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 황제의 여자 (40/154)


#40 황제의 여자
2021.11.14.


정신없이 지나간 며칠 사이 엘슈바이크의 황궁은 완연한 여름의 빛깔을 갖추었다.

잘 조경된 정원이 일품인 서궁은 색색의 꽃과 푸른 초목으로 특히 더 청량했다. 이른 아침이면 새의 노랫소리가 사방을 깨웠고 창밖으론 벌과 나비가 활기차게 날아다녔다.

하지만 서궁의 아기새나 꿀벌보다 더 분주한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리엘라였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건만, 리엘라는 날이 밝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몸을 씻고 바쁘게 외출 채비를 했다. 그저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오늘로 벌써 삼 일째 같은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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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댓바람부터 정말 대단하지 않아? 리엘라 님이 대단한 건지, 폐하가 대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궁 시녀들은 그런 리엘라를 두고 눈을 샐그러지게 뜨며 저들끼리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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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눈뜨자마자 보고 싶어 난리면 그냥 폐하의 침실에서 지내시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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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무래도 대신들이나 귀족들 눈치가 보이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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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폐하만 좋아하시면 됐지, 무슨 상관이야? 며칠 전에도 저녁만 드시고 온다고 하시고선 그대로 이틀을 내리 폐하와 같이 계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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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요새 두 분 제대로 불붙었다니까!”

시녀들은 꺅꺅 소리를 지르다 말고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남녀 관계란 언제 타올랐다가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법이었다. 리엘라에 대한 황제 폐하의 관심이 언제 갑자기 꺼질지 모르는데, 지금 이렇게 ‘리엘라가 잘 나갈 때’, 조금이라도 그녀와 황제에게 잘 보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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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님. 오늘은 이 드레스 어떠세요? 어제 나온 신상인데 가슴골을 더 돋보이게 해준답니다. 폐하께서 분명 마음에 들어 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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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님. 햇볕이 무척 따갑습니다. 이 양산 어떠세요? 오늘은 제가 종일 곁에서 모실게요.”

리엘라는 어김없이 제 곁으로 달려드는 시녀들이 이제 당황스럽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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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옷은 벌써 다 입었고, 시중은 루가 들어주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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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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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를 뵈러 가는 것도 아니에요. 서고에서 책을 보다가 올 거예요.”

그렇게 담백한 설명을 끝으로 멀어지는 리엘라를 보면서 시녀들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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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거짓말도 요령껏 하셔야지! 폐하 뵈러 가는 거 뻔히 아는데!”

그들의 말이 맞았다. 아침 일찍 나간 리엘라는 종일 어디선가 시간을 보내고 해 질 녘에야 다시 서궁으로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매번 황제와 함께였다.

서궁까지 배웅을. 그것도 매번, 황제가 직접.

황제는 대체 리엘라 블리니테에게 얼마나 푹 빠진 걸까?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어쩌면 리엘라는 ‘한때 황제의 총애를 받은 여자 중 하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높은’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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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리엘라 님의 눈에 들 특별한 수가 필요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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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리엘라는 황궁 서고 문지기로부터 출입증과 함께 몇 권의 책을 건네어 받았다.

출입증은 리엘라가 황궁 안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엊그제 황제가 직접 발급해준 것이었다.

임시 출입증이었지만, 황제가 직접 서명하고 인장까지 찍은 그 증서의 파급력은 매우 강했다.

벌써 이틀 연속 리엘라를 만나는 서고 문지기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책을 한 아름 들고 떠나는 리엘라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곱게 빗어 내린 붉은 머리카락과 낭창낭창한 몸매. 거기에 오목조목 예쁘장한 외모로 요새 황제의 혼을 쏙 빼놓았다는 여자, 리엘라 블리니테.

황제의 마음을 샀으면 그 권세를 등에 업고 안락한 침대 위에서 사치나 누릴 것이지, 어째서 이런 케케묵은 서고에나 들락거리는 것인지 문지기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리엘라가 저 많은 책을 들고 또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물론 알 수 없었다.

황궁 안의 모든 눈길이 그와 같았다.

흥미를 가득 담고서 ‘리엘라 블리니테’의 뒤꽁무니를 쫓았지만 끝내 그녀가 종일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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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저 왔어요. 리엘라요.”

리엘라가 아침부터 부지런히 걷고 또 걸어 도착한 곳은 숱한 보초와 중문을 거쳐야만 입장 가능한, ‘비밀의 방’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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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빨리 오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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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넬 경 심심하실까 봐요.”

‘비밀의 방’ 안에서 리엘라를 반기는 건 그 안에 격리되어 지내고 있는 카넬. 그리고 카넬과 마주 앉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던 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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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제 말씀하신 책들을 다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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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런 부탁을 드릴 수 있는 게 리엘라 양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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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리엘라는 빙긋 웃었다.

리엘라는 카넬의 입장을 이해했다.

대외적으로 카넬은 먼 지방을 여행할 겸 휴가를 쓴 것으로 휴직 처리가 되었지만, 사실 그는 이 방 안에 은밀하게 격리되어 지내는 중이었다.

황제가 직접 마련해 준 격리실 안에서 카넬은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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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은 거기까지만 해요. 아시다시피 오늘까지는 약의 성분을 다 밝혀내야 하니까. 어서 조사 시작합시다.”

그때 제스가 서류를 열며 말했다.

