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를 품은 달-38화 (38/47)

#38

“서방님! 소첩, 안으로 들어도 되어요?”

민화의 애교어린 목소리가 복잡한 염의 머릿속을 두드렸다. 그래서 서책에서 고개를 들어

민화의 느낌이 배여든 방문을 보았지만, 염의 귀에 뒤이어 들어온 것은 청지기의 목소리였다.

“주인어른, 누가 서찰을 건네주고 갔다고 합니다. 올릴까요?”

염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서찰이라고 하나,

그 또한 보낸 이가 있을 것이기에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나가서 받는 것이 법도였기 때문이었다.

방문 밖에 나간 염은 섬돌 아래로 내려서서 먼저 민화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부터 한 뒤에,

청지기를 보았다.

“누가 보낸 서찰이라 하던가?”

“그건 모르굽쇼, 처음 보는 자였다 합니다요. 아마도 또 주인어른과 시문을 나누고픈 이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요.”

시문 한 줄조차 자유롭게 쓸 수없는 염이었기에, 그를 동경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염에게

자신의 글을 보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염은 의빈의 자리에 있는 자의 법도를

행하느라 답시를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염은 쓸쓸히 서찰을 받아들며 민화를 향해 말했다.

“공주께선 어인 일로 사랑채로 오셨습니까?”

언제나 보아도 가슴 떨리는 염의 미소였다. 비록 어린 날의 환한 미소는 아니었지만,

애수어린 그의 미소는 지금의 정갈한 외모와 더불어 민화를 더욱 더 안달하게 만들었다.

“서방님의 글 읽는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제가 아니, 소첩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염의 미소가 민화의 심장을 다시금 힘껏 쥐었다가 놓았다. 좀처럼 보기 드문 미소였다.

한동안 어지럽던 그의 미소만을 느꼈었지만, 오늘은 어제와 그리고 그제와 달리 안정되게 느껴졌다.

여전히 누이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가 거둬지지 않았지만, 어느덧 연우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기쁨이 민화의 뱃속에 살아 자리한 태아와 같이 기쁨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우와 온 가족이 언젠간 상봉할 것이란 기대도 가지게 되었다.

“공주, 어젯밤 바람소리가 무섭진 않으셨습니까?”

“걱정되시었으면 안채로 건너왔어도 되었잖아요!”

살풋 눈을 흘긴 민화가 염의 품에 안기듯 기대었다. 순간 당황한 청지기가 못 본 척 하며

물러났다. 당황한 것은 염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공주! 사람의 눈을 두려이 여기셔야 합니다.”

그리고는 당황한 손길로 서찰을 뜯어 펼쳤다. 처음엔 단순히 당황한 눈길을 두는 것에 불과했던

종이 위의 글자들이 차차 염의 눈동자로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눈동자로 흡수된 글자들은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민화의 눈길은 염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분세수를 즐기는

사대부가의 청년들 보다 새하얀 염의 얼굴이 서서히 하얗다 못해 청색의 빛을 띄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담백한 입술이 창백하게 떨렸다. 불길한 예감이 민화를 덮쳤다.

그래서 염의 손에서 서찰을 빼앗듯이 하여 내용을 확인했다.

<의빈대감께 부치는 글

누이의 죽음이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것을 아십니까? 옛날의 죽음이 병사가 아닌 것은 아십니까?

주술이 누이를 죽인 것을 아십니까? 그 주술이 의빈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에 눈이 먼 민화공주의

소행인 것은 아십니까? 그리고 누이의 죽음을 끝까지 덮은 이가 상왕인 것은 아십니까?

지금은 상감마마의 액받이무녀가 되어 있는 의빈대감의 가엾은 누이를 모른다 하지 마십시오.>

민화의 얼굴이 염의 얼굴보다 더 창백하게 얼룩졌다. 그리고 서찰을 쥔 손과 땅을 버티고 선

다리가 후들거리며 그녀의 온 몸을 흔들었다. 아니라고, 서찰의 내용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혀가 목 안으로 말려들어갔는지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세차게 고개를 저었지만

염의 눈길을 아무것도 담지 않은 채 땅을 향해 멈춰 있었다. 민화는 염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돌려 도리질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그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염의 눈동자와는 상관없이 그의 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러났다. 민화의 손끝이 소름끼치는 듯.

