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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금주, 금연, 그리고……. (47/154)


  • #47 금주, 금연, 그리고…….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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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정밀검진을 해봐야겠습니다. 폐하.”

    지금쯤 마땅히 죽었어야 할 헤르한이 어떻게 멀쩡히 살아 있는가.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도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제스가 내린 특단의 대책은 ‘정밀검진’이었다.

    아시온은 사태를 늦게 깨달았지만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건 누구보다 빨랐다. 그는 ‘정밀검진’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스와 머리를 맞대고 헤르한의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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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월례 회의도 마쳐서 당장은 급한 일정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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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일 뒤에 타리엔 공작의 대담회에 참석하시기로 되어 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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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해봐야겠지만 연기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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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 그러면 폐하의 모든 일정을 비우고, 식단도 늘 하던 대로 전부 바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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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내실 커튼부터 전부 암막 커튼으로 교체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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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지금 바로 준비해 줘. 아시온.”

    서로를 드잡이할 때 못지않게 호흡이 척척 맞는 둘을 보면서 헤르한은 기가 찬 한숨만 삼켰다.

    빠르게 논의를 마친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그런 헤르한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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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정밀검진을 위한 주의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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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고 있다.”

    한두 번도 아니니까.

    헤르한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태연한 척해도 지금 가장 초조할 사람은 당연히 당사자인 헤르한일 테니까.

    제스와 아시온은 걱정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연구실을 나가는 헤르한을 차마 붙잡지 못했다.

    *

    말없이 본궁까지 돌아오는 동안 헤르한은 계속 자신의 ‘사라짐’에 대해 생각했다.

    가짜 약이 맹물이었다니. 그 어이없는 진실이 자신을 이끄는 곳이 어딘지를 생각했고, 과연 그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했다.

    제스는 죽음을 이야기했지만 헤르한은 왜인지 그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헤르한은 자신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한때는 바로 내일을 예감하듯 가깝게 느꼈던 죽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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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오기를 부리는 건가. 이제 와서 죽기 싫어서.’

    헤르한은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상황에 처한 지금의 저 자신을 뻔히 알면서도 실소를 터트렸다.

    내실 앞에 서서, 유달리 헤벌쭉한 얼굴의 근위병과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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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에 손님이 와 계십니다.”

    황제의 허락도 없이 빈 내실에 들어와 있을 수 있는 것은 아시온이나 제스. 그것도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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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그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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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엘라.”

    헤르한은 나긋하게 리엘라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반듯한 자세로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던 리엘라는 참 다정하게 웃으며 다시 ‘예, 폐하.’ 하고 사근사근 대답했다.

    리엘라의 따뜻한 시선과 눈이 마주친 순간 헤르한은 문득 깨달았다.

    절대 이대로 죽지는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는 건 아마 저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세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믿음직한 존재를 대하듯, 신뢰와 온기를 가득 품고 자신을 바라봐주는 저런 눈길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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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새 내가 걱정되어서 잘 살아 있나 확인하러 왔나?”

    헤르한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장난기 어린 말을 던졌다.

    리엘라는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샐쭉 입을 내밀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살짝 흘겨보기도 하는 것은 그새 헤르한에게서 배운 버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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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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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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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에요. 지금은 업무 보고를 드리러 ‘공식적으로’ 왔습니다. 방문 일지도 적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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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접실 소파에 앉은 그에게 리엘라가 내민 것은 리오타 왕실에서 받은 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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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오타 왕국으로부터 답장이 왔어요. 폐하께서 ‘협박해서’ 받아내신 제 임명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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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들켰나, 하고 헤르한이 리엘라의 눈치를 한번 살폈다. 다행히 리엘라는 한번 풋 웃을 뿐 별다른 질책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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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왕녀 저하의 서신이 함께 와서 답신을 보내려고 하는데요. 답신은 이렇게 쓰면 괜찮을까요? 외무대신께 보고해야 하는데 그 전에 제가 실수한 건 없는지 한번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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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무대신에게 보고하는 게 무서워서 나에게 보고서를 첨삭 받는다고? 내가 황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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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는걸요. 여쭤볼 분이 폐하뿐이에요. 카넬 경 면회 시간은 끝났고, 제스 경은 보나 마나 제게 화만 내실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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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리엘라의 엉뚱함에 이번엔 헤르한 쪽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래, 어디 한번 보자’ 하고 왕녀의 서신을 들여다보자마자 그의 미소가 거두어졌다.

