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 *
그 누구도 말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리티아를 지키지 못한,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대가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 후 리티아는 무서워서 먼저 방을 나갈 생각도 못 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나서는 멋대로 나갈 수도 없었다.
그간 그녀가 나가려고 할 때마다 “공작님께서 명령을 내리셔서.”, “공작님께서 더 휴식을 취하라고 하셔서.”, “공작님께서 나가지 말라고 하셔서.” 그런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로써 알았다.
이곳은 가주 기에스 로만 몬트 공작의 말이 곧 법이다. 이곳에서 아버지인 몬트 공작의 명이 아니고서는 나갈 수가 없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적어도 외출이라도 하려면 그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되며 얌전히 복종해야 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은 그랬다.
리티아는 머뭇거리다 결국 문고리를 잡아 열고 그녀의 아버지, 몬트 공작을 맞이했다.
“티아. 깨어 있었느냐.”
“오, 오셨어요?”
장신에 똑같은 푸른 눈, 은발을 깨끗하게 넘겨 정리한 중년 남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뜯어보면 무서울 정도로 리티아 그리고 그녀의 오빠인 엘라르와 닮았다. 좀 더 비열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점만 뺀다면.
“들어가도 되겠느냐.”
“아…… 네! 들어오세요.”
리티아는 몬트 공작이 들어오도록 안쪽으로 조금 물러났다. 다행히 테이블까지 자리해 마주 보긴 했는데 몬트 공작과의 태평양 같은 마음의 거리를 좁힐 길이 없었다.
“그래도 며칠 새 얼굴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구나.”
“걱정 끼쳐 죄송해요.”
그러자 몬트 공작이 한참 침묵했다. 그가 힘겨운 듯 입을 열었다.
“네가 걱정 끼친 것이 뭐가 있어. 다 이 아비가 못나서 네 마음의 힘듦을 헤아리지 못한 탓이지. 모두 내 탓이다. 정말 미안하구나.”
몬트 공작은 말을 끝맺음과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일주일간 얼굴 한 번 안 비치고 출입을 막았던 사람치곤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어깨가 잘게 떨리더니 그의 숙인 얼굴에서 물이 톡 하고 떨어졌다. 테이블에 떨어진 물 한 방울은 눈물이 틀림없었다.
리티아는 당황해서 조금 더 엉덩이를 당겨 앉았다. 분명 책에서는 저런 캐릭터 아니었는데? 아버지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야 했다.
“…울지 마세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아니야. 네가 그동안 마음이 썩어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이 아비가 무심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이제 정말 안 그럴게요.”
다행히 통했는지 조금 뒤 몬트 공작의 눈물이 멈췄다.
“부디 이 아비와 약속해 다오, 티아.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이제 더는 숨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우선 눈가가 젖은 몬트 공작을 달래기 위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말씀대로 할게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기억도 얼른 떠올릴게요.”
“그러지 말거라.”
몬트 공작이 그녀를 저지했다.
리티아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보자 몬트 공작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가 더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기억을 억지로 찾아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해. 그러니 뭐든 네 편한 대로 했으면 좋겠구나.”
“네, 아버지 말씀대로 할게요.”
“그래, 고맙구나. 앞으로는 이 아비에게 다 말해다오. 이 이야기를 하러 왔다. 그럼 쉬려무나.”
그렇게 몬트 공작이 나가고 리티아는 문이 닫히기 직전에 문고리를 잡고서 작은 틈을 남긴 채 바싹 달라붙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리티아에게 잠시도 눈을 떼지 마라. 아직 외부에 소문이 다 가라앉지 않았으니 정신 차리고 지켜.”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또 이상한 짓을 하지 않게 잘 지켜봐라. 절대 나오지 않게 하고.”
그리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역시.’
모든 게 가식이었다.
소설에서 분명히 가족보다 명예를 중시하고 손해를 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까는 연기했던 자신이 되레 깜빡 속을 뻔했다.
그가 전전긍긍하며 눈물을 떨군 건 자식인 리티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곧 신의 딸이라 불리는 ‘테니아’가 될 재목이 잘못될까 봐 긴급 처방으로 손을 쓴 것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이 세계는 초반부터 세계관에 대해 잘 나타나 있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곳 아테온은 이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쥐게 되는데 빛의 능력을 가진 자와 어둠의 능력을 가진 자가 도드라지게 나누어진 세계였다.
빛의 이능을 가진 자는 빛의 신 아테스의 이름을 따 빛의 축복을 받은 자라고 해 테오스라고 불렀다.
