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 서궁의 여자들 (60/154)


#60 서궁의 여자들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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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른 시각에 죄송하……!”

황제가 집무실 안에 있다는 얘길 듣고 다급하게 그 안으로 들어섰던 아시온은 곧바로 얼굴을 붉히면서 휙 돌아섰다.

리엘라와 주군이 집무실 소파에 누워 몸을 포개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리엘라는 잠든 채였지만 몸을 덮은 얇은 담요 위로 그녀의 맨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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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해라. 리엘라가 깨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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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러게 왜 그 좁은 데서 불편하게 그러고 계십니까…….”

정작 주군은 못 볼 꼴을 들키고도 늘 그렇듯 태연했다.

아시온은 애꿎은 시선을 벽의 책장에만 고정했다. 그러는 동안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헤르한이 리엘라를 안아 일어서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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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올 테니 잠깐 기다려.”

아시온에게 그렇게 명령한 헤르한은 소중히 안아 든 리엘라를 제 침실로 데려가 눕혔다.

리엘라는 소파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침대로 자리를 옮긴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편안한 미소를 머금으며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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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렇게 웃으니 못 일어나겠잖아. 금방 가겠다고 했는데.’

헤르한은 세상모르고 잠든 리엘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성난 파도처럼 동요하던 감정들도 모두 평화롭게 가라앉아서.

어젯밤도 그랬다.

헤르한은 리엘라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주려고 했었다.

네가 바로 안투의 후손일 수도 있다고. 이엘이 그걸 알았고, 왕녀도 알 수도 있으니 이로써 널 노리는 자가 최소 둘이고 앞으로 더 늘어나게 될 거라고.

당연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리엘라가 겁먹고 떨게 분명하니까.

그때 리엘라가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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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얘기해 주실래요?’

 
헤르한 앞에 마주 앉아서 가만히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던 리엘라였다.

그날 밤 휘몰아친 일이 당황스럽고 감당이 안 되기는 본인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리엘라는 설명을 종용하는 대신 헤르한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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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말씀하기가 힘드시면 내일 말씀해주세요.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리엘라는 헤르한의 가슴팍에 제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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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냥 폐하 품에서 푹 자고 싶어요.’

 
사실 그건 헤르한이 더 간절했다. 그는 온통 리엘라의 품에 안겨 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걸 리엘라가 먼저 알아주고, 기대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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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지키는 게 아니라 네가 날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리엘라.’

헤르한은 천사같이 잠든 리엘라의 볼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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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너는 나의 여신이니까. 나는 이제 너의 가호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린 거지.’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헤르한은 꾸역꾸역 리엘라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웬만한 일은 알아서 처리하라 명하려는데, 침실 바로 밖에서 기다리는 아시온의 얼굴은 너무 심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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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가 도착해서 성문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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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그레타 왕녀? 정말 왕녀가 성에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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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도 믿기지 않아서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헤르한은 기가 차서 헛웃음을 내뱉다가 시종을 불러 명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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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직접 나가서 맞이하겠다고. 그때까지 왕녀에게 성문에서 대기하라고 전해.”

그 후 헤르한은 아주 느긋하게 뜨거운 물을 채운 욕조에서 몸을 씻고 꼼꼼히 옷매무새를 갖추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다 싶었을 땐 다시 침실로 돌아가 아직 잠결을 헤매는 리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이불을 재차 덮어주었다.

침방의 시녀들을 불러 리엘라가 오늘 입을 옷도 직접 골라두고, 또 리엘라가 일어나면 먹을 식사까지 전부 챙겨둔 뒤에야 헤르한은 느릿느릿하게 내실을 나섰다.

그때가 왕녀에게 대기하라는 말을 전한 지 세 시간쯤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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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열 시간 정도는 더 세워두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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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헤르한은 짓궂은 표정의 아시온을 따라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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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리엘라가 깨기 전에 나갔다가 돌아와야 할 것 같아서.”

정확히는, 리엘라가 깨기 전에 왕녀와의 담판을 지어놓고 싶다는 뜻이었다.

헤르한은 그대로 자신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아시온을 뒤로 물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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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난 됐으니 오늘은 여기를 지켜라. 리엘라에게 허투루 접근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 그 자리에서 베어버려도 상관없어.”

 

*

땡볕 속에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그레타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렸다.

직접 왕녀를 맞이하겠다던 황제 헤르한이 모습을 드러낸 건 어느덧 정오가 다 된 시간이었다.

마침내 열린 성문.

정말 황제가 그 앞에 서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황제의 주변에는 그 흔한 대신 급의 관리도 없었고 어린 시종쯤으로 보이는 이들 몇몇 정도만 조촐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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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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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서로를 짧게, 한 번씩 부르는 것만으로 두 사람의 인사는 끝이었다.

흔히 국빈을 맞이할 때 서로에 대한 칭송만으로 온종일을 허비하는 왕족들의 법도엔 참 어울리지 않는 삭막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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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참 일찍도 나와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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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가 온다고 하니 특별히 서둘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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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대접 정말 감사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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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배려가 마음에 들길 바라.”

한마디도 지지 않는 대화가 몇 번 오갔다.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떠는 건 죄 없는 문지기와 시종들뿐이었다.

그레타는 표독스럽게 더 말을 받아치려다가 꾹 참았다. 원하는 게 있는 상황에 언제까지고 황제와 기 싸움만 할 수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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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연은 필요 없으니 당장 저희를 거처 안으로 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참 맹랑했다. 환영연 따위는 애초에 열 생각도 없었는데.

헤르한은 어이없어하다가 그레타 왕녀가 이토록 급하게 나오는 이유를 깨달았다.

