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 회: 집 주인 혈마 -- >
정부는 당연히 반대했다.
셀린은 국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가장 큰 울타리이기도 했지만 또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인공지능이었다. 그녀의 예측을 공짜로 제공하지 않았고, 그녀가 전 세계의 정보를 모아 업데이트하는 랭킹 시스템 역시 상당한 돈이 되었다.
랭킹 확인을 하는 것에 일반인들이 돈을 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그 사이트는 전 세계적인 사이트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 광고료가 하루에 수천만 원이다. 그 범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가 된다면?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기업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셀린이 직접 관리를 했기에 그 사이트는 당연히 정부가 관리한다고 할 수 있었고, 광고비는 모두 정부가 챙기고 있었다. 웬만한 국내 대기업들은 그 사이트 광고를 걸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전 세계인이 궁금해 하는 랭킹 순위!
상위권이야 거의 변화가 없지만, 새로운 이름이 늘 오르락내리락 한다. 습관적이라도 한 번씩 방문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당연히 세계적인 대기업들 역시 그 사이트에 자사의 광고를 올리려 애쓰는 형국이었다.
그러니 그런 광고료만으로도 정부는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셀린을 갑자기 경복궁으로 옮기는 것은 그 소속 자체를 한혈문으로 하겠다는 이야기인데, 셀린은 정부 소속 연구원들과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희대의 발명품입니다. 제시하시는 금액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창현은 정부 대표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본좌가 언제 돈을 준다고 했지?”
“….”
남자는 말을 잃었다. 돈을 주고 구입을 하는 것도 아니면 대체 어떻게 셀린을 데리고 가겠다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발했다고?”
“그건 한국 최고의….”
“웃기는군. 네가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창현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
남자는 창현이 셀린을 한혈문으로 가져간다는 발표를 듣고, 정부에서 보낸 특파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물론 설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부 역시 경고를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창현이 가진 힘이 워낙 압도적이고 국민들의 지지가 엄청났기에 섣불리 건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국회에서는 당연히 반대했다.
정부 예산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는 셀린이 일개 문파로 소속이 바뀌는 것을 두고 볼 까닭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부의 입장은 불가입니다. 셀린은 일종의 공공자산입니다. 한 개인이 소유하거나, 사설 단체가 소유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창현은 피식 웃었다.
“가서 전해. 일단 알겠다고. 그리고 내가 조만간 직접 찾아간다고.”
남자는 땀을 삐질 흘렸다.
이내 허리를 깊게 숙이며 근정전을 재빨리 빠져 나갔다. 살다 살다 이런 협상 같지도 않은 변명만 늘어놓았던 대화는 처음이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인님, 꼭 셀린이 필요하신가요?”
“응.”
수연의 말에 창현은 짧게 대답했다.
“그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정보각을 따로 신설하고 자금을 투자하면 충분히 운용할 수 있어요.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린의 정보 수집 능력보다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겠지만, 문파를 운용하는 것에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을 정도로요.”
셀린은 엄청나다.
그녀가 취급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봐야 할 정도였다.
그 어떤 시스템이나, 마법사들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정확한 괴생명체와 요괴들의 습격 사건을 예측하고, 때로는 자연재해까지 거의 100%에 가깝게 예측하는 그 정보력은 정보력 수준을 넘어서 예지력이라 보아야 할 정도로 정확했다.
초기에는 많은 나라가 셀린이 의도적으로 해킹을 한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흐른 이후 그녀가 정말로 해킹을 하려고 한다면 그 어떤 시스템도 버텨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협조하는 것으로 급격하게 돌아섰다.
한국이 조금만 더 강대국이었다면 그녀의 존재와 필요성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길 수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한국은 그렇게 큰 강대국은 아니었다.
적당한 대가를 받아내면서 그들이 셀린에게 협조를 하는 것을 묵과했고, 셀린 역시 그들의 요청에 의해 어느 정도의 정보력을 나눠주었다.
그 것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창현이라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인공지능? 그녀는 그런 기계가 아니다.”
“네?”
“그녀는 기계가 아니야.”
“….”
창현은 빙긋 웃었다. 수연이 황급히 물었다.
“그럼 요괴나 뭐 그런 것인가요?”
“아니…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선인 정도는 되겠지.”
“선인이요?”
“응, 예전에 나 같은 인간을 선인이라 불렀거든.”
“예전에 주인님이시라면….”
창현이 몸을 일으키며 경회루로 향했다. 정말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곳이었다. 경회루와 향원정 그리고 창덕궁은 창현이 가장 즐기는 곳이었다. 늘 그 곳에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또는 가벼운 명상을 하고는 했다.
한창 바쁠 한혈문에 문주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경회루와 향원정 그리고 창덕궁은 관광객들이 가장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가볍게 물을 디딘 창현이 뒤따라오는 수연에게 말을 이었다.
“응, 맞아. 의도적으로 등선을 거부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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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이 좋군.”
“…계집이 죽고….”
“뭐가 잘 났다고 둘이 그렇게 떠드는 것이지?”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미코와 스츠키는 으르렁 댔지만, 가주의 차가운 목소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다음 회장도 무력문 늙은이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다.”
“가주님!”
“가주님!”
스츠키와 나미코가 동시에 너무 놀라 몸을 일으켰다.
10대 가문 모임 회장은 2년에 한 번씩 선출된다. 회장의 권력이 무소불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간의 협약에 의해 상당한 권력을 갖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국제적 발표 이후 10대 가문이 표면으로 나서고,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기 시작하면서 회장의 권력은 전보다 더욱 커진 상태였다. 가뜩이나 무력문이 10대 가문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노출되고 있었다.
