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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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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리엘라는 답답하고 억울해서 눈을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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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실 테지만 저는……!”

    거의 덤벼들 지경인 리엘라의 손을 헤르한이 꾹 잡았다. 백 마디의 말보다 그게 더 리엘라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적임을 알았으니까.

    헤르한의 생각이 맞았다.

    그저 손을 꼭 잡아주는 것. 그리고 지그시 바라봐주는 것.

    그것으로 리엘라는 잔뜩 힘을 주었던 미간을 풀고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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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엔 대체 어떻게 연회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렀었는지 모르겠어요.”

    납치를 당한 후에 돌아와서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헤르한을 끌어안았던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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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땠지,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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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때는 그냥. 폐하밖에 안 보였어요.”

    엉성한. 하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 묻어나는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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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헤르한은 자신 역시 그에 맞는 진심으로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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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나만 봐. 넌 언제나 그러기만 하면 돼.”

    리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말갛게 뜬 눈은 헤르한을 다정하게 응시하다가 살포시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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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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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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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리엘라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서 마지막 심호흡을 했다.

    내내 리엘라의 결심이 굳기만을 기다렸던 헤르한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 앞에서 대기 중이던 시종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들이 끈을 잡아당기자 커튼이 양옆으로 열림과 동시에 탁 트인 연회장의 전경이 드러났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황제와 그의 정인의 모습에, 웅성거리던 실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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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사들의 연주만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화려한 샹들리에의 조명이 눈부시도록 밝았다.

    자신을 향하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 그 짙은 호기심과 긴장감 속으로 리엘라는 발을 내디뎠다.

    손님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얼마나 조용한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가 다 들릴 지경이었다.

    헤르한의 걸음. 그 보폭과 속도를 똑같이 흉내 내어 리엘라는 상석 정중앙까지 걸어갔다.

    마침내 떨리는 눈을 들어 마주한 얼굴들.

    딱딱하게 굳은 얼굴들 중, 상석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신사와 귀부인이 함께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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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태양이신 폐하를 뵙습니다.”

    헤르한은 절제된 고갯짓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황제에게 예를 갖춘 뒤 두 사람의 시선은 천천히 리엘라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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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쪽은…….”

    리엘라는 터질듯한 가슴을 꾹 부여잡고 그들의 말을 기다렸다.

    자신에게 그나마 있는 직함이라곤 호수궁의 대사라는 것뿐인데.

    그걸 알아봐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당신은 뭔데 황제 옆에 붙어 있느냐?’라는 말만 안 나와도 참 다행이겠다,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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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태양을 살리신 영웅이시로군요.”

    흐뭇한 웃음과 함께 건네어진 말에 리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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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제가 뭐라고요?

    반문할 틈도 없이 옆에 선 헤르한이 이미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빙긋 웃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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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이게 뭐예요?’

    리엘라가 얼떨떨한 눈짓으로 묻자 헤르한이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신호를 주었다.

    그건 자꾸만 인사법을 잊는 리엘라가 헤르한과 미리 약속한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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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참. 일단 인사……!’

    대기실에서 헤르한과 연습한 대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한 손을 내밀자, 신사가 그 손을 받들고는 손등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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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아름다운 영웅께서 손을 내어주시니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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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저는…….”

    리엘라는 아직도 사태가 파악되지 않아 말을 잘 잇지 못했지만,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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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엔 정말 멋진 활약을 보여주시더니, 오늘은 이토록 아리따운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해주시는군요. 블리니테 님.”

    신사의 옆에 선 귀부인의 치사를 시작으로 손님들이 리엘라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느새 정적이 거두어지고 다시 연회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리엘라가 정신을 차렸을 땐 주변이 ‘영웅 리엘라’의 눈도장을 찍으려고 웃으며 다가온 이들로 가득했다.

    *

    대연회가 드센 물살이라면, 리엘라는 급류에 떠내려가는 나뭇잎 한 조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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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니테 님! 정말, 얼마나 가까이서 꼭 뵙고 싶었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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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네……. 실례지만…….”

    상대를 알아봐 주지 못하는 건 큰 결례인데도, 상대는 그걸 지적하긴커녕 상냥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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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랑스 백작 부인이랍니다. 편하게 틸리 부인이라고 불러주세요. 이전 연회 때, 저쪽, 근위대장님 뒤에 서 있었는데 혹시 기억하시나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부인의 모습에 리엘라는 당황했다.

    누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까지 알아야 하는 건가?

    손님들의 이름도 모르는 마당에 그런 걸 다 기억할 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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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 정말 죄송합니다. 그땐 제가 워낙 경황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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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부인은 리엘라의 사과에 손사래를 치면서 바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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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블리니테 님이 제 앞까지 오셔서는 근위대장께 ‘대장님. 잠시 검을 써도 될까요?’ 하셨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그때 대장님 앞에 손을 탁! 뻗는데. 세상에. 제가 다 그 손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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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힌 리엘라에게 또 다른 영애들의 찬탄이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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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리엘 양에게 칼을 뻗는 폼은 또 어떻고요! 어머. 전 정말 거기서 피라도 보는 줄 알았어요. 까딱하면 정말 목을 찌를 뻔했잖아요. 블리니테 님.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거였나요? 거리를 절묘하게 계산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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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그드니스 영애 말이에요. 그날 정말 꼴불견이었거든요.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난동이나 부리고. 그런데 블리니테 님이 그걸 한 번에 제압하셨잖아요?”

