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 그래서 괴로워 (31/154)


#31 그래서 괴로워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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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황제 폐하!”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고정되어 있는 동안, 리엘라를 빙 둘러싸고 있던 일꾼들은 뒤늦게 황제의 등장을 알아채고 기겁하며 우르르 머리를 조아렸다.

특히 루는 튀어나올 듯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입을 틀어막았다.

황제 폐하가 여길 오시다니, 리엘라 님에게 궂은일을 떠맡겼다고 야단맞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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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제가 직접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방 안에 가만히만 있자니 몸이 뻐근하고 답답해서요.”

리엘라의 생각도 루와 같았다.

혹시나 불똥이 엄한 곳에 튈세라, 리엘라는 재빠르게 변명부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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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그에 대한 황제의 대답은 간결했다.

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지만 리엘라는 오히려 살짝 멈칫했다.

황제의 목소리가 어쩐지 무거운 것 같다면, 그건 기분 탓일까?

차가운 물에 맨발을 담그고 부드러운 거품을 밟는 것이 제법 상쾌했었다.

꺅꺅거리는 루를 옆에 두고 놀리는 것도 즐거웠고, 좋은 햇살을 받으며 모처럼 몸을 움직이는 것이 참 산뜻하고 좋았다.

그런데 황제까지 와주어서.

분명 바빠서 앞으로 한동안은 얼굴을 보지 못할 거라 했던 황제가 자신을 찾아 이런 곳까지 와주어서.

리엘라는 더 반갑고 마음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마냥 기분이 좋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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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아서 더 할 말이 없군.”

황제는 아닌 것 같았다.

리엘라는 그제야 이상하게 경직된 분위기를 깨닫고 눈치 없이 웃던 입꼬리를 슬며시 내렸다.

아시온도 표정이 굳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황제의 특별한 명령이 없었는데도 나서서 빨래터의 일꾼들을 모두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의 등쌀에 루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멀어졌다.

루가 비켜주고 난 자리로 들어와서 선 것은 헤르한이었다.

그는 아직 빨래통 안에 거품을 밟고 선 리엘라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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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째서 네게 서궁을 내어주고, 보란 듯이 더 친밀하게 굴었다고 생각하지?”

그건 물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질책이라는 걸 리엘라는 알았다.

답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혼나는 거니까. 리엘라는 대답을 하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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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네게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너는 일부러 구경거리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내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군. 왜지? 나를 괴롭히려는 건가?”

평소의 황제답지 않은 사나운 일침에 리엘라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저 루의 기분을 북돋워 줄 생각에 한 일이었다. 황제의 배려를 무시하는 일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가 이렇게까지 마음 상해할 줄도 전혀 몰랐다.

망신스러운 것과 동시에 죄책감이 밀려들어 리엘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황제의 눈을 마주치기도 부끄러워, 리엘라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치마 춤을 붙잡고 허둥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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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다시는…….”

하지만 너무 당황하여 허둥댄 탓일까. 빨리 빨래통 밖으로 나오려고 급하게 발을 내뻗던 리엘라는 거품에 미끄러져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리엘라의 몸이 기우뚱 크게 휘청였다.

그대로 통 안으로 자빠져서 거품을 뒤집어쓰거나, 바깥으로 넘어져 바닥을 구를 법한 몸을 대신 민첩하게 낚아챈 건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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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하다 이젠 나까지 물을 뒤집어쓰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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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정말 실수로…….”

굵고 강인한 팔뚝이 리엘라의 허리를 감았다.

헤르한은 여전히 갈팡질팡하는 리엘라를 가볍게 들어 빨래통 바깥으로 꺼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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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

사과를 하며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리엘라를 내려다보는 헤르한의 눈빛이 여전히 매서웠다.

리엘라는 뜨끔해서 곧장 말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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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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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지. 왜 이렇게 불편하고 조마조마한 거지?

오늘 아침만 해도 능글맞을 정도로 유했던 황제이기에, 리엘라는 지금 그가 저를 잡아먹을 듯이 보는 강한 시선이 더 얼떨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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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놔주셔도 됩니다. 혼자 설 수 있어요. 폐하.”