군인가문은 아보 총리의 휘하에 놓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거의 무력문 소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무력문 자체가 가장 호전적이고 한국과의 무력 충돌에 가장 적극적이기 때문에, 전쟁을 선호하는 그들은 가장 앞서 나서고 있는 형국이었다.
중립문파인 두 가문의 힘은 그렇게 크지 않고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두 가문 역시 최근에는 분위기와 흐름에 따라 오히려 무력문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였다.
남은 것은 천외천 가문 뿐이었다.
힘의 균형이 무력문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져 있었기에 이번 독도 습격 사건은 매우 중요했다.
술법문은 그 습격 사건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겨울에 있을 회장 선출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했다.
이미 표면에 드러난 이상 이제는 국민들의 의견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 할 것이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 것이 보기 좋게 실패를 하고 난 것은 물론 그 이후에 있었던 서울, 부산 동시 습격마저 모두 실패하고 괴생명체 한 마리 마저 창현에게 빼앗겨 버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창현이 그 괴생명체를 A급에서 무려 두 단계나 높은 S급으로 진화 시켜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가주는 그 것을 상당히 경계했다.
“그 남자의 무서운 점은 본신의 힘이 천외천 고수라는 사실도 있지만 그 술법이다. 우리는 술법을 중시하는 가문이고,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믿어 왔다. 서양의 법사계열이라 까부는 소환술사들 마저도 우리의 술법을 무시하지 못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남자는 그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렸다. 나미코 네가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 그 증거이지. 심령을 연결하고 있는 고리를 끊어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심령이 연결 되어 있는 그 대상을 죽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
“…크음.”
나미코는 침음성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10대 가문 중 누군가가 개파식에 스츠키처럼 나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했다. 무력문의 가주처럼 무지막지하게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야.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스츠키가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무를 받아들였고, 치욕을 주었다.”
“….”
스츠키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아직도 근정전 앞뜰을 자신의 옷으로 닦은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자신은 미개한 조선인들만이 아니라 일본 전체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넌 돌아가는데로 할복하라.”
“…가주님.”
“가문의 명예도, 스스로의 명예도 지키지 못한 사무라이 따위는 술법문에 필요 없으니까. 네가 할복하는 것이 남은 가족의 명예라도 지키는 것이다.”
“…네.”
스츠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기회를 가지고 싶나?”
“…할복하겠습니다.”
사실 창현에게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 수련을 한다면…뼈를 깎는 수련을 한다면 그리고 그동안 경원시 해왔던 술법문의 술법을 익히고 다시 도전을 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주의 말이 옳았다.
깔끔하게 죽는 것이 남은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가문을 위해서라도 넌 할복을 해야 해.”
“네, 가주님 마지막 명예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미코.”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
“저도 함께 할복하겠습니다.”
“아니, 넌 연구해야지. 그 남자가 어떤 술법을 쓰는지. 직접 맞아 본 것은 너 밖에 없으니까.”
“….”
가주는 쓰게 웃었다.
나미코는…자신의 딸이었다. 만약 드러난 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할복을 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숨겨진 딸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것은 그녀를 이용해야 할 아주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A급을 단 번에 S급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분명 그 남자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고 있었고, 명령을 내린 것을 수동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 것은 심령 제압이 아니라 다른 술법을 썼다고 할 수 있겠지. 그건 지금까지와는 궤를 달리하는 술법이야. 본신의 힘을 그대로 갖추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의 존재 자체를 수하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나미코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의 말이 이어졌다.
“돌아가는 대로 난 무력문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처럼 행동을 할 것이고, 회장을 만나 차기 회장직에 대한 것도 마무리 할 것이다. 후보에서 사퇴하면 깔끔히 마무리가 되겠지.”
“….”
무력문의 조롱이 눈앞에서 선하기에 나미코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었다.
“네 몸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가문에 돌아가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한 이후에 그 남자의 곁으로 가라.”
“네?”
가주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자존심이 강한 남자야. 여자인 네가 곁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시 미개한 국민들의 시선이 있으니 널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한혈문 내에서 머물게는 해 줄 것이 분명하다.”
“…어떤 명분으로….”
숨겨진 딸이었다. 나미코의 어머니는 가문의 노예 중 한 명이었고, 그 노예는 한국인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일본에 팔려온 여자를 강제로 범했다.
위대한 핏줄이기에 천박한 피가 섞이는 것을 술법문의 가주는 원하지 않았지만 노예의 근골가 피가 꽤 깨끗하고 좋았기에 일단 낳게 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나미코였다.
제법 미색이 뛰어났던 어미를 닮아 상당한 미모를 갖췄고, 그 재능도 무척이나 뛰어났다.
그래서 지금껏 이렇게 키우고 가문의 중요한 일도 맡긴 것이고.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스츠키를 무사라 생각하고 가문의 일원이라 생각했기에 할복을 명한 것이다. 남은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그렇지만 나미코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가서 몸을 대주던, 그 남자 옆에 있는 계집들처럼 노예가 되던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한혈문 내에 머물며 그 남자를 관찰해라.”
“…가주님. 차라리 할복을….”
“명령이다.”
“….”
“네가 들키지 않게 가문에게 그들의 정보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그렇지만…아주 중요한 때에 네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술법문의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너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고.”
나미코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주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력문 가주의 얼굴에 비웃음이 스칠 것이 생각나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곧 고민에 빠져 있는 나미코를 보며 그 역시 비릿한 미소를 베어물고 있었다.
‘더러운 피가 섞여 있는 너의 명예 따윈 애초부터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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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을 거부한 그녀.
코멘트가 별로 없어서 슬퍼었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