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 정면 승부 (79/154)


#79 정면 승부
20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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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후손을 빨리 데려오라고 협박받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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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협박이었습니다. 후손이라니. 보좌관에게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요? 아니면 맥락상 ‘후손’이라는 게 어떤 물건을 뜻하는 것일……. 아. 대사님!”

에릭은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은 리엘라를 일으키느라 말을 더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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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얼굴이 창백하십니다. 의사를 불러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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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 괜찮아요.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리엘라는 애써 에릭을 집무실 밖으로 물린 뒤에 책상에 돌아가 앉았다.

제 목덜미 안으로 손을 넣어서 끄집어낸 것은 자신이 걸고 있던 이엘의 목걸이였다.

헤르한이 출장을 떠난 뒤로는 줄곧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붉기만 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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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정말 당신은 폐하를 노리고 있었던 거야? 엔릴의 후손을 찾고 있었어? 이걸 가지고 폐하를 끌어 내리려고?’

이엘이 이 목걸이의 주인이라는 점이나 평소 헤르한을 대하던 태도를 생각했을 때, 그는 이미 헤르한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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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렇다면 왜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

이엘은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괴로워하면서 아예 황궁을 뛰쳐나가 숨어버리지 않았던가.

그건 어쩌면 그가 망설이고 있다는 증거거일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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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약해질 여유 같은 건 없어.’

리엘라는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순간 집무실 사방에 깃든 이엘의 흔적들이 보였다. 그와 함께 공부하던 책. 그의 책상. 거기에 자신이 실수로 잉크를 흘려 혼났던 기억들까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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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조금이라도 폐하에게 위협이 될 사람이라면, 난 당신을 칠 수밖에 없어. 미안해요. 이엘 경.’

리엘라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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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루 어디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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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리엘라 님.”

리엘라는 곧장 호수궁 내실로 돌아가 루를 호출했지만, 이번에도 루 대신 나온 건 로리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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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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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이요. 후후. 아직도 성장기라 키가 더 크려는 건지, 뭔지.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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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채비를 좀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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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제가 도와드려야지요.”

로리엘은 생글거리는 얼굴로 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활동하기 좋은 옷을 꺼내 달라는 요청에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밑단이 가볍고 짧은 옷을 들고 와 착복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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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폐하께서 도착하시니 좋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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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렇죠.”

로리엘의 말은 다른 의미로 리엘라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헤르한이 도착해서 위험해지기 전에 이엘의 일을 매듭지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역시나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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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보셨다면 분명 무슨 일이냐고 캐물어 보셨을 거야. 폐하가 안 계실 때 내가 먼저 손을 쓸 수 있게 된 건 어찌 보면 천운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고개를 든 리엘라의 눈에, 저와는 완전히 상반된 기쁜 표정의 로리엘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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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엘 양은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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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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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까부터 콧노래도 흥얼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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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제가 그랬어요?”

리엘라의 머리를 빗질하던 로리엘의 손은 잠시 주춤했다가, 곧 다시 춤을 추듯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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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돌아오셔서 두 분이 다시 사이좋게 지내실 생각에 기뻐서 그런 거죠.”

평소와 다름없이 상냥한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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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침실에서 마주쳤던 날은 분명 태도가 좀 이상했는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건가?’

리엘라는 로리엘을 빤히 보다 말고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단정한 차림을 갖추고 리엘라가 나아간 곳은 황궁 내 병영 근처의 연무장이었다.

미리 지시해놓은 대로, 연무장엔 에릭을 포함한 황제 직속 제2 기사단이 반듯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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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들 앞에 서서 결연하게 입을 여는 동안 리엘라의 가슴은 미친 듯이 두방망이질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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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폐하의 군사를 움직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황실 기사는커녕 마을의 위병 앞에서도 벌벌 떨던 리엘라였다. 저렇게 겁이 많은 것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겠냐며, 행크가 혀를 끌끌 찼을 정도로.

그런데 오늘.

리엘라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과 기상을 갖춘 기사들 앞에서 어깨를 반듯이 펴고 필사적으로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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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부탁할 게 있어요.”

짐짓 떨리던 목소리는 점차 의젓한 기운을 되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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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명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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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는 기사들 하나하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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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안위와 직결된 일입니다. 반드시 실수 없이 움직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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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이엘! 대체 왜 이러는 거니? 갑자기 왜 짐을 싸는 건데?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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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도와주세요. 빨리 이 가방 안에 물건을 담아 주세요. 부피가 큰 건 버리고, 정말 중요한 것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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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엘!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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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요!”

그 시각 이엘의 집안은 쑥대밭이었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 들어온 이엘이 온 집안을 헤집으며 짐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단단히 혼이 빠져버린 그는 모친이 덤벼들어도 좀처럼 침착함을 되찾지 못했다.

그런 이엘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은 어린 여동생이 겁에 질려 울기 시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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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앙. 오빠 왜 그래.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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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데니스. 무섭지 않아. 우리는 그냥 여행을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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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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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우리 다 같이, 여기보다 더 조용하고 안전한 곳으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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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집에는 언제 다시 와?”

이엘은 대답을 잇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욱여넣던 가방도 바닥에 힘없이 내려놓았다.

뭔가를 눈치챈 듯,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와 방문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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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 너 설마 공작 어른을 배반하려는 건 아니지? 응?”