그래서 리엘라는 당황스러운 이 기류로부터 도망치듯 물러났다.

하지만 애써 물러선 것이 무색하게 헤르한은 곧장 다가와 리엘라를 끌어안았다. 리엘라가 물러선 한발보다 그가 다가온 한발이 더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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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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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하인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아.

그래서인가. 일부러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비록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일꾼들 틈에서 맨발로 빨래를 밟는 여자이지만, 이만큼 황제가 아끼는 여자이니 다들 잘 봐두고 무시하지 말라고?

어쨌든 헤르한을 더 실망하게 하기 싫은 마음에 리엘라가 가만히 머물자, 헤르한은 아예 리엘라를 끌어안은 상태로 그녀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파묻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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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제 심장이 뛰는 곳 가까이 불쑥 들어온 헤르한의 이마에 리엘라는 낮은 숨을 삼켰다.

터질 듯이 심장이 뛰는데. 분명히 그 박동이 헤르한에게도 들릴 것 같은데. 그는 물러서 주기는커녕 더 강하게 리엘라를 끌어안았다.

내게 일부러 벌을 주는 거다, 리엘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의 의도를 안다고 해서 정수리까지 뻗친 화끈거림이 가라앉는 건 아니었다.

왠지 목덜미에 황제의 뜨거운 호흡이 닿는 것 같아서.

또 왠지 쇄골의 움푹한 곳에 파묻은 황제의 입술이 제 살을 살짝 오물거리기도 하는 것 같아서.

리엘라는 온 혈관이 욱신거리고 머릿속이 아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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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언제까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리엘라가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파들거리는 작은 목소리로 떠는 것 정도였다.

황제는 한참 뒤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가뜩이나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리엘라가 들여다본 황제의 눈엔 싸늘한 서릿발이 등등했다. 바로 그게 리엘라를 더 어쩔 줄 모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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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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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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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리엘라가 파르르 떨며 물은 것에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리엘라의 몸을 감은 팔에 아주 강하게 힘을 주었다가, 이내 탁 힘을 풀고 놓아버렸다.

황제가 제 몸을 놓아준 순간에, 리엘라는 어째선지 그가 자신을 놓는 것이 아니라 팽개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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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같이 들지. 돌아가서 채비하고 바로 본궁으로 와.”

황제는 리엘라가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돌아서 버렸다.

제게 보인 넓은 등을 본 순간 리엘라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더운 호흡을 대던 목덜미는 아직도 화끈거리는데, 헤르한의 뒷모습이 뿜어내는 건 그저 야멸찬 냉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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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리엘라를 그 자리에 내버려 두고 한참을 걸어서야, 아시온은 주군을 불렀다.

리엘라 양, 당신은 알까요, 지금 황제 폐하는 당신보다도 더 혼란스러운 얼굴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다는 걸.

답답한 마음에 독백을 삼키는 아시온에게 헤르한은 늦은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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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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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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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가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그러니 너는 리엘라에게 아무 내색도 하지 마.”

아시온은 무슨 말이라도 하려다가 곧 대답 같은 건 필요 없음을 깨닫고 묵묵히 헤르한의 뒤를 따랐다.

*

저녁 식사 전, 잠깐 연구실을 찾은 헤르한에게 제스는 이제껏 파악한 몇 가지 사실들을 전했다.

카넬의 증언으로 확인하건대 약이 바뀐 것은 황제가 왕국에 도착한 이후가 확실했다. 황제가 왕국에서 때아닌 발작을 일으킨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었다.

다만 그 ‘가짜 약’의 성분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적이 단순히 황제를 해칠 생각이었다면 맹독을 썼을 텐데, 발견된 ‘가짜 약’에서는 그 어떤 독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적의 의도를 알 수 없으니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가짜 약의 후유증 때문인지 오늘 황제가 잠깐 이상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으니, 약의 정확한 성분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했다.

결국은, 너무 당연한 소리겠지만, 한시라도 빨리 첩자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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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여자를 잡으러 뛰쳐나갔던 폐하는 허탕만 치고 여기 와 있다, 그거지.’

제스는 혀를 끌끌 차며, 제 앞에서 팔짱만 끼고 서 있는 헤르한을 보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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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속은 들리지 않는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확인을 하려고 그러십니까?”