민화의 손에서 서찰이 떨어져 내렸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그녀를 본 염의 눈에는

서찰의 진실을 답하고 있는 민화의 눈동자가 보였다. 이윽고 민화의 심장을 끌어안은 채

서찰이 떨어져 내렸던 것과 똑같이 염도 연분홍색 도포자락을 힘없이 펄럭이며 차가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주저앉은 염에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감정도, 그 어떤 의식도 없이 껍데기만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민화의 찢어질 듯

차가운 비명소리가 염을 뒤덮었다. 하지만 염의 눈동자는 비어져 땅으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서방님! 서방님!”

염은 자신을 서방님이라 부르는 여자가 울면서 끌어 앉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품이

누이를 죽인 자의 품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단지 입에서는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말이 흘러나왔다.

“왜······, 왜······.”

“아니어요! 거짓이어요!”

“저를 가지고저 하였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너무도 담담했다. 감정이 들어있지 않으니, 그도 들어 있지 않은 말이었다.

민화의 품에 으스러질 듯 안겨있는 사내의 몸은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민화의 눈물과

비명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행여나 놓칠새라 그의 몸을 더듬으며 계속해서

고쳐 안았다. 그 어떻게 안아도 염이 자꾸만 빠져 나가는 것 같아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더듬어 눈동자와 마주했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염의 눈동자 속에는 그만을 담고 있는

눈동자를 가진 민화가 들어있었다.

“아니어요, 제발······.”

염의 무의식이 민화의 눈동자에게 물었다.

“저의 무엇을 가지고저 하였습니까? 그리하여 지금은 저의 무엇을 가지셨습니까?”

민화는 아무 것도 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의 것이 되고 싶었다. 그의 것이 되고 싶었기에 그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모든 것을 비워버린 그를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비워버린

그를 마주한 지금 이 순간, 바로 조금 전까지의 염은 아주 조금의 그녀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감정이 그의 가슴을 더욱더 죽이고 있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죽어가는

마음이 민화를 그 어떤 생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왜 지금에서야 마음을 보이시는 것이어요? 이렇게 소첩의 죄를 아시게 될 일이었더라면

차라리······, 차라리 소첩을 사랑하지 마시지······. 그냥 몸만 머물러 계시지······.

몸만으로도 소첩에겐 과한 것이었는데······. 소첩을 벌하시기 위해 마음을 보이는 것이어요?”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던 염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염의 마음이 자신을 향한 벌이 되었다.

그 마음에 기대어 마지막까지 그에게 매달렸다.

“저의 뱃속에 있는 서방님의 아이를 잊지 마시어요, 부디.”

염의 입가에 감정 없는 미소가 잡혔다.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의 누이를 액받이무녀로 둔 상감마마의 외조카겠지. 나의 누이의 죽음을 가린 상왕마마의

외손자겠지. 나의 누이를 죽인 공주의 아이겠지.”

의식 없는 미소와 의식 없는 말과 더불어 염의 의식 없는 왼쪽 눈이 눈물을 토해냈다.

강녕전의 밤은 어김없이 숨죽여 찾아왔다. 방문 너머에 훤을 두고 잠자리에 누운 연우는 방문을

원망해보았자 소용없는 일이었기에, 방안에 찾아든 달빛을 얼굴 가리개 삼아 잠을 청했다.

하지만 오늘 낮에 의금부의 도사로부터 비밀 보고를 받고 연우를 바라보던 왕의 표정이 슬펐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잠들 수가 없었다. 그 보고가 오라비와 관계된 일인 것만 같아 더욱 그랬다.

힘들게 잠에 든 아주 잠깐의 순간, 자그마한 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다. 그런데 잠에 먼저 든

줄로만 알았던 훤이 어느새 연우가 원망하던 방문을 없애고 그녀의 옆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으로 들어온 그의 눈빛은 무서울 만큼 슬퍼보였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 연우의

어깨를 훤의 손이 잡아 다시 눕혔다. 연우가 조용히 물었다.

