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만에 하나의 이변 (6/154)


#6 만에 하나의 이변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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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라.”

황제와 죄인 사이는 열 걸음도 채 되지 않았다. 서릿발 같은 음성이 묻힐 리 없는 거리인데도 죄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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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라고 하였다.”

헤르한이 재차 명했다.

그래도 여자는 바윗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군중이 수군거렸다. 감히 황제의 말을 무시하다니. 난 년은 난 년이네, 하고.

웅성거림은 헤르한이 움직이자 자연스레 사그라들었다.

헤르한은 몇 걸음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여자를 짓밟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오른손에 쥔 칼을 주저앉은 여자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그 순간에 사람들은 이제 기어이 피를 보게 되리라 생각했다.

돌연 정체를 감추었다가 10년 만에 다시 나타나 세상을 뒤흔든 헤르한은 그런 남자였다.

평화롭게 엘슈바이크 제국의 황제 자리를 양위 받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평화’의 이면에 숱한 피가 강을 이루었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같은 핏줄이었던 선황제조차도 자비 없이 척박한 변방으로 내쫓은 남자였다.

그러니 하찮은 죄인 하나가. 그것도 감히 그를 암살하려 했다는 여자가 헤르한 앞에서 목숨을 부지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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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혼자뿐이냐.”

잔혹하기로 소문난 황제가, 웬일로 오늘만큼은 단칼에 죄인의 숨을 거두는 대신 관심을 베풀기를 택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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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아라.”

심지어 헤르한은 겁도 없이 황제의 말을 무시하는 죄인에게 눈맞춤을 명령하기까지 했다.

진작 사방으로 피를 뿜어냈어야 할 칼날이 잠잠했다. 황제의 칼끝은 죄인의 목을 내리치는 대신 조심스럽게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칼끝에 고개가 들리긴 했으나 죄인의 동공은 초점 없이 퀭했다. 그 얼굴을 확인한 황제의 눈썹이 묘하게 꿈틀거렸다.

사람들은 죄인의 뻔뻔함과 방자함에 황제가 불쾌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레타는 다른 의미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헤르한의 표정을 보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자신의 꾀가 들킬까 조마조마한 자만이 예감할 수 있는 불길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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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황제 폐하. 자체 조사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때 왕국군 장교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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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결과, 작년 가을 동부지대에서 발생했던 폐하의 암살 모의 건은 여기 이 ‘리엘라 블리니테’가 단독 주동했던 것으로……!”

그는 해명을 다 마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죄인의 고개를 받치던 황제의 칼끝이 곧장 그의 목울대를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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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죄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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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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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그대의 이름이 ‘리엘라 블리니테’라도 되는가?”

겁에 질린 장교는 예의조차 잊고 하얗게 질린 얼굴을 가로저었다.

헤르한의 칼끝은 금방이라도 장교의 목을 찌를 듯했다. 그 상황을 중재해야 할 국왕은 장교보다 더 창백하게 질려서 입도 열지 못했다. 황제의 검이 거두어진 건, 순전히 그때 ‘진짜 리엘라 블리니테’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린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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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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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것이……!”

몇몇이 놀라며 움찔거렸으나 그녀를 일으켜주려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리엘라는 누구도 상종해선 안 될 대역죄인이었으니까.

리엘라는 그저 냉담한 구경꾼들의 시선 속에 덩그러니 버려진 채였다.

그런 리엘라를 향하는 헤르한의 얼굴이 어째선지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군중들은 떨며 숨을 죽였다. 황제의 심기가 잔뜩 불편해졌으니 앞으로 이어질 일은 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가 다시 리엘라 쪽으로 몸을 틀었다.

군중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야 상황이 바르게 돌아가는 건가 하고, 그레타도 가슴을 부여잡고 눈을 가늘게 떴지만.

그레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두의 예상도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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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헤르한이 직접 리엘라를 품에 안아 들고 있었다.

결국, 만에 하나의 이변이 시작된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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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제국에 인도되기로 예정되어 있던 죄인의 관리 체계가 허술하여, 죄인의 건강이 몹시 악화된 바, 국제법 절차를 무시하고 제국 측의 진상 조사와 재판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한 리오타 왕실에 심대한 유감을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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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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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고, 화내는 척하면서 대충 어떻게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정말 왜 그런 돌발행동을 하신 겁니까, 폐하!?”

제국 황제의 영접식에서 벌어진 일이 일파만파 퍼져 왕궁 담장 너머까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그때.

