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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62화 (62/70)

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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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락은 다갈색 부리부리한 눈동자에 턱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거친 인상을 풍기는 기사였다. 곤도르가 강인한 전사의 이미지라면 말락은 좀 더 거칠고 날것의 이미지를 풍겼다.

아로와 콜로스처럼 그 또한 테메스 후보 중에서도 상위 실력자로 누구보다 긍지가 높은 자였다.

지밀 로베르가 겁이 많아 성력을 잘 뽑아내지 못하는 때에도 말락은 꽤 묵묵히 기다려 주는 편이었다.

리티아에게도 그랬지만 모든 테니아 후보들을 볼 때마다 깍듯이 인사하며 테메스로서 조금의 부족함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그래서인지 말락이 저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를 리티아도 알 것 같았다.

“네, 말씀하세요, 말락 경.”

“그럼 저희는 본 업무로 복귀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까?”

기껏 테메스 후보 자리에 오르려고 강도 높은 훈련까지 해가며 선택된 자리였다.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임했는데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원래 자리로 복귀하려니 허망하기도 하고 미련이 남은 상태였다.

같은 팀인 네 명의 테메스도 말락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일반 성기사보다 한 단계 위로 취급을 받는 게 테메스인데 자신들이 모시는 후보가 테니아가 되지 않더라도 그 공을 사, 후에 단장 자리를 꿰차거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업무에 복귀하면 그야말로 지금까지 개고생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었다.

“말락 경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예외 없이 복귀하는 절차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예외적인 상황은 없었습니다.”

또한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했다.

무슨 이유에서든 테메스의 자리에서 박탈이 되면 가뜩이나 프라이드 높은 자들의 자긍심에 금이 간다.

지금 테니아 후보와 테메스 그리고 관련 신관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박탈 소식을 듣는 것 자체가 그들의 자존심을 뭉개 버리는 일이었다.

“다시 활동이 재개되어도 안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에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규율에 따릅니다, 말락 경.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요.”

“일정이 중단된 것이 규율에 정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특수한 상황인 만큼 추가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요.”

그 옆에 있던 동료이자 한 팀이었던 고드 또한 손까지 들어가며 말락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그러자 남은 세 명도 똑같이 들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리티아는 그들의 아쉬운 마음을 알 것 같아 맡은 테메스 자리가 없더라도 합류할 수는 없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반대편 아로가 픽 그들을 비웃는 게 보였다.

‘대놓고 비웃을 건 뭐람.’

말락이 끝까지 수긍을 하지 않자 레페 신관이 마지못해 끄덕였다.

“다들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말락 경께서 생각하시는 제안은 무엇인지요. 원칙을 지켜야 하나 규율 내에 크게 문제없이 수용할 수 있는 일이면 성하께 말씀을 드리고 회의를 열어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지밀 로베르 님의 테메스 자리를 박탈당한 다섯 명의 기사 모두 다른 테니아 후보분들의 테메스로 합류하면 안 됩니까?”

“다른 후보분들의 테메스가 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얼음 산맥에서 있었던 일로 보아도 테메스의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토벌을 진행하고 있지만 균열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언제고 또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집중해 이야기를 듣던 리티아가 말락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에 말락이 입을 열었다.

“더구나 여기 계신 몬트 공녀님께서는 여정 내내 가장 큰 도움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테메스로만 호위받고 계신 상황입니다.”

‘갑자기 나를?’

리티아가 놀란 얼굴로 레페 신관과 말락 경을 번갈아 쳐다봤다. 리티아는 지금껏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 고른 테메스와 함께하면서 단 한 번도 부족하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레페 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 저희가 계속 잔류하는 동시에 테메스 인원 배치를 다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특수한 상황인 만큼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리티아의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곤도르와 펠루가, 마르마티는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리티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왜 이 많은 인원 중에서 자신들만 걸고넘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 말하는 건 좋은데 왜 우리 공녀님을 걸고넘어지는지?”

마르마티는 참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팍 짜증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락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거머쥐어 보려는 모습이었다.

