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8 디데이 (78/154)


#78 디데이
2022.03.27.


이른 아침, 여느 날처럼 리엘라 앞에 마주 앉은 헤르한은 리엘라가 야무지게 아침 식사를 다 끝낸 것을 보고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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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왕녀가 리오타 왕국으로 돌아가겠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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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리엘라를 보고서 헤르한은 낮게 웃었다.

거봐,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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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쉽기라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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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렇다기보다는…….”

리엘라는 말을 흐렸다. 일부러 말을 아끼려는 것이 아니라,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서였다.

속이 시원한 건가? 찝찝한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그냥 보내버리면 안 될 사람이다 싶다가도, 그래서 왕녀를 붙잡고 무슨 복수를 더 할 거냐 물으면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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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네가 무슨 마음일지. 왕녀도 아마 같은 생각인 듯해. 그래서 그런지 누구의 배웅도 받지 않겠다는군. 조용히 떠날 테니 환송식도 필요 없고 수행단도 딸려 보내지 말라던데.”

황제의 말이 맞았다.

왕녀가 떠나기로 한 오후, 리엘라는 헤르한과 함께 성문이 보이는 망루에 서서 그레타 왕녀가 황궁을 떠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레타는 정말 예고한 대로 수행원 하나도 없이 말 한 필만을 타고 홀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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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렇게 보내도 될까요?”

걱정을 떨치지 못하는 리엘라를 헤르한이 뒤에서 안아왔다.

근무 중이던 망루의 병사는 곧장 몸을 돌리고 투구 속에 붉어진 얼굴을 감추었다.

그런데도 헤르한은 멈추지 않고 리엘라의 귓바퀴에 제 입술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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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병사들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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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몰래 알려줄 것이 있어서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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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게 리엘라를 제품 안에 고분고분 가둔 헤르한은 리엘라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짧은 얘기를 전해주었다.

사실은 파비안이 떠난 직후에 왕녀를 찾아가 마음을 읽었노라고. 그때 왕녀는 파비안을 잃은 충격에 모든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고. 왕녀를 더 몰아세우거나 추궁하지 않고 그냥 왕국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한 건 그래서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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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상태로는 아마 널 더 위협하지 않을 거야. 왕녀 혼자 그럴 방도도 없고.”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성문을 통과한 왕녀는 이제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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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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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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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뭘 기대했지? 무슨 기대를 했기에 병사들이 있으니 안 된다면서…….”

그 말에 리엘라는 단번에 헤르한의 품 안에서 쏙 빠져나와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망루의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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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또 어딜 도망가? 대단한 걸 기대했는데 내가 실망하게 해서 그런가? 응?”

헤르한은 지치지도 않고 호탕하게 웃으며 리엘라를 따라왔다.

아무리 리엘라가 도망칠 때 재빠르다지만 헤르한이 마음먹고 따라잡는 것을 따돌릴 도리는 없었다.

마침내 헤르한의 손아귀에 리엘라가 잡힌 건 망루 1층 문 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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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 리엘라. 아직 할 얘기가 더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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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놀리지를 마세요!”

리엘라는 발그레해진 볼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다.

미간도 열심히 찌푸리고서 헤르한을 혼내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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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며칠이나 안 보고 견디지?’

그런 리엘라를 단단히 낚아챈 상태로 헤르한은 고뇌에 빠졌다.

그냥 계획을 물릴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더 완벽한 미래를 위해 시간을 조금 투자하기로 마음먹고서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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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며칠 동안 출장을 좀 다녀올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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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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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정도 될 거야. 그동안은 이렇게 널 또 놀릴 일도 없을 테니까 마음 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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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그러자 리엘라가 우렁차게 외쳤다.

생각보다 단호한 반응에 헤르한은 살짝 놀랐다가, 이내 웃으며 리엘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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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와 떨어져 있기 싫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이제 왕녀 일도 해결되었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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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안 돼요. 싫어요!”

리엘라의 반발은 더 심했다.

헤르한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엘라가 서운해 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으니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나 싶을 때쯤, 리엘라가 헤르한을 놓칠세라 아예 허리를 끌어안고 제 얼굴까지 파묻으면서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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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마세요. 폐하. 아무 데도 가지 마세요. 전 못 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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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그런 이유로 북부 시찰을 급하게 다녀오셔야 하는 상황입니다. 안타깝지만 폐하께서 꼭, 반드시, 직접 가셔야 하는 상황이에요.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전력으로 갔다가 오면 딱 닷새면 충분합니다. 리엘라 양.”

아시온이 리엘라를 앉혀놓고 때아닌 ‘설명회’를 연 곳은 헤르한의 집무실이었다.

리엘라가 헤르한의 출장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서자 리엘라를 진정시키고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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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경도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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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저는…….”

리엘라의 물음에 고개를 든 제스가 마주한 건 자신을 향해 살기등등한 눈살을 쏘아 보내는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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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내 인생…….’

제스는 그런 주군을 이기지 못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대충 리엘라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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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 업무가 있어 황실에 남습니다. 이번 출장은 아시온과 산하의 제1 기사단이 폐하와 동행할 겁니다.”

다 개소리였다.

사실 황제는 급한 시찰을 하러 가는 게 아니고 리엘라에게 선물할 다이아몬드를 구하러 가는 것이었다. 리엘라에게 딱 맞는 대단한 다이아몬드가 드디어 북부 광산에서 나왔다나 뭐라나.

아무런 꼬임수도 없이 당당하게 결혼 승낙을 받아오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더니만, 막상 청혼할 때가 되니 주군도 어지간히 초조해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먼 원정이니 아시온이 동행하는 것까지는 인정.