“상감마마, 어인 일로······?”

“그대 곁에 누운 어둠을 시기하여 쫓아내고자 무례를 범하였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녀 또한 곁에 누운 어둠이 싫었더이다.”

훤은 연우의 말에 감동하여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진 손등에 손을 얹었다. 연우의 손등을 뚫고

심장 뛰는 소리가 올라와 훤의 손바닥에 부딪혔다.

“잠든 그대 곁에서 바라만 보다가 이 손을 쓰다듬어 보고 싶은 슬픔에 문득 궁금하였소.

그대도 그러하였는지가. 그대가 곁에 있는지도 모르고 바보같이 잠만 자던 나를 보고 슬펐는지를······.”

“달빛이 대신하여 상감마마의 곁에 누워있었기에 달빛을 투기하느라, 슬플 겨를이 없었사옵니다.”

훤이 씁쓸한 미소로 연우의 손을 꽉 쥐며 말했다.

“그대는 이런 식으로 나를 꾸짖는구려.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월이라 이름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아니옵니다. 칠거지악에 속하는 소녀의 죄를 아뢰는 것이옵니다.”

“그 칠거지악의 죄가 되는 것은 아내의 몸이 되어서야 성립되는 것이니, 그대는 이미 나의

아내란 말이오?”

“세자저하의 봉서를 받은 이후부터 이미 그러하였사옵니다. 단지 마마께옵서만 모르셨을 뿐이옵니다.”

“아니오. 알고 있었소. 단 한 번도 그대가 나의 정비가 아니라 생각한 적이 없었소.”

“잊으시고선, 그리하여 월을 곁에 두시고선······.”

“그대가 그리 말하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더 잘 깨닫게 되었소. 어찌 한 여인에게

두 번씩이나 반한단 말이오. 허참.”

훤의 한쪽 입매가 살짝 놀라가 짓궂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을 머금은 눈매는 조금 전의

슬픔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이때 급히 뛰어온 듯한 사령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감마마, 어명하신 것을 대령하였사옵니다.”

연우는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눈으로 무슨 일인지를 물었지만 훤은 아무 답 없이

일어나 건너 방으로 건너가 방문을 닫고 모습을 감추었다. 왕이 사라진 방으로 궁녀 세 명이

보자기를 소중히 가지고 들어왔다. 궁녀의 손아래에 조심스럽게 펼쳐진 그 안에는 연노랑

색동저고리와 다홍색치마가 곱게 접혀 들어있었다. 옛날의 연우가 사대부가의 여식이란 신분에

있을 때 입었던 옷이었다. 연우가 어리둥절할 사이도 없이 궁녀의 손이 재빨리 연우를 머리를 빗겼다.

그리고 한 맺힌 하얀 소복을 벗겨내고 색색이 고운 옷을 입혔다. 하얀색 옷의 흔적이 남은 것은

연노란 저고리 아래로 다홍색 치마를 가로지르며 떨어져 내린 눈물고름뿐이었다. 그나마도

하얀 눈물고름 아래엔 어명에 의해 새겨진 봉황이 수놓아져 있었다. 연우는 훤의 의중이

무엇인지 헤아리지도 못한 채 궁녀들의 안내를 받아 강녕전의 뒤편으로 흔적을 숨기며 나갔다.

그곳엔 달빛에 조차 모습을 숨기며 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우는 훤을 발견하자 월대로

내려서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왕의 옷을 벗고, 온양에서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연우를 향해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왕의 뒤에 있는 운도 처음 만났던 모습 그대로

버티고 서있었다. 다소곳하게 멈춰선 연우를 본 훤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하얀 소복을 벗은 여인은 완전한 연우가 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던 월이 아니었다.

