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 현대 재림기-112화 (112/170)

< -- 112 회: 집 주인 혈마 -- >

모니터를 통해 보이는 얼굴은 익숙했다. 바로 이군호 의원이었다.

“네, 여론을 그렇게 몰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어, 아 참 이번에 너희 미개한 것들이 성지라 부르는 그 쪽 땅을 찾으려 한다고?”

“선조께서 충성을 바치고 얻은 땅인데 당연히 돌려받아야죠.”

“자네들은 정말 그런 면은 철두철미하군.”

“제법 시끄러울 텐데…잘 수습할 자신이 있나?”

“그러라고 북한이 있는 거니까요.”

“반백년동안 잘 써먹는군.”

이군호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보 총리와 독대를 하면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 받았다. 언제나 자신들을 깔보고 미개하다 하지만 딱히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한 번만 고개를 숙이면 따라 오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놈 정리는 그 쪽에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조선인 한 명 제거하는 것에 그렇게 큰 신경을 쓸 필요는 없네. 이만 끊도록 하지.”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는 이군호 의원이었지만 아보 총리는 그의 기름진 목소리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띠릭-!

화면이 꺼지자, 아보 총리는 인터폰을 눌러 비서를 불렀다.

“차, 한잔.”

“네.”

육감적인 엉덩이를 흔들며 다시 의원실을 나가는 비서를 보면서 아보 총리는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똑똑-!

금새 노크가 다시 들려왔고, 문이 열렸다.

“…넌 뭐지?”

아보 총리는 처음 보는 얼굴에 책상 밑에 있는 경보 버튼을 재빨리 누르려했다.

“움직이면 안 되지, 총리님.”

서늘하게 느껴지는 칼날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목에 닿고 있는 것을 느끼며 아보 총리는 책상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모를 보고 뽑은 자신의 비서와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여자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청순함 속에서 스치는 살기에 아보 총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자의 앵두 같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팔자 좋아? 아직 소식이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나와 창현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긴 하나봐.”

설난은 진한 미소를 이어갔다.

곧 그녀의 눈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녀의 경지를 잠시 언급하자면 그녀는 어떤 면에서 보았을 때 현재의 창현보다 더욱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본디 그 옛날에도 창현에게는 밀렸지만 상당한 무공을 가지고 있었던 설난이었다. 그 기억을 잃지 않고 인위적으로 죽음을 맞으면서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았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그녀는 언제나 지켜보았고, 그 속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창현이 본디 가지고 있던 술법은 물론, 무공은 몇 단계나 더욱 발전했으며 무대를 옮겨 서양에서 주로 사용하는 마법까지 배웠다. 100년을 살아도 끝이 없는 학문이 마법과 무공이었지만 그녀 역시 창현 못지않은 천재였다.

비록 육체가 다른 곳에 있고 귀의 상태로 여기저기 옮겨 다녀 그 두뇌가 많이 퇴색하기는 했지만 본디의 경지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7서클만 되어도 초절정 고수쯤은 쉽게 죽일 수 있는 것이 전투형 마법사들이다.

유일무이한 천외천 고수가 8서클이었고 그녀가 랭킹 1위에 올라있는 것만 보아도 기존에 소설 속에서나 있었던 마법사들의 대인 전투력과는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투형 마법사들은 일 대 일 전투 많이 아니라 광역 마법을 통하여 한꺼번에 많은 무인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이 시대 최고의 무인들이었다.

어쨌든, 설난은 창현이 가지고 있었던 술법에도 통달했고, 무공도 초절정을 넘은 상태였다.

그리고 8서클은 물론 그 위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과 무공은 동시에 익힐 수 없지만 그녀는 육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귀 상태로 있었기에 선천지기의 양을 막대하게 늘리면서 심장에는 고리를 그리고 중단전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창현이 다시 올 것을 대비해 육체마저 오랜 세월 동안 무리 없이 자신의 경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일본은 대 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창현은 순차적이고 순리적인 것을 택했고, 전 국민을 학살하는 것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했다.

“어쩌면 그 것이 더 악독한 것일 수도 있고…당신에게는 더 큰 형벌이 될 수 있겠지만. 하여튼 악독해.”

붉어진 눈을 보는 아보 총리의 눈빛이 점점 풀려가고 있었다.

****

“후쿠시마?”

“네, 방사능으로 말이 많은 곳입니다.”

창현은 이내 기억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곳에서 이토록 강대한 기운이라…용신 너도 뭔가 느껴지나?”

“…크릉.”

용신을 눈을 반짝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창현과 한혈문 인원들은 무력문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는 후지산을 둘러싸고 있는 군 무인들을 무시한 채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역시.”

이미 한국에서부터 남쪽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던 창현은 이곳에 용신을 타고 온 뒤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설난에게 내린 명령은 아보 총리의 암살이나 납치가 아니라 아보 총리의 세뇌였던 것이다.

10대 가문 중심으로 일본의 정국이 흘러가고 있고, 그들은 독재라고 할 수 있을만큼 강력한 정권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역할에서 가장 중추적이었던 것이 술법문과 무력문 두 가문의 가주들이었다. 천외천 고수를 두 명 이상 보유한 나라는 일본과 미국이 유일했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충분히 국민들의 여론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가뜩이나 국제적 발표 전에도 많은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었던 아보 총리의 출신이 무력문임이 밝혀지고 그가 진두지휘하여 정국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하자 일본 우익 세력은 그 어느 시절보다 강력한 권력을 움켜 쥘 수 있었던 것이다.

