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 절대로 넌 내 마음 몰라 (66/154)


#66 절대로 넌 내 마음 몰라
2022.02.13.


리엘라는 고민하지 않고 자신에게 내어진 황제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파비안이 커다란 눈을 떨며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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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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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파비안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레타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파비안의 한쪽 팔을 움켜쥔 그레타의 손아귀에 힘이 드셌다. 그에게 일부러 입혔을 비싼 재킷에 손자국을 꾹 남길 정도로.

그러자 파비안은 잘 훈련 받은 개처럼 이내 리엘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입을 다물었다.

리엘라는 그게 참 웃기지도 않았다. 어쩜 저들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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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지. 모두 시장할 텐데.”

그때부터였다.

파비안이 아주 살뜰한 손길로 그레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레타가 앉을 의자를 빼주고, 그레타의 무릎 위에 냅킨을 곱게 펼쳐 깔아주고, 또 시종들이 내오기 시작한 음식들도 굳이 자신이 받아 그레타의 앞에 예쁘게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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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저런 모습 보여주자고 일부러 식사까지 하자고 한 건가.’

리엘라는 그레타의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여 쓴웃음을 머금었다.

헤르한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피식 웃으면서 옜다 하고 그레타가 원하는 반응을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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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참 사이가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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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애정행각이 너무 심했나요? 송구합니다. 폐하. 결혼을 앞둔 커플이 다 이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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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기 좋으니 편하게 들어.”

아까 그렇게 쳐다볼 땐 언제고, 지금 파비안은 필사적으로 리엘라를 외면하고 있었다.

오직 그레타만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다정한 약혼자 역할을 수행해내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었다.

그레타는 그게 참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그 뒤로도 그레타는 열심히 자신의 행복을 전시했다. 파비안이 리오타의 왕가와 귀족사회에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또 자신들의 결혼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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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다 폐하의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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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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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폐하께서 저희의 과오를 덮어주시고 좋은 방향으로 끝맺어주신 덕택에 이렇게 결혼도 할 수 있게 된 거죠. 말하자면 폐하께서 저희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주셨달까요?”

일부러 황제의 심사를 비틀기 위한 말이 분명한데도 헤르한은 쿡쿡 웃기만 했다.

참 흥미롭다는 식의 그의 눈길이 향한 건 파비안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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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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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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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도 마침내 운명의 짝과 결혼하게 되어 행복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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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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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왕녀가 그대의 운명의 짝인 거.”

파비안은 그때야 심란한 눈으로 리엘라를 흘긋거렸다.

때마침 그레타가 일부러 접시 소리를 달그락 냈다.

파비안은 정신이 번쩍 든 듯 ‘예’ 하고 대답했고, 그레타는 입꼬리를 슥 올리며 화제를 헤르한 쪽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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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너무 우리 왕실 좋은 일만 해주신 거 아닌가 싶어요? 손해 봤다고 아쉬워하시는 거 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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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얻은 게 더 크지.”

헤르한은 파비안 쪽을 더 물어뜯지 않았다.

대신 여유롭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던 리엘라의 손 위에 제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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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해. 내가 제일 큰 걸 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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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한의 손이 보란 듯이 농염하게 움직였다.

리엘라의 흰 손등을 매끄럽게 어루만지고, 일부러 손끝을 세워 리엘라의 손 틈새를 간지럽히듯 문지르기도 했다.

이내 벌어진 손가락 틈으로는 제 긴 손가락을 쑤욱 집어넣어 단단히 깍지를 끼고 잡았다.

잔뜩 동요한 파비안이 와인 잔을 집으려다가 옆으로 넘어뜨린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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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죄, 죄송…….”

수습할 새도 없이 엎질러진 와인이 테이블 위를 붉게 물들였다.

원탁 테이블, 파비안의 오른쪽 옆에 앉은 건 리엘라였다. 자연히 쏟아진 와인이 테이블 아래로 뚝뚝 흘러내려 리엘라의 드레스 끝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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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어, 어쩌지? 괜찮아?”

