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3 헤르한의 가장 큰 욕심 (93/154)


  • #93 헤르한의 가장 큰 욕심
    2022.05.19.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제스의 황당함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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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여왕의 태양이 리엘라 양의 손에? 폐하가 벌써 청혼하신 건 아닐 텐데?’

    오늘 오전만 해도 아무래도 새 반지를 구해야 할 것 같다며 잔뜩 골머리를 앓던 헤르한이었다.

    그런 주군 옆에서 아시온은 또 얼마나 죽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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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아시온. 그 멍청한 녀석. 반지가 리엘라 양에게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죽어나던 거였군.’

    마침내 반지 분실 소동의 어처구니없는 전말을 알게 된 제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리엘라에게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나, 아니면 당장 주군을 여기로 불러야 하나.

    어느 쪽이든 일단 아시온은 좀 더 놀려먹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이번엔 문득 리엘라의 얼굴이 제스의 눈에 들어왔다.

    번쩍거리는 광채로 눈길을 끄는 대단한 반지.

    그런데 그 ‘대단한 반지’보다도 더 눈길을 끄는 리엘라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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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반지가 뭔지나 알고 그렇게 진지하게 보고 있는 건지…….’

    제스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 리엘라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르는데도 리엘라는 자기 손에 든 반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물끄러미 반지를 바라보는, 참 많은 생각과 걱정이 담긴 깊은 눈.

    제스는 그런 리엘라의 눈빛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언젠가 저 반지를 보던 주군의 눈빛과 참 같아 보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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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엘라를 행복하게 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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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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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걸 다 바쳐서라도 리엘라를 지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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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예. 그렇게 하십시오.”

     
    일부러 사람 염장을 지르려는 건가, 뭐하러 저런 뻔하고 낯부끄러운 소리를 하고 또 하지?

    제스는 주군이 참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리엘라가 자신을 찾아와 그때의 주군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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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 말을 안 해도 마음끼리는 결국 통한다, 뭐 그런 건가.’

    제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홀로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저들의 사랑 타령을 따르는 날이 오게 된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게 아니고서야.

    사실 황제는 이번에도 정공법을 택했다.

    이번 연회는 연맹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덫이기도 했지만, 황제가 리엘라를 황후 감으로 세상에 선보이려는 자리이기도 했다.

    제스는 그 계획에 회의적이었다. 리엘라가 황후로 인정받는 데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 테니까. 그래서 황제 몰래 이 계약서에 리엘라의 서명을 받으려 한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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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레스부터 새로 맞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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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제스는 결국 바닥에 떨어뜨린 계약서를 줍지 않고, 빈손으로 다시 리엘라 앞에 돌아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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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리스트를 드리겠습니다. 당장 의상실 몇 군데를 호출해서 부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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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요. 제가 폐하를 위해 할 일을 주신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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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요. 그게 이겁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리엘라에게 제스는 단호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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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있을 연회에서 제일 눈부신 사람이 되십시오. 모두가 우러러볼 수 있을 만한 대단한 사람이 되세요.”

    대체 그게 어떻게 폐하를 돕는 일이라는 건가.

    리엘라는 뚱한 얼굴로 묻는 대신 혼자 제스의 말을 곱씹고 치열하게 고민하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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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반지가 뭔지는 압니까?”

    그러다가 난데없이 이어진 질문엔 뜨끔해 하며 앉은 자리에서 살짝 튀어 올랐다.

    제스가 보지 못하게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들킨 건가.

    리엘라는 그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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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이엘 경의 목걸이처럼 뭔가 신비한 힘을 가진 마석이 아닌가, 짐작만 하고 있는데.”

    영특한 아가씨가 이번엔 영 잘못 짚었네.

    제스는 피식 웃기만 할 뿐, 그 말이 맞다 틀리다 대답해주지는 않았다.

    리엘라는 살짝 기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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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제가 갖고 있다고 폐하께 이르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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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쎄요. 생각 좀 해보고요.”