왕녀의 뒤, 말 안장 위에 거의 쓰러질 듯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내를 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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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

헤르한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눈빛으로 나긋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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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란 게 참 무섭지. 아무리 뻔뻔하게 도망쳐봤자 죄를 지으면 결국 어떻게든 그 대가를 스스로 치르게 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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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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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다는 거야, 왕녀.”

바로 그 말뜻을 알아듣고 대거리를 하는 왕녀에게 헤르한은 느긋한 미소로 응수했다.

그레타는 더 대들지 못했다. 여기서 괜한 말이 더 나올수록 손해 보는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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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와 동행을 서궁으로 안내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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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때 황제의 명을 받들며 왕녀 앞에 나타난 것은 흑발의 미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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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타 대사관의 수석 보좌관 이엘 바이스입니다. 문안이 늦었습니다. 앞으로 머무시는 동안 제가 부족함 없이 모시겠습니다.”

그레타는 못마땅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황제의 낯이 상당히 일그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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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나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레타는 황제와 보좌관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더 읽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쿨럭쿨럭. 뒤에서 파비안이 기침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를 안으로 옮기는 것이 우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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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불러줘요.”

미리 준비되어 있던 숙소 안에 들어간 후 그레타가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보좌관 이엘은 군더더기 없이 움직였다. 그레타의 신경질적인 태도에도 동요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고 그레타가 원하는 것은 두말없이 가져다가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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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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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때마침 황실의 의사가 왔다.

황실엔 ‘제스’라는 아주 실력 있고 젊은 의사가 있다더니 황제가 그레타에게 보내온 건 그저 그런 늙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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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제국은 의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니까.’

확실히 의사가 기력을 회복하는 주사를 놓아준 뒤로 파비안은 눈에 띄게 혈색을 되찾아갔다.

물론 임시방편일 뿐이었지만 그레타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였다. 시간을 벌었으니, 이제부터 다시 다른 밀매상을 수소문해서 억제제를 구할 방도를 알아보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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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필요하신 것이 없으시면 가보겠습니다. 용건이 있으시면 시종을 시켜 대사관 측에 전달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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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있어요. 용건.”

일단 한시름을 놓고 나니 그제야 드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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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타 왕국의 왕녀가 왔다는데, 응당히 대사가 직접 마중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레타는 은근슬쩍 말을 짧게 줄였다.

그러곤 얄밉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턱을 도도하게 쳐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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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를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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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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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를 불러오라고. 당장 여기로 와서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라고 해! 공식적으로. 공손하게.”

그 순간, 내내 무표정하던 이엘의 얼굴에 싸늘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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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은 다른 일과로 바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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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에 있다는데, 내가 부른다는데! 대사 따위가 감히 왕녀의…….”

그레타는 생각지 못한 답변에 당황해 더 언성을 높였지만, 이엘이 그런 그녀를 재차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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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악이나 듣는 건 대사의 업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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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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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왕녀 저하가 발악이나 한다는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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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것 보게?’

눈을 세모꼴로 부릅뜨는 그레타를 두고 이엘은 더 용건이 없다면 물러나겠다며 서궁을 떠나버렸다.

그레타는 분하고 황당한 마음에 한참을 씩씩거렸다.

다음 날 아침.

그레타가 그리 탐탁지 않았던 헤르한이 그녀의 존재를 함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리오타 왕국의 왕녀가 황실에 도착했다는 소문은 몇몇 이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중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몇몇 시녀들이 괜히 오전의 한적한 시간대를 골라 왕녀의 거처 주변을 배회하다가 그레타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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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일하는 분들인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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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리오타 왕국에서 오신 왕녀님이시죠? 만나 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황궁에 도착한 뒤로 내내 푸대접만 받았던 그레타는 자신에게 살랑거리는 그 시녀들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들이라면 그간 황실의 사정이나 리엘라에 대한 정보를 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레타는 생글거리는 웃음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쉽지 않았다.

일부러 거처 안으로 데려와 차도 나누어 마시고, 제법 친분이 쌓였다 싶을 때쯤 슬쩍 리엘라 얘기를 꺼내 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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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리엘라 대사님이요…….”

리엘라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시녀들은 전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멋쩍은 얼굴로 몸을 멀찍이 물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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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황제 폐하께서 몇 번 엄명을 내리신 적이 있어서요. 저희가 함부로 입을 놀리기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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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폐하가 대사님에 대해서는 특히 더 엄중하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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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왕녀님. 대신 정원 산책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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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님은 무슨. 얼어 죽을.’

그레타는 시녀들 앞에서 고고한 체면을 유지하려던 계획도 잊고 안면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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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 혼자 쉬고 싶으니 다들 물러나 줘요.”

사나운 축객령을 내리고 난 뒤 그레타는 혼자서 분을 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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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레타 왕녀님?”

그때 방금 물러났던 시녀 중 한 명이 다시 조심스레 돌아와서 그레타를 불렀다.

그녀들 중 나름 기품 있는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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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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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왕녀님께서 예전부터 리엘라 님을 ‘특별히’ 아끼셨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그레타는 ‘특별히 아낀다’라는 말을 할 때 유달리 반짝이는 시녀의 눈빛을 눈썰미 좋게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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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이것 봐라?’

그레타의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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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리엘라는 우리 왕실에서 파견한 내 사람인걸요. 제가 정말 아끼는 친구이기도 하고요.”

그레타의 천연덕스러운 맞장구에 시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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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그러니 저는 왕녀님이 리엘라 님의 소식을 들으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즘 호수궁 근처에 떠도는 소문이 있긴 한데……. 슬쩍 알려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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