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 폐하가 보고 싶은데 (62/154)


#62 폐하가 보고 싶은데
2022.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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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터는 왕녀님의 마음을 더 세심하게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하는 리엘라를 따라 그녀 옆의 대사관 직원들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레타는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지도 못하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선물은 전부 그레타의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푸른 상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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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까지 싹 가져가지 그래요?”

그레타가 잔뜩 비아냥거리며 말을 툭 던졌으나, 리엘라는 그 상자를 손수 집어 왕녀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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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이니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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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건 받을 기분이 아니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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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계신 약혼자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파비안에게?

순간 그레타의 검은 눈동자가 오묘한 빛으로 이채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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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녀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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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이리 주세요. 내가 전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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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리엘라는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고했다.

우아하게 움직이면서 자기 사람들을 챙겨 나가는 리엘라를 보며 그레타는 기분이 더 언짢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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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었으면서.’

리엘라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여유롭게 웃는 모습도 배알이 뒤틀렸지만 더 짜증 나는 것은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저 고상한 표정에 주름 하나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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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갈 건가요? 여기까지 왔는데 파비안을 보고 가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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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휴식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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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이 대사를 무척 만나고 싶어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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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을 털고 일어나시면 그때 공석에서 정식으로 뵙겠습니다.”

심지어는 파비안이 널 그리워했단 얘길 대놓고 꺼내도 마찬가지였다.

리엘라는 미련 한 톨 없이 돌아섰고 그레타는 다시 고요해진 방안에 남아 헛웃음만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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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넌 알고 있었니? 리엘라가 저렇게 맹랑한 애였다는 거.”

모두가 떠나고 난 후, 그레타는 파비안이 누운 침실 안으로 들어와 중얼거렸다.

파비안은 약 기운에 취해 잠든 채였다.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파비안이 깨어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다 보는 앞에서 리엘라를 붙잡고 울기라도 했으면, 그땐 정말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굴욕적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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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알아. 쟤, 분명 내 앞에서 허세 부리는 거야. 겉으론 멀쩡한 척하면서 속은 네 생각에 썩어나고 있을걸. 그러니 이런 것도 남기고 간 거 아니겠어?”

그레타는 그렇게 거들먹거리며 리엘라가 주고 간 푸른 상자를 열었다.

죽어가는 파비안을 두고 과연 얼마나 절절한 마음을 담았을까,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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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상자 안에 담긴 건 싸구려 알사탕 서너 개, 그리고 한 줄짜리 편지가 다였다.

[이걸로 내 어린 날의 빚은 다 갚은 거로 할게. 안녕. 파비안.]

그레타는 상자를 바닥에 냅다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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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깟 게 뭔데 털어내? 네가 뭔데 홀가분하게 작별 인사를 해? 내가 빼앗아간 걸 아까워해야지. 나를 죽을 듯이 부러워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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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호수궁 대사관 공관은 모처럼 활기를 되찾아 시끌벅적했다.

며칠이나 자리를 비웠던 리엘라가 다시 복귀한 데다가, 그런 리엘라가 왕녀에게 접대하려고 준비했던 선물들을 대사관 직원들의 몫으로 돌린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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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정말 저희가 이걸 나누어 가져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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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동안 다들 몇 배로 고생하셨으니 이건 포상금인 것으로 하죠. 폐하께서도 허락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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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 대사님!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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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목걸이는 따로 환불하거나 되팔 방법을 알아볼게요. 그걸로 우리 다 같이 회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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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너무 좋습니다!”

호수궁 로비 중앙,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들 앞에서 직원들은 전부 싱글벙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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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사님을 다시 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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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리엘라 님은 영영 안 오시는 줄 알고 얼마나 슬펐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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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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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하필 일이 많아서 모두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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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이렇게 무사히 다시 와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걸요?”

‘무사히’ 와주어서 고맙다니. 괴물에게 잡혀갔던 것도 아닌데.

임신, 잠적, 여러 소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색 없이 자신을 반겨주는 이들의 모습에 리엘라는 기분 좋은 실소를 터트렸다.

참 여러모로, 홀가분한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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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오늘 대사님께서 서궁까지 앞장서주셔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저희 다 왕녀님이 너무 무서워서 여태 망설이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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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매번 이엘 보좌관께만 떠맡기기도 좀 그렇고요. 어쩐지 보좌관님도 요새 좀 저기압이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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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그분이야 늘 저기압이지. 지금까지 웃는 얼굴은 한 번도 못 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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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여기 안 계시네. 집무실에 계실 텐데, 불러올까요?”

물 흐르듯이 이엘의 근황에까지 흘러간 대화에, 리엘라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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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엔 내가 직접 가볼게요. 여러분들은 여기서 사이좋게 선물들 나누고 계세요.”

리엘라는 ‘네-’ 하고 즐겁게 합창하는 직원들을 남겨두고 집무실로 향했다.

호수궁 중에서도 집무실은 제집처럼 편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전과 다르게 낯설고 어려운 마음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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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폐하께 출근 허락은 받은 거니까. 들어가서 이엘 경의 얼굴만 잠깐 보고 나오는 건 괜찮지 않을까?’

리엘라는 집무실 문에 손을 얹은 채로 계속 결심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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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폐하가 이엘 경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셨잖아. 그런데 내가 찾아가면 더 곤란해지겠지. ……그렇지만 다른 직원들은 다 만났는데 이엘 경만 만나지 않는 건 너무 하지 않나? ……아니야. 이엘 경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자. ……하지만.’

