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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131화 (131/170)

< -- 131 회: 세력 -- >

보고서를 읽는 창현은 이 일이 생각보다 여러 사람들의 이기적인 이익이 끼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한 살인 사건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단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론즈 가문인가?”

“그렇습니다.”

배첩을 전부 돌리고 온 윤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문파가 도심으로 진출 해 있는 지금 직접 경공으로 날아다니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내는 윤미가 배첩을 돌리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중간 중간 대접을 하려는 문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윤미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창현에게 곧바로 돌아왔다.

‘함께 있고 싶으시다고 했으니까.’

잠시 얼굴을 붉혔지만 윤미는 창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연은 바쁜 와중에도 참 조사를 많이 했나 보군.”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히 수연은 정부 기관에 대한 정보가 설난만큼이나 많았기 때문에 기존의 경험과 설난의 정보력, 그리고 한혈문에게 들어오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합해 이 번 사건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창현에게 보고서 형태로 올린 뒤였다.

창현이 보고 있는 것은 그 보고서였다.

“론즈 가문의 실세가 상당하긴 하군? 주한 미군도 얽혀 있잖아?”

수연이 바라보는 관점은 바로 주한 미군 문제였다.

최근 주한 미군의 필요성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년 막대한 예산이 주한 미군에게 들어가고 있는 실정이고, 성지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면서 한국 무인의 숫자가 늘어나고 기존 무인들도 강해지고 있었다. 그 것은 곧 국방력의 강화를 의미했고(물론 북한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 한국은 한혈문이 있으니까) 현대 전쟁에 있어 군대의 효용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금 각국은 군대보다는 무인이나 능력자 육성에 훨씬 더 많은 자금을 들이는 편이었다.

슬슬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로 돌리자는 의견이 강해지고 있는 판국에 확실히 주한 미군은 전력 낭비라 할 수 있었다.

예전이야 그들이 갖는 전쟁 억지력에 반발 하기는 힘들 것이다.

진보, 보수 상관없이 적어도, 적어도 군대를 다녀 온 한국 남자라면 주한 미군이 갖는 전쟁 억지력과 미군이 갖는 전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요악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벽하게 변해버렸다.

그런 필요악을 떠안을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주한 미군 역시 슬슬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전처럼 나대는 행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지만, 요새 큰 사건이 빵빵 터지고 있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론즈 가문은 그 주한 미군으로부터 일어나는 여러 가지 경제 효과를 누리고 있는 가문이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한국 정부와 함께 그 예산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문에서 군대에 예산을 대고 있다는 것은 그 가문의 실세가 얼마나 대단하고, 자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국 정부가 꼭 강력한 가문이라서가 아니라 론즈 가문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혈문을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했다.

“그들이 치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오히려 치안을 해치는 입장이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보수층 시선을 노리고 혼란을 야기한다? 확실히 그럴 듯 하군.”

윤미도 보고서를 읽어 보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여론에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100여명을 죽인 사건은 희대의 사건이고…… 지금까지 그런 큰 사건들은 대부분 북한이 그 배후로 지목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번 주인님께서 그 집돼지들을 정리한 일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윤미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한혈문과 일본 10대 가문의 충돌 과정에서 일본 쪽에 붙고, 경복궁 주변 땅 반환 소송에 참여 했던 국회의원들이었다.

그들은 창현에게 손수 징벌 당했다.

무인의 전쟁에 끼어들었다는 아주 멋진 명분이 있었으니까.

그 수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와 비슷한 세력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줄은 창현은 잘 몰랐다.

“당장 대통령부터 그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들에게 주인님은…….”

“최악의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군. 그래서 방문자들 중, 정치를 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았군. 하지만…… 내 눈에 아직 거슬리지 않고 있을 뿐이지 그 것들이나 다른 것들이나 집돼지인 것은 마찬가지야.”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창현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지지율이 급격하게 상승을 하면서 역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그가 정치권에 진출하지는 않을까? 하는 말이었다.

창현은 전혀 생각이 없었다.

