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안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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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안아주세요
2021.10.24.
지금쯤 깜깜한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어야 할 서궁 로비는 오늘따라 불을 환히 밝히고서, 북적거리는 인파로 때아닌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이 시간에 폐하를 직접 뵙다니?”
“폐하께서 서궁 시녀와 시종 전체에게 리엘라 양을 잘 보살펴 준 공로를 직접 치하하신다잖아요.”
“잠결에 불러서 나와 봤더니, 세상에! 어떻게 해? 나 눈곱 끼지 않았어?”
서궁 일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또는 급하게라도 머리를 빗고 마른세수로 단장을 하며 웅성거렸다.
저마다 행동은 달랐지만 그들이 목을 빼고 기대감에 찬 눈길을 던지는 방향은 같았다. 바로 로비 한쪽에 놓인 접객용 소파. 그곳에서 차례대로 시종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치하해주고 있는 젊은 황제, 헤르한이었다.
“존엄하신 폐하를 뵙습니다. 서궁의 정원사 오르텐입니다. 리엘라 양께서도 제가 심어 가꾼 꽃밭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렇군. 앞으로도 리엘라에게 기쁨을 주길 바란다.”
“예!”
까무잡잡한 피부의 정원사가 충성스럽게 외치자 헤르한은 그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황제가 직접 건네는 하사품이었다.
황제의 손에서 정원사의 손으로.
상자가 건너갈 때 두 사람의 손끝이 스쳤지만, 아까부터 줄곧 상자에 혼이 팔려 싱글벙글했던 정원사는 그것을 알아채지도 못했다. 자신의 노골적인 생각이 이 황제에게 여과 없이 들릴 거란 생각도, 물론 하지 못했다.
‘낄낄! 그 여자가 꽃밭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건 거짓말인데! 사실 그 여잔 본 적도 없는데 이게 웬 보너스람? 땡잡았다!’
그런 정원사를 두고 헤르한은 별다른 내색 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거렸다.
이 자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고갯짓을 알아들은 아시온이 능숙하게 정원사를 내보내고 다음 타자를 들여보냈다. 이것도 벌써 수십 명 째의 일이라, 헤르한과 아시온은 손발이 딱딱 맞는 일꾼처럼 노련했다.
“폐하를 뵙습니다. 서궁에서 리엘라 양의 침실 시중을 들고 있는 리나라고 합니다. 폐하. 오늘 아침에도 인사를 드렸사온데…….”
“아. 그래. 리오덴 백작의 처조카. 기억하고 있다. 수고가 많군.”
헤르한은 이번에도 제 앞에 무릎을 꿇은 리나에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리나는 덜덜 떠는 손으로 상자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폐하께서 내 이름을 기억하시잖아! 아. 방금 손 스쳤어! 뭐야 뭐야! 이거 일부러 이러시는 거 아냐? 어쩌지? 유혹인가? 나 이러다가 황후 되게 생겼잖아? 어떡해! 아이 이름은 뭘로 지어? 폐하와 내 이름을 따서 헤릿……. 아냐, 헤나?’
다 듣고도 모르는 척. 헤르한은 또 고갯짓을 해서 리나라는 시녀를 물리곤 잠깐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능력을 너무 많이 써서인가. 계속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했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른 것도 같은데.
하지만 아직 줄을 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이들은 언뜻 훑기에도 십수 명이 넘어 보였다.
“폐하. 오늘은 이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 헤르한의 상태를 곧바로 알아챈 아시온이 고개 숙여 걱정스레 속삭였다.
그래도 헤르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음, 하고 그가 조용히 읊조리자 아시온은 주군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음 사람을 주군 앞에 대령했다. 앞선 시녀와 마찬가지로 리엘라의 시중을 든다는 시녀였다.
‘그렇게 예뻐 죽겠나? 리엘라 그 여자가 이 정도로 폐하를 휘두른다고? 으악.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러지 말걸!’
그때 그러지 마?
