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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28화 (28/70)

28화

* * *

“왜, 귀엽잖아…….”

에밀리아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을 하며 쟁반을 내려두었다.

시원한 게 먹고 싶다고 했더니, 레몬 소르베와 쿠키가 가득 쌓인 접시가 보였다.

“주방장한테 물어볼까? 고양이가 먹을 만한 걸 만들어 줄 수 있나. 얘 배도 좀 홀쭉한 것 같아. 아닌가.”

“……그야 제가 다녀올 수 있지만 정말 여기에 두시게요? 그러다가 안 나가면요.”

“얘가 여기 있고 싶어 하면? 그런데 조금 이따가 갈 것 같아. 저번에도 자다가 훌쩍 사라지더라고. 집이 있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있어봤자 주방 하녀들이 밥을 주곤 하겠죠, 뭐. 계속 여기 있는 거 보면요.”

“그럴 수도 있겠다. 역시 밖에 다니는 애치고는 너무 깨끗해, 그치?”

그러자 에밀리아가 푸 하고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검은색인데 뭐가 보이나요. 저녁에 다시 시트를 갈아드릴게요. 그래도 아가씨께서 원래 동물 별로 안 좋아하셨잖아요.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봐요. 두 번이나 고양이를 들여보내 주신 거 보면요.”

“아…….”

리티아가 동물을 안 좋아했었나? 그런 디테일한 설정까지는 당연히 모른다.

“예전엔 뭐든 다 무서워하셨잖아요.”

그 말에 리티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랬지. 얘는 너무 귀엽더라고.”

“제가 어떻게 아가씨를 말리겠어요. 아, 이거 오면서 주인님께 전달받았는데 보시겠어요?”

“뭔데?”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신 것 같아요.”

황태자가?

소꿉친구라는 건 알지만 몬트 공작의 목적을 알기 때문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 이유가 아니고서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 가족은 그렇다 쳐도 소꿉친구라는데 괜히 만났다가 이상하게 보기라도 하면 그 어떤 의심을 할지도 몰랐다.

더구나 황태자와 친해서 생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지 않았나.

사실 몬트 공작이 한 달 가량 집에 가두다시피 했을 때 편지가 몇 번 왔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에밀리아가 집안에 드나드는 이야깃거리를 주워다 줬으니까.

그땐 리티아가 나서지 않아도 아프다는 핑계로 못 만나게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생각하니 황태자에게 죄책감을 심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행동에 목적과 이익이 보이는 사람이니 그렇지 않더라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리티아가 에밀리아에게 봉투를 받아 안에 편지를 꺼냈다.

“……음.”

“안 좋은 이야기예요?”

“아니, 그냥 차 한잔 같이 하고 싶다는 간단한 이야기야. 얼굴을 하도 못 봐서 잊어버릴 것 같대.”

“그래도 그 일이 있기 전에는 꽤 자주…….”

에밀리아가 말을 하다가 스스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리티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니 이유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아가씨.”

“왜 갑자기 미안해하고 그래.”

“그냥 떠올리기 싫……으실 것 같아서.”

“아냐, 아무렇지도 않아. 편하게 이야기해도 돼.”

리티아가 다독이자 그제야 에밀리아의 표정이 펴졌다.

“걱정…… 많이 하실 것 같아요. 그래도 황태자 전하께서 아가씨를 엄청나게 아끼셨잖아요.”

“응?”

“아가씨 생일이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선물도 꼬박꼬박 골라 보내시고. 사실…… 이 말씀은 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못 드렸는데.”

“음?”

“아가씨께서 누워 계셨을 때 황태자 전하께서 그때 초대된 영애들에게 굉장히 화를 내셨었대요. 더 듣진 못했지만 아가씨 약 받으러 왔다 갔다 하면서 들었었어요.”

“그건 몰랐네…….”

소꿉친구인 건 알고 있지만 그 정도로 친밀했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에밀리아의 말은 대부분 사실일 거다. 에밀리아는 나이가 어려도 일한 경력이 길어서 그런지 이런 이야기도 들키지 않게 곧잘 듣고 다녔다.

에밀리아가 전해준 이야기는 대부분 다 맞았고, 틀리더라도 에밀리아가 전해준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였다.

그러니 더더욱 에밀리아를 곁에 둘 수밖에.

“만나러 가야겠지. 그간 연락도 못 했으니까.”

한 손으로는 얌전히 누워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한 손으로는 편지를 보는데 순간 손가락에 따끔함이 느껴졌다.

“아!”

별안간 고양이가 리티아의 손가락 끝을 깨물었다.

“아가씨, 왜 그러세요?”

“고양이가 깨물었어.”

“거보세요. 바깥 고양이들은 버릇이 없다니까요?”

“아냐, 그렇게 아프진…… 피 나네.”