리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넬 가까이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카넬이 자연스럽게 한쪽 소매를 걷어 올리자 리엘라도 자연스럽게 그의 팔뚝 위에 손을 얹었다.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 제스조차도 원리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적에게 조종당할 당시 카넬의 기억은 리엘라가 옆에 함께 있어 줄 때만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리엘라는 매일 같이 격리실로 출근하며 이들의 조사에 참관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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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뭔데. 너 그새 리엘라 양에게 특별한 마음이라도 품은 거야? 사랑의 힘, 그런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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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제스 경! 폐하께서 들으시면 저 목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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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첩자 짓을 한 걸 알고도 살려주셨는데, 죽이시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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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요. 제발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카넬은 펄쩍 뛰었지만 제스는 계속 심드렁했다.

‘사랑의 힘’이 어쩌고 하는 말은 당연히 농담이었다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게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당장 ‘가짜 약’의 성분을 밝혀내는 것이 더 급했기에 거기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 일만 끝나면 저 ‘이상한 여자’에 대한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주리라, 제스는 그렇게 벼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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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로벨리아 꽃잎 우린 물을 넣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는 아니고요. 한 방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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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로벨리아 꽃잎. 그럼 그걸로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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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짜 약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혹시 몰라 마지막 기억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되새김을 마친 카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스는 카넬이 말한 재료들의 이름을 다시 중얼거리며 전부 옮겨 적었다. 이걸로 성분은 모두 알아냈으니 이제는 성분에 따른 효과만 종합하면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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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좀 정리가 되어가네.”

제스는 그제야 홀가분하게 기지개를 켰다.

격리실의 문이 열리고 황제가 안으로 들어선 것은 그때였다.

어라, 폐하, 오늘은 꽤 일찍 오셨습니다, 하고 제스가 아는 체를 했지만, 헤르한은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카넬과 리엘라 사이로 직행해서 둘 사이에 맞닿은 팔을 끊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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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끝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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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거 알고 두 사람의 손을 가른 것 아니었습니까?”

제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거기에 주군이 대꾸도 하지 않고 뻔뻔한 얼굴만 들이밀기에 더 어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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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으면 가자. 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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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가짜 약 성분 다 밝혔는데요. 안 궁금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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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따로 와서 보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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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작 헤르한은 네 놈이 어이없어 죽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하긴 저런 식이니까 요새 황궁 안에 별의별 소문이 다 도는 걸 뻔히 알면서도 리엘라를 더 못 감싸 안달이지.

말해 무엇 하나 싶어서 제스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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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넬 경의 의식이 점점 더 좋아져요. 조금만 더 하면 더 옛날 일까지도 떠올릴 수 있을 거래요. 그러면 카넬 경을 세뇌한 게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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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하면?”

여름날의 이른 저녁은 아직 한낮처럼 볕이 밝고 따스했다.

그제도 어제도 그랬듯이 헤르한과 리엘라는 노란 장미 꽃길을 느리게 걸었다.

카넬의 격리실로부터 서궁까지 이르는 도중에 있는 그 꽃길은, 어느새 이 시간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산책하는 정기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 꽃길 가운데.

헤르한은 은은한 꽃향기가 가장 감미롭고 흐드러진 곳에 우뚝 멈추어 서서 리엘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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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하다니. 어디까지 하려고? 아예 카넬의 웃통이라도 벗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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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니, 제 말은 그 뜻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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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야기가 그런 방향으로 튀는 건가. 혹시 폐하는 줄곧 그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리엘라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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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무딘 거야, 아니면 일부러 무디게 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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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뭘…….”

리엘라는 헤르한의 눈치를 잔뜩 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필 노란 꽃밭을 등지고 있어서인지 헤르한이 오늘따라 더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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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 여자잖아. 그런데 내 부하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고 그러면 곤란해.”

그런 헤르한이 입을 열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곳에 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제가. 자신을 ‘내 여자’라고 칭하며 또 감당도 안 되는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리엘라는 얼굴이 붉어진 것을 숨기려고 일부러 살짝 고개를 틀고서 말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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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건 아니죠. 전 카넬 경의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고 그러지 않았어요. 폐하께서 정해주신 대로 딱 팔뚝에 손만 얹었는걸요.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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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리엘라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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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폐하의 여자는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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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내 능글거리며 장난을 치던 헤르한이 입을 다물어버려서 리엘라의 귀가 더 뜨거워졌다. 정말 몰라서 물은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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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가. 마, 맞나……?”

아닌가, 맞나, 하고 리엘라가 자신감 없이 중얼거린 것만 아니었으면 계속 근엄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헤르한은 리엘라의 순진무구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무장을 해제하고 웃어버렸다.

리엘라가 당황하는 것이 귀여워서 장난을 쳤지만, 사실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이 가까워졌고 서로 의지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떤 마음을 확실하게 주고받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몇 번이고 끌어안고 함께 잠을 자기도 했지만, 남들이 오해하는 것 같은 일도 사실 없었다.

헤르한이 생각하기에 리엘라와 자신의 사이는 뭐랄까, 항간에 떠도는 열렬한 소문과는 달리 좀 더 ‘협력’하고 ‘응원’하며 ‘함께 고난을 이겨나가는’ 쪽의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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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그건? 전우애도 아니고?’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리엘라는 어떨지 몰라도 리엘라를 향한 헤르한의 감정은 그보단 펄펄 끓는 것이었다.

어떨 땐 잘 감당이 되지 않아서 손아귀가 아프도록 주먹을 꽉 쥐어도 진정되지 않을 만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내 여자’라는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에 저렇게 얼굴을 붉히면서 자신과 눈도 못 마주치는 리엘라가 헤르한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더 놀리고 싶었고,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눈을 피하지 못하게 고개를 반듯이 잡고 입을 맞추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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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넬의 일 때문에 계획보다 늦어지긴 했지. 그런데 이젠 아무래도 한번 정리를 해야 할 것 같군.”

하지만 헤르한은 끓어오르는 충동을 억누르고 다음을 기약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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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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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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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를 옮길 준비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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