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9화 (9/70)

9화

* * *

에밀리아였다.

“아가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리티아가 깬 걸 확인하고 씻을 물을 준비한다고 부랴부랴 나갔다가 지금 들어왔다.

“괜찮아, 천천히 해.”

평소라면 욕실로 가 에밀리아 그리고 다른 하녀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오늘은 영 찜찜했다. 그래서 홀로 안에서 목욕을 하겠다고 에밀리아를 조금 힘들게 했다.

아무래도 절대 혼자 두지 말라는 공작의 명 때문인 듯싶었다.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미처 몸 확인을 하지 못한 탓에 흔적이라도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마저도 공작에게 보고가 들어갈지 모르고 그러면 다시 외출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리티아는 에밀리아와 한참 실랑이를 벌였고 마지못해 가림막을 쳐두고 시종을 모두 보낸 뒤 에밀리아만 두고 목욕을 하는 것으로 실랑이를 끝냈다.

준비를 마친 에밀리아가 옆에 수건을 차곡차곡 놓으며 해맑게 웃었다.

“아가씨, 다 됐어요! 제가 정말 돕지 않아도 될까요? 혼자 하신 적은 없어서…….”

그 말에 리티아가 웃었다.

아무리 홀로 씻은 적이 없다고 해도 어린애도 아닌데.

“설마 씻는 법도 모를까. 정 어려우면 부를게.”

“네, 아가씨!”

에밀리아가 드레스 룸에 있는 가림막을 끌고 와 간단하게 벽을 만들고 물러나서야 리티아는 안심하며 옷을 벗고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갔다.

눈으로는 몸에 들킬 흔적 같은 게 없는지 샅샅이 살폈다.

그가 또 마법을 부린 건지 아니면 원래 없는 건지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다행이다.”

지금은 성력을 제대로 쓰는 방법도 모르는 데다 성력으로 흔적 같은 걸 없앨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리티아는 온몸에 흔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아예 욕조에 몸을 맡기듯 기대 눈을 감았다.

“아…….”

그런데 어깨는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아픈 건지. 파고드는 듯한 통증에 리티아는 반쯤 누운 채로 왼쪽 어깨 뒤쪽을 손으로 문질렀다.

또 만지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연회장에서부터 기가 빨려서 그런지 미열도 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가 제 어깨에 입을 맞췄을 때 통증이 사라졌었던 것도 같다.

설마 이것 때문에 다시 찾게 되는 건 아니겠지.

성력으로 어떻게 가라앉힐 수 없을까. 될지도 모르니 바로 그것부터 연습해야겠다.

‘일주일만 버티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마도 눈에 새겨진 그의 모습은 꽤 오래 가겠지만.

「날 안아.」

「더, 더 가까이.」

열기로 가득했던 그의 부름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가쁜 숨소리.

맞닿은 뜨거운 살결.

그 사이로 오고 간 목소리.

쉼 없이 얽히고설키며 닿았던 입술까지.

“진짜 말도 안 돼.”

그런 일을 저지르다니.

기억을 떠올리다 온몸이 붉어진 리티아는 그만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아예 물속에 잠수하듯 보그르르 몸을 가라앉혔다.

* * *

그 뒤 리티아는 에밀리아에게 이곳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책이란 책은 뭐든, 하다못해 신문이라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신문 묶음과 두꺼운 책 십수 권을 나눠 가지고 들어왔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찾아올게요! 뭐든지요!”

에밀리아는 리티아가 다시 깨어난 이후로 그녀가 뭔가 활동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무척이나 기뻐했다.

리티아는 다른 하인들을 무르고 에밀리아만 곁에 둔 채 신문들의 헤드라인을 살폈다.

“저, 에밀리아.”

“네?”

“내가 이것도 아직 기억에 없어서 말이야. 혹시 내가 힘을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니?”

에밀리아는 평민 출신이라 리티아가 알기로는 태생부터 힘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이걸 물어야 하나 한참이나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믿을 만한 사람이 에밀리아뿐이고 항상 곁에 있었다고 했으니 조금이나마 알지 않을까 싶었다.

그럴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행여 에밀리아가 몬트 공작의 명에 따라 감시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질문은 도움이 되지 해가 되진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에밀리아가 다소 곤란한 얼굴을 했다.

“히, 힘이요?”

“응……. 이제 슬슬 몸을 회복하고 있으니 아버지…께서도 내심 바라고 계시는 것 같아서.”

“아…… 저는 잘 모르기는 한데 아주 예전에 아가씨께서 기억 잃으시기 전에 저한테 어떻게 쓰는지 설명을 해주신 적은 있었거든요.”

“그래? 내가?”

그러자 에밀리아가 뭔가를 추억하듯 작게 웃었다.

“사람은 다 평등하게 신의 사랑을 받고 태어난다고 하시면서 저도 해보면 언젠가 힘을 쓸 수 있을 거라고 그러셨거든요. 막 저 붙잡고 연습하라고 하시고.”