황제와 황제의 수행단이 행장을 푼 별궁이라고 사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특히 아시온이 난리였다.

제국 황실 근위대장이기 전에 어린 시절부터 헤르한과 생사고락을 함께해 온 그는 황제에게 귀 따가운 잔소리를 퍼부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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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폐하를 모함한 죄로 끌려 나온 죄인인데, 그걸 본인이 직접 안으시다니요. 기선제압도 정도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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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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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언질이라도 주시든가요! 제가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대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머리털이 다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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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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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채찍보단 당근’ 전략으로 가자고 다 합의해놓으시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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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온. 한마디만 더 해. 정말로 머리털이 다 빠지게 만들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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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온은 합죽이처럼 입을 다물었다.

물론 잔소리를 할 수 있다는 거지, 그 잔소리로 헤르한을 기죽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오랜 친구라고 해도 주군은 주군이고 신하는 신하였다. 심지어 헤르한이 황제로 즉위하고 나서는 그의 권위가 하늘과 같아졌으므로 아시온이라고 별다른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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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골치 썩혀가며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건 왕실 쪽이지, 우리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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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왕실을 골려줄 의도라면 적중하셨습니다. 지금 저쪽은 정말 난리가 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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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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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요? 누구? 왕녀 말씀이십니까?”

아시온은 아직 툴툴거림이 남은 목소리로 되묻다가 ‘아.’ 하고 낮게 중얼거렸다.

리엘라 블리니테.

주군의 돌발행동의 원흉이 된 그 여자.

헤르한이 묻는 건 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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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병실로 옮겨 치료 중인데 아직 의식이 없답니다. 듣자 하니 지하 독방에 열흘 가까이 갇혀서 굶은 모양이던데…….”

아시온은 말을 하다 말았다. 헤르한의 책상 위에 놓인 엄청난 두께의 서류 뭉치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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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저걸 다 살펴보신 건가.’

그건 ‘리엘라 블리니테’를 작년 사건의 ‘유일한’ 죄인으로 몰기 위한 왕실 측의 조사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완벽했다. 모든 정황이 짜 맞추어진 듯 정교했고, 목격 증언만 해도 수십 개였다.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가 담고 있는 ‘사실’들은 전부 ‘진실’과는 달랐다.

헤르한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작년 가을, 시시한 동네 용병단을 앞세워 국경에 숨어 있던 헤르한을 추적하고 죽이려 했던 건 이 나라의 왕실이었단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당시에 제대로 손을 쓸 방도가 없어서였다.

심증은 확실했으나 물증이 없었고, 그런 상태로 은둔자 신세의 헤르한이 한 나라의 왕실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헤르한의 병세가 짙을 때였고, 직후 본국으로 급하게 귀환하게 되면서 리오타 왕국과의 악연은 잠시 묻어 두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다.

헤르한은 이제 제국의 황제였다.

새 주인을 맞은 제국을 안정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헤르한은 그 어려운 일을 잘도 빠르게 해냈다. 국내 기반을 닦았으니 이젠 국외 문제를 처리할 시점이었고, 그 첫 타자로 지목된 게 리오타 왕국이었다.

즉 이번 방문은 새 황제의 즉위 기념 순방을 빙자하고 있지만, 사실은 헤르한에게 청산할 죄가 있는 리오타 왕국과 담판을 짓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쉽게 죄를 인정할 리가 없는 왕국 측의 자백을 어떻게 이끌어 내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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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걸 그 여자 하나한테 다 뒤집어씌웠을 줄이야. 정말 기가 막히네.’

아시온은 혀를 끌끌 찼다.

생각해보면 제 주군이 황당한 행동을 했던 것도 그래서였을까, 싶었다.

톡 건들기만 해도 죽을 것 같던 작은 여자를 죄인이랍시고 내놓고, 뒤에 숨어 눈알을 굴리는 왕실의 행태는 자신이 보기에도 정말 역겹고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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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연출이 과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일단은 속는 척하면서 넘어가 주시지 그랬습니까? 실제로 그 여자, 주동자까진 아니지만 용병단 소속이었던 건 사실이기도 하고요.”

아시온은 조심스레 제 의견을 올렸다. 나름대로는 제 주군의 위신과 앞으로의 전략을 두루두루 생각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헤르한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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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넌 나서지 마.”

모르면 나서지 말라니. 모르면 나서지 말라니?