창현은 스스로와 설난, 용신만을 데리고 10 대 가문과 전쟁을 벌일 수 있었지만 가장 큰 힘이라 할 수 있는 무력문을 지워 버림으로써 10 대 가문의 힘을 약화 시켰다.

그리고 이대로 자신이 돌아간다면 아마 술법문이 일본을 장악할 것이다.

이미 무인들이 권력을 쥐기 시작한 이들의 정치적 특성상 그 흐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힘들겠지.”

창현은 그래서 아보 총리를 세뇌한 것이다.

창현은 용신을 힐끔 쳐다보았다. 괴생명체와 요괴나 귀는 분명 다른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중원 시절에 요괴와 귀는 있었지만 괴생명체는 없었다.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창현 역시 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 후쿠시마라는 곳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은 용신보다 더 강한 괴생명체의 기운이었다. 그들 특유의 음습하고 어두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아직 일반인들이나 다른 무인들이 느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자연의 기운을 다루고 있는 창현이기에 바람에 실려오는 그 어두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돌아간다. 이 바보들의 생각에 따라 움직여줄 필요는 없겠지.”

기존 명분이야 무력문과의 전면전이었기에 창현은 미련 없이 용신의 등에 올라타고 있었다. 설난은 따로 귀국을 할 것이다.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일본에서 설난을 건드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으니까.

“…크르릉!”

용신이 가볍게 꼬리를 땅바닥에 내렸고, 곧 서른 명의 한혈문 인원들이 용신의 등에 올라탔다. 완전히 바뀌어 버린 후지산 지형을 보면서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신을 타고 다시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용신이 다시 한 번 크르릉 하고 울자 후지산을 뒤덮고 있었던 옅은 투명한 막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것이 지금까지 위성사진과 여러 다른 장비들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어…?”

“뭐, 뭐지?”

“빨리 올라가 봐!”

“아까 올라간 인원도 안내려왔었잖아?”

“젠장, 언제 온 것이지?”

술법문 관계자의 입에서는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력문 결계 기운은 물론 그들의 기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다. 설마….”

그리고 그 순간 창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슬리니 쓸어버려라 용신.”

이내 용신이 그 큰 아가리를 벌리면서 둥그런 강기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치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둥그런 여의주는 붉은 빛깔을 띠우며 순식간에 후지산 곳곳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콰앙-!쾅-!쾅쾅-!

“모, 모두 피해!!”

“끄아아아아아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창현은 피식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모를 것이다. 지금 용신의 공격은 어쩌면…아이들 장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형님, 설난각주님이 떠나시기 전에 돌아가서도 한바탕한다고 하지 않았수?”

용신의 비늘을 잡고 있는 남자의 물음에 대길이 살짝 창현의 눈치를 보며 대답해 주었다.

“정계 쪽에서 성지 주변을 노리는 모양이다. 일본 10대 가문과 내통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은 모양이고.”

현대 사회에 내통이라는 말은 썩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이고 능력이 있다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느 편에 서든지 흠이 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은 그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적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원들은 다르다.

그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고, 국민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의미로 뽑은 나라의 대표들이었다.

그들이 지금 가뜩이나 적대적으로 변하고 있는 일본과 여러 가지 문제로 얽혀 있다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외교적인 공격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창현과의 일을 필두로 무력충돌 의지까지 보이며 실제로 독도 습격과 부산 습격까지 자행했던 일본이었다.

사실 먼저 선전포고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북한과 대치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핑계로 일본에게 한 수 접어주고 가고 있는 것이 현 정부의 실태였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둘 째 치고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일본과 선전포고를 하고 모든 국가적 무역이 끝이 나버린다면 나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묘한 감정이야 누구나 있지만 정말로 일본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피해가 막중할 것이라는 예상 역시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였다.

그래도 사실 국민들은 일본에게 설설 기는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적어도 겉으로라도 창현을 보호하고 일본의 강경책에 맞서 강경한 대응을 해야만 했다.

그런 그들은 창현이 일본에 건넌 간 시간동안 성지 근처의 땅을 되찾고 추후 한혈문이 일본 10 대 가문에 무너질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전 세계 랭킹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고 가공할 정보력을 갖추고 있는 설난의 슈퍼컴퓨터에 걸려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창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충의 상황을 설명했다.

“후쿠시마라는 곳에서 용신보다 더 강한 괴물들이 몇 마리나 출몰 할 것이다. 아마…이 나라는 더 이상 존속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그 총리라는 인물을 세뇌할 것이고.”

무황이 불현 듯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 몸을 움찔 떨었다.

“주, 주군 설마….”

“뭐, 자연스럽게 흘러 갈 거야. 10대 가문 중 가장 강한 가문을 멸문 시켰으니 이들은 아마 그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설난의 말에 의하면 국제적 원조도 꽤 힘들 수 있다고 하더군. 그 사이 나는…집을 정리해야지.”

창현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흘렀다.

“본좌의 집을 탐낸 것도 큰 죄인데…본좌의 안위까지 휘두르려 하다니. 그리고 자고로 사람은 뒷통수가 시원해야 앞의 일도 잘 풀리는 것이다. 그러는 의미에서 일단…그 돼지들을 먼저 정리해야지.”

============================ 작품 후기 ============================

비가 오네요.

후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