“네놈들은 애초에 테메스 후보가 아닌 일반 기사직에서 차출된 테메스였다. 테니아 후보를 모시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그 말에 마르마티가 주춤했다.

제 팔을 날려가면서까지 리티아를 구한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나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 리티아가 반드시 안전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마티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열등감에 절은 새끼, 공녀님을 이따위로 이용하다니.

그런데 옆에서 리티아가 손을 들었다.

“몬트 공녀님?”

“저, 죄송하지만…… 저도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조심스럽고 여린 목소리와 달리 행동에는 멈춤이 없었다. 이미 레페 신관이 말해도 된다고 말하기도 전에 리티아가 자리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테메스들의 눈에는 ‘내가 일어나서 말할 테니 어서 그러라고 말해라.’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그럼요. 공녀님, 말씀하십시오.”

“저는 우선 저와 함께하시는 테메스분들에게 그 어떠한 불만도 부족함도 없습니다. 위험함 또한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여 저는 인원 변경에 관한 의견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바이나 말락 경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잔류하여 협조하시는 방향이라면 찬성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꾸벅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리티아가 자리에 앉았다. 다섯 명의 후보 중 단연 실력으로든 배경으로든 최정점을 가진 공녀의 깍듯한 자세에 모인 테메스 모두 입을 다물었다.

펠루가와 마르마티만 히죽 웃는 얼굴이었다. 곤도르는 무표정처럼 보였으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리티아는 후보로 발탁된 이후 그 누구에게도 똑같이 대했다. 누구에겐 무례하고 누구에겐 격식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았다. 심지어 테니아 후보들의 뒤를 함께하는 테메스들은 후보들의 행보나 소문에 관해서도 민감했다.

당연했다. 테니아가 발탁됨과 동시에 자신들은 차기 테니아의 테메스가 되는데 행여 문제를 일으킨다면 자신들의 긍지 또한 꺾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리티아가 그간 한 빈민가 활동에 대해서도 모든 테메스가 알고 있었다.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지. 그 후로도 그녀가 계속 유일하게 빈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입이 조금 가벼운 편인 마르마티의 입에서 자랑이 나온 탓이기도 했다. 리티아와 친해진 순간부터 매일 우리 공녀님은, 우리 공녀님은 하고 자랑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럼 변경이 아니라 충원을 하는 것도 건의드립니다. 모두가 인원수를 동등하게 배분하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호위가 가능할 것입니다.”

잠시 조용했던 말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절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지금 박탈된 한 명을 제외하고 세 명은 다섯 명의 테메스를, 리티아만 세 명의 테메스를 데리고 있는 상태였다. 각 여섯 명으로 인원 충원을 제안한다고 건의를 한 것이다.

마르마티가 다시 벌떡 일어날 태세를 하는 순간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손을 들었다. 콜로스였다.

“저 또한 잔류까지는 동의하나 충원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호흡을 맞춘 상태인데 다시 합을 맞춰야 하는 것도 번거롭고 인원이 충원되면 후보께서는 그만큼 성력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 점을 간과하시면 안 되죠.”

전투 시나 외부 정화 활동을 할 때 자신들의 테메스에게 축복과 가호를 걸어주는 게 테니아의 또 다른 임무인데 그건 정화나 일반 축복보다 훨씬 더 많은 성력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테니아와 테메스의 관계는 일반적인 수직관계가 아니다. 가호를 내리는 순간 테니아가 가진 힘을 테메스가 공유하는데 본래 테메스가 가진 힘에 플러스 되는 그 힘은 테니아가 가진 힘에 비례한다. 하지만 인원이 많이 분배될수록 당연히 그 힘은 나눠질 수밖에 없는데 다섯 명이 본래 받던 힘이 여섯 명으로 나뉘는 거니 당연히 달갑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다른 테메스 또한 같은 의견을 전했다.

리티아같이 성력이 남아도는 후보면 모를까 로아에게는 조금 치명적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 로아 또한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고, 자신 때문에 콜로스가 그 의견을 말한 것을 알기에 입술을 깨물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그럼에도 말락은 포기하지 않았다. 의견이 계속 충돌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레페 신관이 손을 들어 그들의 의견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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