파비안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리엘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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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미안해, 리엘라. 다리 이쪽으로 해 봐.”

그 자세로 리엘라의 옷에 묻은 얼룩을 다급하게 닦아주던 손길이 어느 순간 우뚝 멎었다.

사방이 정적이었다.

파비안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그런 저를 쳐다보는 왕녀와 황제와, 또 리엘라의 눈빛이 어떠한지를 뒤늦게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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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늘 하던 버릇이…….”

변명이랍시고 한 말은 모두의 분노를 더 돋우기에 충분했다.

리엘라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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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합니다. 옷을 정리하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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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리엘라……!”

파비안은 그런 리엘라를 따라 만찬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헤르한이 주먹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 두 사람을 따라 나가려는 헤르한의 앞을 막아선 것은 그레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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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그냥 내버려 두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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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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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눌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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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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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흡. 그냥 솔직해져 보세요. 리엘라가 어떻게 나올지, 아직 파비안에게 흔들리는 건 아닌지, 궁금하시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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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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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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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내가……. 내가 다 미안…….”

리엘라는 더 참지 못하고, 울먹이면서 계속 자신을 따라오는 파비안을 향해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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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대체 뭐야? 뭐 하자는 거야? 제발 하나만 해. 왕녀님이랑 열심히 행복한 척하든, 나에게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척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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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러려고 했어! 그런데……. 황제가……. 저 남자가 널 희롱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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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희롱……?”

파비안의 적반하장에 리엘라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런 건가. 내가 너 아닌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는 모습이, 네 눈엔 그저 희롱당하는 것으로만 보인다는 거지?

황당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아 멈춰선 사이, 파비안이 감히 리엘라의 두 손을 맞잡고 애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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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얼마나 오만하고 가벼운 인간인지는 다 알아. 리엘라, 권력자들이 어떤지는 너도 잘 알잖아. 저 남자는 너를 잠깐 가지고 놀 뿐이야. 흥미가 떨어지면 금방 널 버리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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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네 말은, 내가 폐하께 진심으로 사랑받기엔 부족한 사람이란 거구나. 너도 더 좋은 조건 찾아서 날 버리고 간 것처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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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아니라, 리엘라!”

리엘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지저분한 대화나 하자고 나온 것이 아니었는데.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 버리려는 리엘라를, 파비안이 다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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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파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거절한 거. 네가 내린 결정 아니지? 서신이 네 필체가 아니었어. 황제가 한 거지? 그렇지?”

대체 파비안은 뭘 기대하는 걸까. 아직도 자신이 저만을 사랑하고 있기를 바라는 걸까.

리엘라는 이제 파비안이 안쓰러워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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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폐하께서 대신 보낸 답신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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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역시 그랬어. 너도 속고 있는 거지? 억지로 붙잡혀 있는 거라면 내가 도망치게 해줄게. 나도 이젠 그 정도 힘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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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파비안. 내가 답장을 썼어도 똑같이 썼을 거야.”

파비안이 녹안을 부릅떴다.

그가 그렇게 멍해진 사이에 리엘라는 다시 확실히 그의 손을 뿌리치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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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에서 왕녀님이 내게 네 얘길 하신 적이 있어. 네가 죽어간다고. 도와달라면서. 내가 그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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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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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어. 나, 그거 진심이었어.”

부릅뜬 파비안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리엘라는 한때 파비안의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유도 모르면서 무작정 그가 웃으면 따라 웃고 울면 따라 울던 때.

그런데 지금은 파비안이 느낄 절망이 여실히 느껴지는데도 전혀 울음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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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네가 상관하는 건 뭔데? 설마 정말…….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리엘라?”

왜 ‘설마’라는 말이 따라붙는 걸까. 파비안이 보기에도 황제는 자신이 사랑하기에 너무 과분한 사람이라는 건가.

