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 *
“……감사히 받을게요.”
“정말? 받아줄 거야?”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안 받아요.”
리티아가 약간의 곤란한 얼굴과 함께 선물을 받아 들자 그래도 이시안의 얼굴이 밝아졌다.
“해줄게.”
“…….”
그러고는 리티아가 든 상자 뚜껑만 열어 목걸이를 꺼냈다.
“뒤돌아볼래?”
리티아가 천천히 뒤로 돌자 이시안이 목걸이를 넘겨 목에 거는 게 느껴졌다. 가는 목걸이 줄이 목 언저리에 닿았다.
“됐다. 정령석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을 가져다준대. 네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감사해요, 전하.”
이시안이 과장스럽게 이마를 닦아내는 척을 했다.
“어휴, 사실 안 받아주는 줄 알고 긴장했네. 안 받아줬으면 목걸이 쥐고 침대 들어가서 울려고 했어.”
리티아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과장되게 말했는데도 상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게 뭐예요.”
“정말이야.”
먀-
아까보다 다소 분위기가 풀리며 마주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척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리티아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휙 몸을 돌렸다.
“근처에 고양이가 있나?”
다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이내 꼬리를 살랑거리며 리티아 앞에 검은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비야.”
“나비? 아는 고양이야?”
리티아가 이름을 부르자 이시안이 다소 놀란 얼굴을 했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근처에서 지내는 고양이 같은데 자주 놀러 와요. 시종들이 밥을 주고 키우는 것 같아서요. 응? 앗, 나비야, 그렇게 하면 드레스 찢어져…….”
보통 나비는 리티아의 주변에 머물거나 다리에 제 몸을 문지르거나 머리를 쿵 부딪히거나 아니면 침대 위에 올라와서 고롱고롱하는데 오늘은 아예 리티아의 드레스를 덥석 잡고 몸을 길쭉하게 세웠다. 마치 안아 올려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보였다.
리티아가 홀린 듯이 나비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나비는 마치 딱 알맞은 침대 안에 몸을 누이듯 리티아의 품에 파고들었다.
리티아가 고양이의 턱을 살짝 긁어주자 그르렁그르렁 소리가 났다.
느닷없이 나타난 고양이 나비의 출현으로 이시안이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신기하네.”
“네?”
“고양이…… 전에는 무서워했었잖아.”
“아.”
리티아가 살짝 당황하다 말했다.
“얘는 정말 귀여워서 하나도 안 무섭더라고요. 발톱도 전혀 안 세우고, 꼭 말도 알아듣는 것 같거든요. 만져……보실래요?”
리티아가 나비를 안은 채 살짝 내밀자 이시안이 손을 뻗었다.
리티아가 했던 것처럼 머리를 긁어주려는데 나비가 닿기도 전에 사냥을 하듯 발톱을 내밀어 이시안의 손을 할퀴었다.
“나비야!”
리티아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이시안의 손에는 발톱의 흔적이 남았다.
“하하, 발톱은…… 리티아 너한테만 안 세우는 모양인데.”
“죄송해요. 정말 순한 앤데, 왜 이러지. 나비야, 그러면 안 돼.”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나비는 도리어 리티아에게 머리를 박고 파고들었다.
이시안이 웃음을 터트렸다.
“귀엽네. 널 주인으로 알고 있나 봐. 네가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든 녀석이라니 용서를 해주긴 하겠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발톱이 꽤 날카로웠는지 이시안은 나비에게 더 손을 내밀지 않았다.
황태자는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했지만, 일정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못내 더 있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리티아에게 말했다.
“리티아.”
“네, 전하.”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오브들하고 너무 가까이하거나 한 공간에 있지는 마.”
“……네?”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들은 위험한 존재니까 절대 혼자 있지 말고. 걱정이 돼서 그래.”
소문이라도 들은 걸까, 아니면 원래 오브를 경계하려는 걸까.
리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이전까지도 계속 그랬어요. 회의가 아니면 대면할 일도 없고.”
“응,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넌 잘할 테니까. 균열만 잦아들면 그들은 다시 그들의 땅으로 떠날 거야.”
“……그, 렇겠죠. 전하께서도 부디 몸조심하세요.”
리티아가 건넨 걱정에 이시안은 무척이나 기뻐하며 돌아갔다.
황태자가 돌아가고 리티아는 나비를 껴안은 채 방으로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목걸이를 만지는데 나비가 자꾸만 방해를 놓았다.
“나비, 이건 장난감 아니야. 이거 마음에 들어?”
자꾸만 파란색 보석만 노리는 것이 목걸이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리티아는 잠시 고민하다 의자에 나비를 내려놓고 협탁 서랍을 열었다. 안을 한참 뒤적이던 리티아가 다른 서랍도 열어보더니 작은 목걸이 하나와 리본 끈을 가져왔다.