“자 그럼 대충 그림을 그려보면 우리나라에서 나를 꼴 보기 싫어하는 놈들이 있다. 그런데 그 놈들이 지들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까 론즈 가문을 끼어들게 했다. 그 과정에서 주한 미군 문제 역시 해결 하겠다고 론즈 가문에게 딜을 했을 것이 분명하겠지? 공짜로 일을 처리 해 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 가문 역시 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주한 미군으로부터 가지고 있던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론즈 가문은 마법사를 보냈고, 누군가를 조종해서 살인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연히 날 꼴 보기 싫어하는 놈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소행이라 여론 몰이를 시작하고 날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 마법사의 흉계에 꽥 하고 죽어 버리면 다행이고, 설사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를 무능력자로 만들고 내 이미지를 악화 시킨다. 뭐 대충 이런 것인가?”

“……아마도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측인 것 같습니다.”

“이 새끼들 봐라?”

창현은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을 수연의 보고서에서 집약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은 그 강한 마법사와 살인자에만 주목하고 있었는데 수연은 그 살인이 벌어지고 있음으로써 이득을 얻게되고 있는 세력과 점차적으로 이득을 얻게 될 세력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론즈 가문의 힘!

그 것은 결코 만만한 힘이 아니었고, 당장 그 마법사만 해도 창현과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에 수연은 지난 날 정리 된 국회의원들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있었다.

“그들이 밀어주는 문파들이 있다?”

창현은 이내 큭큭, 거리기 시작했다.

“윤미.”

“네.”

“그동안 내가 너무 온화한 이미지만 구축 했던 것 같아. 나 혈만데.”

“……주인님.”

윤미의 부름에 창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로써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일 것이 분명한 문파 모임이 상당히 중요해졌군. 그들 중 가려내야 하니까. 당장 오늘 저녁인데 시간이 빠듯해.”

“……수연 각주와 함께 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측 가지고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창현은 적어도 명분이라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윤미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쥐새끼들이란 원래 본능적으로 튀어 나오는 법이니까.”

창현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가 지기도 전에 경복궁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초대장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당장 경복궁으로 모이라는 소리와 진배없었다. 한국 문파 중에서 한혈문의 그 소집 명령을 어길 문파는 단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았다.

“젠장, 장문인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목소리를 낮춰라.”

10대쯤 되었을까? 도사복을 입고 있는 청년 연신 툴툴대고 있었다.

“차기 장문인, 지금이라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눈꼬리가 찢어진 뱁새눈 중년인의 말에 도사복을 입은 청년 홱 시선을 돌렸다. 이내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장문인의 시선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사부한테 핀잔을 받아야 인사하는 싸가지는 여전하군.”

도사 청년은 주먹을 쥐었지만, 뱁새눈의 중년인은 비릿한 웃음을 이어 머금었다.

“이런! 경지도 전혀 오르지 않았잖아?”

주먹이 점점 떨렸다.

“오랜만이군.”

그 주먹이 앞으로 나가지 않은 것은 시기적절하게 나서는 도사 청년의 장문인 덕분이었다.

“그래. 문파는 어떤가?”

“여전하지.”

“에잉, 그 코딱지보다 작은 문파를 뭐 하러 아직까지 붙들고 있나? 제자라고는 저런 싸가지 없는 녀석 밖에 없고. 그러지 말고 내 문파에 와서 일 좀 도와달라니까. 자네라면 섭섭지 않게 대접해준다는데, 친구 좋다는 것이 뭔가?!”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도사 청년이 기어이 한 마디 했지만, 뱁새눈의 사나이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 온 제자들이 우리 문파의 3대 제자들일세……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자네보다 약해 보이는 제자는 한 명도 없구만?”

“……그 이야기는 그만 하도록 하게. 이 아이 역시 많이 노력하고 있고, 최근에는 제법 성취를 이뤘으니까.”

“고작 이류도 문턱도 넘지 못하는 쓰레기를 데리고 차기 장문인? 자네야말로 그만하게. 그건 문파를 지키는 고집이 아니라 아집에 불과해. 보게, 오늘 여기 온 문파 중 자네 문파보다 못한 문파가 있는 가? 산 속에 틀혀 박혀 무공이나 익히는 것은 다 옛 이야기야. 아니, 어쩌면 자네들처럼 사는 것이 진정한 무인의 길이라 할 수 있어. 그렇다면 말이야…적어도 성과는 보여야 하지 않을까? 저런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네라도 말이야!”