그런데 자신만 홀로 황실에 남게 된 건 그가 떠맡게 된 ‘끔찍한 임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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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자마자 바로 리엘라에게 청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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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그러시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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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네가 알아서 다 준비해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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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뭘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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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말이야. 꽃. 악단. 근사한 조명이랑 장식, 음식. 리엘라가 차려입을 것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세팅해둬. 아. 반지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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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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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반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구해 갈 테니까.”

 
그렇게 졸지에 ‘이벤트 준비 담당’이 되어버린 제스가 괴로워하건 말건, 헤르한은 계속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리엘라를 달래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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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정 불안하면 아시온을 네 곁에 두고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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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안 돼요! 절대 아시온 대장님과 떨어져서 다니지 마세요. 폐하. 항상 대장님과 기사단과 함께 계세요. 기왕이면 제스 경도 폐하와 함께 가시면 좋을 텐데…….”

그 말에 헤르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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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너 혼자 황실에 남아 있는 것이 무서워서 그러는 것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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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니에요. 그 반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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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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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걱정되어서요. 폐하께서 저 없는 동안 무슨 일이라도 당하시면 전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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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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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정적이 일었다.

아시온과 제스는 리엘라를 빤히 향하는 헤르한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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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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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저도. 훈련이 있어서…….”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헤르한은 리엘라의 턱을 들어 길게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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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봐. 리엘라. 넌 늘, 날 어떻게 쥐고 흔들지 그 연구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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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폐하가 걱정되는 걸 어떡해요. 폐하가 제 눈에 안 보이면 불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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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늑대 걱정을 다 하고.”

헤르한은 웃는 입 모양 그대로 다시 리엘라에게 입을 맞추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

그날 저녁, 황제의 북부 출장 소식을 들은 로리엘은 준비로 바쁜 황제에게 굳이 알현을 신청했다. 물론 리엘라 모르게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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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북부 출장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부 광산으로 ‘여왕의 태양’을 구하러 가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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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드니스 영애. 그대가 그걸 어떻게?”

헤르한은 놀란 눈으로 로리엘을 쳐다보았다.

‘여왕의 태양’은 헤르한이 가지러 가는 다이아몬드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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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안의 상단을 통해 들었죠. 북부 부르도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레드 다이아몬드가 나왔다는 얘기는 벌써 알 만한 이들은 알고 있으니까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실은 이번 경매에 참여할 자들의 명단을 확보했거든요. 혹시 폐하께 도움이 될까 하고 가져왔습니다.”

로리엘이 은밀하게 문서를 건넸다.

그건 확실히 헤르한조차도 구하지 못했던 아주 귀한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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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는 반지로 세공하실 거죠? 거기에 맞추어서 최고의 장인도 제가 미리 섭외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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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신세를 지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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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두 분의 행복을 위해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인걸요.”

로리엘은 아주 기쁘게 웃었다.

로리엘은 진심으로, 황제가 ‘여왕의 태양’을 반드시 손에 넣기를 바랐다.

*

헤르한은 다음 날 아침 출발했다.

짧은 일정이기 때문에 거창한 출정식 같은 건 없이 필요한 인원들만 성문 앞에서 황제 일행을 배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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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대장님. 우리 폐하 잘 부탁드려요. 꼭 탈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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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탈 없이 리엘라 양의 품에 되돌려 드릴 테니까 닷새만 눈 딱 감고 기다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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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도요. 아셨죠? 혼자서는 절대 돌아다니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거든 곧장 제게 연통하시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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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다니까.”

헤르한은 아예 말의 고삐를 놓고, 끝도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리엘라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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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출장에서 돌아오면 네게 긴히 할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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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게요. 그러니까 제발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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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가 보면 내가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줄 알겠군.”

헤르한은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리엘라를 애틋하게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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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황제 직속 제2 기사단을 임시로 네 앞으로 옮겼어.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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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하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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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날 걱정하는 것처럼 나도 네가 걱정되니까. 이참에 권력 한번 마음껏 누려봐. 해치워버리고 싶었던 녀석이 있으면 이 기회에 처리해버려도 좋고.”

말을 마친 헤르한이 리엘라의 허리를 감고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보는 이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입술을 포갰다.

리엘라는 처음에 그런 헤르한을 뿌리치려고 했었다. 자신의 진지한 걱정을 자꾸만 가벼운 장난 취급하고 넘기는 것이 미워서.

하지만 뜨거운 숨결이 자신을 휘감아오는 순간 리엘라는 다른 생각을 모두 놓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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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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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헤르한은 강렬하지만 짧은 입맞춤을 남기고 떠났다.

모든 걱정이 기우였나 싶을 정도로, 헤르한이 떠나고 난 후의 황실은 평온했다.

미리 인수인계를 받아둔 정무대신이 막힘없이 황실 일을 처리했고, 왕녀가 떠난지라 호수궁 리오타 대사관도 많은 업무로부터 해방되었다.

거의 휴가나 다름없는 나날을 사흘이나 지냈을 때.

이제 내일모레면 다시 헤르한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유달리 들뜬 리엘라에게로 기사 에릭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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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경?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죠?”

사실 리엘라는 에릭에게 이엘의 감시를 지시했었다.

원래 황제의 명으로 이엘을 감시하던 그의 감독 범위를 늘린 것이었다. 황궁 밖, 자택까지, 24시간 놓치지 않도록.

그동안 이엘이 집안에만 얌전히 있다는 걸 아는 것도 그 덕이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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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의 수상한 거동을 목격했습니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자들과 접선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성도 제법 오갔지만 일부러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언뜻 듣기로는 ‘후손’을 빨리 데려오라면서 협박받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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