나비에게 보여주자 이게 뭐냐는 듯 먀- 울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리티아는 가져온 목걸이에서 파란 보석 펜던트만 똑 떼었다. 작은 사파이어 목걸인데 전에 에밀리아가 꾸며준 걸 잠시 협탁에 빼놓고 꺼내지 않았었다. 그것 말고도 목걸이 몇 개가 더 서랍 안에 널브러져 있었지만 가장 비슷한 색이었다.
리티아는 펜던트를 리본에 달았다.
“자, 나비야. 이리 와봐.”
리티아가 제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자 나비가 폴짝 뛰어올랐다.
리티아는 그런 나비의 목에 방금 만든 목걸이를 걸었다.
조이지 않게 묶어도 겨우 손가락 두 마디가 들어갈 정도긴 하지만…… 잃어버려도 고양이니까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꽉 조일 수는 없으니.
“됐다. 자, 이제 나랑 비슷한 거 생겼지?”
리티아는 나비가 목걸이를 마음에 든다고 생각해 비슷한 걸 뚝딱 만들어냈다.
나비는 좋아한다기보다 한참 동안 리티아를 빤히 응시하기만 했다.
“왜, 별로야? 불편해? 마음에 안 들어?”
그 순간이었다.
나비가 갑자기 한숨을 쉬며 리티아의 다리 위에 폭 앉았다.
분명, 분명히 한숨을 쉬었다.
“……너 한숨 쉬었니, 혹시?”
고양이도 한숨을 쉬나? 정말 리티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자려고?”
나비는 리티아가 몇 번이나 물어봐도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 * *
다음 날.
제국 아테온이 발칵 뒤집혔다.
이제 정말 다시 리티아가 수도를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완전히 일정이 확정이 나서 다시 출발 준비를 하고, 성기사들과 신관은 무기와 갑옷을 정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데.
“……오브가 사람을 죽였다고요?”
대신전에 오자마자 리티아가 들은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목격자가 있다고 합니다. 수사 중에 있습니다.”
“…….”
오브가 사람을 죽여?
간밤에 잔인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수도 한복판에, 그것도 인적이 드문 새벽에.
청정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지만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오브가 사람을 죽였다니. 리티아는 듣자마자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외쳤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실이 답답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오히려 리티아를 의심해 올 테니까.
“그럼, 지금 오브, 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계속 합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는데.”
리티아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떨렸다. 날벼락이었다.
어제 분명 황태자와 만나고 리티아는 종일 집에서 나비와 뒹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정원 문을 열어놓아도 갈 생각을 하지 않기에 나비를 껴안고 아침까지 푹 자고 일어났는데. 근래 들어 가장 느긋하고 행복한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도 그래서 시작이 좋다고 생각하고 출발을 했는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범인이 드러난 상태가 아니라 대신전에서도 딱히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다리면서 어떻게 될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닐 거예요.”
리티아가 단언했다. 스스로도 괜히 말을 내뱉었다 싶었지만, 이 말은 하고 싶었다.
“예?”
“어, 그러니까.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오브가 아니더라도 그 누구든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의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정말 그들이라고 해도 이상하잖아요. 우리에게 앙심을 품었다면 협정까지 하지도 않았을 텐데.”
리티아의 말을 듣던 펠루가가 끄덕였다.
“예, 저도 공녀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뭐 이대로 출발을 하기도 찝찝하니 어서 빨리 범인이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리티아는 입 안이 바싹 바르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더구나 오브의 숫자는 소수라 정말 범인이 있다면 금방 좁혀질 것이다.
‘아냐, 그럴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돼.’
하지만 저녁이 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오브에 대한 소문은 눈을 굴리듯 점점 커지기만 하고 있었다.
* * *
늦은 새벽, 케스니카 성.
딱딱한 발소리가 고요하고 차가운 성안에 울려 퍼졌다.
이곳은 여름인데도 밤에는 한겨울처럼 기온이 낮아 곳곳 복도 한쪽에 크게 자리한 창문에는 얼음꽃이 핀 곳도 있었다.
스산한 복도를 지나쳐 제 침실에 들어온 칼리프가 검붉은 커튼으로 가려진 벽면을 한참 응시했다.
차르륵! 펄럭-
그의 손길에 커튼이 볼품없이 걷어졌다.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벽면을 가득 채운 초상화가 달빛에 드러났다.
눈처럼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뒤돌아보고 있는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의 어깨에는 나비 모양의 문양이 각인되어 있었다.
“…….”
칼리프가 커다란 초상화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툭, 지친 듯 머리를 기대 무너진 칼리프의 입에서 한숨과도 같은 이름이 흘러나왔다.
“레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