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불청객 (13/154)


#13 불청객
202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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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뭐지?”

리엘라가 앞까지 다가왔을 때 헤르한이 물었다. 헤르한의 시선이 향한 건 얇은 사슬이 둘린 리엘라의 손목이었다.

대답은 리엘라가 아니라 리엘라를 뒤따라 오던 병사가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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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상의 이유로 죄인에게 형구를 채워두었습니다. 실내를 벗어나는 것이니 만일의 우려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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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안전을 말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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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황제 폐하이십니다.”

병사는 기합이 바짝 들어 있었다. 안타까운 건 충심 가득한 그에게 돌아갈 것이 주군의 칭찬이 아니라 핀잔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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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엔 내가 무기도 없는 여자에게 당할 만큼 덜떨어진 황제로 보이나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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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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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블리니테의 사슬을 풀어주란 뜻이다.”

병사는 한참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리다가 뒤늦게 황제의 뜻을 깨닫고 펄쩍 뛰어올랐다.

병사는 후다닥 사슬을 풀었고 리엘라는 그새 사슬에 쓸려 조금 빨개진 손목을 감쌌다. 홀가분한 동시에 부끄럽기도 했다. 붉은 사슬 자국이 꼭 제 처지를 알리는 낙인인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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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두었어야 했는데. 미처 신경을 못 썼군.”

황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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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사과 하시는 건가?’

그의 시선이 끈질기게 리엘라의 손목에 매달려 있었다. 평소보다 유달리 짙푸르게 어린 빛의 의미가 꼭 자책처럼 보였다.

손목에 상처가 나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황제의 시선이 뜨거워서일까. 리엘라는 화끈거리는 손을 등 뒤로 감추고는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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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폐하. 이렇게 외출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하려다가 리엘라는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이었다. 아직 황제에게 감사하단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늘만이 아니었다.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르 데르의 수면 아래에서부터 쭉.

죽으려던 자신을 구해주어서. 또 죽임을 당할 뻔한 자신을 구해주어서. 해명할 기회를 줘서. 해명을 듣게 해주어서. 손목의 사슬을 풀어주어서.

또 이렇게, 봄꽃을 보며 걸을 수 있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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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리엘라가 말했다.

그 말에 먼저 앞서서 정원을 걷던 헤르한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아직 뒷모습만 보이고 선 채였다. 그가 계속 그렇게만 있어 준다면 리엘라는 몇 마디를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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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보가 되었었나 봅니다. 그 말을 제일 먼저 해야 했는데.”

다행히 헤르한은 리엘라가 양껏 말할 수 있도록 계속 한 발을 떨어져 있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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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로 무얼 원하시는지 물을 게 아니라. 몸이라도 드리겠다고 할 게 아니라. 감사하다고 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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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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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하늘이 아직도 이렇게 환하고 예쁜 줄 몰랐습니다.”

이것도 고백이라고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래도 리엘라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 작고 미약한 목소리가 저 앞에 계신 당신에게 꼭 닿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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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세상이 이렇게 예쁜 줄 몰라서……. 그래서 다시 살게 된 것이 감사한 줄을 몰랐습니다. 소중한 줄 몰랐어요.”

그 말 그대로였다.

왕실의 속셈에 이용만 당하고 죽을 게 억울해서 이를 악물고 구해달라 발버둥 쳤지만, 사실 그것도 분해서였지, 제 삶이 소중해서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 나와 햇살을 받아보니 알겠다.

헤르한 황제가 제게 준 것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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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살려주셔서.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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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낫네.”

황제는 그쯤에서 대답하고 돌아서 리엘라를 마주 보았다.

저벅저벅. 그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리엘라는 황제와 자신이 꽤 많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의 큰 보폭으로 걸으니 고작 너덧 걸음의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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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도 끝도 없이 죄송하다 조아리는 것보다, 훨씬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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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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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고맙단 말을 또 밑도 끝도 없이 하란 건 아니고.”

황제가 피식 웃었다.

아주 얕게, 짧게 스쳐 간 웃음이었지만 사방에 가득한 꽃향기만큼은 충분히 그윽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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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황제와 리엘라는 정원 안을 조금 더 거닐었다.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헤르한은 리엘라에게 앞으로 네 신병이 어떻게 처리되길 원하는지를 물었다.