한참 고민한 끝에 리엘라가 내린 선택은 마침 복도를 지나던 직원에게 부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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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보좌관에게 전달해줄래요? 그리고 내가 확인해야 할 서류들은 따로 정리해서 내실로 가져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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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알겠습니다. 대사님.”

일부러 멀리 떨어져서, 자기 대신 직원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리엘라는 흡족하게 웃으며 자신의 침실로 발길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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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십시오.”

집무실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이엘은 직원이 들어오자마자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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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 예……. 대사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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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니다. 주십시오.”

사실 이엘은 문밖에서 여기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리엘라를 전부 보았다.

문고리를 잡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떼는 것. 다시 한숨을 쉬며 다가섰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또 물러서길 반복하는 것까지 전부.

집무실 문에 난 작은 확인용 구멍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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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아.’

용감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지도, 그렇다고 미련 없이 도망쳐버리지도 못하는 리엘라를 지켜보며 이엘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리엘라가 남기고 간 쪽지도 분명 그녀를 닮아 바보 같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얼굴 못 보는 대신 숙제 내주세요. 나중에 꼭 검사받을게요. 곧 만날 수 있겠죠? 항상 고마워요.]

그런데 참 별것도 아닌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이엘은 깨달았다.

정말 바보는 자신이라는 걸.

문을 온전히 열지도, 닫지도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매는 건 리엘라가 아니었다.

안투의 후손이든 엔릴의 후손이든 뭐라도 잡아 오라는 상부의 압박은 나날이 심해지는데, 자신은 리엘라를 빼앗을 작전을 세우긴커녕 웃긴 꼴로 문에 달라붙어 그녀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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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께 이걸 전하십시오. 확인하실 서류는 다 골라두었으니 최종 결재만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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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런데 보좌관님. 이 책도 결재해야 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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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그 책은…….”

이엘은 복잡한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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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입니다. 그리 전하면 아실 겁니다.”

이엘은 리엘라의 쪽지를 고이 접어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전, 가까이 왔다 간 성녀의 기척에 놀란 마석이 뜨겁게 살을 데우는 바로 그 자리에.

*

내실로 돌아온 리엘라는 발길이 가벼웠다.

정신없이 움직인 반나절 동안 참 많은 일을 해결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업무에 복귀해 황당한 소문들을 일축했고, 간접적으로나마 이엘에게 안부도 전했고.

무엇보다 그레타 왕녀를 다시 만나, 떨거나 기죽지 않고 해야 할 말들을 모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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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모두는 아니려나.’

사실 파비안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사탕 선물로 과거사는 청산했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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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폐하 앞에서 나도 모르게 파비안 얘기를 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덜컥했는지.’

이제는 어린 날의 애틋한 추억으로도 파비안을 남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앞으로 리엘라가 추억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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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가 보고 싶어.’

리엘라는 헤르한을 떠올렸다.

그의 달콤한 살 냄새를 떠올렸고, 자신에게만 따뜻한 그의 푸른 눈길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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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 자랑하고 싶어. 칭찬도 받고 싶어.’

나 오늘 무지 씩씩했노라고. 멋있고 든든했다면서 직원들에게 칭찬도 받았다고. 그러니 아주 조금은, 자신이 폐하의 명성에 이바지했을지도 모른다고 허세도 부리고 싶었다.

그러면 분명히 헤르한은 아주 흐뭇하게 웃어줄 테지.

고운 손으로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잘했어, 리엘라.’ 하면서 나긋하게 제 이름도 불러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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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폐하는 아직 안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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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지만 어째선지 오늘은 창밖이 깜깜해지도록 기다려도 헤르한이 오질 않았다.

리엘라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 그 기대가 더 이상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황제는 황제의 침실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그가 당연히 이곳으로 퇴근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오랜 시간 호수궁에서 단둘이 지내던 것이 그새 습관이 되어버린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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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 오시려나 봐요.”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하면서도 리엘라의 목소리에선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루는 거북처럼 목을 빼고 앉은 리엘라의 모습에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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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리시지만 말고 리엘라 님이 폐하의 침실에 가보시는 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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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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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폐하께서 오히려 더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리엘라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황제의 침실은 호수궁만큼이나 자주 드나들던 곳이니, 새삼스럽게 얼굴을 붉힐 건 없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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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드릴 말씀도 있고 하니까, 잠깐만 다녀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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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헷. 들어가셔서 영영 안 나오셔도 전 좋은데!”

리엘라는 그렇게 루를 데리고 본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힘차게 도착한 황제의 내실 앞, 문지기가 리엘라의 발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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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십니까?”

리엘라는 거기서 1차로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실의 문지기는 리엘라가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먼저 알아보고 알아서 문을 열어주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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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를 뵈러 왔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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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약을 잡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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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그건 아닌데……요.”

2차로 당황한 건 그 부분이었다.

선약을 잡다니?

리엘라는 지금까지 황제와 특별히 선약을 잡고 만난 적이 없었다.

데이트라면 모를까, 이렇게 늦은 밤 각자의 침실을 찾을 땐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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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안에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그 말을 뒤로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에 리엘라는 하릴없이 복도에 서서 멀뚱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리엘라는 자신이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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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돌아가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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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마침내 문지기가 황제의 대답을 전했을 때도 한동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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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폐하가 벌써 주무시나요? 아니면 다른 손님이라도 와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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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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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슨……. 혹시 어디가 편찮으신 건가요!?”

그렇다면 더더욱 들어가 봐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해진 리엘라가 걸음을 내닫자, 문지기는 단호하게 팔을 뻗으며 대답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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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오늘은 리엘라 님을 만나고 싶지 않으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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