    헤르한의 두 눈 가득했던 웃음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약간의 분노, 그리고 리엘라를 향한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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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왕녀가 여길 오겠다고. 그 대단한 약혼자를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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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헤르한은 리엘라의 안색을 살피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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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을 봉쇄할까? 아니면 군사라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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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뭐 하러요?”

    리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꼭 전력을 다해 의연한 척 해 보이는 것 같아 헤르한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헤르한의 심정을 알아챈 것인지 리엘라가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뱉었다. 예쁘게 둥글어졌던 리엘라의 입술은 곧 편안한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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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괜찮아요.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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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앞에서까지 억지로 그런 척할 필요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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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에요. 저도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아요. 보세요. 이렇게 답신도 썼는걸요.”

    리엘라의 말이 맞았다. 리엘라가 쓴 답신은 아주 정갈하고도 다부졌다.

    하지만 그렇게 제 아픔을 잘 참아냈다고 해서 리엘라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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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녀는 널 괴롭히러 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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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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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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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데도, 별로 괴롭지가 않아요. 이대로 왕녀님이나 파비안을 다시 만나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절 아프게 하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리엘라의 눈빛이 굳셌다.

    헤르한은 왠지 리엘라가 하려는 말을 알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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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요.”

    예상했는데도.

    리엘라의 말은 헤르한의 가슴을 울렸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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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께서 또, 넥타이를 너무 꽉 매서 어디서 혼자 숨쉬기 힘들어하고 계실까 봐. 그게 걱정될 뿐이에요. 다른 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아요.”

    심지어 리엘라는 장난스럽게 웃기까지 했다.

    여태 놀림당한 것을 이번 기회에 복수하겠다는 그 당찬 모습이 꼭 별처럼 반짝거렸다. 헤르한은 결국 왕녀의 서신 따위는 아무렇게나 내려두고 리엘라를 향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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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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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절하려면 해. 마침 여긴 사방에 놓인 게 침대니까.”

    폐하, 하고 리엘라가 다시 그를 부를 새 없이 헤르한이 리엘라의 입술을 덮쳐왔다. 리엘라의 입술에선 달콤한 맛이 났다.
    길쭉한 응접실 소파, 자연스럽게 몸을 늘인 리엘라의 위로 헤르한의 몸이 드리웠다.

    소파는 두 사람이 함께 몸을 눕히기엔 좁았다. 그래서 더욱, 헤르한은 리엘라를 깊이 끌어안았다.

    묵중한 몸에 눌려, 또 집요한 입맞춤에 시달려, 겨우 잠깐 벌어진 리엘라의 입술 사이로 뜨겁고도 달뜬 호흡이 터져 나왔다.

    쾅쾅쾅쾅, 내실 문밖에서 아주 거친 노크가 들린 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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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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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 쓰지 마.”

    헤르한은 노크를 무시하고 다시 리엘라의 입술을 탐했다.

    쾅쾅쾅쾅쾅!

    부술 듯이 문을 두들기던 이는 결국 황제의 허락이 있기도 전에 멋대로 안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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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내가 이럴 줄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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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 벌게진 채로 이를 악물며 들어선 것은 아시온이었다.

    후, 문을 잠갔어야 했는데, 하고 헤르한은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리엘라도 깜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두 사람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아시온은 우선 리엘라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리엘라보다도 아시온의 얼굴이 더 붉었다. 그래도 그는 귓바퀴를 빨갛게 달군 채로나마 제 임무를 똑똑히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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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미안합니다. 리엘라 양. 리엘라 양에게 악의는 절대로 없습니다. 제 마음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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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네…….”

    일단 리엘라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시온이 콧김을 뿜으며 벼락같은 소리를 내리친 곳은 헤르한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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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 진짜 이러실 겁니까? 검진 전 주의사항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절대로 무리하지 말 것, 가능한 한 가만히만 누워 계시고 금주, 금연에…… 금욕이 필수인 거!”

    아시온이 왜 갑자기 쳐들어와 화를 내는지, 헤르한은 왜 죄지은 사람처럼 벽만 보며 아시온의 시선을 피하는지. 검진은 또 뭐고 주의사항은 또 뭔지.

