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싸움의 결말 (18/154)


#18 싸움의 결말
2021.08.29.


다음 날 아침, 시종이 리엘라를 불러 깨웠다.

푹신한 침대. 보드라운 이불. 그리고 황제에게서 나는 것과 똑같은 좋은 향기.

그 속에 파묻혀 몽롱하게 뒤척이던 리엘라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벌떡 일어났다.

그랬지. 여긴 황제 폐하의 침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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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깨워 죄송합니다. 블리니테 양. 잘 주무셨습니까?”

리엘라가 눈을 뜨자마자 정갈한 차림으로 그녀를 기다리던 시종 한 명이 공손하게 말했다. 리엘라는 얼떨결에 시종의 인사에 맞절하듯 고개를 숙이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제의 침실은 맞는데, 황제는 없었다.

밤샘 회의를 한다던 말이 정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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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침 식사를 내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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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기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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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여기서 편하게 드시라고 폐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시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엘라의 앞으로 호화로운 아침 식사가 대령 되었다. 갓 구운 빵들과 신선한 과일, 향긋한 커피와 우유까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3단 트레이에 실려 나온 음식들을 보며 리엘라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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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건 다 먹을 수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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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지 말고 전부 다 드시라고 폐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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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침실에 가져가서 천천히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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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여기서 끝까지 드시라고도 폐하께서 당부하셨습니다.”

……별걸 다 당부하고 갔구나. 참 이상한 남자야.

리엘라는 어쩔 수 없이 시종의 눈치를 보며 빵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바사삭 한 입을 깨물면서 리엘라는 시종이 자신을 샅샅이 훑는 시선을 느꼈다.

황제가 당부한 대로 음식을 잘 먹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기엔 더 집요하고 의심이 가득한 눈길이었다. 그 시종뿐만이 아니었다. 트레이를 나르고, 커피를 따르고, 창문을 열며 침실 안을 오가는 이들 모두가 자신을 탐색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별궁으로 이송된 황제의 암살자. 그리고 이제는 황제의 욕실에서 씻고, 황제의 침대에서 먹고 자는 여자.

당연히 흥미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그렇다고 여기서 저들에게 어젯밤 자신과 황제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명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고, 딱히 리엘라에게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리엘라가 궁금한 건 오로지 황제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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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무슨 의도일까…….’

그 고민이 깊어질 때쯤 시종이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침을 더 열심히 먹으라고 보채는 것인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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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신 후엔 오후 일정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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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게 말씀하시는 것 맞으세요?”

리엘라는 시종이 자신을 다른 이들과 착각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에게 시종이 챙겨주어야 할 ‘일정’이란 게 있을 턱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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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차림을 갖추시고 본궁의 접견 회장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아직 여유가 충분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준비는 저희가 돕겠습니다.”

그런데 착오가 아닌 모양이었다.

시종은 그 말을 끝으로 제 역할을 마쳤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곤 물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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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에 시작된 왕가의 황제 접견은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마무리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에 국왕 타란 2세가 진땀을 닦아내느라고 쓰고 던진 손수건만 넉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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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본궁의 응접실, 기다란 탁상엔 왕실 측과 제국 측 이해 당사자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두 군주의 훈훈한 사교 모임이라기보다는 흡사 재판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탁탁, 서류를 정리하며 리오타 왕실의 마지막 뜻을 물은 건 제국 측의 법무 대신이었다. 타란 2세는 만면 가득 실실거리는 웃음을 담고서 이 기회를 놓칠세라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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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물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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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측에서 더 원하는 조건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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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습니다! 그런 게 있을 턱이 있습니까? 저희는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그저 황제께서 하해와 같은 용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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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이 예뻐서가 아닙니다.”

끝도 없이 비굴하게 이어지던 타란 2세의 아첨을 끊어낸 건 헤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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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왕녀가 예뻐서도 아니고.”

팔짱을 낀 자세로 헤르한이 툭 쏘아붙인 눈총에 그레타는 살짝 움찔했다.

다행히, 헤르한의 시선은 다시 국왕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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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묻고 넘어가 주기로 한 건 내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이고 리오타 백성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용서한 것이 아니니 감히 그 단어는 입에 담지 말기를 바랍니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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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 예. 알고 있습니다. 폐하. 걱정 마십시오. 앞으로 저희가 잘하겠습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습니다. 앞으로는 쇄신해서, 우리 왕실이 폐하의 힘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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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힘은 내가 알아서 부릴 테니 그대들은 허튼수작을 부릴 시간에 제 백성이나 살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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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국왕이 깨갱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다섯 장째의 손수건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깟 손수건이, 그깟 모멸감 좀 느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랴. 무너진 하늘에 드디어 볕이 들게 되었거늘.

접견을 빙자한 이 자리는 황제 측이 이른 새벽에 통보해온 것이었다.

처음 그 통보를 들었을 때만 해도 국왕은 이제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왕관을 쓰며, 또 곧 쫓겨나게 될지도 모르는 왕궁 복도를 걸으며 침통해 했다.

그런데 정작 회장에서 만난 황제가 건넨 제안은 전혀 뜻밖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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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낱낱이 드러내어 이 왕실의 죄악을 벌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 일은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고 양국 간 보상 조약을 체결하는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제 측 대신들이 미리 준비한 협정안을 전달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해 함구할 것과 그를 어길 시에 당하게 될 불이익. 또 사죄의 뜻으로 엘슈바이크 제국이 리오타 왕국에 요구하는 보상 등이 적힌 문건이었다.

타란 2세는 제 눈을 의심했다.