지금까지 물 한 잔도 못 마신 채 이 궁 저 궁을 종횡무진 활약한 자신에게 그게 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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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폐하! 그거 되게 상처 되는 말인 거 아십니까? 이번 조사단 총책임자가 전데, 제가 안 나서면 누가 나서라고요!?”

아시온은 울분을 터트리며 헤르한에게 덤벼들었다.

아니, 덤벼들다가 말았다.

헤르한은 아까부터 뭐가 그리 언짢은지 미운 일곱 살처럼 잔뜩 비뚤어져 있었다. 이미 왕실 쪽은 충분히 골탕 먹인 것 같은데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아니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것인지.

어쨌든 지금은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것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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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물러난다. 물러나!’

아시온은 치고 빠질 때만큼은 분명히 알았다. 그게 바로 저 제멋대로인 주군을 곁에서 평생 보필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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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그렇게 깔끔히 패배를 인정하고 돌아서려는 아시온을, 헤르한이 뒤늦게 붙잡았다.

아시온은 반신반의하며 돌아섰다. 혹시 사과라도 해주려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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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아. 아시온 네가 아니면 제대로 나서줄 사람이 없겠어.”

확실히, 헤르한의 첫마디는 대충 사과의 맥락을 띠긴 했다.

거기에 아시온은 쭈그러들었던 어깨를 단박에 펴고는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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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이제야 저의 소중함을 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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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새 임무를 주지. 지금 당장 리엘라 블리니테가 있다는 병실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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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아니, 폐하! 진짜 너무 하신……. 저 아직 침실에 짐도 못 풀었어요. 밥도 못 먹었습니다.”

예상과 다른 명령에 아시온은 울컥하는 감정을 눌러가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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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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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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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도 거기서 자면 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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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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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서 가 봐.”

헤르한은 단호하게 제 할 말만 마치고는 다시 두꺼운 보고서로 시선을 옮길 뿐이었다.

귀찮게 잔소리를 해대던 부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 것 치고는 여전히 심란한 눈으로.

*

쨍그랑!

동궁 문밖. 잇따라 유리잔이 깨지고 물건이 넘어지는 소리가 나는데도 바깥의 시녀들은 애써 듣지 못한 척했다. 절대로 문 가까이 오지 말라는 그레타 왕녀의 지시가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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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뭘 해요……?”

방 안쪽에서, 그레타는 목소리를 떨었다.

황제의 영접식을 망친 이후로 자신의 궁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레타가 이틀 만에 은밀하게 맞는 손님은, 얼굴을 가린 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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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측에서 보낸 조사관 하나가 아예 병실에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죄인의 곁을 감시하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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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깔고 누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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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말 그대로.”

그레타는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뭐? 그새 병실에 자리를 깔고 누워? 죄인을 감시해?

대체 무슨 속셈이란 말인가. 영접식에서 자기 왕실을 그렇게 우습게 만들었으면 됐지, 아직도 더 장난을 칠 게 남아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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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래서 조심히 움직인다고 해도 들키지 않고 죄인을 죽이기는 아무래도 불가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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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봐요! 말 똑바로 못 해요? 누가 들으면 내가 암살이라도 사주한 줄 알 거 아녜요?”

그레타가 단박에 눈을 세모꼴로 뜨며 따졌다.

그건 예상도 하지 못한 호통이었기에 병사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암살을 사주한 것이 맞지 않느냐고, 분명 자신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죄인을 처리해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고도 싶었다.

하지만 왕녀가 더 말도 섞기 싫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주겠다는 보수도 받지 못하고 병사는 결국 빈손으로 쫓겨났다.

병사가 떠난 빈방에서 그레타 왕녀는 한참 동안 홀로 씩씩거렸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레타의 안색은 꽤 피폐했다. 영접식 이후로는 제대로 먹지도, 제대로 자지도 못했으니 그야말로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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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황제가 왜 걜 보호하고 앉아 있어? 말이 안 되잖아! 설마 내가 사주한 일이었다는 걸 안 건가?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목격자는 다 처리했고 보고서도 완벽하잖아.’

그레타는 손톱을 깨물며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초조한 마음만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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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뭐냐고!’

따각따각. 저도 모르게 바짝 물어뜯은 손톱 끝이 흉했다. 이럴 때면 ‘그렇게 예쁜 손을 다 물어뜯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파비안이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었었지만.

지금은 그런 파비안도 옆에 없었다.

그게 그레타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리엘라가 깨어나 입을 열기 전에, 반드시 무슨 수라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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