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룻밤 상대가 흑막이었던 것에 관하여-1화 (1/70)

1화

* * *

“잘 생각해.”

“으응……?”

달콤하고 몽롱한 의식 속에 리티아가 되물었다. 술기운인가, 아닌가. 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돌이킬 수 없다고 미리 말했어. 난 상관없지만.”

새카만 어둠과도 같은 시선으로 집요하게 쓸어내리던 남자가 휘청이는 여린 허리를 단단히 잡아챘다.

그러자 한껏 발그레해진 뺨을 한 리티아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음, 그럼 나도 상관없어.”

“정말? 분명히 네 입으로 그랬어. 상관없다고.”

“……응. 내 입으로 그랬어, 칼리프.”

대답과 함께 남자가 가르쳐 준 이름이 숨결처럼 흩어졌다. 동시에 귓가에 뜨거운 입술이 닿자 이내 스르륵 눈을 감은 채 가녀린 팔이 그의 목을 껴안았다.

나직하게 웃은 남자가 돌연 입술을 삼켰다.

“……흐읏.”

털썩. 침대에 그대로 등이 묻히고 부드러운 은실 같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질척이며 엇갈리는 혀 사이로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칼리프의 뜨거운 혀가 여린 점막을 훑을 때마다 리티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잠깐 뗀 입술 사이로 가는 실타래가 늘어졌다.

“흐, 잠깐…….”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다시 입술이 삼켜졌다. 혀가 윗 점막을 훑고 치열을 핥았다. 붉어진 아랫입술을 빨아들이자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혀를 섞으며 허리를 쓰다듬던 커다란 손이 가슴께를 덮었다. 툭, 찌직- 드레스가 볼품없이 찢어졌다.

“하아, 으응. 흣.”

귓불과 뺨을 타고 쪽쪽 내려간 입술이 목선을 지나 쇄골까지 내려갔다. 잘근잘근 쇄골에 이가 닿을 때마다 리티아의 몸이 잘게 튀었다.

얇은 슈미즈 위로 드러난 봉긋한 가슴에 뜨거운 숨결이 와 닿자 리티아의 허리가 저절로 휘었다. 혀끝이 정점을 희롱할 때마다 배꼽 주변이 자르르 떨리고 간지러웠다.

“천천, 히……어지러워.”

애원하듯 칼리프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헤집으며 말하자 칼리프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달래는 듯한 말투에 리티아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드러난 허벅지 위로 커다란 손이 짓누르듯 감쌌다.

촉, 촉, 촉, 드러난 피부 위에 입을 맞추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남자가 배꼽 주변을 길게 혀를 내어 핥았다. 뽀얀 배가 바르르 떨리며 세로로 오목하게 들어가자 남자가 작게 웃었다.

리티아가 배배 꼬듯 다리를 엮으려고 하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보란 듯이 허벅지로 리티아의 행동을 저지했다.

“안 되지.”

“아.”

리티아가 결국 도망치듯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여유로운 그에 비해 리티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술이 닿는 곳은 불에 덴 듯 뜨겁고 가려웠다. 몽글몽글 고이기 시작한 열기는 점점 아랫배 그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기어코 닿아서는 안 될 근처까지 칼리프의 입술이 닿았다. 골반에 엮인 리본을 이로 풀자 천이 스르륵 내려가며 여린 골을 드러냈다.

“흣! 그마안…….”

첫 키스부터 처음 느껴보는 감각들, 자꾸만 입이 마르고 눈가가 젖었다. 점점 더 퍼지는 술기운과 열기에 겁이 난 리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할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리티아를 건드렸다. 가까스로 눈을 뜨자 열기에 잠식되다시피 한 유혹적인 검은 눈이 보였다.

“…….”

“힘들어?”

리티아가 대답 대신 칼리프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칼리프는 하얀 무릎에 입을 맞추고선 그녀의 손에 순순히 얼굴을 내주고, 몸을 일으켜 리티아 위로 올라왔다. 올라가면서도 연신 쪽쪽 입을 맞추며 리티아의 열기를 부추겼다.

리티아는 마치 커다란 검은 그림자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귓가에 연신 닿는 입술에 몸을 비틀며 리티아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천천히…….”

“그럴까?”

리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힘을 푸는 순간이었다. 힘이 빠져 살짝 벌어진 다리 사이로 칼리프의 손이 닿았다. 동시에 리티아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아!”

느긋하던 칼리프의 얼굴도 여유를 잃고 정염으로 뒤덮였다.

칼리프가 고개를 내려 봉긋하게 오른 정점을 아프지 않게 깨물곤 리티아의 뺨에 연신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날 안아.”

“흐, 으…….”

리티아가 칼리프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도리질을 쳤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끌어안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몰아쳤다. 흠뻑 젖기 시작한 몸이 그의 손에 하염없이 휩쓸렸다.

“……아!”

일순간 발로 침대를 밀어내며 리티아의 허리가 높게 떴다. 정점에 올라 부서지는 느낌이 온몸으로 쏟아졌다. 생리적인 눈물이 주륵 흘렀다.

칼리프가 늘어지는 리티아를 더욱 껴안고 그녀의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쪽쪽 입술을 맞댔다.