순간 읽어낸 갈색 머리 시녀의 속마음에 헤르한은 눈을 번뜩였다.
이젠 잠깐 긴장을 놓으면 까무러칠 정도로 두통이 극심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다잡았다.
헤르한은 상자를 완전히 건네기 전 치하를 이어가는 척하면서 그녀의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행여라도 리엘라 양을 빨래터로 내쫓고 우리끼리만 놀러 나갔다는 사실을 들키면 끝장이야! 다른 애들에게도 다 입조심 시켜야지.’
아. 그 얘기였나.
헤르한은 김이 빠져 시녀의 손을 탁 놓았다.
오늘 낮, 리엘라가 세탁실까지 가게 된 것과 관련된 사연은 이미 다른 시녀들의 생각을 통해 충분히 들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서궁에 지원해 리엘라에게 접근한 시녀들은 전부 음흉한 속내가 있긴 해도 첩자까진 아니었다.
다른 일꾼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틀 내내 거의 침실 안에만 있었던 리엘라와 안면이 있는 자들 자체가 드물었고, 리엘라의 침실 안까지 들어갈 수 있던 자는 더 드물었다.
‘지금까지 알아낸 건 끽해야 리엘라가 세탁실에 갔던 그 시간에 서궁이 비어 있었다는 것 정도…….’
첩자는 아마 그때 리엘라의 옷장에 접근했으리라.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를 줄 목격자가 없었다.
리엘라를 서궁에 데려다 놓고도 제대로 된 경비 인력도 배치하지를 않았다니.
상황이 미궁으로 빠질수록 헤르한은 모든 것이 다 제 탓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폐하. 폐하……!”
아시온의 애타는 부름에 헤르한이 멍한 정신을 차린 건 그때였다.
아시온의 낯빛이 어두웠다. 물론, 그런 아시온의 눈에 비친 제 낯빛은 훨씬 더 어두웠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십시오.”
아직 안 된다고, 어쩌면 어딘가에 목격자가 한 명 정도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헤르한은 이번에도 아시온을 떨쳐내려 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쉼 없이 정신을 채찍질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렀는지를.
결국 아시온은 기사들을 시켜 아직 남은 조사자들을 대충 돌려보냈다.
줄 서 있던 시종들이 전부 물러갔을 때쯤에야 허겁지겁 달려온 것은 카넬이었다.
“왜 네가 오지? 제스는?”
아시온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주군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당장 오라고 분명히 제스를 호출했는데.
“그게……. 제스 경의 상태도 좋지 않으셔서.”
“상태가 안 좋아? 뭘 하고 있는데?”
“포르말린 용액을 항아리째로 푸고 계십니다.”
“뭐? 포르말린?”
“예. 조만간 대형 박제를 하나 만들게 생겼으니 지금 준비를 해야 한다고……. 취하신 것도 같고, 조금 우시는 것도 같던데…….”
웃긴 녀석 같으니라고.
헤르한은 목 끝까지 치미는 감정을 꾹 눌러 삼켰다. 어이없음과 답답함이 포함된 감정이었지만,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는 건 역시 미안함이었다.
자신이 무릎까지 꿇고 애원했는데 주군이 그걸 무시했다며 단단히 토라져 연구실로 숨어버린 제스였다. 이제 폐하의 주치의 같은 건 그만둘 테니 죽든 말든 혼자 알아서 하라나 뭐라나.
사실 제스가 이런 식으로 반항하는 건 처음도 아니었다.
헤르한이 작년 가을 르 데르에서 몰래 병영을 이탈해 술을 마셨을 때도 그랬고, 리오타 왕국 순방 직전 바빠서 깜빡하고 약을 몇 번 걸렀을 때도 그랬고.
그럴 때마다 제스의 빈자리를 대신한 건 카넬이었다.
제스가 직접 가르치며 키운 후학이자 현 황실의 의국 부장.
황제의 곁에서 일한 지는 벌써 5년 가까이 되었고, 당연히 헤르한의 숱한 검증을 지닌, 믿을 만한 자였다.