    제스는 리엘라가 뭐라 반박할 틈도 없이 바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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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하죠. 연회까지 남은 사흘 동안 반지에 대해서 모른 척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그 반지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보십시오. 연회 때까지 답을 못 찾으시면 그땐 스스로 폐하께 이실직고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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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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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회 전에만 돌려드리면 폐하께는 큰 문제없을 겁니다.”

    물론 아시온은 죽어나겠지만.

    제스는 재미있다는 듯이 얄궂게 웃었다.

    *

    혹을 떼려다가 혹 하나를 더 붙인 기분이 이럴까.

    헤르한을 위해 할 일을 찾으려던 리엘라는 ‘제일 눈부신 사람이 되어라’라는 알 수 없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반지의 의미를 알아내라는 숙제까지 떠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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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반지가 대체 뭔데?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아니면 그냥 루에게 물어봐……?’

    리엘라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제스가 내준 숙제라 그런지 오기가 생겼다.

    역시 이건 평범한 반지가 아니었다는 확신까지 생겨서 더더욱.

    그렇게 이른 아침부터 찾은 황실 도서관.

    고(古)문서실을 싹 뒤져 안투와 엔릴 신화에 대한 정보란 정보는 전부 확인하고, 보석 도감까지도 다 섭렵했지만 도저히 반지의 정체에 대해선 답을 알아낼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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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도저히 모르겠어.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나?’

    그때 바깥쪽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서고의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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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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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수십 명의 병사를 뒤에 달고 서고 안에 들이닥친 건 헤르한이었다.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리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얗게 질린 헤르한의 표정은 무엇이며, 그의 뒤를 우르르 따르는 무장병들은 또 무슨 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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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무슨 일이에요? 회의 중 아니셨어요? 여기까진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아니면 어디 도둑이라도 든 건가.

    걱정하며 나서는 리엘라를 헤르한이 달려와 와락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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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져서 걱정했잖아.”

    헤르한의 가쁜 숨소리. 그 틈으로 터져 나오는 뜨거운 안도의 한숨.

    리엘라는 순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리엘라를 끌어안은 헤르한의 몸은 아직도 떨쳐버리지 못한 긴장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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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없이 없어지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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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종장에게 서고에 가 있겠다고 얘기하고 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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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테. 나한테 얘기 안 했잖아.”

    회의 중인 당신께 무슨 수로 얘길 해요.

    리엘라는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황제가 이렇게 어이없이 떼를 쓰는 것이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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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웠어.”

    헤르한이 얼굴을 리엘라의 어깨에 파묻으며 말했다.

    그는 열을 식히기라도 하려는 듯이 뜨거워진 볼을 리엘라의 흰 살결 위에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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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또 납치라도 당한 줄 아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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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얼마나 가슴이 뛰고 끔찍했는지 넌 모를걸. 하……. 이제야 살겠어.”

    진심이 가득 묻어나는 걱정에 리엘라는 마냥 웃던 입꼬리를 내렸다.

    헤르한은 요새 계속 예민했다.

    이엘을 앞세워서 연맹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신경증이 심해져서 제스가 처방해 준 수면제를 먹고야 겨우 잠이 들었고, 그마저도 리엘라가 아주 조금만 뒤척이기라도 하면 곧바로 반응하며 몸을 벌떡 일으키곤 했다.

    그건 정화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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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당신을 제가 또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나 봐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리엘라는 헤르한의 두 볼을 감싸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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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제게 뭔가 바라는 건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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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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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힘내시라고, 제가 해드릴 게 없나 해서요.”

    헤르한은 리엘라에게 양 볼이 잡힌 채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고민을 마친 그는 바라는 것을 말하는 대신 눈을 감고 턱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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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겸허히 눈을 감은 것에 비해 살짝 앞으로 마중 나온 입술이나 아직 열기가 다 가라앉지 않은 두 볼.

    리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그 의미를 깨닫고 웃음을 터트렸다.