“응.”

“근데 저는 힘을 느끼지 못해서 제가 말씀드리는 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아니면 바젠티 백작님께 말씀을 드리는 건 어떠세요?”

“바젠티? ……아, 엘라르?”

“네! 그리고 주제넘은 말이지만… 전에도 힘을 쓰시는 걸 아가씨께서 싫어하셔서 주인님께서도 강요하진 않으실 거예요.”

저는 아가씨께서 행복하기만 하셨으면 좋겠어요.

에밀리아가 작게 고백하듯 말했다.

그 말이 만들어낸 것 같다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양심이 콕콕 찔리고 죄책감에 마음속 어딘가가 따끔거렸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가볍게 연습만 하려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에밀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리티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겠어요. 그럼 아가씨 제게 손 좀 주시겠어요?”

리티아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에밀리아는 리티아의 손바닥을 뒤집어 가운데에 점을 찍듯 가리켰다.

“저는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만 그때 아가씨께서 말씀하시길, 마음속 빛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심호흡을 하며 집중하고, 한곳에 힘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청량감이 들 때까지 계속 집중을 하라고 하셨어요.”

“집중, 청량감…….”

리티아는 에밀리아가 말하는 대로 무형의 힘을 모으려고 했다.

처음에는 에밀리아의 말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만 여겼는데 눈을 감고 한참을 집중하고 있자 점점 몸 안에 청량한 기운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힘을 끌어내려 더욱 집중하는 순간 몸 안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리티아가 깜짝 놀라 에밀리아의 손을 내치듯 물러났다.

“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아시겠어요? 방금 조금 빛이 보인 것도 같았어요!”

“어, 그, 그래? 그게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혹시 따갑다거나 고통스럽기도 하니?”

에밀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처음 듣는 표정을 했다.

“아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 기분 좋은 느낌이 들 거라고 하셨었어요. 아직 연습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이게 기분 좋은 느낌이라고?

오히려 파지직 무언가 몸 안에서 튀며 삼켜지는 기분이었는데.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에 가까웠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리티아는 다시 숨을 가다듬고 집중했다. 아까보다 더 천천히, 더 집중을 했더니 조금 더 빨리 힘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감은 눈 사이로 어리어리하게 느껴졌던 빛이 순식간에 확 터졌다.

“아가씨, 됐어요!”

그러나 리티아가 눈을 뜨는 동시에 픽 하고 빛이 사라졌다. 그 찰나에 다행히 빛을 본 리티아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불쾌했던 스파크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역시 아가씨세요! 바로 알아차리시다니.”

“네가 도와준 덕분이지.”

“저야 아가씨께 도움이 되면 뭐든 좋아요.”

에밀리아가 배시시 웃으며 볼을 붉혔다.

* * *

오후에는 테오스의 힘을 끌어내는 연습과 동시에 두껍게 쌓인 책과 신문들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까 곧 이미 후보는 거론된 상태란 말이지.”

테니아의 신탁이 내려오는 해에는 귀족 영애들이 유난히 신전에 자주 드나들며 기부 활동과 봉사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야 테니아들이 차기 후보로 뽑아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눈으로 뽑은 후보 중에서 신탁이 내려오는 경우가 대다수기에 거의 신봉하는 수준이었다.

그들의 말은 대신관과 함께 절대적인 권력과도 같아서 이렇게 치열하게 바라고 힘을 쓰는 것이다.

가장 고고하고 순결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그 자리.

리티아는 권력 따위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자유를 얻으려면 이쪽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후보로 뽑히고 나선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미 후보로 뽑힌 리티아를 포함한 다섯 명이 그에 해당되는 모양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후보로 뽑힌 영애들의 행보가 담긴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리티아를 지독히도 괴롭혔던 로아 캐번디시도 있었다.

리티아만 없으면 자신이 테니아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은 인물. 심지어 황태자도 탐을 내고 있는 자이기도 했다.

욕심이 참 많기도 하지. 어쨌든 그 말인즉슨, 리티아도 빠짐없이 활동을 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다.

리티아의 자살 소동은 신문에 나오지 않게 막은 모양이지만 그만큼 이렇다 할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어제 몬트 공작이 저를 연회에 참석시켰던 모양이다.

에밀리아의 말을 빌리자면 평소에도 힘을 쓰는 편은 아니었다고 했으니 적당히 기부와 봉사를 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가장 고고하고 순결한 자를 고른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설마 고리타분한 뜻을 가진 것은 아니겠지.

이제 와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문제없겠지?”

「어차피 너는 다시 날 찾게 될 거야.」

「네가 날 찾지 않으면 없던 일로 해줄게.」

「네가 날 찾으면.」

「그때부터는 네 말에 책임을 져야지.」

「뭐, 좋아. 일주일. 네가 날 찾으면 내가 이기는 거야.」

일주일.

칼리프와 거래를 했던 일주일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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