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3 회: 집 주인 혈마 -- >
“결국은 본신의 힘이지, 그런 잡종들 따위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이지?”
남자의 말에 여자가 발끈했다.
“A-급이 잡종이라고? 본신의 힘? 술법 역시 본신의 힘이야!”
그렇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비릿한 조소가 흘렀다.
“셀린이라는 그 조선의 컴퓨터가 이미 그가 혈마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혈마에 관한 것도 모르나?”
여자가 남자의 말에 도리어 비웃음 쳤다.
“흥, 혈마? 본신의 무력을 믿는다면서 그런 전설 따위나 믿나보지? 혈마라고 치면 몸뚱이만 앞세우는 당신들이 상대는 할 수 있나? 전설에는 그는 등선조차 거부한 진정한 의미의 생사경 고수였다고 하는데!”
천외천!
천외천 고수를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다. 8서클 이상을 마스터한 대마법사 역시 천외천 고수였고, 초절정 그 이상의 경지를 이룬 무인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혈마는 그 천외천 고수들조차 뛰어넘어 인간이 무와 마법을 공부는 그 궁극적인 목표를 이룬 인간이었다고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전설로 치부되는 것은 당연했다.
초절정 고수마저 거의 없는 현 시대였으니까.
“술법이 깨진 것치고는 계집 주제에 멀쩡해. 따지고 보면 조선의 미개인들이 그리 틀린 말을 하지 않았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던가? 큭큭!”
술법문의 여자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십대 가문 모임에서 독도 분쟁은 회의를 거쳐 가장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었고, 술법문에서 중요한 요직을 맡고 있는 여자에게 주어진 책임은 분명 막중한 것이었다. 독도를 습격해서 사분오열한 한국 무인들의 시선을 끌고, 최근 떠오르고 있는 창현의 처리까지 맡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돌아 온 것은 술법이 깨진 것도 모자라 괴생명체는 반으로 갈라졌고, 한국 무인들은 그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았다.
“함부로 나서지 마라.”
10대 가문 모임은 임시적으로 그 회장직을 돌아가면서 맡는다. 지금 현 회장은 본신의 무력을 중시하는 무력문의 가주가 맡고 있었다. 일본에서 술법문과 함께 천외천 고수를 배출한 가문이었고, 현 가주가 그 천외천 고수였다.
“…네.”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지만, 여자에게 피식 미소를 지어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 속에 담겨진 것은 물론, 비웃음이었고.
좌중을 돌아보는 노인의 안색은 그리 썩 좋지 못했다.
‘천외천 고수가 확실하다.’
노인은 창현이 보여주었던 한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은 으레 그렇듯 괴생명체를 잡는 창현의 모습을 공개했다. 미국의 마법사가 홀로 S급 생명체를 잡은 동영상을 공개한 것처럼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노인은 그 한 수에서 창현의 경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혈마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중요한 것은 그 때문에 우리의 행보가 상당히 얽혀버린 것이 문제이지. 아보 총리가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어.”
“…총리님께서요?”
술법문 여자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우익 정치 세력은 전성기를 이루고 있었다. 10대 가문 모두가 우익 세력 출신이었다. 국제적 발표가 이뤄지면서 그들은 전면에 나설 수 있었고, 여론은 당연히 힘이 있는 그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중국조차 제치고 천외천 고수를 둘이나 배출한 가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0대 가문 중 술법문과 현 회장직을 맡고 있는 무력문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토문이 가장 극우에 속했다. 교토문은 군인 출신 가문이라 할 수 있었다. 3개의 가문은 어느 정도 우익 측이었지만 전쟁 지향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두 개의 가문이 한국에 우호적인 입장이었고, 두 개의 가문은 이도저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술법문과 무력문이 이 두 개의 가문이 가장 깊은 역사와 가장 강자들을 보유하고 있기에 나머지 모든 가문들을 합쳐도 이들의 힘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것은 술법문의 가주와 무력문의 가주가 세계 랭킹 3, 5위에 올라 있는 천외천 고수들이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 불찰로….”
“아, 괜찮아. 변하는 것은 없어. 단지 시간이 좀 지체 되었다는 것뿐이지.”
노인은 가만히 자신의 칼을 쓰다듬었다.
“어쨌든, 총리가 더욱 강경하게 나갈 모양이야.”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자신의 가문은 그저 힘만 센 것이 아니었다. 현 일본의 총리 역시 자신의 가문 식솔 중 한 명이었다. 무력을 추구하는 가문에서 그 근골이 뛰어나지 못해 배척 받았지만 그는 그 스스로의 세력을 넓혔고, 그의 능력을 증명했다.
이제는 자신조차 총리가 된 그를 무시하지는 못했다.
천외천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술법문을 그 천외천 고수와 붙인다. 나머지 가문은 크게 별 볼 일 없지. 교토문이야 다수가 군인들이니 총리 휘하에 있을 수밖에 없고…하긴, 10가문은 너무나 많지. 단 하나의 가문의 힘으로 뭉쳐야 전쟁은 쉬운 법이니까.’
노인은 속내를 비추지 않았다.
너그럽게 웃으며 술법문 대표로 온 여자에게 말했다.
“가주께서는 이 번 일을 어떻게 생각 하시지?”
“…간단한 문책 정도로만 그쳤습니다.”
“가주께서 이미 문책을 하셨다니 내가 더 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바코우니 가주는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야. 자네의 실수는 자네가 수습하기를 원하실 것이지. 그러니 직접 오시지 않고 여전히 이 모임에 자네를 보내셨고.”
“….”