    리엘라는 아무런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금욕’이란 말이 뜻하는 게 무엇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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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돌아선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그새를 못 참고! 리엘라 양이 내실로 갔다고 해서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해서 와봤건만! 속 타는 저희는 생각도 안 해주시고 이렇게 대책 없이 구시다니요!”

    아시온은 헤르한을 향해 씩씩거리다가도, 리엘라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려 다시 예의 바르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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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리엘라 양께는 아무런 공격의 의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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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넵…….”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리엘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모두의 얼굴이 붉었다.

    내실 안에는 한동안 그렇게 민망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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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군요……. 가짜 약이……. 그렇다면 폐하의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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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정밀검진을 하려는 겁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일이 년에 한 번씩은 하던 검사인데 폐하께서 즉위하신 후로는 일정이 바빠 계속 미루어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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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미룰만하네요. 검진 전 지켜야 할 지침이 이렇게나 많으니…….”

    아시온에게서 상황 설명을 들은 리엘라는 그가 보여준 수십 개의 ‘지침’을 정독했다.

    ‘정밀검진’이란 건 헤르한의 몸을 평생 연구한 제스가 직접 개발한 것으로, 온갖 특수 약물과 마도구를 총동원해 헤르한의 몸에 쌓인 내상을 측정하는 검사였다.

    검사 결과는 정밀하고 정확한 만큼 매우 민감도가 높아서 아주 작은 심신의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검사 전 최소 일주일간은 헤르한은 다방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햇빛 보지 말기.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함께 검사용 약물을 챙겨 먹기. 몸에 피로를 줄 수 있는 모든 일은 하지 않기. 가능한 한 누워 지내기.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는 일은 절대 엄금. 금주. 금연.

    특히, 금욕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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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하지만 일주일간 리엘라 양은 내실에는 아예 가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폐하께서 리엘라 양을 뭘 어쩌신다는 게 아니고요. 여기 지침에,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자제하라고 되어 있어서…….”

    아시온이 다른 핑계를 대며 중언부언했지만 리엘라는 그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듣고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민망함은 일도 아니었다. 리엘라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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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는…… 괜찮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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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괜찮으실 겁니다.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괜찮아 보이는 게 이상해서 검진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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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은 모르지만, 약 없이도 괜찮으셨다면 혹시 폐하의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닐까요?”

    리엘라의 동그란 눈은 가득 품은 기대로 일렁이고 있었다.

    아시온은 그 순수한 눈망울 앞에 진실을 말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주군의 병은 당신의 기대처럼 나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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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검진 결과를 봐야죠. 아무튼 협조 부탁드립니다.”

    아시온은 결국 침묵하길 택했고, 리엘라는 그런 아시온의 안타까운 속내도 모른 채 씩씩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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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폐하께서 괜찮아질 수 있다면 뭐든지요.”

     

    *

    헤르한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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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은 심했어. 얼굴 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리엘라에게 다른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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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믿음이 안 가는 말씀이네요. 제가 여태 목격한 바가 있어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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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군을 못 믿는 기사라면 검을 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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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예. 이번 검진 끝나면 저도 은퇴하고 귀농이나 하려고요.”

    해고로 협박을 해도 꿈쩍 않고 제 곁만 지키는 아시온 덕에 헤르한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벌써 사흘째.

    헤르한은 종일 침대에만 누운 채 바깥에서 가져다주는 식사와 약만을 먹었다. 침실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설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창마다 죄다 암막 커튼을 붙여놓아서 바깥을 내다볼 수도 없었다.

    마침 정무가 바쁘지 않아 괜찮다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역시 리엘라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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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리오타의 왕녀가 황실을 방문할 예정인 건 알고 있겠지? 리엘라 혼자서 그걸 다 준비하게 할 셈인가? 아직 대사관의 인력도 다 꾸려주지 못했는데?”

    그래서 어떻게든 리엘라를 만나볼 생각에 꺼내든 명분.

    하지만 아시온은 이번에도 단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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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라면 걱정 안 하셔도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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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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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던가요? 정무 대행으로 워낙 정신이 없어서.”

    아시온은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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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부로 리엘라 양의 새 보좌관이 왔습니다. 전에 입궁을 명하셨던 ‘이엘 바이스’ 말입니다. 지금 그자가 리엘라 양을 도와 일하고 있어요. 실력 좋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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