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 입맞춤과 ‘그런 일’ (24/154)


#24 입맞춤과 ‘그런 일’
2021.09.19.


리엘라는 꿈에도 몰랐다.

행군이 시작한 이래로 일주일이 넘게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 황제가 궁금했는데.

그래서 그를 언제 볼 수 있을지 내심 그리워하면서 가끔 아시온 대장의 말이 후방에 보이면, 자신을 부르러 온 건 아닐까 하고 바보 같은 기대까지 품곤 했는데.

그런데 드디어 황제가 얼굴을 보여준 오늘 밤. 그것도 자신이 아픈 줄 알고 걱정이 되어 찾아와 준 이때. 애틋한 마음을 보여드리기는커녕.

……이렇게 꽁무니를 빼고 내달리면서 도망이나 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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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알고 뛰는 거지?”

리엘라를 더 민망하게 만드는 건 황제의 짓궂은 태도였다.

자신이 암만 전속력으로 달려봤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으면서, 그는 일부러 몇 발 뒤에서 자신을 쫓으며 득의양양 능글맞게 놀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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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뛰다간 지칠 텐데. 아. 이따가 푹신한 황제의 침실에서 발 뻗고 푹 잘 거라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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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는 추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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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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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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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날 결국 내 방에서 자고 갔지, 아마?”

리엘라는 그쯤에서 뛰던 속도를 늦추고 황제를 향해 몸을 돌렸다. 자기 딴에는 숨이 찰 정도로 뛰었는데 황제는 몹시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게 분해서 리엘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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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는 왜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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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뭐?”

고개를 비스듬히 틀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순수한 표정을 짓는 황제가 리엘라는 참 얄미웠다.

리엘라는 주먹을 움켜쥐고 눈살에 힘을 주었다.

황제에게서 배운 표정이었다. 폐하는 이렇게 하면 되게 무섭고 위엄 있어 보이던데, 지금 자신도 황제에게 그렇게 보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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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그렇게 저를 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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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그만.”

그때였다. 내내 느긋하게 걷던 황제가 갑자기 다급한 표정으로 훌쩍 다가오더니 뒷걸음질로 걷던 리엘라의 허리를 휘감아 잡았다.

덕분에 얼결에 붙잡혀 도망을 멈춘 리엘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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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도 안 보고 뛸 때부터 불안 불안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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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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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 말이야. 네 뒤.”

자신의 어깨너머를 가리키는 헤르한의 턱짓에 리엘라는 뒤를 돌아보았다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길이 끊겨 있던 것이다. 바로 몇 발 뒤, 무릎 높이 정도가 되어 보이는 둑 너머로 검은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다. 헤르한이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저 안에서 헤엄을 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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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무슨 악연이라도 있나? 볼 때마다 뛰어들지 못해서 안달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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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예요. 그때랑은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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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강물은 같은 강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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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물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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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건 르 데르의 지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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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헤르한이 스르륵 허리를 풀어주자 리엘라는 강물이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 앞을 응시하니, 이내 르 데르 특유의 반짝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에 보았던 것보다는 얇은 강줄기이지만 여전히 슬프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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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 그러고 보니 정말. 다시 여기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내 영혼이 한번 죽어 없어진 끝점이자, 당신을 만난 시작점.

리엘라는 바로 그 지점에 서서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았다.

그때의 강바람은 살을 엘 듯 차갑고 날카로웠는데, 지금은 좋은 향기가 나는 바람이 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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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같은 르 데르라는 걸 알고 나니까 혹시 또 빠지고 싶어졌나?”

헤르한이 물었다.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내심 진지한 걱정이 녹아 있는 물음이었다.

리엘라에겐 그의 목소리도 르 데르의 강바람과 같았다.

처음엔 너무나 싸늘해서 두렵기만 했는데, 이젠 없으면 그립고 서운할 정도로 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온기 덕분에.

리엘라는 그가 며칠간이나 자신을 찾아와주지 않았던 것을 용서할 수 있었다. 오늘 밤 그가 여러 방면으로 자신을 놀라게 하고 짓궂게 놀린 것도 다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곤 해맑게 부스스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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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 울었어요. 질리도록 많이.”