연우는 훤에게로 다가가기 위해 월대에 발을 내리려고 했다. 낡은 짚신조차 없었기에 그냥

버선발을 떼었지만, 훤이 먼저 달려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 주위에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깜짝 놀란 연우가 얼른 몸을 숙이려 했지만,

자신의 버선발을 살며시 움켜잡은 그의 손길에 동작을 멈추고 숨도 멈추었다.

“월의 낡은 짚신이 내 가슴에 시리었소. 그리고 그 낡은 짚신이 연우낭자의 것임을 알았을 땐,

가슴의 시림은 곱절로 더하여졌소.”

훤은 등 뒤에 감춰두었던 비단혜를 연우의 발 아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린 발을

녹이려는 듯, 자신의 시린 가슴을 녹이려는 듯 소중히 감싸 쥔 손을 놓으며 비단혜를 발에

신겨주었다.

“한 뺨, 한 뺨 소녀의 시린 가슴이 시나브로 덜어진다 하였더니, 그것이 상감마마께로

건너갔었더이까. 송구하고, 또 송구하여이다.”

훤이 일어서 연우의 손을 잡았다. 비단혜마저 갖춰 신은 연우는 훤의 손에 이끌려 월대로 내려섰다.

그의 커다란 흑립이 연우의 얼굴까지 가릴 만큼 가까이 잡아당겼다.

“내어주시오. 그대의 시렸던 마음 모두 내게로 내어주시오. 내가 내 죄를 사하는 것은 그것뿐이오.”

“마마, 하온데 지금 어디로 가시려 하옵니까?”

훤은 어두움에 표정을 숨기며 연우의 어깨를 잡았다. 어둠에 기댄 그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구어 낼 듯 안쓰러웠다. 연우는 알 것 같았다. 지금 어디로 가려하는지를. 그리고

왜 이렇게 그의 마음이 시린지를. 지나간 그녀의 시린 가슴이 건너갔기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다가올 시린 감정들을 그가 먼저 맞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연우가 또 다시 다칠까봐

두려워 어찌할 바 모르고 먼저 마음이 아파버렸던 것이다. 연우는 훤이 자신을 대신해

더 큰 소리로 울어버릴 것만 같아 위로하듯 살며시 그의 옷고름을 잡았다.

“상감마마께옵서 곁에 있는 한, 소녀의 가슴이 시리진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니 어디든 데리고 가 주시옵소서.”

둘은 다정히 손을 잡고, 서로의 마음에 의지하며 운을 스쳐지나 월대를 내려갔다. 조용히 마음을

감추고 있던 운의 눈으로 미처 사라지지 않은 월이 들어왔다. 연우의 등 뒤에 가녀리게

매달린 월의 흔적, 붉은색 낡은 댕기였다. 운은 얼른 눈길을 거둬 급하게 복면을 쓰고 왕과

연우를 따라 내려갔다. 월대 아래에는 검은색의 작은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밤 미행을 위한 것이었다.

먼저 훤이 흑립을 손으로 잡으며 작은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우도 뒤따라 들어갔다.

워낙에 좁은 내부였기에 훤의 품 안에 연우가 꽉 안겨야만 했지만, 그들에게 있어선 좁은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공간을 핑계 삼아 훤이 너무도 힘껏 연우를 안았기 때문이었다.

“가마가 부질없이 크오.”

둘이 자세를 완전히 갖춰 앉자, 어두운 담벼락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가마꾼들이 나타나

가마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색 복장에 복면을 쓰고 완전 무장을 한 무사들이었다.

운이 앞서 가벼운 몸을 하늘로 띄웠다. 그리고 담을 타고 훌쩍 뛰어, 건물의 지붕으로

날아올랐다. 이미 짜여 진 궐내 군사들의 행동반경을 비집고 운이 손짓하는 대로 가마를

든 무사들도 재빠른 발걸음으로 소리 하나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왕과 연우를 태운

가마는 여유 있게 경복궁을 빠져나가, 한양 일대를 순찰하는 순라군(巡邏軍, 도둑이나 화재

따위를 경계하기 위해 밤에 사람의 통행을 금하고 순찰을 돌던 군졸)의 눈을 따돌리며 북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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