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1 회: 전쟁과 여인 그리고 과거의 향기 -- >
호화로운 저녁상이었다.
지역 특산물만이 아니라 온갖 산해진미가 거하게 차려져 테이블 위를 가득 메워 놓았다. 끝이 아니라는 듯 음식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건 뭔가?”
윤미의 질문에 주방장은 한동안 무척이나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들지.”
식탁 가장 위 쪽 상석에 앉아 있던 창현의 말에 설난과 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보고 있는 주방장의 얼굴에 초조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오늘 그가 일생에서 가장 공들인 저녁 식사이니만큼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물론 사전에 창현이 누구인지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건 이리로.”
설난이 젓가락을 움직이는 곳에 창현은 꽤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장 얼굴에 드리운 초조함은 더욱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좋아해?”
“나름.”
아주 기본적인 나물 요리였다.
어떻게 보면 수많은 요리들 중에서도 가장 하기 쉬울 것 같은 나물 무침이었다. 식탁에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세계 각자의 모든 요리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고, 그 색깔조차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음식의 배치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듯 마치 자로 잰 것처럼 질서정연했기에 접시가 하나 창현의 앞으로 옮겨지자 틀이 조금 깨진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설난과 윤미는 이미 창현이 그런 한식 종류의 나물 반찬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밑 반찬이지만 최고의 요리사라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이 만들었기 때문일까?
태부터 달라보였다.
아주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창현을 보면서 주방장은 여전히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이제는 일을 봐도 좋아. 다 먹으면 부르도록 하지.”
“네.”
마치 중세시대의 한 장면처럼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던 몇 명의 여자와 요리사가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살짝 곁눈질로 창현을 바라본 요리사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창현은 여전히 나물과 곁들여 다른 음식들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셋만 남자 창현은 젓가락을 놓았다.
“응?”
설난이 궁금하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다 먹었어?”
창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록색깔로 빛나고 있는 요리를 보면서 더욱더 진한 미소를 흘렸다.
“알지? 천혈고지독?”
“……응?”
“당가 놈들이 최고의 독이라 자부하고 대대로 극소량만 전해져 내려오는 것. 더 이상 제조가 불가능해서 멸문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그 독.”
“!!!”
설난의 눈이 찢어지고 있었다.
윤미는 그 독에 대해 모르는 듯 했지만, 본능적으로 음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느끼고 무섭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본디 차가운 표정에 얼굴 근육을 딱딱하게 굳히자 더욱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곳을 봉쇄해. 난 가볼 곳이 있어서. 그리고 이 음식은 놓아두도록 하고.”
“내가 같이 갈게!”
“아니야, 윤미라 여기서 한 놈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잡아놓고 있어. 지금쯤 부리나케 튀고 있을 거니까.”
“……주방장입니까?”
“그래.”
“윤미는 주방장을 잡아 오도록 하고, 설난이 넌 여기를 지키고 있고.”
“알겠어.”
창현은 몸을 일으켰다.
종욱이 말해준 곳으로 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묵고 있는 온천 근처에 호텔이 있었고, 그 곳에 예상대로 당가의 당천위가 묵고 있었다. 지금 쯤 무척이나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 핸드폰 같은 수단이 있으니 자신이 먹었다는 것을 전달 받고 내일 쯤이면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라 희희낙락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주둥이를 찢어줘야겠지만.”
천혈고지독의 무서움은 바로 그 것이다.
무릇 맹독이라 한다면 먹거나, 피부 등으로 맞은 이후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칠보를 걷기도 전에 죽는다는 독이 대표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독이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지만 천혈고지독은 달랐다.
먹은 직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약 하루가 지나면 그 때부터 독이 체내에서 활동하기 시작해 일차적으로 피를 흡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피를 흡수하면서 강렬한 열기를 내뿜고, 그 열기는 용암보다 더욱 뜨겁다. 사람은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이다.
아주 소량으로도 천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악마의 독이었다.
