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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68화 (68/70)

68화

* * *

“응?”

리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나가 평소랑 다르게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맛있는 것도 주고, 애들한테 좋은 것도 많이 줬잖아요.”

조금 서운하다는 말투다. 리티아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저를 조금 기다렸던 것 같아 빙그레 웃었다.

“기다렸어? 언니가 일찍 갔어야 했는데 조금 정신이 없었어. 내일 갈 건데.”

“내일 와요?”

에나가 반색하며 물었다.

사실 정해진 약속은 없었다. 내일도 리티아가 급작스럽게 만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일 당장 떠날 것 같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짬을 내 들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곤도르의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낯을 가리던 아이가 기다렸다고 하니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긴 했다.

리티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에나가 친구들하고 같이 와주면 좋을 것 같아.”

“저는 거기 맨날 가요.”

“에나.”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나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오빠다!”

에나가 활짝 웃으며 그대로 곤도르에게 뛰어들었다.

“몸.”

“괜찮아!”

“밥.”

“먹었어!”

짧은 물음에 에나가 씩씩하게도 답을 한다. 곤도르의 눈에도 에나가 건강해 보이는지 금방 눈에 안도가 들어찼다.

한쪽에 서 있는 의사에게 곤도르가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제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오빠, 언니가 내일 거기 온대.”

에나가 곤도르에게 안긴 채 리티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곤도르의 얼굴이 대번에 리티아에게 향했다가 다시 에나에게 돌아갔다.

“에나, 그런 부탁 같은 건 하면 안 된다고…….”

“곤도르 경!”

“…….”

“내일 다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 에나한테 친구들하고 뭐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리티아가 곤도르에게 눈짓했다.

멀뚱히 보고 있던 곤도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예.”

“오빠, 케이크! 톰 어제 생일이었어.”

에나는 망설임이 없었다.

곤도르의 얼굴에 다시 난감함이 물들었다.

리티아는 케이크를 꼭 사서 가자며 에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금 뒤, 의사가 에나를 데려가고 곤도르가 리티아에게 말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그냥 아이들은 익숙해지면 무리한 부탁을 하곤 해서요. 어린애들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시면 됩니다.”

“앗…… 그거 에나가 오라고 한 거 아니고, 제가 에나한테 먼저 가겠다고 말한 건데. 그래서 꼭 가야 해요. 다들 같이 가주실 거죠?”

“…….”

곤도르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꾸벅 숙였다.

리티아 주변으로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 *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회에서 들었던 오브의 소문인가 했지만 좀 다른 소문이 더 있었다.

바로 테니아의 후보 중 누군가 오브와 밀회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

소문의 근원지는 어디인지 확실했으나 그걸 아는 건 리티아뿐이었다. 조용하다 싶어서 증거를 잡기 위해 감시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소문에 올라타는 것으로 방법을 바꾼 모양이었다.

다행히 소문의 ‘그’ 테니아 후보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드러난다면 로아 캐번디시는 제가 리티아에게 겨냥당하는 걸 피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로아 캐번디시는 리티아만 포기했다면 자신이 유력한 테니아 후보자였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에 쉽게 놓을 수 없는 듯했다. 자신이 가진 성력과 관계없이 몬트가를 빼면 역대 테니아를 배출해 낸 영향력 있는 가문이기도 하고, 가장 활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했으니까. 한데 가장 많은 테니아를 배출해 낸 몬트가의 핏줄이자 강한 성력을 타고 난 리티아가 포기를 하지 않으니 마음이 단 것이다.

“언니도 먹어요.”

리티아가 생각에 잠긴 사이 에나가 리티아에게 작은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다.

어제 부랴부랴 세리에게 말해 케이크 가게에서 작은 케이크 조각을 인원수대로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그 상자 중 하나를 리티아에게 내민 것이다.

“나?”

“네, 케이크 엄청 많아요. 언니도 먹어요. 엄청나게 맛있어요!”

야무지게 포크까지 쥐여주는데 야무지고 차분한 에나는 오늘따라 무척 흥분한 얼굴이었다.

오늘은 빈민가에 오자마자 아이들이 리티아를 반겨주었다.

로아 캐번디시와 작은 충돌 이후 아이들은 완전히 리티아를 향한 경계를 벗어던지고 달라붙었다.

오랜만에 따라나선 세리가 또 당황하며 말리려고 했지만 리티아의 손짓에 세리도 마지못해 물러섰다.