헤르한은 묵묵부답이었지만 제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냥 한숨을 내쉬었다.

글렀다, 글렀어, 하고 중얼거린 제스는 그저 흘러내린 안경을 능숙하게 쳐올리곤 열심히 보고 있던 고문서에나 고개를 처박았다.

잿빛 눈동자로 빠르게 문자를 훑어내리면서 주군을 향해 툭툭 던지는 제스의 말투는 무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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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색으로 적장을 홀려서 내부로 파고드는 건 아주 전형적인 스파이 수법 아닙니까? 그런데 나의 현명하신 폐하께서 그런 뻔한 수에 당하실 줄이야. 정말 제 마음이 다 아픕니다.”

사르락. 제스의 손끝이 누렇게 바랜 책장을 넘겼다.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 황제를 살필 때를 빼곤 늘 제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제스라지만 지금은 특히 더 연구에 골몰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잠깐 곁을 비운 그 기간에 황제가 가짜 약을 먹어왔다는 것도 심장이 철렁하는데, 오늘은 갑자기 전례 없는 이상 증세까지 겪었으니까.

황제의 주치의인 제스로서는 비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주치의가 아니라, 오로지 헤르한의 평화만을 바라는 오랜 친구로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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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넌 리엘라를 의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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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요. 그럼 의심 안 합니까? 전 그 여자 별로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엘라인지 뭔지 그 여자의 편만을 드는 헤르한이 제스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책에서 시선을 뗀 제스는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벗어 던지고는 헤르한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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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의심하고, 아시온도 의심하고, 지나가는 개도 전부 다 그 여자를 의심할 겁니다. 폐하만 안 해요. 폐하만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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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도 의심한다.”

엥, 정말?

아시온에게 듣자 하니 빨래터에서 발견한 그 여자를 한참 껴안고 있었다던데. 그냥 마음을 읽으려는 시도로 쳐주기엔 아주 눈물이 날 정도로 절절했다던데.

제스는 헤르한의 대답이 못 미더웠다. 그래서 눈을 샐쭉하게 뜨고 주군의 진심을 되물으려는 찰나, 헤르한이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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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몹시 괴롭다. 죽겠어.”

그러면 그렇지…….

제스는 기가 찼다.

이럴 땐 주군을 마음껏 비웃어주어야 했다. 언제나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부끄러운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던 분이시니까.

그런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을 건 뭐람.

그렇게 숱한 고비를 넘기고 평생 제 저주를 담담하게 감내해 온 주군이, 고작 그 작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무너질 건 대체 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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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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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앞에서 죽는단 소리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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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내가 죽어도 곱게 박제로 만들어 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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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거고요. 그래도 박제보다는, 탱탱한 살 냄새 나는 폐하가 더 좋거든요. 저는.”

제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섬뜩한 대사를 했던 것과 달리, 곧장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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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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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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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휘둘리지 마시고요. 폐하답지 않습니다.”

헤르한은 짐짓 여유로운 척 웃고 떠났지만, 주군이 떠나기 전 동공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을 제스는 분명히 보았다.

제스는 다시 안경을 끼고 책을 보려다가, 책을 덮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대로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고 한참을 잠자듯 고심한 제스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 황실 근위대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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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이따가 그 여자가 폐하와 식사하는 동안 그 여자 침실을 샅샅이 뒤져봐. 그 여자가 타고 온 마차랑. 또 ‘루’라고 했던가. 그 시녀 아이도 조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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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갑자기 쳐들어와서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시온은 제스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웃다가 그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서서히 입꼬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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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알아서 하신다고 했어. 우리는 이 일에 손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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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는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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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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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알잖아. 이건 우리가 해야 해. 너도 못하겠으면 나 혼자서라도 한다. 다행히 난 아직 그 여자에게 정 같은 거 붙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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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그렇게 생각하는 제스의 머릿속으로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폐하의 곁엔 좋은 분들이 많아 다행이라며, 자신에 대한 판단이 서게 되면 제게도 꼭 알려달라고 웃던 그 얼굴이.

그게 참 맑아서,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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