하지만.
‘카넬이라면 기밀문서를 유출하거나 약을 바꿔치기하는 것쯤은 아주 손쉽겠지. 왕국 순방 동안 제스 대신 내 주위에 있기도 했고.’
자꾸만 이런 의심까지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오늘 하루,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을 지나치게 많이 만난 탓일까. 아니면 병증이 극에 달아 정신이 혼미해진 탓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헤르한은 카넬이 제 몸을 진찰하는 동안 그에게 물었다.
“카넬. 오늘 낮에 무얼 했나?”
“예? 오, 오늘 낮 말씀이십니까?”
그런데 한번 던져본 물음에 카넬은 평소답지 않게 허둥댔다.
“사실은…….”
헤르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마 카넬이?
“낮잠을 잤습니다. 죄송합니다. 폐하. 근무시간인 걸 알면서도……. 왕국 순방 동안의 기록을 전부 정리해서 제스 경께 최종 보고를 마치고 긴장이 풀려서 그랬는지, 저도 모르게 꼼짝없이……. 송구합니다.”
“서궁에 간 적은 없고?”
“서궁에 온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되묻는 카넬의 눈은 정직했다. 헤르한은 자신의 가슴을 열고 만지는 중인 카넬의 마음을 읽어보았다.
카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오전 내내 업무에 시달렸고, 보고를 마친 뒤에는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잠든 후로 몇 분간 의식이 깜깜했다.
당연히 서궁에 온 적도 없었다.
비단 그의 알리바이가 어떻다를 떠나서도, 황제를 향한 카넬의 충심은 실 한 오라기만큼의 거짓도 없이 명백했다.
‘카넬 같은 충복까지 의심하다니. 내 머리가 정말로 어떻게 되어버렸나.’
헤르한은 자괴감이 들어 눈을 질끈 감았다.
리엘라에게 약속했는데. 너의 대답을 증명해 보이겠노라고.
그런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목숨을 바친 부하들을 의심하고 염탐하며 그들의 신뢰에 배반하는 것뿐이라니.
“저라면 진작 미쳐버렸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은 그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제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더 아무 생각 하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셔야 합니다.”
아시온이 헤르한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아시온의 말이 맞았다. 헤르한은 오늘은 그 어떤 생각도 더 할 수 없었다.
*
양쪽에 아시온과 카넬의 부축을 받아, 헤르한이 침실로 겨우 돌아온 건 야심한 시각이었다.
카넬이 들고 온 비상약을 병째로 다 들이마셨는데도 불구하고 헤르한의 기력은 되돌아올 줄을 몰랐다.
안 되겠다고, 자신이 밤새 곁을 지키겠다며 아시온이 주군의 침대 옆에 남으려 했지만 헤르한은 가까스로 힘을 쥐어짜서 그를 내보냈다.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밤이었다.
이런 순간엔, 헤르한은 그 누구도 곁에 가까이 두고 싶지 않았다.
“폐하…….”
설령 그게 리엘라 블리니테라고 할지라도.
바깥에서 조사하는 내내 침실에 혼자 남아 있을 것이 걱정되어서 몇 번이고 당장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던 이 여자라고 해도 싫었다.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송장처럼 누운 순간에 헤르한은 리엘라를 외면하고 싶어졌다.
정확히는, 이렇게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폐하……. 아시온 대장님께 들었어요. 많이 무리하셨다고.”
느슨한 달빛이 드는 황제의 침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가에서 서성이며 드문드문 말을 하는 리엘라는 헤르한의 눈에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헤르한은 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 실루엣을 한참 보았다.
한참 보니 또 곁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될 일이었다. 당당하게, 내가 너의 결백을 모두 밝혔노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진 그는 리엘라의 앞에 설 면목이 없었다.
“오지 마라.”
“폐하.”