리엘라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황제를 빤히 올려보았다.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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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안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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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원한다면.”

황당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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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하지 않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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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도 네게 선택권은 없지.”

이어진 대답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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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권이 없는데 왜 제 뜻을 물으십니까?”

그렇게 질문할 때만 해도 리엘라는 뻔한 대답을 예상했다.

그냥. 큰 의미 없이. 권력이 있는 자들은 으레 그렇게 약한 자들을 쥐락펴락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니까.

그런데 헤르한의 대답은 앞선 대답들과는 다른 의미로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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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그냥 네 속이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리엘라가 움찔거렸다. 헤르한은 그런 리엘라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일부러 병사를 멀리 물리고 걸어온 둘은 이미 꽤 깊은 정원 담장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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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래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오만할 정도로 내 뜻대로만 구는 편이지. 그런데 네겐 자꾸 뭐든 묻게 되는군.”

그건 네 마음이 들리지 않아서겠지. 거기다가 네 곁에선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지니까.

헤르한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자신을 따라 멈춰 선 리엘라의 손목을 잡았다.

한 손으로 넉넉히 쥐고도 한참이 남는 얇은 손목이었다. 여리기만 한 그 손목에 아직도 붉게 남은 사슬 자국이 헤르한은 신경 쓰였다. 그래서 일부러 그 부분을 더 꾹 감싸 쥐었다.

그렇게 꼭 살을 맞대도 리엘라의 생각은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리엘라는 붉은 눈을 들어 가만히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날 보며 이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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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궁금하다. 리엘라 블리니테.”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욕정처럼 치밀기도 한다는 걸 헤르한은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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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알아야겠어.”

선전포고와 같은 그의 말에 리엘라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숨을 골랐다.

리엘라의 붉은 입술이 웅얼거렸다. 무슨 말이라도 머금으려는 것 같았지만, 그 입술이 벌어지기 전에 다급히 달려온 병사의 보고가 더 우렁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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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휴식 중에 송구합니다만, 지금 급히……!”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헤르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황제가 안면을 구긴다는 것의 의미를 알고도 병사는 물러나지 못했다.

정원 담장 너머가 시끄러웠다. 그 소란의 정체를 깨닫고 헤르한은 더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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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정원을 산책하고 계셨다고요.”

명랑하고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그레타 왕녀였다.

왕녀의 뒤로는 차마 그녀를 붙잡지도, 그렇다고 그냥 보내지도 못하고 안달복달하며 꽁무니에 붙어 온 이들이 한 무더기였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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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찾았습니다. 찾아뵙고자 사람을 보내도 통 소식이 없으셔서. 누구는 또 폐하께서 몸져누우셨다고 하던데.”

그레타는 거침없이 화단을 가로질러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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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산책을 하실 만큼 강녕하시니. 참, 기쁠 따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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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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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같은 궁 안에 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레타의 언사는 대놓고 왕실을 따돌리는 제국 측의 행동을 비꼬는 것이었다.

당연히 주변에 모여든 제국 측 수행원들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레타가 옆구리에 끼고 온 왕실 측 시종들이라고 얼굴이 다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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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급한 용건이 있는 모양이군. 꽃밭까지 밟아가며 왕녀께서 직접 행차하신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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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폐하를 만나 뵈려면 꽃밭이 아니라 맨땅이라도 다 갈아엎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시종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레타는 속에 맺힌 말을 전부 내지른 뒤 뻔뻔하게 웃었다.

악도 써보고 대체 원하는 게 무어냐고 따져보기도 하고, 그래도 말이 안 통하면 정말 무릎이라도 꿇고 저들이 하라는 대로 할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그레타는 끝장을 볼 결심을 하고 황제의 앞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의 가식은 필요 없었다.

뻔히 패를 다 드러낸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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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왕녀. 곧바로 의전 대신을 본궁에 보내 접견 일정을 잡도록 하겠다.”

그런데 황제의 태도가 이상했다. 늘 저보다도 더 저돌적이던 황제가 오늘따라 미적지근한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무례하게 구는데 한마디의 질책도 안 하다니?