“……내 이름 불러봐.”

“흐, 하아, 하아. 칼……리프.”

“한 번 더.”

“……칼리프.”

색색거리며 오물거리는 리티아의 입술을 다시 삼켰다. 리티아의 다리가 벌어지며 둘 사이는 조금의 틈도 없이 밀착했다.

그 순간 리티아가 눈을 뜨며 칼리프의 어깨를 밀어냈다.

“읏……! 아!”

생경한 고통에 리티아가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입맞춤 사이로 돌이킬 수 없다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째인지 알 수도 없었다.

제 몸을 가득 채우는 압박감에 다시 온몸이 흔들렸다. 깜박 잠이 든 사이 귓가에 축축한 입맞춤이 와 닿았다. 쾌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르작거리자 지척에서 탁하고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눈떠봐.”

“흣, 싫……아아.”

그녀를 배려하듯 뒤로 조금 물러났던 쾌감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뭉근하게 다시 끓어오르는 열기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새된 신음에 목이 따가웠다. 질척하게 맞붙은 피부가 바르르 떨렸다.

“아, 아, 칼, 칼리프.”

“그래, 그렇게 계속 날 불러.”

“으읏.”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밤이 이어졌다.

어슴푸레한 새벽을 지나 동이 터올 때까지.

* * *

갈증으로 목이 따가웠다.

눈처럼 새하얗고 가녀린 손이 더듬더듬 침대 위를 움직였다. 리티아는 쏟아지는 피로를 견디며 간신히 눈을 떴다.

“……읏.”

동시에 낯선 풍경과 함께 지독한 허리 통증과 얼얼함이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리티아가 깨어난 곳은 무척이나 넓은 방이었다.

그간 눈에 익숙해진 화려한 패턴이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귀족풍의 방이 아니었다. 광활하다 느껴질 정도의 크기에 그만큼이나 큰 침대. 그에 반해 가구는 몇 개 정도만 있고 화려한 장식은 거의 없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 누워 있더라……?’

리티아가 끙끙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머릿속에 장막이라도 씌운 것처럼 모든 게 깜깜했다.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집중하려는데 왼쪽 어깨 뒤쪽이 수십 개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온몸이 두들겨진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왼쪽 어깨가 유독 심했다.

리티아는 몸에 힘을 꾹 주고 비틀거리며 일으켰다. 힘이 빠져 엉겁결에 뒤쪽에 손을 짚었는데 따뜻하고 단단한 무언가에 탁, 하고 걸렸다.

“……!”

리티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깜짝 놀라 입을 막으며 짚었던 손을 치우고 고개를 내리자 상체를 벗은 남자의 널찍한 등이 보였다.

어……?

이 남자는?

리티아가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남자, 남자, 남자, 남자가 왜 내 옆에… 아.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간밤에 참석한 연회장 테라스에서 만난 남자.

다소 예의가 없고 폭력적이며 명분만 전 애인일 뿐인 남자를 피해 리티아가 스스로 자신을 숨겨달라고, 도와달라고 도움을 청했던 남자였다.

그런데 그다음에 왜 이렇게 됐더라……?

마치 리티아에게 답을 주는 듯 두통과 동시에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억이 시작된 리티아가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미쳤다. 미친 게 분명했다. 리티아는 절로 통증이 오는 이마를 누르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제 테라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그리고 연회장에서 따로 나와 잠깐 시간을 보내고 그 후에…….’

리티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무리 그래도 멋대로 처음 보는 남자와 팔자에도 없는 하룻밤을 보낼 줄이야. 그녀는 줄곧 애인은커녕 짝사랑, 첫사랑 상대조차 없었다.

방금 말한 전 애인도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연인이었으며 다소 강압적인 고백으로 이어진 관계에 뽐내기용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어제 리티아가 직접 잘라냈다.

그래도 그렇지 어쩌자고 이런 일을. 그간 꽉 막혀 있던 답답함을 이렇게나마 일탈로 풀어버린 제 자신에게 화가 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리티아는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숙취에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면서도 들킬까 봐 힐끗 뒤를 쳐다봤다. 불행 중 다행히도 상대 남자는 엎드려 자고 있어 부드럽게 흩어진 검은색 머리카락과 널찍한 등만 보일 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남자가 일어나기 전에 여길 나가야겠다.

리티아는 몸이 천근만근, 축축 처지는 느낌이었지만 도망치기에는 지금이 기회였다.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려 리티아가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였다.

어느새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단단한 팔이 그녀의 가는 허리를 단숨에 휘감아 눕혔다.

“……아!”

리티아는 순식간에 다시 침대에 누운 자세가 됐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놀라 쳐다보는데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새카만 눈동자가 그녀를 즐겁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나른하고 어딘가 모르게 장난기 가득한, 어제 보았던 눈과 똑같다.

역시, 그 남자였다.

자는 게 아니었는지 남자의 눈은 확실히 잠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첫 만남에 너무 예뻐서, 아름다워서 홀린 듯이 쳐다봤던 얼굴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그런 생각과 함께 술을 홀짝이며 훔쳐봤었다. 그건 그렇고, 그려낸 듯한 남자의 고운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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