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5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깔끔한 정장을 즐겨 입는 창현이었다.
요즘 들어 키가 큰 청년들이 무척이나 많기에 180CM의 창현이 키가 커서 눈에 확 뜨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무공으로 익혀진 단단한 몸과 더불어 꿈틀 거리는 적당한 잔 근육들은 정장을 무척이나 소위 잘 어울리게 했다.
수희 옆에 있기에 빛이 바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수희에게 그렇게 뒤처지는 외모도 아니었다. 적당히 그슬린 피부와 강인한 인상 덕분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한혈문이라는 거대 문파의 수장이라는 점과, 그동안의 수많은 행보들이 외모 그 이상으로 창현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명문대는 어느새 창현 일행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제법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군?”
대학 문화는 물론 그런 것에는 전혀 무지식한 창현이었기에, 꽤 많은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신기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과는 달리 무공에 관련 된 과도 상당히 많이 생긴 추세였고, 전문 대학까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의 트렌드 자체가 변해 있었다.
국제적 발표 이후 정부 기관은 물론 각종 일들에 무인들의 힘이 날로 커지면서 생기는 필연적인 현상이었다.
수희야 그런 것에는 딱히 큰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말이다.
“응.”
뒤를 따르고 있는 무리들 중 수희에게 식사를 제안했던 무리들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굳어 있었다. 창현이 축객령을 내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장 헤어지기도 뭔가 꺼름직한 기분도 있었고, 특히 비꼬는 말을 하다가 정확하게 걸린 여선배의 얼굴은 죽을 맛이었다.
창현이 단 한 마디 이후에 언급은 물론 내색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없는 자리에서는 대통령도 욕을 할 수 있지만, 욕을 하다가 대통령이 눈앞에 나타난 기분이랄까?
창현이 지금 현 시점에서 한국의 대통령보다 더욱 큰 권위와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학교에는 무슨 일로 왔어?”
“오후에 중국으로 넘어 갈 거야. 그 전에 밥이라도 같이하려고. 요새 바빴잖아.”
전형적인 착한 오빠의 모습에 치근거리던 남자가 나섰다.
“마침, 밥을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일은 마치고.”
“…….”
쳐다도 보지 않고 이어지는 명령에 남자는 움찔 몸을 떨었다.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대접이었다.
날고 기는 수많은 정계, 재계 인사들도 창현의 앞에서는 함부로 하지도 못했고, 그들의 위세도 내세우지 못했다.
무릇 위세라는 것 자체가 언제나 더 큰 위세에 먹히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태양 앞에 반딧불과 같은 위세를 창현에게 내보여보았자 좋은 점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 그런 경험과 노련함을 갖추지 못한 젊은이였다.
혈기왕성한 나이는 물론, 언제나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빳빳한 태도를 유지하며 거만하게 살았어도 늘 떠받들어 주던 사람들 속에서만 자랐다.
그에게 처음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은 수희였고, 이제 그 오빠라는 사람은 그 위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고 싶었다.
“사실, 동생분이 다니는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썩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혈문에 많은 인재들이 있는 줄 알고 있는데 문주님의 일정을 누가 계획하는지 이번에는 미스 판단 같군요. 가족과 얽히는 관계는 늘 사람들의 입방에 오르 내리기 마련인데요.”
남자의 목소리는 제법 컸다.
그리고 어떻게보면 용감한 충고라 할 수 있었다.
학연, 지연, 혈연 중 한국 고위층에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늘 혈연이었다.
누구의 손자, 누구의 아들,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딸, 그리고 누구누구의 어떤 관계들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웃긴 것은 그 혜택 속에 헤엄치고 살고 있는 것이 남자였다. 더 웃긴 것은 아직 한국의 제도가 고위층 혈연 관계의 혜택을 아무런 문제를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여론도 한 순간이었다.
언론이란 건 늘 통제를 받기 마련이니까말이다.
알아서 기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 아직은 슬픈 현실이었다.
어쨌든,
그 모든 수혜를 받고 살았던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창현에게 용감한 충고를 하고 있다는 남자의 모습은 꽤 우스웠다.
단지,
창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었고, 실제로 주변의 시선이 남자를 달리 보는 것이 느껴졌다. 집안의 힘만 믿고 나불대는 애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아니꼬와도 현실이라는 것은 녹록지않기에 고개를 숙이던 남자의 학우들은 창현에게 정면으로 충고를 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제법 패기를 느끼고 있었다.
창현의 반응은 남자의 예상을 빗나갔다.
“알고 있다.”
“……네?”
“본좌도 알고 있다.”
창현은 피식 웃었다.
남자의 말은 주변에만 또렷히 들렸지만, 창현의 목소리는 마치 학교 전체에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간혹 어리석은 무리들이 본좌의 자비로움을 믿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
갑자기 적막이 흘렀다.
“없는 자리라고 본좌를 깔아 뭉개는 것은 물론, 나의 유일한 여동생을 가십거리로 씹어대는 인간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동안은 무척이나 바빠서 뒤로 밀었지만 이제는 그 주둥아리들을 다물게 해주려고 하니까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군.”
