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1 회: 세력 -- >
“뭘 꼬나 봐. 용신 이 번에는 다를 거라 믿는다.”
창현은 말과 함께 실비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마법이면 모두가 무인도로 갈 수 있겠지?”
“…….”
잠시 멍한 얼굴로 창현을 바라보던 실비아가 이내 오호호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살마 여기 벌레 같은 다른 인간들을 위해 나보고 그런 수고를 하라는 거야?”
“너도 진심으로 나와 승부를 내고 싶었던 것 아니었나?”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어. 하지만 만약 네가 졌을 때 죽여달라고 하지 않고 깔끔하게 나의 노예가 되는 거야 어때?”
창현은 두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호호호홋! 자신감이 넘치네. 좋아. 평생을 내 가랑이 밑에서 살게 될 거야. 으아, 생각만해도 짜릿 한 걸? 네가 노예가 되면 난 오줌을 정말 많이 쌀 것 같아. 네가 꿀꺽, 꿀꺽 마시게 될 테니까.”
윤미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졌지만, 창현은 슬며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지난 번과 같이 억제된 기운이 아니라 전력을 다하게 된다면 경상도는 쑥대밭이 될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먼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알 수 없는 섬에서 싸우는 것이 일반인들을 위한 길이었다.
그리고 윤미는 창현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날 믿어라. 내가 너의 주군이다. 널…… 계속해서 곁에 두고 싶다.’
마치 창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럼!”
실비아가 이내 캐스팅을 시작했다. 상당한 거리였고, 용신과 괴물까지 있었기에 이례적으로 캐스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피슉-!
그들은 곧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피슉-!
다시 나타난 곳은 하얀 모래사장과 바위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푸르른 바닷물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있는 무인도야. 사실 여기 좌표도 있었어. 혹시 모르지만 만약을 위해서 세팅해 놓은 곳이거든.”
“…….”
실비아는 이내 다시 간드러지게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처럼 갑자기 꽁무니를 빼는 일은 없을 거야!”
“언니, 저 자식을 죽여 버려요!!”
“내가 왜?”
“……?”
나미코가 말을 잃었다.
“내가 왜 더러운 계집년아. 그만큼 해 줬으면 되었지 뭘 더 바래? 방해하지 말고 저 년이나 죽여. 가뜩이나 귀찮아지고 있는데 짜증나게 하고 있어.”
“어, 언니?”
나미코의 눈에 떠오르는 것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호호호홋!”
실비아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창현과 실비아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챙-!
윤미는 멍하니 있는 실비아의 한 팔을 자르기 위해 순식간에 움직였지만 괴물 때문에 막히고 말았다. 육중한 덩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뭐 하나 용신?”
윤미의 나지막 속삭임에 하늘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곧 수직하강 하는 용신이 강하게 괴물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콰앙-!
백사장에 모래가 움푹 패였다.
괴물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저 자식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죽여버려!!”
나미코는 윤미와의 대결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녀가 강해보이기는 했지만, 자신 역시 절정의 벽을 깨고 있는 중이었다.
괴물의 가장 최우선은 나미코의 보호였지만, 결국 그녀의 강력한 술법을 깨지 못하고 용신을 향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언니가 저렇게 변한 것은 다 너희 탓이야! 다 너희들만 없으면 언니는 다시 예전처럼 날 예뻐해줄거야!!”
나미코가 말과 함께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곧 나미코의 몸이 파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보다 밝은 윤미의 푸른색 내력이 검에 덧씌워졌다.
“넌 주군께 씻을 수 없는 무례를 저질렀다. 사지를 자르고, 눈알을 뽑아내고, 입술을 도려내고…… 가장 비참하게 죽어갈 것이다.”
윤미가 말과 함께 사라졌다.
백사장의 모래가 다시 튀었고, 술법으로 인해 바위보다 단단해진 나미코의 손바닥과 윤미의 검이 맞부딪치고 있었다.
