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3 회: 세력 -- >
“굳이 움찔 거리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돌아가기에는 무엇인가 아쉽겠지만, 초대에 응해 주었으니 분명한 보상을 주도록 하지.”
창현이 말과 함께 내력을 끌어 올렸다.
부드러운 순풍이 불었다.
지금껏 창현이 일으켰던 내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운이었다. 붉은 혈마지기가 아니라 투명한 빛을 빛내고 있는 내력이 좌중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력은 무인들도, 일반인들도 한국인이라면 모두 익숙한 기운이었다.
“서, 성지의 기운?”
“경, 경복궁의 기운이다!”
몇, 몇 장문인들이 그 내력의 정체를 곧바로 깨달았다.
종욱은 그 말에 손을 떨었다.
‘이 바보들…… 이 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나다. 지금 저 인간은 성지의 기운을 자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비단 종욱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곧바로 장문인들은 창현이 내력을 좌중에게 감싸고 있는 이유를 깨닫고 있었다.
한국 무인들은 무공이 탄생한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창현의 출현과 더불어 성지의 결계 개방, 그리고 이어진 성지의 버프라 불리는 압도적인 내력의 상승 효과! 그 것은 기존 무인들은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무공에 입문하는 것을 한결 쉽게 만들고 있었다.
무인 뿐이 아니었다.
한국인들은 점차 건강해지고 있었고, 운이라는 그 알 수 없는 신적인 영역의 부분에서 상당한 혜택을 보고 있었다.
무릇 기세란, 여러 가지 효용이 있기 마련이다.
기업인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도 모르게 경복궁 기운을 발산하게 되고 그 것은 그 테이블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간다는 의미였다.
이미 한국의 이미지가 점차 초강대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기세는 정말 유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내력 상승을 좀 더 상세하게 다루자면, 한국 무인들 중 일류로 발돋움하는 무인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이류까지는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충분히 도달 할 수 있지만 일류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환골탈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깨달음을 거쳐야 가능했고, 무공의 고하 역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대문파에서 고수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무공은 대대로 전해져 오면서 무척이나 강하니까.
성지의 버프는 그런 상식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무공의 영향 없이 무인들의 재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충만해지는 성지의 기운 즉 자연의 기운으로 인해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금세 실력이 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엄청난 힘을 창현이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쥐새끼들에게 혜택 따위는 없다. 내 집의 기운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지.”
“!!!”
창현은 씨익 웃었다.
“모두들 돌아가 봐.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문파들은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파들은 대비를 철저히 해두는 것이 좋을 거야.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도 좋고, 론즈 가문에 가서 무릎을 꿇고 지원을 요청해도 좋다. 정부에게 손을 내밀어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창현은 다시 세 곳으로 시선을 탓,탓,탓 주었다.
그 세 명의 장문인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내가 너무 자비로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국민의 목숨을 팔아먹는 쥐새끼들에겐 자비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
창현은 말과 함께 몸을 돌렸다.
등 뒤로 목소리가 다시 흘러 나왔다.
“말코 도사 녀석과 그 스승은 남도록 하고.”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들은 곧 발걸음을 돌렸다. 일그러졌던 세 명의 장문인들 역시 순식간에 표정을 수습하고 근정전을 나서고 있었다.
윤미가 천명문 장문인과 그 제자를 이끌고 근정전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창현은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제자에게 정말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저 말코 녀석은 자신의 상태 정도는 아는 것 같은데…….”
“살인사건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 결과는 멸문을 시키겠다는 말이 전부였네. 그럴 거면 뭐 하러 불렀지? 가서 멸문 시키면 그만일 것을. 상당히 허세를 좋아하는 모양이야.”
윤미의 표정이 급격하게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설난 이외에 창현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도 처음일뿐더러, 그의 행동을 타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사 청년은 그럼에도 이죽거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네놈이 한 짓은 그저 내가 힘이 있으니 알아서 기라는 것이다. 결국 넌 국민들이 죽어나갈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듣기로는 일본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었다며? 일본을 정리하고 식민지화 했다고 국민 영웅 대접을 받으니 정말로 영웅인 줄 아나? 고통 받는 일본인들을 이용해서 영웅이 되었지만 결국 그들의 고혈을 빨아 먹고 있을 뿐. 한혈문의 성세 역시 그런 고혈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무공이 높으면 무엇을 하나? 생각하는 것이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는데. 강한 무인이라면 그만큼의 책임이 있는 법이다. 원시천존이 네게 그 강함을 준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 해 봐. 고귀한 피가 어쩌고저쩌고 떠들기 전에 네가 왜 그 피를 이었는지 생각을 한다면 우리 장문인에게 그토록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천명문이 천명각이 되니 어쩌니 할 수 없을 테니까.”