“이쪽으로 오지 마. 침대는 다른 곳에도 있다. 할 얘기는 자고 일어나서, 내일. 내일 얘기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리엘라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게 헤르한의 가슴속을 태웠다.
아까는 그렇게도 리엘라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리엘라가 다가오는 것이 왜 이렇게도 끔찍한 걸까.
헤르한은 리엘라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보다, 면목이 없어서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녀를 의심하게 될까 봐 무서워서였다.
“왜 제 마음은 읽지 않으세요?”
그때 침대 곁으로 훌쩍 다가온 리엘라가 말했다.
헤르한은 눈을 부릅떴다. 두통 때문이 아니라 리엘라의 말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고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네가 그걸 어떻게?”
벌떡 몸을 일으키니, 그제야 헤르한의 시야에 흐릿한 실루엣이 아닌 리엘라의 모습이 제대로 들어왔다.
리엘라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지칠 정도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시면서. 왜 제 마음은 읽지 않으세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헤르한은 더 다그치려다가 말았다.
뻔했다. 제스 말고는 없었다. 제 충언을 무시한 주군이 미워 리엘라에 사실을 고자질한 것이다.
“폐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행하실 수 있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습니다. 몰라서 무서워요. 저는……. 아니 폐하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죠?”
어쩌다가 그런 괴물 같은 힘을 갖게 되었냐고 묻는 것인가.
헤르한은 벽에 머리를 기대고 천장을 향해 후 깊은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리엘라의 물음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오로지 제 마음만 읽지 못하신다면서, 그러면서 어떻게 저를 믿어주실 수가 있죠? 어째서, 저를 버리지 않으세요?”
헤르한이 자리를 비운 동안 얼마나 속으로 묻고 또 물었는지 리엘라는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밝은 달빛 아래로 완전히 들어와서 선 리엘라의 얼굴이 반짝였다.
헤르한은 그녀가 반짝이는 사람이기에 빛이 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저 무수한 반짝임은 전부 리엘라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리엘라는 가쁜 울음 속에서도 눈을 똑바로 뜨고 헤르한을 보고 있었다.
헤르한은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나 그런 리엘라 앞에 섰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지지대가 없으면 제대로 설 수도 없을 만큼 어지럽고 고통스러웠는데, 어쩐지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숨통도 트였다.
달큼한 리엘라의 체취 때문인가.
“나야말로 네게 묻고 싶어. 리엘라 블리니테.”
“…….”
“너는 왜 다른 거지? 왜 너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건가? 왜 그래서 날 혼란스럽게 해?”
언성을 높일 생각은 없었다.
이건 리엘라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잘못은 괴상한 저주를 떠안은 헤르한 자신에게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헤르한은 영문 모를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고통에 감각이 무뎌졌던 온몸 구석구석이 이제는 리엘라를 더 가까이하고 싶다는 충동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기도 사내라고 단순한 욕정이 끓는 것인가? 다 죽어가는 마당에?
헤르한은 화가 날 정도로 스스로가 우스웠다.
그런 와중에도 가까이 마주 선 리엘라의 향기가, 눈물이 베인 살결이, 붉고 탐스러운 입술이 계속 헤르한의 정신을 흔들었다.
“저를 읽어주세요.”
리엘라는 그렇게 말하며 헤르한에게 가까이 몸을 붙이고 섰다.
헤르한은 턱에 힘을 주고 이를 꽉 깨물었다.
“폐하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폐하의 의심을 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건 이제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런데 당신께는 절대로 버림받고 싶지 않아요.”
간신히 참고 있는 쪽은 배려도 안 해주고, 이렇게 무자비하게 울며 애원하면 어떻게 하라고.
헤르한은 미칠 것만 같았다.
“폐하의 힘은 살이 맞닿을수록 강하게 통한다고 들었습니다.”
침대의 한쪽 기둥을 쥔 헤르한의 팔뚝에 힘줄이 불거졌다.
이어지는 리엘라의 흐느낌은 외줄 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버티는 그에게 날아드는 바윗돌과도 같았다.
“저를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