채앵-!
윤미는 당황하지 않았다.
반대의 손에 잔뜩 내력을 주입했다.
바다의 푸른 기운이 모두 자신에게만 있는 것 같았다. 공간의 지배력이 한층 강해졌고, 나미코와 윤미의 주변에 흐르는 자연의 기운이 모두 윤미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속박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나미코는 개의치 않았다.
하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력의 힘이 전신에 충만한 힘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더 이상 술법을 외우는데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술법은 이루어진다.
가주만큼은 아니지만 술법사로써의 최고의 경지에 나미코는 분명 발을 디디고 있었다.
챙-! 챙-! 챙-!
나미코와 윤미 사이에서 수 십번의 교전이 오고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우세를 보이는 것은 윤미였다. 그녀는 부드럽게 내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검에서 나오는 푸른색 기운은 더욱 선명해져 가고 있었다.
“크윽-!”
강화 술법이 아니었으면 어깨가 그대로 잘려 나갔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미코는 입술을 더욱 질끈 깨물었다.
“언니는 돌아올 거야!!”
나미코의 입에서 곧 괴상한 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다. 용신과 바다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는 괴물처럼 온 몸에 초록색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건?”
윤미가 얼굴을 찌푸리며 창현과 대치하고 있는 실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마치 마지막에 싸우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윤미와 용신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실비아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냥, 그 벌레 같은 계집의 몸에 여러 가지 것들을 걸어 보았어.”
“…….”
자신과 비슷한 푸른색 내력!
일본 무인들에게서 푸른색 내력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무공에 따라 내력의 색깔이 바뀌기는 하지만 무공보다는 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깔이 따로 있었다. 창현처럼 붉은색깔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설난처럼 개나리색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무인들은 푸른색 계열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나미코처럼.
“……역시 그 예상이 맞았군.”
“크흐흐흐! 죽여주마! 언니를 빼앗아간 쓰레기들! 더러운 연놈들 모두 죽여 버리겠어!”
-그거 알아? 넌 일본에 팔려 온 한국인 어머니와 술법문 가주의 사생아야.
머릿속에 천둥처럼 울려퍼지는 실비아의 목소리에 나미코가 걸음을 멈춰버렸다. 윤미는 이미 달려가고 있었기에 이제는 진해진 검강으로 나미코의 어깨를 가르고 있었다. 무황이 보여주는 초식과 비슷했다.
찌르는 자세로 나아가다 검을 번쩍 들고 그대로 베어버리는 것이다.
보법의 유연함, 동작의 부드러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는 힘의 강력함까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서걱-!
“…….”
초록색 진물이 나미코의 잘려진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백사장의 모래는 녹아내리고 있었다. 땅으로 점점 스며들고 있었지만 땅은 끝을 모르고 파이고 있었다. 얼마나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는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미코의 시선은 실비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자신의 팔이 잘린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몰랐구나? 너도 알다시피 난 론즈 가문의 사람이야. 그들이 취급하는 정보는 모두 알 수 있지. 그런데말이야 나미코…… 거기서 술법문 가주와 한국에서 팔려 온 여자 사이에서 여자 아이가 한 명 태어났고, 그 여자를 가주가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어. 넌 가문에서 자라면서 늘 천대 받았잖아? 거기다 가주는 단 한 번도 사무라이로써의 너의 명예를 지켜 준 적도 없었고.”
“어, 언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네가 더럽다고 죽인 그 수많은 한국인들과 너는 같은 핏줄이라는 거야. 호호홋!”
“거, 거짓말…… 가주님은…….”
“가주는 널 더럽고 수치라고 여겼어. 그러니까 그 천외천 고수가 할복을 하면서까지 너에게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
“……그, 그럴 리가, 그, 그럴 리가 없어!”
윤미는 돌아가는 상황에도 냉정했다.
그녀의 검에서 반 달을 그리는 검강이 다시 한 번 나미코의 왼쪽 어깨로 날아갔다.