그래도 리엘라는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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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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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

그 순간, 리엘라의 어깨를 잡고 매달리려던 파비안이 누군가에게 저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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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밀린 대화는 충분한 거 같은데.”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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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가 내 사람을 좀 데려가 봐도 괜찮겠나?”

파비안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헤르한을 노려보았지만, 헤르한은 리엘라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를 살폈다.

황제는 이내 리엘라를 데리고 떠났다.

두 사람이 사라진 복도 뒤로, 그레타가 팔짱을 낀 채 파비안을 빤히 보고 있었다. 괴로워하는 파비안에 비해 그레타는 차분하고도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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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을 봐야만 믿겠다고 했었지, 파비안?”

앞으로 훌쩍 다가온 그레타의 목소리가 냉담했다.

그레타는 파비안의 볼을 적신 눈물을 살뜰하게 닦아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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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부족하니? 파비안. 기어이 직접 봐야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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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파비안과 얘기 나누는 걸 다 엿듣고 계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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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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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제가 많이 못 미더우셨나 봐요.”

리엘라의 가시 돋친 물음에 헤르한은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어련히 못 미덥겠지.

리엘라는 쓰디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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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궁으로 돌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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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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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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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헤르한의 대답은 단호했다. 꼭 맞잡은 손도 단단했다. 몇 번이나 힘을 주어 빼 봐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리엘라는 그게 더 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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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는 제대로 쳐다봐주지도 않았으면서…….’

헤르한이 눈을 맞춰준 것, 손을 잡아주고 자신을 ‘내 사람’이라 하며 다정하게 어루만져준 것.

그건 전부 파비안과 왕녀를 앉혀놓고서 일부러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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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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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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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나 왕녀님이나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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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똑같이 유치하고, 똑같이 옹졸하게 굴었지.”

억울하단 기색도 없이 뻔뻔히 인정해버리는 반응에 리엘라는 입술을 꾹 물었다.

그때, 헤르한이 걸음을 멈추고 리엘라의 앞으로 와 섰다.

또 지긋지긋하다고 화라도 내려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리엘라의 어깨를 붙잡고 어르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눈높이에 맞추어 고개를 숙여준 모양새도 참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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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이성을 유지하겠어? 저것들이 내 여자를 건드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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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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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내 보물 앞에서 건방을 떠는데. 내가 어떻게 똑같이 옹졸하지 않고 배겨?”

말만 들으면 분명 궁색한 변명인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며칠간 리엘라의 속에 쌓였던 서운함이 풀리고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왕녀가 속을 긁을 때나 파비안이 눈물로 호소할 때도 꿈쩍 않던 감정이, 고작 황제의 몇 마디에 파도치듯 울렁이다니 참 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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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폐하의 보물이긴 한가요?”

그래서 리엘라는 일부러 더 되바라지게 물었다.

황제가 옹졸하게 나오는 김에, 자기도 한번 마음껏 유치하고 옹졸하게 굴어보자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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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지긋지긋한 보물이 어디 있어요? 보고 싶다고 몇 번이나 찾아갔는데도 그냥 내쫓아버리는 보물이 어디 있어요? 보물이라면서, 나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해주고 그냥 뚱하게 무섭게만 굴면 어떻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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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서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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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온갖 감정이 치밀어 올라서 리엘라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기에 눈물까지 보이면 정말 헤르한에게 지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아 간신히 울음을 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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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무서웠어.”

리엘라보다도 더 애처로운 얼굴로, 헤르한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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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아직 저 남자에게 미련이 남아있을까 봐. 네가 나 아닌 다른 남자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 걸까 봐.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넌 모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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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왜 그런 걱정을…….”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헤르한의 진심에 리엘라가 변명할 새는 없었다.

헤르한이 리엘라의 볼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키스했다.

다급하게 입술을 열고 들어온 혀가 깊이 얽혀 들어왔다.

두 사람의 숨이 모두 거칠어져 잠시 입술이 떨어졌을 때도, 헤르한은 리엘라에게 이마를 맞댄 자세 그대로 숨을 몰아쉬며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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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절대로 넌 내 마음 몰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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