당문이 멸문 위기에 처 해 있을 때만 사용하라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독을 창현은 아무렇지 않게 먹었고, 역시 멀쩡했다. 만독불침이라는 말은 현실에서는 꿈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 꿈을 또 현실에서 실현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창현이었다. 마법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맹독도 통하지 않는 천고의 육체인 것이다.
그가 천외천 고수이기도 하지만, 완벽한 환골탈태를 하면서 신체가 재구성되고 이미 입을 통해 독이 들어오는 순간 수 많은 땀구멍으로 독소를 몰아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볼까?”
윤미는 어느새 주방장을 잡으로 사라졌고, 설난 역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창현은 천천히 입구를 나섰다.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걷다보니 종욱이 이야기한 호텔이 보였다.
“무슨…….”
로비에서 창현을 막으려던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굳이 알아 볼 필요도 없군.”
당문 특유의 내공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창현은 계단을 이용하여 단숨에 13층까지 올라갔다. 복도에는 태극문파로 보이는 남자들이 호위를 서는 것처럼 지키고 있었다. 이내 종욱이 창현을 반겼다.
“오셨군요.”
“안에 있나?”
“……일본인, 아 현지 지부의 여자들과 있습니다.”
창현이 계집놀음을 한다고 비웃었던 당천위는 이미 소식을 듣고 성공을 확신하며 향락에 빠져 있는 중이었다. 그 향락을 즐기면서 마치 자신이 무당파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극문파 인원들을 속가라고 호위로 부려 먹고 있는 중이었다.
창현은 피식 웃으며 1302호라 쓰여 있는 문을 가볍게 밀었다.
콰콰쾅-!
“!!!”
“꺄아아아아!”
“꺄아!”
“히히힉!”
제 각기 비명 소리를 내고 있는 여자들은 벽에 부딪혀 부서진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후다닥 소리가 들리며 그녀들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서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감싸려 했다.
“아랫도리가 제법 튼실한 모양이야?”
창현의 말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당천위는 얼음이 되어 버렸다.
“내 말을 못 알 듣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약간은 위화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창현은 제법 중국어를 잘하는 편이었다.
“……너, 넌?”
“천혈고지독이라…… 몇 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걸 가지고 있을 줄이야. 당문이 독하기는 독해. 예나 지금이나.”
“……큭!”
당천위는 이내 크하하핫, 하고 웃음을 이었다.
“내일이면 녹아 없어질 놈이 기고만장하구나?”
창현이 짧게 대답했다.
“지금 당장 사지가 찢겨 뒈질 놈이 기고만장하네?”
“…….”
당천위는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무당파에서 의뢰한 일은 성공했다. 가문의 흥망성세가 걸려 있기에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계획은 완벽하게 성공했고, 자신은 당문의 새로운 주역으로써 오대 가문 중 우두머리로 우뚝 설 날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창현이 내일 죽는 것은 확실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죽는 것 역시 확실해 보였다.
당천위의 무공은 겨우 일류.
독을 제법 잘 다루기는 하지만 독공을 대성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암기술을 극한까지 익힌 것도 아니었다.
설사, 그 두 가지를 모두 익힌 암왕이라 하더라도 창현의 앞에서는 한 수조차 버티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당천위의 형인 현 당문의 가주라도 말이다. 가주의 할아버지라도 마찬가지였다.
당문 그 누구도 창현을 대적할 수 없었다.
당천위는 또다시 깨닫기 시작했다.
‘다, 당문은 끝이다!’
자신이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한혈문의 힘을 당문 혼자서만은 결코 상대할 수 없다. 창현이 죽으면 분명 당문에게 피의 복수가 가해질 것이고, 당문은 그 힘을 막아내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음흉한 무당파 장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문을 궤멸 시키고 중원 침공이라는 훌륭한 명분을 얻은 구파일방은 창현이 없는 한혈문을 쓸어버릴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개인적인 영광도, 가문의 숙원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용만 당한 것이다.