“…….”
그리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남자에게만 들렸다.
“애송이, 네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야. 네 할애비도 내 앞에서 그 딴식으로 고개를 빳빳히 들고 말을 하지 않는다. 한줌도 안되는 힘을 가지고 함부로 나서지마라. 네 할아버지가 내일 당장이라도 길거리에 나앉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남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이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한혈문의 강창현이라도 자신의 할아버지를……
“시험해 보고 싶다면 더 떠들어도 좋아. 내일 당장 이 나라가 뒤집히는 꼴을 보고 싶으면. 고개에 힘을 주고 싶으면 온 몸에 힘을 주어라. 그리고 더 큰 힘을 가져야지. 아무런 힘도 없는 할애비만 믿는 멍청한 애송이 주제에 본좌에게 나불거리지 말라는 말이다. 내 동생에게 한 번 더 추근거렸다가는 내일 당장 산 속에서 모가지만 빼놓은채 산짐승의 먹이가 되는 경우를 겪고 싶지 않다면.”
찰나의 순간에 쏟아지는 폭발적인 살기에 남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모두가 영문을 몰랐지만 그저 빙그레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창현이 무슨 수를 썼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불편한 점은 없어?”
“응, 아직은.”
창현은 다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먹으러 가지. 그리고 학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입방아를 찧어대는 인간들은 어떻게 처리를 해야 좋을지.”
창현은 정확하게 여선배에게 시선을 두며 말을 하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일이 일파만파 퍼진다면 더 이상 수희를 두고 가십 기사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이미 늦었다고 말이다.
그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각,
“……아무리 한혈문이라도.”
윤미의 차가운 말은 남자의 말을 끊었다.
“있지도 않은 사실로 가십을 쏟아내고 여론을 이상한 쪽으로 몰았다면 응당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너희들 따위가 없어도 언론사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독재 정권에도 없던…….”
이제는 차가운 살기까지 어리기 시작했고, 한혈문 내성에 모인 몇 개의 언론사 수장들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윤미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묘한 색기와 더불어 폭발적인 살기는 언론사 수장들의 살갗을 베어 지나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단독 행동 등 말도 안 되는 변명 따위는 듣지 않겠다. 이건 문주님의 경고이다. 여론 몰이에 당한 일반인들 역시 모두 제재를 당할 거다. 천문학적인 손해 배상을 청구 받게 되겠지. 그런 찌질이들이야 그 정도만 해도 무릎을 꿇을테니까. 하지만 원인 제공을 한 너희들의 대한 처리는 확실하게 하라는 문주님의 명령이 있었다.”
언론사 수장들은 그제야 확연하게 느꼈다.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창현에게는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뒤늦게 깨달아 수습을 하려 했지만, 윤미는 이미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럼 나가보도록. 더 이상 한 장소에 있고 싶지 않군. 특히 너.”
가장 먼저 윤미에게 반발을 했던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희 언론사가 중점적으로 문주님과 문주님의 여동생 분을 두고 말도 안되는 유언비어를 생산했더군. 아마 뼈져린 대가를 치르게 될거다. 그저 언론사가 망하는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거야.”
남자는 자신의 인생이 끝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한 처사?
-한혈문 언론사 다 섯개를 부도로 몰아.
-이례적으로 빠른 판결. 악플을 달았던 사람들 개개인당 수십 억대 소송 판결에 한혈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석고 대죄까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자극적인 댓글은 하나도 없이 자신의 의견을 정중히 피력하는 쪽으로 여론 형성
,
,
,
추후에 나가고 있는 기사들은 모두가 조심스러웠다.
“처리했습니다. 기사도 때마침 나가고 있습니다.”
밥을 먹는 도중에 일 처리가 끝이 났다는 사실은 창현은 만족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화를 끊었다.
“입방아를 찧으면 어떻게 되는지 내가 가면 인터넷을 한 번 확인해 봐.”
창현은 다시 여선배에게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인터넷을 확인하고 입을 벌렸다.
그런 그녀에 대한 신경은 아예 끄고 창현은 다시 치근거리던 남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할애비에게 똑똑히 전해라. 오냐오냐 키운 손자 녀석 덕분에 정치 인생 끝내고 싶지 않으면 내가 중국을 가기 전에 네 놈과 한혈문으로 빌러 오라고.”
본격적인 행보였다.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창현은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자비로웠던 모습에서 자신을 이제는 너무 만만히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정확하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왜 우후죽순으로 정권이 바뀌고, 독재자 출연의 빈도가 높아짐에도 세계의 대응은 예전처럼 조직적이지 못하는지말이다.
국제적 발표가 난 이후 1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완전한 무인시대였고,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무인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창현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혈문이라는 거대 문파의 수장이었다.
일본을 지부로 가지고 있는 남자, 이제는 중원 문파들조차 정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퍼져 나가면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되고 있는 자신을 거스리는 일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중국으로 향하기로 창현은 결정했다.
“명분은 있지. 고귀한 피의 계승자이니까.”
“응?”
수희가 창현의 혼잣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희 너 공주라는 것이 무슨 신분인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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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