    리엘라가 웃건 말건 헤르한은 계속 그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전에는 절대로 눈을 뜨지 않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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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리엘라는 고민하는 척하며 헤르한의 어깨너머를 한번 흘긋거렸다.

    황제의 뒤를 따라 우르르 들어섰던 병사들은 벌써 눈치껏 서고 밖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리엘라는 못 이기는 척 헤르한의 볼을 감싼 손을 그대로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쪽.

    아기 새가 먹이를 쪼듯, 부드러운 입술이 빠르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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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죠?”

    헤르한은 한쪽 눈꺼풀만 살짝 들어 올렸다. 뭔가 영 부족하다는 듯이 아쉬운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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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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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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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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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야. 이거면 돼. 이렇게 늘 내 옆에 무사히 있어 주기만 하면 돼.”

    리엘라는 헤르한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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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지 말고 폐하도 욕심을 부려보세요. 제가 기껏 소원을 들어드리겠다는데.”

    정말.

    당신을 위해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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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알게 될 거야. 리엘라.”

    그러자 헤르한이 리엘라의 허리를 감아 안으며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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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말이 끝난 후, 이번엔 헤르한의 입술이 전과 달리 진득하게 리엘라의 입술을 덮쳐왔다.

    *

    헤르한은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언제나 리엘라의 옆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훌쩍 코앞으로 다가온 연회를 준비하는 것도 너무 바빠져서, 리엘라는 제스의 숙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오후에는 호수궁 시녀들이 내실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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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에게 들으니, 연회 때 입으실 의상을 고르는 걸 어려워하신다고 해서요!”

    헤르한은 한 무더기의 시녀들이 들이닥치고야 안심하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시녀들은 의상실 몇 개를 통으로 털어온 듯 옷걸이와 액세서리 선반을 끝도 없이 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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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거나 입어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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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아무거라니! 당치도 않아요. 리엘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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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직 입지 않은 새 드레스도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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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고요. 가장 세련되고 품격 있는 것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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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아요. 온 제국의 사람들이 다 몰려들 텐데, 리엘라 님은 그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분이셔야 한다고요!”

    가장 눈부신 사람이 되라고. 그거 어디선가 들어본 말 같은데?

    시녀들은 꼭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전투적이고 결연했다.

    꼭, 루가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라 더 윗선의 지령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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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모두의 말대로 예를 갖추는 게 좋긴 하겠지. 공식 석상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직전의 연회는 나 때문에 엉망이 되기도 했고…….’

    그렇게 종일 시달린 끝에 리엘라는 드레스와 구두, 팔찌와 목걸이, 머리 장식, 장갑, 부채와 숄까지 전부 준비를 마쳤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중무장이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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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는 없어요?”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굳이 은은한 코랄 빛 드레스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차야 한다면서 귀걸이와 팔찌, 목걸이를 세트로 채워놓고 반지만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러고 보니 시녀들이 가져온 보석함 그 어디에도 반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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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손은 비워둬야죠! 폐하께서 곧 엄청난 언약의 반지를 끼워주실 텐데……!”

    그때 리엘라의 머리에 향유를 바르느라 여념이 없던 시녀 하나가 허투루 입을 열다가 말을 뚝 멈추었다.

    그 순간 내실 안, 북적북적하던 모든 시녀가 일동 정지했다.

    누군가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 외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리엘라도 굳어버리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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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호호. 리엘라 님. 내일 머리는 어떻게 할까요? 올림머리도 좋고, 땋는 것도 예쁠…….”

    시녀가 다시 말을 걸어보았지만, 리엘라는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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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 나 좀 봐요.”

    루는 슬금슬금 뒷걸음질만 치다가 끝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풀쩍 뛰어올랐다.

    리엘라는 그런 루를 침실 안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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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 솔직히 얘기해줘요.”

    아직 묻기도 전인데 루가 벌벌 떨었다. 그것만으로 이미 답은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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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폐하께서…….”

    왜 몰랐을까.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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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내게 청혼을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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