서걱-!
한 쪽 팔 마저 잘린 나미코가 이내 자신의 몸을 돌아다 보았다.
“응? 꺄아아아아!”
뒤늦게 윤미의 공격을 모두 허용하고 팔이 없다는 사실에 나미코가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윤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나미코에게 도약 했고, 이 번에는 횡으로 검을 그었다.
서걱-!
“커어어억-!”
두 다리가 잘리면서 나미코가 백사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흉측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몸에서 초록색 진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며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챙-!
눈을 향해 날아가던 윤미의 검강이 실비아의 실드에 막히고, 그녀가 나미코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언, 언니!”
“괜찮아?”
“……언니 거짓말이지? 그렇지? 언니는 날 동생이라고 했잖아.”
“그럼, 나미코는 언니 동생이지.”
“언니! 언니! 흐흐흑!”
나미코의 흉측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독성으로 녹아내려 가고 있는 얼굴은 끔찍했지만, 실비아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더러운 벌레년 그래도 한동안 재미는 있었어.”
“어, 언니?”
“네가 매일 같이 그랬잖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더럽고 미개하다고. 근데 너 역시 여기 사람의 핏줄인걸.”
“그, 그럴 리 없어, 언니! 잘, 잘 못 된 정보야 크억!”
나미코는 말과 함께 피를 토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실비아의 얼굴과 몸에는 한 방울도 묻지 않고 투명한 막에 튕겨나가고 있었다.
“사실이야. 너의 푸른색 마나가 증명하잖아. 일본 무인들의 대부분은 갈색 계열의 마나인걸.”
“……어, 언니.”
“이제 그 더럽고 미개한 입으로 언니라 부르지 마, 짜증나. 넌 더 이상 재미가 없어.”
“어, 언니?”
“동생은 무슨? 벌레 주제에 한동안 착각 하고 열심히 뛰어주어서 어느 정도는 고마워.”
이 것이었다.
나미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경악이 스치고 있는 눈빛, 그리고 마지막으로 애원하는 눈길로 실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으으윽!”
실비아는 신음 소리와 함께 나미코의 목을 꺾어 버렸다.
우드득-!
그녀가 입은 스키니 바지가 물들기 시작했다.
“하윽, 잠깐만 기다려줘 예비 노예! 아으으으으!”
바지는 사타구니 부분만이 아니라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까지 퍼지고 있었다.
“하악! 하아아악! 이거야! 벌레 같은 년 덕분에 오랜만에 한 번 또 느끼고 싸버렸어.”
실비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내 창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지…… 네가 내 가랑이 밑에서 살면 매일 같이, 계속 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러니까 그만……!”
창현이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콰아아앙-!
윤미가 서 있던 자리에 폭음이 울려 퍼졌고, 실비아의 웃음 소리가 함께 들리고 있었다.
“꺄하하하하! 역시 대단해. 그 걸 그 순간에 피해버려? 공간을 가르는 마법인데?”
“주, 주군.”
“용신과 함께 피해 있어라.”
“……네.”
윤미는 고집을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왔었던 그 날, 창현이그랬던 것처럼 그를 꼭 안았다.
“반드시 돌아오시라 믿습니다. 그리고…….”
윤미가 아주 나지막하게 창현의 가슴에 안긴 채 말했다.
“사모합니다. 언제까지나 주군 곁에 있고 싶습니다.”
창현은 윤미의 머리를 살짝 헝클였다. 이미 괴물을 너덜너덜하게 찢어 버린 용신이 윤미를 태우고 떠났고, 동해의 먼 바다에 있는 알 수 없는 이름의 무인도에는 실비아와 창현만이 남았다.
“……은근히 오글 거리는구나?”
“넌 다르다 계집.”
창현은 씨익 웃었다.
“네년은 살아 있다는 걸 저주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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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하는 칙힌이 먹고싶은 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