리엘라는 둑을 밟고 올라선 곳에서 뒷짐을 지고 저 먼 강물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아득히 반짝이는 수면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리엘라는 어쩐지 그것이 제 옆에 선 이 남자보다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엘라는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돌려 헤르한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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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폐하 덕분에. 폐하가 주신 거니까.”

고고한 여신처럼 리엘라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속눈썹이나 오물거리는 입술이나,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저 맑은 눈이 헤르한의 심장을 꽉 움켜쥐었다.

옛날. 강가에서 위태롭게 나부끼던 그녀가 그의 정신을 옭아매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희망으로 예쁘게 반짝거리는 리엘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동을 자극했다.

헤르한은 결국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던 의지를 놓아버리고 리엘라를 끌어당겨 입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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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나머지 허리와 어깨가 뻣뻣하게 굳은 것과는 달리, 리엘라의 입술은 보드랍고 촉촉했다. 리엘라는 원래도 살결이 부드러웠지만 작고 도톰한 입술은 특히 더 그랬다.

헤르한은 리엘라의 목을 감싸고, 그 여린 속살을 탐미했다.

이윽고 살짝 입술이 떨어진 틈에 리엘라가 신음인지 탄식인지 모를 호흡을 흘렸다. 어린 새의 날갯짓처럼 약하고 필사적인 그 떨림이 헤르한의 눈엔 참을 수 없이 색정적으로 보였다.

헤르한은 리엘라의 뜨거운 호흡을 한입에 삼키듯이 다시 입술을 포갰다.

그렇게 달뜬 호흡이 오가는 동안 리엘라의 몸은 점점 더 느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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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헤르한은 리엘라와 이마를 맞댄 채로 턱만을 살짝 당겨 말했다.

리엘라의 이름을 불렀지만 실은 큰 의미 없는 신음에 불과했다.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치솟은 정염에 까맣게 타버렸으니까. ‘생각’이라는 건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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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헤르한이 두 번째로 리엘라의 이름을 불렀을 때.

리엘라의 이마가 헤르한의 가슴팍으로 무겁게 파고들었다. 충동적인 입맞춤이 혼란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걸까.

헤르한은 자신에게 온전히 체중을 내맡기고 안긴 리엘라를 꽉 끌어안고 있다가, 다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팔에 힘을 조금 풀었다.

그러자 지지할 데를 잃은 리엘라가 아래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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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헤르한이 간신히 리엘라의 허리를 잡았지만, 리엘라의 머리와 팔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리엘라는 의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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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왜?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언제부터?

한창 정욕에 달아올랐던 헤르한의 몸이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헤르한은 까무룩 정신을 잃은 리엘라를 급박하게 둘러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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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실 시간은 한참 지났는데.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시온은 팔짱을 낀 채로 흔들의자에 늘어져서 긴 하품을 했다.

주군이 리엘라의 병문안을 하러 간답시고 방을 나선 것은 벌써 몇 시간도 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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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봐야 하나? 명색이 근위대장인데. 이 야밤에 폐하를 혼자 거동하시게 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런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매번 결론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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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챙기자.’

눈치 없이 서로를 헛도는 건 제 주군이나 리엘라 블리니테면 충분했다. 당사자들이 계속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삽질을 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유일한 똑쟁이인 저마저 그렇게 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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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못 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시고. 뭐. 앞으로 황실에서 계속 보게 될 테니 관계 정리도 잘하시고. 아. 혹시 이러다가 아예 외박하시는 거 아냐?’

그건 좀 곤란한데, 하고 아시온이 등받이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킨 순간 그의 방문이 덜컹거렸다.

바람에 흔들린 것이라기엔 소리가 묵중했다. 아래쪽 문틈으로는 커다란 형체의 달그림자까지 새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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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아시온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 날렵하게 옆에 세워둔 검을 집었다. 몸을 낮추고 당장이라도 적의 습격에 대응할 태세를 갖춘 뒤에, 그는 천천히 문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달칵.

