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1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그 유명한 성지의 기운이라는 말인가?”
검선의 물음에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굉장하네, 이 정도의 기운일 줄이야!”
사실 남자는 그리 큰 기운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검선이야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만큼 한국을 자체적으로 따뜻한 기운과 복스러운 기운으로 감싸고 있는 성지의 능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남자는 그저 일반인들이 느끼는 기운 정도만 느끼고 있었다.
“실로 대단한 남자네. 자연의 힘을 이토록 방대하게 뿜어내다니.”
스스로 성지의 인정을 받아 그 기운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뒤였다. 창현의 힘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다른 천외천 고수들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성지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것은 창현이 한국 내에서 갖고 있는 절대적인 영향력에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추후 그의 생각에 정당한 명분을 갖추는 일 중 하나가 되겠지만 아직 그 것까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검선 조호운은 한국에 도착해 순수한 감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문인 왕효명의 명령에 따라 검선을 수행하기 위해 무당파에서는 열 댓 명 남짓의 인원을 파견했다. 입국장부터 ‘나 검선이오.’ 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긴수염과 전통적인 도사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검선 덕분에 이미 한혈문 역시 입국 소식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당파와 한혈문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곧바로 가도록 하지,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공식적인 방문 요청을 한 뒤 가는 것이 예의였지만 검선은 창현이 딱딱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자신이 와 있다는 것은 내력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알리고 있었다.
그라면 분명 이 기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혈문에 또 다른 천외천 고수가 탄생을 했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사조님의 등장에 따른 언론 플레이가 아니겠습니까? 무황이라 불리는 그 사람이 본디 한국의 초절정 고수였기는 했지만, 사조님처럼 정식적으로 다른 문파들의 검증을 받은 것도 아니고 강창현 스스로의 발표이기에 아직 전부가 믿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저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요.”
“그런가?”
긴가민가했다.
새로운 천외천 고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의도적으로 갈무리를 하고 있다면 느끼기 힘들 것이다. 검선은 창현이 없는 소리를 허세를 위해 지어 낼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허세가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강자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 허튼 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네. 어찌 되었든 만나본다면 알 수가 있겠지.”
한혈문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검선은 느껴지는 기운을 향해 직접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그 것이 자동차를 타고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저 뒷짐을 지고 쑥쑥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검선의 뒤를 남자들은 제법 잘 따르고 있었다. 왕효명이 모종의 이유에서 무당파 최고수들을 검선을 수행하게 했기 때문이다.
경복궁으로 도착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이 모여 있었다.
한국 최고의 관광지가 된 것도 사실이기에 외국인들도 늘 많았고, 성지의 기운이 가장 강렬한 곳이기에 틈만 나면 찾는 한국인들도 상당수였다. 평소에는 그저 산책을 하듯 거니는 사람들이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 창현이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무당파 도사 같은 검선.
그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길을 비켜서고 있었다.
검선이 먼저 창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대가 검선이라 불리는 조호운인가?”
“그렇소. 그대 역시 혈마라 불리는 강창현이 맞는 것 같구려.”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왕의 후예가 제법 그의 머리를 닮았다면 자네는 검선의 무공을 이어 받은 것 같군.”
“……그대가 기억하는 검선이 혹여…….”
“아, 아 그 사람이 맞아. 말코놈들 중에서 신선이라 불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우스운 건 진정한 도사 놈의 흔적을 후예인 말코놈들이 지우고 있다는 것이지만.”
검선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가 지칭하는 것은 무당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고수.
아니, 정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고수였다. 그렇지만 그 당시 배교 교주였던 혈마와 친분을 나눴고, 늘 그에게 비무를 청해 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운 역사라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지워버렸다.
혈마가 그 당시 중원 사람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교의 교주가 중원의 인물이 아니라 동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 생김새 역시 자신들과는 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중원의 무인들은 더 큰 치욕을 느꼈다.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무공의 근원지에서 다른 민족의 무인에게 중원 전체가 농락을 당했던 역사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고수라 불리는 사람조차 그와의 친분을 유지하며 늘 상 비무를 청해 패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검선은 자신의 탓이 아니건만 무척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매화일검과 오대선사의 합공을 이겨내고 천외천 고수에 이름을 올렸다지?”
“……그렇소.”
“그 땡중들도 오랜만에 보고 싶군. 당문에 갔을 때 아예 숭산과 화산을 한 번 들를걸 그랬어. 제법 괜찮은 산들이 아닌가.”
“이 뒤에 보이는 산이 뿜어내는 기운은 명산이라 불리는 그 두 산을 합한 것보다 더 크구려. 무당산까지 합쳐도 모자랄 것 같소.”
창현은 빙그레 웃었다.
“성스러운 혈통이 난 곳이 아닌가. 괜히 이곳이 성지라 불리는 곳이 아니지.”
검선의 말에 무당파 도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검선은 무당파 대표 격으로 창현과 대결을 하러 온 것이다. 이미 전면전에 대한 아무런 명분이 없는 무당파의 왕효명은 암살 사건 배후의 대한 일에 대해 검선과 창현의 비무로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검선과 창현이 양패구상을 하고 그 명분으로 전면전을 일으켜 한혈문을 정리한 후 아시아 최고의 문파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설사,
자신의 예상보다 검선이든 창현이든 누가 더 강하든간에 파견한 열 댓 명의 무인들을 믿었다.
그들은…… 무당파에서도 금기시한 무공을 익혀 한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 도사들이고, 그 후유증은 자연스레 성지의 기운으로 몰아갈 계획이었다.
한 마디로 검선을 따라 온 수행원들은 이미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을 하고 따라 온 것이다.
그 사실을 검선도 창현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창현은 왕효명이라는 인물이 천외천으로 대표되는 무당파 최고수를 이용하여 무엇인가 암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당문의 일과 론즈와 연결되는 고리만 쫓아도 그의 성정은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와 본 한국은 어떤가?”
창현의 하대는 그 대상이 누구이던 간에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바로 이곳의 기운이었소. 그리고 그 다음 느껴진 것은 당신이 갈무리 하지 않은 기운이었고. 또 사람들의 표정이 꽤 밝은 것 같았소. 정치, 경제 같은 것은 산에만 있었기에 잘 모르지만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꽤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 그 느낌이오.”
창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국은 이미 상당히 변해 있었다.
가장 먼저 경제가 안정이 되었다. 기존의 대기업들은 두드러진 발전을 이뤘고, 중소 기업들 역시 우후죽순으로 덩치를 키웠다. 예전처럼 그 순이익을 자신들만 꿀꺽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익 집단도 아닌 문파라는 한혈문이 일 년에 한국 복지에 투자하는 돈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변해버린 대중들의 기준에 맞춰 줄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소수로 돌아가는 한국 경제가 아니었고, 대중들의 선택의 폭은 너무나 커졌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한국에 흡수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생활의 질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했다.
성지의 기운은 한층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었고, 진취적으로 변하게했다.
육체의 안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늘 밝은 표정이 저절로 나 올 수 밖에 없었다.
완전한 빛은 없다. 여전히 어두운 부분이 있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적어도 전처럼 아예 포기해버리는 냉소주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나라의 분위기 자체가 한혈문으로 인해 변해 버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가지.”
창현은 자신이 직접 안내를 하겠다는 것처럼 몸을 돌렸다.
검선은 뒤를 따랐다.
그리고 무황이 그 옆에서 조용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새로운 천외천인 두 명……, 한 명은 그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고, 한 명은 창현의 존재로 인해 아직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수능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