    아. 그랬죠. 네. 제가 그랬던가요.

    리엘라는 민망한 웃음과 함께 멋쩍은 대꾸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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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술을 할 줄 아시는 건가요? 기마도 능통하시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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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오타 왕국에선 용병단으로 활동하셨다면서요? 전 세계 곳곳, 안 다녀보신 데가 없다던데! 그때 블리니테 님이 폐하의 목숨을 구해드린 게 연이 되어서 이 자리까지 오신 거라고 들었어요!”

    네? 제가요?

    리엘라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제대로 반박할 부분을 잡지 못했다.

    사방에서 온갖 칭찬이 쏟아지는데 그것들 대부분이 그랬다. 분명히 다 맞는 말들이긴 한데, 뭔가 묘하게 좋은 쪽으로 과장되어 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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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도 폐하 대신 기사단을 직접 호령해서 작전을 펼치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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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 탄 왕자님. 아니, 백마 탄 공주님이 따로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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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종종 궁으로 찾아뵈어도 될까요? 블리니테 님의 영웅담을 직접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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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저도요!”

    영웅담이라니. 백마 탄 공주님이라니.

    대체 이게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낯간지러운 마음에 어쩔 줄 모르는 그때 아주 반가운 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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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합니다. 부인. 영애분들.”

    아시온이었다.

    늠름한 무관의 등장에 영애들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주춤했다.

    그들 중엔 이미 아시온과 면식이 있는 듯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는 영애도 있었다.

    아시온은 그녀들에게 젠틀하게 고개만 끄덕이고는 리엘라에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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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잠시 떨어져 있는 그새를 또 못 참으시고요.”

    리엘라가 쿡 웃었다.

    멀리 있는 황제를 한번 쳐다보니, 그는 뒷짐을 진 채로 나이가 지긋한 원로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영애들에게로 고개를 돌린 리엘라는 정중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 뒤 떨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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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애들 대하기가 어렵진 않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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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요.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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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입니다.”

    리엘라는 차분하게 자신을 살피는 아시온을 물끄러미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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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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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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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저에 대한 헛소문을 이렇게나 퍼트려놨죠? 덕분에 지금 저분들은 제가 하늘을 난다고 해도 믿으실 정도예요.”

    아시온은 곧장 그 말뜻을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바라보는 건 물론, 저쪽에 있는 황제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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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폐하께서 아무 작전도 없이 리엘라 양을 내보이실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시죠?”

    사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헤르한의 깜짝 청혼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헤르한의 가슴을 치면서 화를 내기도 하지 않았던가.

    어째서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느냐고. 당신 때문에 난 바보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말 거라고.

    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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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황후가 될 테니까.”

     
    그 득의양양한 말은 다 근거가 있는 허풍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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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연회에 모인 분들은 전부 폐하의 모친이셨던 선대 황후 때부터 기반을 같이한 친황제파 귀족들입니다. 폐하가 폐태자로 내쫓기고 은둔하면서 복권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폐하를 믿고 지지해주시던 분들이에요.”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헤르한의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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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젠 이분들이 이후 리엘라 양의 세력기반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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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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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겠죠? 폐하께서 결심하신 이상, 그대로 믿고 따라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 제스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을 했었는데.

    웃으면서 생각하다가 리엘라는 걸음을 멈추고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헤르한의 백성이라는, 그리고 이제는 제 백성이 되어줄 거라는 수많은 손님들.

    그 외에도 곳곳에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루를 비롯한 시녀와 시종들. 기사들.

    제스와 아시온.

    그리고 저 앞에 있는 헤르한까지.

    그냥 버림받은 여자로 남겨질 수도 있었던 자신을 오늘 이 눈부신 자리까지 끌고 와 준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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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아시온 대장님.”

    리엘라가 말했다.

    뜬금없는 말이었는데도 아시온은 그 마음을 모두 이해한 듯 코끝을 한번 찡긋거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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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마음 놓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시온의 시선은 리엘라의 손에 끼워진 붉은 반지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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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싸워야 할 게 남아 있잖습니까. 물론 목숨 걸고 지켜드릴 테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되지만.”

    다시 고개를 든 아시온과 리엘라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둘은 그렇게 헤르한에게까지 나아갔다.

    황제 앞에 서 있던 원로들은 모두 리엘라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안다는 듯 익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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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오늘 나눈 얘기는 다음에 더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지.”

    헤르한은 원로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보란 듯이 리엘라의 손을 잡았다.

    리엘라는 조금 당황해서 눈을 치켜떴다.

    자신이 황제를 구한 ‘영웅’이라고 추앙받는 것과 황제의 정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의 일이니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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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폐하와 블리니테 님의 앞날에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다시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원로들은 만면에 화색을 띤 얼굴로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보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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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후사도 없이 미혼으로 늙어 죽을까 봐 걱정하던 영감들이라. 저자들 모두 마음속으로는 리엘라 너를 업고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일걸.”

    헤르한의 설명에 리엘라는 긴장감을 풀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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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리엘라 대사님.”

    그때 아시온이 말했다.

    맑게 웃는 두 사람에 비해 잔뜩 굳은 목소리였다.

    ‘진짜’ 전쟁의 시작을 알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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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엘 바이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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