쉽게 말하자면 빛의 힘은 곧 성력이며 그 힘을 가진 자들이 곧 귀족인 셈이었다. 그리고 성력을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빛을 잃은 자라 하여 테오리스라고 불렀는데 평민이나 노예 등이 그렇게 불렸다.
그러니까 태생부터 계급처럼 생이 정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오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테니아였다.
테니아는 빛의 능력을 가진 테오스 중에서도 빛의 신탁을 받아 신의 딸이라고 불리는 자만 달 수 있는 최고의 타이틀.
바로 성녀라고 할 수 있었다.
테니아가 되면 본래 가지고 있던 힘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테니아가 될 인물이라 입 모아 말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리티아. 그녀인 것이다.
테니아는 총 세 명만 선택이 되는데 10년에 한 번 신탁으로 새로운 테니아가 뽑히면, 기존의 셋 중 힘을 잃고 본래의 힘으로 돌아간 테니아가 자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셋 중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평생 동안 테니아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으며 10년 만에 단발성으로 내려올 수도 있었다.
또한 귀족들이 테니아에 더 열광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 권력을 쥐고서도 자유 또한 있기 때문이다.
자유란 다른 게 아니라 테니아로 선택되어 성녀로서 추앙받아도 소속이 신전으로 바뀌는 것뿐이라는 점이다. 신전에서 지낼 수도 있지만 거주지도 자유로이 정할 수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다만 테니아가 되면 테니아들 스스로 고결하다 여겨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지금껏 결혼을 한 테니아는 손에 꼽는다고 했다.
그리고 테오스들이 적대시하는 존재이자 악마, 무법자, 불순물 등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어둠의 능력을 가진 오브다.
오브라는 단어조차도 귀족들이 만들어낸 단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어둠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했다. 그들은 어둠의 능력을 가진 자들로 테오스와 테오리스에 비해 극히 소수이며 한 명의 우두머리를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라고 했다.
고대 마족의 혼혈이라 하는 자들도 있고 악마와 계약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또는 사람의 모습을 한 마수라고도 했다.
그들이 머무는 곳이 곧 국가이다. 라는 글귀를 봤었는데 테오스와 테오리스보다 숫자가 현저히 적은 대신 그 힘이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순물이라 불리는 자들을 가만히 둘 리 없지. 그래도 그들이 현재 장악하고 있는 지역 정도는 서술되어 있었다.
가장 동쪽에 아예 이 대륙에서 뚝 떨어진 거대한 섬, 케스니카. 남과 북이 보레아와 세테아라는 지역으로 정확하게 반이 갈라져 있는 땅인데 그곳에는 대륙에서 볼 수 없는 마수도 있어 그 누구도 쉽게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설정에서 테오스와 오브는 서로 필요에 의한 만남을 해야 할 때를 빼고는 접촉조차 하지 않는다던데. 심지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그들과 대면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오브를 마주치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주인공인 리티아는 테오스 중에서도 유독 도드라진 빛의 힘을 가진 자로 테니아 신탁을 앞두고 있었다.
테오스의 가장 큰 명예인 테니아의 자리를 거머쥘 주인공으로 거의 결정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리고 그 뒤에 원작의 진짜 주인공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리티아 에울루니에 벨루스 몬트는 그날 호수에서 죽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리티아를 대신할 여주인공의 묘사로는 리티아와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평민 출신인, 이름은 카미야였다.
카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주목받았던 리티아와 달리 삶이 기구한 편이었다.
테오스인 부친과 테오리스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채 살다가 빛의 능력이 있는 걸 알게 되면서 다시 테오스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원작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서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리티아가 죽어야 한다.
그녀가 더 돋보이는 건 원래 테니아가 되었어야 할 리티아가 죽고 그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부터니까.
리티아가 악역인 것도, 그녀가 악역인 것도 아닌, 서로 대면하지도 않은 채 이어지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으로 인해 버젓이 살아 있게 됐는데 원래 주인공인 카미야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어쨌든 소설은 리티아의 죽음 뒤로 카미야가 진짜 주인공이 되고 남자 주인공인 황태자와 로맨스를 찍고 해피엔딩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기 싫었으면 엿을 먹여야지,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그녀가 다 억울할 지경이었다.
거기다 아비라는 작자는 그 와중에도 명예가 더럽혀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니. 모든 게 다르지만 시한부의 삶을 살았던 자신만큼이나 불쌍한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처량해졌다.
그저 소설 속 인물인데도.
문제는 자신이 이런 대략적인 세계관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건 그녀 스스로 찾아내야 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이 방을 자유롭게 나가야 한다. 감옥도 아니고 병실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감시하에 잡혀 있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