윤미의 손에 푸르른 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아, 그만해.”
창현은 손을 저었다.
‘제법 당돌한 놈이야.’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사 청년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힘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 시대는 힘이 있으면 도리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니까 힘을 추구하는 것 같단 말이지. 말코 도사의 생각은?”
“…….”
“뭐 네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아. 내가 그러라고 하면 그러는 것이다. 그게 무인들 세계의 법칙이니까. 그러니까 없는 단전에 연연하지 말고 강해졌어야지. 네가 단전이 없는 이유는 한 번이라도 생각 해 보았나? 혹시 왜 그따구로 태어났는지 원시천존이나 원망하며 살지 않았어? 왜 나는 단전이 없고, 왜 우리 사부는 이토록 약한 나를 끝까지 붙들면서 그 개고생을 했는지 생각은 해 보았어? 그저 그렇게 사부를 무시하고 사문을 무시한 인간들에게 분노만 불 태웠을 뿐, 너 역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잖아.”
“……난.”
창현은 다시 손을 저었다.
“네 대답은 나중에 듣기로 하지. 윤미, 내력을 거둬들이고 저 녀석에게 쓸 만한 곳을 내 줘.”
“난 당신의 제자가 된다고 한 적이…….”
“뭔 개소리야. 내가 언제 너를 제자로 삼는데? 사부가 있는 주제에 왈왈 잘 짖는군.”
도사 청년의 몸이 움찔 떨렸다.
“당분간 솔이한테 저 녀석을 맡겨둬. 다른 각주들은 바쁘니까. 그리고 장문인.”
“……네.”
“너는 지금 강원도에 있는 무황에게 가보도록 해.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 것 같으니 딱히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무황은 알아서 너에게 여러 가지 말을 해 줄 것이 분명하니까. 본좌 역시 이제는 바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너희들을 만나도록 하지. 그리고 말코 도사, 그 때까지 대답과 더불어 네 몸에 왜 단전이 없는지 생각해보도록.”
둘은 말없이 몸을 돌려 근정전을 나갔다.
윤미가 말코 도사를 내각 인원 한 명에게 맡겼고, 창현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시각,
각 문파로 돌아가는 장문인들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해졌다.
창현이 성지의 기운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준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진정한 그 곳의 주인이며 한혈문은 한국 최고의 문파라는 사실을 무력 시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무인이라 일컬어지는 천외천의 경지!
그 본신의 무력도 무섭지만, 정말 그가 성지의 버프를 한혈문 내에만 집중을 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은 무섭게 강해질 것이고, 추후 천외천 고수 역시 한혈문에서 배출 될 것이 분명했다.
경제적 입지는 일본의 지부화로 엄청나게 높아졌고, 모든 기업과 정부조차 한혈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가 한국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다.’
모든 장문인들에게 똑같이 든 생각이었다.
한국 문파 특성상 중국의 속가가 많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본파에서 내리는 명령 비슷한 것을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혈문의 기세가 워낙 강대해 본파에서도 몸을 사리고 있지만, 구파일방이 언제 본격적으로 움직일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멸문을 공언한 세 문파.
그들의 머릿속에는 그 세 문파의 정체 역시 상당한 의문으로 남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각주님!”
“서두르는 것이 좋겠네!”
무황은 말과 함께 번개처럼 사라졌다.
충분히 족적을 남기며 경공을 펼치고 있었기에 속도 자체는 따라 잡을 수 없지만, 동이각 각원들 역시 무황의 뒤를 따를 수 있었다.
‘무서운 것들이다. 그리고 결코 용서하면 안 될 것들이기도 하고…… 주군께서는 자신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들을 멈추지 못하면 죄 없는 국민들의 희생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무황은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을 돕는 한국 문파들을 색출하기 위해 서울로 돌아간 창현의 빈자리가 새삼 느껴지고 있었다.
강대한 기운이 살짝 퍼졌던 것으로 보아 이미 일을 끝냈을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실제로 그랬다.
실비아는 창현이 보란 듯 자신의 기운을 현장에 남겨 두었으니까.
“……각주.”
“따, 딱히 그 빌어먹을 녀석이 할아버지를 아껴서 함께 가는 것은 아니에요. 나 역시 그 마법사를 한 번 보고 싶으니까.”
무황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보다 훨씬 오래 산 설난이었지만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참으로 정겨웠다.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 같네.”
무황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막강한 기운이 퍼진 곳까지는.
곧 설난과 무황의 눈에 두 구의 시체와 더불어 붉은 혈흔으로 뒤덮인채 히히 거리고 있는 나미코의 얼굴…… 그리고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옅은 미소를 그리며 바라보고 있는 실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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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ㅅ..금단 현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