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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49화 (49/70)

49화

* * *

천천히, 깃털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마치 자신을 새겨 넣듯 집요하게 볼에 입술을 맞댔다.

그의 콧대가 눌릴 만큼 뭉그러지며 조금 더 옆에 입을 맞췄다.

쪽, 쪽, 쪽.

쪽, 조금 더 속도가 붙은 입맞춤은 볼에 조금도 빠짐없이 입맞춤하다 귓가에까지 진득하니 입술을 붙였다.

입술을 맞대고 키스하는 야릇한 행위도 아닌데 오히려 리티아는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부끄러워졌다.

“……왜.”

리티아가 간신히 손을 들어 거의 맞닿다시피 한 그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냈다. 귓가에 또 한 번 웃음이 흐트러졌다.

마지못해 고개를 돌리는데 리티아의 코에도 쪽,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이마, 반대편 볼까지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제 것에 도장 찍기를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한참이나 리티아를 품에 가두고 칼리프는 간지러운 입맞춤을 하는 데 열중했다.

리티아는 이제 열이 나다 못해 온몸이 훗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벌써 한여름 더위를 맞이한 것처럼 더웠다.

차라리 더 빨랐으면 덜 부끄러웠을 텐데, 틈틈이 시선을 맞추고, 웃으며 그렇게 입을 맞추는데 이런 행동은 정말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만…… 잠깐요.”

방음까지는 모르겠으나 리티아는 쥐어 짜내듯 작게 목소리를 냈다.

쪽.

맨 마지막에 그가 한 일은 입술에 입을 맞추는 일이었다.

깜짝 놀라 리티아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쪽, 칼리프가 다시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바로 떼지 않고 조금 더 길게 머물렀다. 쪽, 또 한 번 떨어졌다 닿은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귓가가 화끈거릴 정도다.

결국 리티아가 침대에 손을 대고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칼리프가 리티아의 목덜미를 감싸듯 손을 넣으며 고개를 비스듬히 틀었다.

“……아!”

깨물린 입술 사이로 그가 침범했다. 유영하듯 자연스러운 행동에 제대로 놀랄 틈도 없었다. 휘감아 파고든 혀가 천장을 가볍게 두드리는데 절로 더 입이 벌어졌다. 리티아가 가까스로 칼리프의 옷을 바투 쥐었다.

“하아.”

살짝 떨어진 틈 사이로 리티아의 숨이 터지듯 새어 나왔다.

칼리프가 짧게 무어라 하는데 반쯤 몽롱한 정신인 리티아는 그 말을 미처 제대로 듣지 못했다.

“응……?”

칼리프가 대답해 주는 대신 다시 웃으며 틈을 맞붙여 왔다. 가쁜 호흡 사이로 질척이는 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흐으, 하. 잠, 자라면서.”

“그러게.”

늘 가쁜 숨을 쉬는 건 리티아였다. 그는 어지간해서는 저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리티아는 그게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며 그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

서로의 입술은 한참이나 더 지나서야 떨어졌다.

쪽, 애정이 어린 입맞춤이 아쉽다는 듯이 잠깐 다시 이어졌다.

완전히 정신을 차렸을 땐 거의 그에게 안긴 상태였다. 단단한 팔과 손이 리티아의 등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리티아가 남은 호흡을 내뱉었다.

“잠이 다 깼어요.”

“다시 재워줄까?”

“그보다……오늘 계속 어디 있었어요? 안 보이길래요.”

“…….”

칼리프는 대답 대신 리티아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를 매만지며 가만히 쳐다봤다.

“칼리프?”

“그냥 논의 좀 하느라.”

“아, 아까 그 여자분은 봤는데. 아이를 구해주셨어요. 알아요?”

“응, 들었어.”

“들었군요. 다들 고마워했는데, 아무도 전하지 못한 것 같아서요. 아이도 괜찮아서 내일 집에 갈 수 있대요. 혹시 누가 안 전해줬으면 그분께 전해줬으면 해서.”

“그렇게 할게.”

리티아는 이야기를 들었다기에 기분 상해할 줄 알았다. 기껏 사람을 살려놓고 대접은커녕 의심받았으니까. 전혀 놀라지 않는 걸 보니 다 아는 것 같은데도.

“……기분 안 나빠요?”

“뭐가?”

“그냥 당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나는 너무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

칼리프가 작게 웃으며 리티아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리티아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런 건 별 신경도 안 쓰여. 여기 있는 건 오직 널 위해서니까.”

“날 위해서요? 원하는 걸 받기 위해서라고 했잖아요.”

“…….”

“아니에요?”

리티아가 재차 묻자 칼리프가 콩 박듯 리티아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부딪쳤다.

“다 기억해 낼 때까지는 말 안 해줘.”