보상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교역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이걸로, 이렇게 쉽게, 용서를 해준다고?

믿기 어려운 호의였고, 그렇기에 이유를 묻기조차 겁나는 호의였다.

국왕은 당연히 넙죽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왕실 측 관련자들이 모두 얼떨떨한 가운데, 남몰래 웃음을 삼키는 건 그레타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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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를 들고 흔든 게 이 정도로 효과가 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대단해. 어떻게 한 거니, 리엘라? 제발 파비안을 살려달라고 황제에게 매달려 빌기라도 했어?’

그 요망한 리엘라가 무슨 수를 썼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리엘라를 이용해 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었고, 또 그런 영특한 꾀를 낸 자기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레타는 그렇게 승리감에 도취해 있느라고 자신의 앞에 또 다른 협정서가 하나 더 도착한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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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엇인지요? 협정안은 벌써 전부 사인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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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에겐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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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그레타는 황제를 의뭉스럽게 흘긋거리고는 제 앞에 놓인 협정서를 펼쳤다.

위에서부터 찬찬히 글을 훑어 내리는 눈은 찌푸려졌다가, 크게 부릅떴다가, 파르르 떨다가, 이내 분노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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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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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를 주었으니 보상은 당연히 해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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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레타가 황제에게 덤비자 오히려 놀란 국왕이 그레타의 협정서를 빼앗아 보았다.

아직 제국에 더 보상할 것이 남았나 했는데, 그 협정서에 담긴 보상의 대상은 제국이 아니었다.

‘리엘라 블리니테’. 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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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해야 하죠? 리엘라도 엄연한 공범이에요. 피해자가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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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없다. 난 조약을 제안하는 주체로서 내 요구사항을 전달할 뿐이야.”

그때였다.

갑자기 피가 튀기 시작한 회장 안으로 기사 한 명이 들어와 황제에게 귓속말을 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하자 열린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섰다.

리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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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필요한 때에 잘 왔어.”

황제가 말했다. 그래도 리엘라는 머뭇거리며 좀처럼 다가오질 못했다. 이들이 무슨 얘길 나누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게 썩 유쾌한 얘기가 아니었단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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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리엘라. 내 옆으로 와라.”

황제가 손을 내밀었다. 리엘라가 엄두를 내지 못하자 아예 직접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다분히 보란 듯이 하는 행동에 그레타의 얼굴이 확 구겨졌지만, 헤르한은 그런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고 리엘라에게만 다정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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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았나? 내 방 침대는 네 것과 달라서 걱정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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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괜찮았습니다.”

어쩐지 농밀한 둘의 대화에 국왕이 움찔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건 그레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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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협정서에는 사인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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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왕녀의 뜻인가?”

화를 내거나 반발할 줄 알았던 황제는 의외로 담담했다.

물론, 믿는 구석이 있으므로 가능한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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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는 건 왕녀의 자유지. 하지만 나 역시 양보할 생각이 없으니 이 협정은 전부 무효가 되겠군. 그렇다면 우린 예정대로 왕실에 대한 공식 고발을 준비하는 수밖에는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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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폐, 폐하! 그건 안 됩니다! 안 될 말씀입니다!”

당연히 국왕이 펄쩍 뛰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옆에 앉은 제 딸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쥐고 흔들기까지 했다. 이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당장 폐하의 명에 따르지 못하겠느냐고, 그깟 보상금 따위 줘 버리면 그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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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그레타가 이를 악물었다.

협정서에는 왕실이 리엘라에게 매달 지급해야 할 상당한 금액의 보상금 외에도 몇 가지 항목이 더 적혀 있었다.

리엘라가 원하는 곳에 집과 일자리를 마련해줄 것. 평생 리엘라의 신변을 책임지고 보호할 것. 또 이해당사자가 모두 보는 앞에서 공식적이고도 진심 어린 사죄를, 왕녀가 직접 할 것.

만일 향후 리엘라의 일신상에 어떤 문제라도 생길 경우엔 그 즉시 모든 조약이 무효화 된다는 조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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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이? 뭐가 문제라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잖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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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우리 왕실은 평생 저 여자에게 발목 잡힌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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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따위 잡으라지. 목이 잘리게 생긴 시점에 발목이 무슨 대수야! 그레타. 너 혹시 저 여자에게 사과하기가 싫어서 그런 게냐? 알량한 네 자존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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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게 아니라!”

타란 2세는 이성을 잃고 벌떡 일어나 그레타를 마구 끌어내기 시작했다.

제국의 황제와 리엘라 블리니테에 관한 염문은 익히 들었던 국왕이었다. 심지어 어제도 두 사람이 동침한 모양인데, 황제가 그렇게까지 아끼는 여자를 건드려서 좋을 건 절대 없었다.

막아야 했다. 이 조약이 무산되는 일만은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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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이리 나오란 말이야. 어서 무릎을 꿇고 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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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전하! 악,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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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빌란 말이다! 그레타!”

결국 국왕에게 끌려 나온 그레타가 황제 앞에, 그리고 리엘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왕은 발악하는 그레타가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머리를 누르면서 본인 역시 옆자리에 함께 엎드렸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게 되었소, 제발 용서해주시오, 그대를 이용하고 누명 씌웠던 것 모두, 한 번만 용서해주면 절대로, 다시는, 그대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이것으로 억울함이 다 풀리진 않겠지만 내가 이렇게 빌겠소, 제발 용서해주시오…….

국왕의 졸렬하고도 참담한 사죄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레타는 흐느끼는 듯도, 이를 악물고 저주를 삼키는 듯도 했다.

다만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끝내 고개를 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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