이엘이 대답하지 못하자 어머니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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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상하다 싶더라니……! 출근도 하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것도 그래서였니? 이엘! 왜 그런 마음을 먹은 거야? 공작 어른께 밉보이기라도 한 거니? 응? 말해봐. 그럼 어미가 대신 찾아가서 용서라도 구해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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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하세요. 어머니. 공작 어른을 찾아가면 어머니는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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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이엘의 목소리는 담담했고, 어머니는 사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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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를 저렇게 만든 것도 공작 어른의 짓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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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체 무슨 소리를……. 아니, 그럴 리가……?”

두려움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지나쳤는지 어머니가 넋 빠진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이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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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숨어만 있으려고?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닐 텐데. 이엘.”

 
이엘이 연맹에서 보내온 사람을 또 마주친 건 오늘 새벽녘이었다.

그전까지 이엘은 집안에서만 틀어박혀 지냈다. 필요한 음식이나 생활용품은 이웃들에게 웃돈을 주고 부탁해가면서 은둔했다.

그런데 염증이 도져 아프다고 밤새 칭얼거리는 동생을 어쩌지 못해 진통제만이라도 구해보려고 급하게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놈들은 이엘이 스스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던지 곧바로 접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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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북부로 떠난 것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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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주인이 자리를 비웠단 말이야. 빈집털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자네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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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건 우리가 아니라 자네야. 우린 자네 말고도 부릴 수 있는 개가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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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 시간을 끌수록 자네만 손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황제가 돌아오기 전. 그때까지만 말미를 주지. 그 시일이 다 되도록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다시는 가족들을 보지 못하게 될 거라는 공작 어른의 전언이시다.”

 
이엘은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집으로 돌아와 이렇게 도망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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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하고 졸렬하게.’

이엘은 자신의 태생 자체가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자조했다.

정면 승부를 할 용기 따위는 애초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지도 못했다.

그러니 늘 위축되어 있었고, 남들과 섞이지 못했고, 그래서 늘 음침한 뒷자리 구석만 차지하지 않았던가.

탐나는 것도 빼앗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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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그런 비겁한 놈이니까.’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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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누구세요?”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데니스가 현관을 연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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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데니스! 문 열지 마!”

이엘은 심장이 덜컥해 밖으로 내달았으나, 문을 두드렸던 방문객은 이미 떠난 뒤였다.

데니스의 손에 붉은 봉투의 편지 하나만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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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놈들……. 또 무슨 소리를 더 하려고…….’

이엘은 빨간 입술을 짓씹으며 편지를 열어보곤 곧장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잃어버린 물건은 언제 가져갈 건가요? 아직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잖아요. 기다릴게요.]

둥글고 단정한 예쁜 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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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물건……. 내 목걸이를 말하는 건가.’

아무리 집 안을 찾아봐도 없다 했더니, 역시 리엘라와 함께 있을 때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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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봤으면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알았을 텐데. 날 불러서 정면 승부를 하겠다고? 정작 난 추하게 도망이나 치려 하고 있는데…….’

이엘은 빤히 보던 편지를 움켜쥔 채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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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잠깐 다녀올 테니 짐을 챙기면서 기다리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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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엘. 이런 상황에 어디를 가는 건데, 응?”

그런 어머니에게 이엘이 남긴 것은 대답이 아닌 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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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가 해가 질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으면 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항구로 가세요. 아셨죠?”

그렇게 집을 뛰쳐나온 이엘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무작정 황실을 향해 걸었다.

해가 쨍한 한낮인데도, 걷는 내내 사방에서 섬뜩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 것 같은 느낌에 퍼뜩 뒤를 돌아보면 다시 텅 빈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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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놈들. 이젠 일일이 뒤까지 밟는 건가.’

뒤를 돌아 싸울 시간은 없었다. 이엘은 이를 꽉 깨물고 그냥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저 멀리 황궁이 보였다.

평소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 성문을 바라보며 이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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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돌아가서 어쩔 건데?’

그는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것 앞에선 늘 겁을 냈고, 피했다.

답을 알지 못하는데도 발을 뻗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마, 리엘라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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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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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타. 어서!”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달려온 말 한 마리가 이엘의 앞에 멈추었다.

말을 몰고 온 이는 다짜고짜 이엘을 말에 태우고는 또 어딘가로 전력 질주했다.

그렇게 한참, 복잡한 길을 에둘러 달리다가 도착한 어느 골목.

말에서 내린 이가 복면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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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보좌관. 무슨 죄를 짓고 다니시기에 그렇게 따라붙는 놈들이 많아? 리엘라랑 싸웠나? 강제로 덮치려다가 까이기라도 했어?”

검은 머리카락. 독기로 반짝이는 눈.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천박한 말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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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께서 무슨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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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은. 내가 당신을 구해준 거지. 몰라?”

그레타 왕녀는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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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저 성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죽어. 리엘라가 병사들을 쫙 깔아놓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데? 아. 혹시 다 알면서 그냥 불나방이 되어 주려던 거였나?”

이엘은 난데없이 나타나 이 상황에 개입하는 왕녀를 의심 가득한 눈길로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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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쪽을 선택해보는 건 어때? 내가 좋은 거래를 제안할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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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원하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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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몰라. 리엘라를 갖고 싶어 했잖아. 아니야?”

그레타는 배를 잡고 깔깔깔 웃다가, 하도 웃어서 눈가에 고이기까지 한 눈물을 우아하게 훔쳐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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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한테 줄게.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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