뱁새눈의 남자가 살짝 기세를 일으키자 도사 청년의 장문인이 밀려났다.

꾀죄죄한 옷을 걸쳤기에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병색이라도 짙은 것일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푸석해보였다. 도사 청년은 황급히 장문인을 부축했다.

“사부님!”

“이놈, 밖에서는 장문인이라 부르라 하지 않았더냐.”

“……뭐 하시는 겁니까.”

“쯧쯧, 그저 주어 온 아이에 대한 정으로 단전조차 없는 쓰레기에게 차기 장문인? 하긴, 붙어 있는 제자가 저 녀석 하나 밖에 없으니까! 내 말 잘 생각 해 보게 친구, 난 적어도 아직까지는 자네의 능력정도는 높이 사고 있으니까. 크하핫!”

뱁새눈과 그를 호위 하듯 따라왔던 그들이 떠나자 경회루 부근에는 도사 청년과 늙은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안쓰러움이 물들고 있었다.

“가자.”

“……돌아가요.”

“우리도 배첩을 받았느니라!”

“그 사람은 우리 따위는 알지도 못한다고요! 한국에 있는 문파가 전부 받은 것 모르세요? 여기 더 있으면 비웃음만 더 당할 뿐이에요.”

“배첩을 받았고, 난 배첩을 전해준 그 각주라는 여인에게 참여 한다고 약속을 했다.”

“하!”

도사 청년은 답답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내 굳게 결심했다.

‘그래 그 개새끼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문파는 이제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나 때문에 사부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보다 늘그막에 자리 하나 얻어서 좋은 것 먹고 사시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지.’

청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장문인은 청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허허, 이제 내 생각도 하는 것을 보니 다 큰 모양이구나.’

청년은……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때, 경회루는 물론 경복궁 전체에 모여 있는 각 문파들의 주요 인물들은 한혈문 안내 인원을 만날 수 있었다.

장문인급과 그 외 직급 제자, 또는 장문인급과 그 외 한명.

창현이 주최하는 모임은 근정전 뜰에서 열렸고, 그 곳에 갈 수 있는 인원은 문파당 딱 두 명으로 제한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굉장한 인원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이 곳이 아니십니다.”

거의 정문에 가까운 맨 끝 자리에 있던 도사 청년과 장문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윤미였다. 도사 청년은 시선을 돌렸다. 그녀에게서 나오고 있는 염기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는 다른 문파의 장문인 제자급들과는 확실히 다른 태도였다.

“……무슨 말이십니까?”

“문주님께서는 각 문파에 따라 자리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명문의 자리는 이곳이 아닙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장문인과 도사 청년은 윤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곧 뱁새눈 남자를 지나쳤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한 눈에 보아도 이 자리 배치는…… 지금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순이었다.

가장 앞에 있는 것이 바로 태극문파의 종운이었으니까.

그리고 청명문은 그 중운보다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창현의 바로 앞자리였다.

“이, 이게 대체…….”

넋을 잃은 도사 청년을 두고 윤미는 둘을 두고 계단을 올라 말했다.

“문주님께서 나오십니다.”

이내 창현이 등장했다.

“모두 본좌의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행사 전에 천명문의 장문인.”

“……나요.”

중년인이지만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천명문 장문인의 모습은 추레했다. 당연히 창현의 차가운 눈빛을 감당할 수 없었다. 뱁새눈 중년인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맨 뒷줄에서 고소를 머금고 있었다.

“어째서 성지의 주인인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지? 너희들은 이제부터 천명각 소속이다. 제자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장문인이 잘 설명하도록 하고. 그리고 호오? 말코, 넌 이따 나랑 따로 봐야겠군.”

“주인님?”

윤미조차 궁금해했다.

“이거, 이거, 내 후계가 없어서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창현의 한 마디에 엄청난 혼란이 근정전 뜰 앞을 덮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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