“뭐예요. 일부러 말 돌리는 거죠. 그날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에도 그가 이렇게 말한 이후 리티아는 정말 머리를 쥐어 짜낼 듯이 기억을 떠올렸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중요한 이야기는 한 게 없었다.

“맞아, 그냥 말 돌리는 거야.”

“뭐예요.”

“내일은 계속 옆에 있을게. 아는 척은 안 해주겠지만.”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그러는지 한껏 서운한 척을 하는데 웃음이 나왔다.

“피차일반이잖아요. 그래도 더 있다 보면 서로 사이가 좋아지지 않을까요? 나는 아직도 왜 서로 배척하는지 모르겠거든요. 오늘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말이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배반자 취급을 당할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칼리프에게는 그런 말이 편하게 흘러나왔다. 그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아는데도, 어쩌면 가장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할 상대일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랬으면 좋겠어?”

“그냥, 모르겠어요. 이해가 안 갈 뿐이에요.”

단순히 서로의 힘이 상극이라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거니까. 심지어 테오스 쪽의 부탁으로 제어기까지 달지 않았나. 오히려 테오스 쪽은 그런 준비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했다면 이해가 갈 것 같지만 방금 칼리프가 한 말에는 또 의문이 있었다.

오로지 널 위해서. 이건 또 무슨 의미이지?

“머릿속이 복잡해?”

“자꾸만 알 수 없는 말만 하니까.”

퍽 억울해져 눈을 흘기자 칼리프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칼리프가 리티아를 조금 더 껴안았다. 아예 그의 몸 위에 리티아가 다리를 감고 올라간 형상이 됐다.

어깨를 껴안아 살짝 칼리프를 내려다보는 모양새가 된 리티아가 눈을 깜박였다. 아래 그 어디가 맞닿아 움찔한 리티아가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응?”

“아무래도 그냥 내려가는, 게.”

리티아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칼리프가 짐짓 모른 체를 하며 뺨에 입을 또 한 번 맞췄다.

“불편해?”

“그, 불편하다기보다 어, 그러니까.”

“응.”

“아플, 아플 것 같, 은데. ……아니에요.”

리티아가 스스로 말을 꺼내다 이건 아니다 싶어 말을 그만두며 칼리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왜 말을 못 해.”

“……아, 알잖아요.”

그런데도 칼리프는 리티아를 놔주지 않고 오히려 더 끌어안았다. 결국 리티아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

“리티아.”

“네?”

“리티아.”

“…….”

이번에는 칼리프가 리티아의 어깨에 이마를 기댔다.

서로의 몸이 종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밀착했다.

한참 만에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꽉 매던 팔도 풀어주었다.

“재워줄게.”

그러고는 빙그레 웃으며 리티아의 뺨을 쓸었다. 재워주겠다고, 잘 때까지 옆에 있어주겠다고 다정하게 말하면서.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에는 어쩐지 이상하게도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 * *

“안녕히 계세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씩씩한 인사와 함께 제 부모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그들을 지켰던 신관들의 말로는 아무 일 없이 건강히, 아주 잘 잤다고 했다.

어제는 그렇게 아찔 했는데 부모의 품에서 뛰어내리다시피 해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이 가고 난 이후에는 일행들도 모두 바빴다.

균열이 오늘 일어날 예정이라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젯밤 정말 리티아를 재워줄 심산으로 이불을 덮어주고 토닥이기까지 한 그는 정말 리티아가 잠들고 나서야 사라졌다.

그러고는 약속한 대로-약속까지는 아니지만- 칼리프의 일행과 함께 균열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저번보다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테니아 후보와 테메스보다 먼저 출발한 기사들이 마차에서 내리는 일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주변은 어떻습니까?”

“저 숲까지 확인해 보았으나 근처에 마수는 없습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저번보다 수월하게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행이군요. 그럼 주변 정화부터 해야겠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께 맡기겠습니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정화를 부탁드립니다.”

레페 신관의 말과 함께 인원은 테니아 후보를 중심으로 다섯 조로 나뉘었다.

“그럼 오늘도 힘내보죠.”

“그러죠. 공녀님 또 너무 무리하시지 말고요.”

“한 번도 무리한 적 없다니까.”

리티아는 늘 시작이 그렇듯 자신의 테메스들에게 성력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제게 고개를 숙인 셋에게 축복을 내리는 게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숨 쉬듯 익숙해졌다.

리티아의 밝은 힘이 테메스의 온몸을 휘감았다. 시작을 위해 몸을 돌리는데 리티아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아로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의 테니아에게 축복을 받으려 로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 시선은 리티아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 알 수 없는 눈길에 리티아는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부디 리티아가 알고 있는 대로 사고만 치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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