여전히 세리는 리티아가 빈민가의 아이들과 서슴없이 어울리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에밀리아가 언젠가 말하기로 세리는 정말 몬트가의 사람 같다라고 했는데 리티아는 그 말이 뭔지 잘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리티아가 부탁을 하면 언제고 어렵지 않게 물러나 주었다. 리티아의 모든 행동이 몬트 공작의 귀로 들어간다는 건 또 별개의 이야기지만. 그건 세리에게 주어진 임무이자 업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에나는 곤도르와 펠루가, 마르마티까지 케이크를 쥐여준 뒤에 다시 친구들에게 갔다.

“어쩜 저렇게 제 오빠랑 다르지. 공녀님, 그렇지 않습니까?”

마르마티가 전혀 이해 가지 않는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포크 따위 없이 마르마티는 상자째로 대충 뒤만 뜯어 케이크를 베어먹었다. 단 세 입 만에 케이크가 홀라당 사라졌다.

“그래도 닮은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머리카락 색이 같고…….”

그리고 없네…….

리티아가 더 할 말을 못 찾자 마르마티가 낄낄거렸다.

“거봐요, 공녀님도 찾기 쉽지 않죠? 저 시커먼 녀석하고 저 귀염둥이가 남매라니.”

리티아는 입꼬리를 올려 웃다 케이크를 내려다봤다.

어쨌든 지금은 몸을 사려야 할 때가 맞다. 그 생각을 하는데 괜히 지난밤에 그가 새겨놓은 곳들이 저릿저릿한 것만 같았다.

* * *

이튿날.

지원을 위해 나갔던 테니아와 성기사들이 복귀했다.

리티아는 본의 아니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봤다.

새하얀 제복에 소매는 잠자리 날개처럼 길게 뻗어 테니아가 걸어올 때마다 바람결에 나부꼈다. 특히 가장 앞에 있는 아니타는 머리에 올린 은백색의 체인 장신구 때문인지 걸을 때마다 반짝반짝 빛이 반사됐다.

“완전히 복귀한 모양입니다.”

뒤에서 펠루가가 말했다.

테니아가 지원에 나서면서 그들이 참여한 전투는 사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들었다.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이 한 번에 참여한 전투에 전투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테니아의 가호가 그들을 보호한 결과였다.

리티아도 후보의 자격으로 있는 동안 비슷한 힘을 낼 수 있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처음으로 경외가 느껴졌다. 종교, 신 그런 것과 별개로 순수하게 저들을 향한 감정이었다.

테니아와 성기사들이 완전히 복귀하며 리티아도 곧 다시 원래 임무로 돌아가야 할 날이 정해졌다. 일주일 후, 또한 목적지도 정해졌다.

웨이타스의 마지막 목적지가 아닌 그다음 목적지인 모리움의 첫 번째 마을 아데노였다.

초대 테니아가 그곳에서 사람을 살려내 아테스 신의 힘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지만, 사실 테니아의 힘이 부활까지 시키는 만능은 아니므로 약간의 과장이 섞인 듯했다.

어쨌든 여러 소문이 퍼지는 와중에 일정이 강행된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

“이전처럼 오브들도 합류하나요? 다른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여전히 협정은 유지 중이었고, 회의를 할 때 빼고는 오래 머물지 않는 편이지만 칼리프를 포함해 오브들이 여전히 대신전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케스니카는 그들이 허락지 않으면 아예 갈 수조차 없으니 그들이 다녀가는 것이다.

“따로 전달받은 내용은 없습니다. 공녀님과 회의에 참석한 것이 다이니 공녀님이 아시는 대로 계속 합류하지 않을까요? 대대적으로 청소는 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안정이 된 건 아니니까요. 균열이 완전히 잦아들 때까지는 아마도 유지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 혹시.”

“예.”

“아니에요.”

리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펠루가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리티아에게 물었다.

“혹시 소문 때문에 그러십니까?”

“네?”

“공녀님께서도 들으셨으리라 짐작이 되어서요. 뭐 그들의 안 좋은 이야기가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 말 그대로 소문이라 크게 신경은 안 쓰는데, 자칫하면 오해로 번질 수 있는 일이긴 하죠.”

“노파심일 겁니다. 워낙 불안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불안해서 생기는 작은 잡음입니다. 공녀님께서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거 아시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네, 그래야죠. 다시 떠나려니 마음이 신경이 쓰였나 봐요.”

역시 기사들도 소문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드러난 그 어떠한 증거도 없고, 이 상태에서 균열마저 잦아든다면 알아서 소문이 줄어들겠지만 괜히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번질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괜찮겠지.’

솔직히 칼리프와는 리티아가 원하지 않으면 그다지 접점이 없다. 그나마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작은 접촉?

겨우 그 정도였다. 심지어 아테온 홀에서 만난 그날 이후 칼리프와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왜 불안한 느낌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까.

이게 긴장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불안한 예감인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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