“비, 빌어먹을.”
“역시 정력이 제법이야. 이 상황에도 우뚝 솟아 있는 것을 보면.”
한창 향락을 즐기고 있었던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당천위의 모습에 창현은 이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당천위는 죽어서도 보지 못할 혈마지기가 날아갔다.
서걱-!
“……?”
이내 당천위의 얼굴에 피가 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잘려버린 자신의 성기를 보면서 당천위는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너무 추해서.”
창현은 다시 한 번 손을 휘둘렀고, 이 번에도 초승달 모양의 혈마지기가 당천위의 왼 팔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당천위의 왼 쪽 어깨가 그대로 잘려 나갔다.
“커어어억! 제, 제발!”
“재밌는 것 하나 알려줄까? 천혈고지독은 내가 만든거야.”
“……?”
초승달이 이번에는 두 개가 생겼다.
창현의 양 쪽 옆에서 빛나고 있는 붉은 초승달의 혈마지기를 보면서 당천위는 자신의 남은 오른 쪽 어깨와 다리를 동시에 부여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의 손은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여자들은 이미 방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고, 당천위와 창현만 남아 있는 호텔방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무당파는 아직도 모르나? 하긴 멍청한 구파일방이 알 리가 없지. 설난이가 친절하게 내 이름 앞에 1위 혈마 강창현, 이렇게 써줘도 모르지.”
“그, 그 무슨 말도 안되는!”
“남만에 서식하고 있는 흑전갈의 배에서 추출한 독의 일 할, 초록색 머리와 자색 몸통을 가지고 있는 오연뱀의 독니에서 추출한 독의 이 할, 당문 뒤 쪽에 있는 산에서 십 년에 한 번 모습을 드러내는 꽃매미의 더듬이에서 추출한 독의 일 할, 남도에서 살고 있는 오소리의 발톱에서 추출한 독의 일 할…… 더 ㅤㅇㅡㄻ어줘?”
“!!!”
연신 피분수가 터지고 있었지만 당천위의 얼굴에는 경악이 스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동녀의 시신에서 추출한 독이지. 안 그래? 그거 내가 만든거 맞다니까?”
악마의 독.
그렇게 밖에 불릴 수 없는 이유는 시신에서 추출하는 독 때문이었다.
그 것도 성경험이 없는 아주 어린 여자 아이의 시신에서 나오는 독이 주를 이루는 천혈고지독은 창현이 말 한 것들과 잘 조합을 한 뒤……
“3성에 이르면 피부가 짙물러지지만 포기하면 안 된다. 짙물러진 피부여야만 앞서 말한 독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4성에 이르면 드디어 시신의 독을 취급할 수 있게 된다. 같잖아 보여도 시신의 독이란 상당하다. 특히 어린 여아의 시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그 한(恨)과 더불어…… 어 때? 내가 만든 것 맞지?”
천혈고지독만을 위한 독공이었다.
당문에서도 대대로 단 한 명만 익히게 하는 악마의 무공!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당문 최고의 무공!
“내가 만든 거니까 당연히 난 해독 방법도 알고 있지. 중요한 것은 본좌에게 해독은 필요 없지만.”
당천위는 죽음을 앞두고 느꼈다.
‘아무 것도 소용이 없구나…… 구파일방은 큰 착각을 하고 있어.’
초승달 두 개가 당천위의 남은 오른 쪽 어깨와 양 허벅지로 날아갔다.
서걱-!
“정리해라. 그리고 한국에서 보지.”
“…….”
사지가 잘리고 성기마저 잘린 채 끔찍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당천위의 모습에 심약한 태극문파의 다른 제자들은 구토를 하고 있었다.
얼굴에 튄 피를 가볍게 닦아내며 복도를 걷는 창현의 뒷모습에 종욱은 느낄 수 있었다.
혈마 강세찬,
아니.
혈마 강창현의 재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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