내내 미루던 접견 일정을 순순히 잡아주겠다는 것도 수상했다. 설마 또 번지르르하게 말만 내지르고 왕실을 피할 참인가?
그레타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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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피차 시간 낭비 말고,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냥 지금 솔직히…….”

치미는 짜증과 초조함을 한껏 누르며 한발 다가서던 그레타는 그제야, 그때서야, 황제가 자신의 넓은 등 뒤에 감춘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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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라?”

리엘라.

그 이름 하나를 불렀을 뿐인데, 뒤에 숨은 작은 어깨가 크게 움찔거리더니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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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리엘라 블리니테? 너…….”

그레타는 놀란 목소리를 내다가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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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니? 네가 왜 거기에 있어?”

그레타가 한번 웃을 때마다 리엘라는 제 영혼이 더 낮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리엘라는 숨이 가빠왔다.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게 그레타임을 처음 확인했던 그 순간부터 그랬다.

헤르한이 제 손을 꽉 맞잡은 것도 그 순간부터였다. 일단은 그가 끌어당기는 대로 뒤로 숨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레타의 눈을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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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있었던 거니? 폐하와 함께 산책이라도 하고 있었어?”

그레타가 리엘라를 향해 다가왔다.

황제고 나발이고, 담판이 어쩌고 하는 것도 잊어버린 그레타는 먹잇감을 포착한 매처럼 까만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감히 자신과 파비안을, 그리고 왕실을 궁지로 몰아버린 저 괘씸한 것. 진작 죽여버려야 했던 리엘라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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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

그런데 바짝 다가간 그레타가 손을 뻗기 직전에, 황제가 더 빨리 리엘라를 감싸고는 자신의 등 뒤로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
눈앞에서 먹잇감을 빼앗긴 그레타가 면상을 확 구겼다.

황제는 리엘라를 온전히 제 뒤에 감추고는 그레타의 앞에 한발 다가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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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나와 할 얘기가 급한 모양인데. 지금 바로 자리를 마련할 테니 안으로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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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시네요. 폐하. 여태랑은 다르게.”

그레타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그레타의 까만 눈동자는 이제 헤르한과 그의 뒤에 숨어버린 리엘라를 매섭게 번갈아 오갔다.

절대 내어줄 수 없는 보물이라도 지키듯 하는 남자와 그 남자에게 아주 익숙하게 매달려 있는 여자. 그리고, 두려움을 내쫓아주듯 그녀를 꼭 잡아주고 있는 황제의 손.

알 것 같았다.

저 둘이 단지 이 왕실에 대적하기 위해 연합한 것이라면 저런 모양으로 손을 잡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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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에서 떠도는 소문이 정말이었단 말이야?’

놀라움 반, 흥미로움 반으로 헤르한을 노려보는 그레타의 시선이 음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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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 다시 말하는데 지금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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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폐하.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폐하의 안부는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 됐습니다. 제가 별궁에 온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예요.”

그레타는 이제 계산을 다 마친 후였다.

제 목줄인 줄 알았던 것이 어쩌면 제 방패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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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리엘라 블리니테를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폐하. 허락해주시겠어요?”

그레타의 청에 헤르한의 눈빛이 단연 섬뜩해졌다. 그래도 그레타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의 등 너머에서 웅크리고 있을 리엘라를 직접 도발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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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뜻은 어때, 리엘라? 너도 나와 할 얘기가 많지 않니?”

황제가 앞을 가로막아주고 있는데도 그레타의 낭랑한 목소리는 화살이 되어 리엘라에게 박혀왔다.

할 얘기가 많지 않느냐고? 맺힌 것이 많은 게 아니라?

그레타를 향한 분노에, 그리고 두려움에 리엘라는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헤르한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레타의 말끝마다 더, 더 세게 잡은 덕에 손등 위에 푸른 힘줄이 툭 불거질 정도로.

리엘라는 그런 황제의 손을 내려다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 손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 덕에 리엘라는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를 수 있었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 그레타의 앞에 당당히 얼굴을 내밀고 나와서 이렇게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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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왕녀님에게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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