옹골차게도 물었는지 구멍이 난 것처럼 피가 송골 맺혔다.

손가락을 아작 낸 고양이는 뻔뻔하게도 제 앞발을 씻느라 여념이 없었다.

“너 못됐구나.”

리티아가 편지를 내려놓은 손으로 고양이의 코를 톡톡 쳤다.

그러자 뒤늦게 깨물리지 않은 손을 살뜰히 핥아주는데 황당했다.

“제가 얼른 약을 가져올게요.”

“이 정도는 괜찮아.”

“피가 났는걸요? 서랍 안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게 있으니 그걸 바르시면 될 거예요.”

에밀리아는 이럴 줄 알았다며 잔소리를 퍼부으면서 서랍에서 약을 꺼내 리티아의 손에 발랐다.

생각보다 깊게 깨물어 약을 바르는데도 욱신거릴 정도였다.

저번엔 어떻게든 피했다지만 대놓고 편지가 왔는데 만나야겠지. 악감정은 없으나 이 책 속 남자 주인공이기도 한 사람을 만나려니 부담이 됐다.

그래도 처음에 이곳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보다는 만나볼 만했다.

“에밀리아, 이따가 편지지 좀 준비해 줘.”

“네, 아가씨.”

* * *

“……숨 막힌 원인이 너였어.”

황태자에게 답장을 보내고 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가슴이 답답하고 묵직했다.

눈을 뜨니 어젯밤 나가지 않은 고양이가 제 몸 위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너 안 갔어?”

냐아.

어두운 색의 오묘한 눈빛이 리티아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밤에도 가지 않고 계속 어슬렁거리며 방을 돌아다니기에 창문만 살짝 열어두고 잤는데 그대로 밤을 보낸 것이다.

리티아는 제법 무거운 고양이를 옆으로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고양이는 리티아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을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데 기가 막혔다.

“너 어제 나 깨물었잖아. 어? 그래놓고 쓰다듬어 달래?”

말을 하면서도 리티아의 손은 어느새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고양이는 요물이라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딱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홀릴 수가 없었다.

“저리 좀 가, 응? 자꾸 왜 이럴까?”

오후에 황타자와의 약속을 위해 준비하는 중에도 고양이는 나가지 않고 계속 리티아의 뒤만 졸졸 쫓아다녔다.

드레스를 입으면 드레스 끝자락을 물고 당기고, 구두를 신으려고 하면 앞발로 구두를 툭툭 치기도 했다.

하녀들이 잡으려고 하면 경계하거나 하악 소리를 내며 막아 섰다.

그나마 손길을 허락하는 게 리티아인데 리티아가 치장을 하지 못하도록 일거수일투족 막으니 준비 시간이 더더욱 길어지고 있었다.

“안 되겠다.”

넉넉히 시간을 뒀음에도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리티아는 아예 고양이를 껴안아 침실에 데려다 놓고 나서야 남은 치장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치장을 마치고 방에 돌아왔을 땐 고양이는 토라졌는지 가버리고 난 후였다.

* * *

고결함을 중시하는 백색의 대신전과 달리 황궁은 금빛이 가득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했다.

제 이상함을 눈치채지나 않을지. 리티아는 황궁에 들어서 황태자 궁으로 가는 길 내내 걱정을 떨치지 못했다.

“리티아, 어서 와.”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리티아의 방문을 기다렸던 황태자는 리티아의 마차가 황태자 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밖에 나와 있었다. 그마저도 놀라운데 반갑게 맞아주기까지 하니 부담감이 산더미처럼 몰려왔다.

리티아가 드레스 자락 양옆을 쥐고 사뿐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황태자가 환하게 웃으며 리티아를 반겼다. 그러면서 리티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리티아가 마지못해 내밀자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그가 환하게 웃었다.

‘어우, 눈부셔.’

리티아가 머뭇거리는데 황태자가 방금 보였던 미소를 지우고 조금은 어두운, 조금 참담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을 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황태자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왔다. 거의 코앞이었다.

“리티아, 잠시만.”

그러고는 황태자가 리티아를 와락 껴안았다.

리티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저, 전하?”

“잠시만. 네가 다시 깨어난 게 안 믿겨서 그래. 미안해, 내가 널 더 챙겼어야 했는데.”

아무리 외부의 사람은 보이지 않더라도 시종이 몇인데, 이렇게 안고 있을 수가 없어 떼어내려는데 훅 가라앉은 목소리에 껴안은 몸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

리티아는 짧게 팔을 토닥이고 말했다.

“전하, 보는 눈이 많은데요…….”

“널 잃는 줄 알았어. 네가 연회에 나타났다는 소식도 들었었는데, 찾으러 갔더니 없더라. 내게 화가 난 것 같아서 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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