문이 열리자마자 크고 검은 몸체가 안으로 급히 뛰어들었다. 아시온은 이를 꽉 물고 칼날을 세웠다가, 이내 뒤로 주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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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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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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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그렇게 무섭게 들어오십니까? 괜히 쫄았잖아요!”

아시온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민망하게 검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헤르한이 좀 이상했다.

숨을 엄청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데다가 로브 아래로 드러난 이마엔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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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무슨 일이십니까?”

심지어 안색도 핏기가 하나 없이 창백했다. 눈 밑이 퀭한 건 말로 다 할 수도 없었다.

설마 리엘라 블리니테에게서 그새 병이라도 옮아왔나, 그게 아니면 오는 길에 유령이라도 봤나. 뭐가 됐든 평범하게 병문안이나 다녀온 행색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헤르한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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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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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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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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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딜요?”

아시온은 머뭇거렸다. 오늘따라 왠지, 주군이 꼭 저승사자처럼 섬뜩하게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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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디까지 가십니까? 혹시 리엘라 양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카넬을 부를까요?”

아시온의 끝없는 질문을 전부 무시한 채 걷던 헤르한은 ‘카넬’이라는 말에 대뜸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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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 그래. 카넬을 불러와라.”

헤르한답지 않게 둔하고, 헤르한답지 않게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구나.

아시온은 설명은 나중에 듣기로 한 뒤 우선 급하게 카넬을 깨워서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주군이 자신들을 데리고 이끄는 곳은 리엘라가 묵고 있을 역참 여관 201호가 아니라, 마구간 너머 마차가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심지어 헤르한은 야간 당직을 세워둔 병사들의 눈을 피해가야 한다며 월담까지 했다.

어째서 아까 아시온 앞에 들이닥쳤던 헤르한이 땀을 흘리고 있었는지가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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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폐하의 마차……잖습니까?”

그렇게 도착한 곳. 유달리 크고 번쩍번쩍한 마차 앞에서 아시온과 카넬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말을 타고 기동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주군의 취향 덕에 대부분 속이 텅 빈 채로 굴러온 마차였다.

새것이나 다름없는 이 마차에 대체 무슨 문제가 생겼기에, 그것도 문제가 있다면 수리공을 부를 것이지, 왜 근위대장과 의사를 데려왔나.

그런 아시온과 카넬의 의문은 마차 문이 활짝 열린 순간 바로 해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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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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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다물어.”

곧장 아시온의 입을 틀어막는 헤르한의 손길은 무척 재빨랐다.

아시온은 헤르한에게 입이 막힌 채 붙들리고도 눈을 크게 부릅뜨며 마차 안을 향해 삿대질했다. 그러는 동안 눈치 빠른 카넬은 차분하게 마차 안으로 들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축 늘어진 리엘라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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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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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곧 깨어나겠는가? 왜 그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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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쓰러질 때의 상황을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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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좀 놀라고 흥분한 상태였고……. 숨도 좀 차는 것 같아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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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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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러니까…….”

그때야 헤르한은 아시온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정확히는 힘이 풀려 놓쳐버린 것이었다.

아시온은 그 틈에 숨을 고르고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마차 안에 발그레한 얼굴로 곱게 뻗은 리엘라와 그런 리엘라를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도통 입을 못 떼는 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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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여기서 뭘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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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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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럼 다른 데서 뭘 하고 여기로 오신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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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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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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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온이 눈을 샐쭉하게 떴다.

앞선 반박이 날쌨던 것과는 달리 침묵하는 헤르한의 얼굴이 새빨갰다.

했네, 했어.

아시온과 카넬은 말없이도 뜻이 통하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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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했습니다. 폐하. 그런 일로 기절한 거라면 물을 먹이고 푹 자게 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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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해하지 마라. 그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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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어쨌든 더 무리시키지 않고 쉬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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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것 없어. 그런 게 아니라니까?”

헤르한은 거세게 항변하다가도, 그러면 무슨 일로 리엘라가 기절했느냐 묻는 말엔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헤르한은 그렇게 한동안 아시온과 입씨름을 하며 도돌이표를 찍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차 안에 잠든 리엘라의 가슴은 쌔근쌔근 고르게 오르내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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