“아보 총리는 독도 분쟁을 이용하여 한국 무인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길 바라셨어. 그래서 그 이후에 이어질 계획에 원활한 진행을 원하셨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난 간, 일이야. 가주께서는 또 별 말씀 없으셨나?”
“…제게 한국의 고수 처리 문제와 더불어 혼란을 원하셨습니다.”
“실수 안 할 자신 있나?”
여자는 땅에 머리를 찧었다.
본가의 가주에게도 거의 보여주지 않는 극진한 예의였다.
“제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무력문의 가주, 노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뭘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찧은 굴욕적인 그 모습을 보여준 여자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당당함이었다. 그녀의 눈에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A급 한 마리, A-급 한 마리를 동시에 조선으로 보내겠습니다.”
여자를 비웃던 무력문의 차기 가주 후보 남자까지 몸을 움찔 떨고 있었다.
****
탁탁탁-!
요상한 소리가 대길의 집 2층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그 소리는 아니다.
창현이 그저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뭐 그냥…심심해서?”
경복궁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이문은 본래 경복궁 옆 건물로 이전 할 생각이었지만 창현이 개파를 하면 그 문파에 부서 중 하나로 들어오기로 했기에 굳이 이전을 하지 않았다.
“나들이라도 갈까요?”
지현의 말에 창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참, 부모님 일은 잘 해결이 되었나?”
“주인님께서 신경 써 주셔서 잘 되었어요.”
본래 밤에 일을 하면 이유가 있다.
지현 역시 집 안이 어려운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창현의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 알려졌고, 창현이 이번에 듀란 에너지 회사에게 받은 2000억으로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회사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손 꼽히는 회사의 자리를 노린다 하더라도 1조가 넘는 돈을 단 번에 지급 할 수는 없었다.
마나석을 유통 시키고 판매를 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이용해서 창현에게 분할 납부를 하는 중이었다.
맨 처음 받은 돈이 2000억이었고.
창현은 그 돈으로 가장 먼저 부모님이 계신 산소를 재정비했고, 오소리가 머물 수 있는 산을 통째로 구입했다. 대길이야 가족이 없었고, 윤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연의 할아버지 이광길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모셨다.
따지고 보면 그에게 그 것은 가장 큰 형벌이었다.
한국을 지배하려던 그의 꿈!
그가 창현에게 겁 없이 덤빌 수 있었던 것은 창현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단전이 파괴 되어도 복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창현에게 술법을 당해 기억이 지워졌고, 그는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갔다.
수연 역시 그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무지막지하게 욕을 먹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인 이광길은 잊힐 테니까.
“정부 기관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나?”
“수연동생에게 들은 바로는 정부는 지금 주인님의 눈치를 보느라 똥줄타고 있는 중이래요.”
이두호 장군은 전역했다.
강제 전역이었다.
그는 자신의 계획에 책임을 져야 했다.
날린 돈이 얼만데.
괜히 나섰다고 본전도 찾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전역한 것이다.
“그 컴퓨터를 한 번 만나보기는 해야겠는데…공사는 언제 끝나지?”
“일주일 쯤 후에요.”
“오늘 저녁에는 전부 윤미랑 무황 그리고 오소리랑 피콜로 수연까지 불러와.”
“네, 주인님.”
문파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은 뭘까? 지현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황은 동이문을 이끌고 창현의 호위 부서를 맡을 것이다. 대길은 무력을 대표하는 부서를 맡을 것 같았다. 수연은 여느 회사에 있는 것처럼 감찰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윤미는 부서들의 총괄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오소리는 추후 정보 부서를 창설 하게 된다면 그 특성상 은밀함을 추구하는 요괴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관리할 가능성이 높고 생각보다 셈이 밝은 피콜로는 아마 재정을 담담하게 될 것이다.
지현은 자신의 역할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창현 덕분에 내력은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지만, 딱히 무공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녀 역시 일류급 고수였지만, 창현의 측근들에 비하면 초라한 것은 사실이었다.
“솔이는?”
“무황이 직접 상태를 살피고 있어요. 말씀하신대로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라는 주인님의 말씀을 따랐구요.”
솔이의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창현의 혈마지기 덕분에 새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칠음절맥이 치료되면서 오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아직 그녀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창현은 알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자신의 경공을 유일하게 알아 본 그녀였으니까.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무인이었다. 아마…윤미가 빨리 초절정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면 솔에게 따라잡히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그렇군. 그 노인네는 바쁘니 이제부터 네가 좀 돌봐주도록 해.”
지현은 창현의 말에 자신의 역할을 정했다.
“제가 확실히 교육 시킬게요.”
윤미는 분명 폭발적인 염기를 가지고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익힌 색공과 본디 남자가 없이 살 수 없었다는 그녀의 체질…그리고 풍만하다 못해 거대한 가슴과 그 가슴을 받치고 있음에도 매끄럽게 이어지는 몸매덕분이었다.
지현도 거기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도리어 밤 기술은 지현이 더 뛰어난 경우도 있었다.
“교육?”
“네, 걱정 마세요 주인님! 스무 살이면 알 것 다 알 것이 분명해요. 수연이도 스무 살이고 주인님도 스무 한 살이시잖아요.”
창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지현은 곧 그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 넣으며 속삭였다.
“제가 확.실.히 교육 시킬게요.”
창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현과 단둘의 시간은 오랜만이었고, 그녀의 유혹을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대로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창현의 손을 느끼면서 지현은 완전히 확신했다.
“추후에도 제가 교육을 맡도록 할게요.”
창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추후 지현은 여제자들의 생활 교육을 맡았다.
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추후 창현이 개파 할 문파에서 여제자들은 늘 지현에게 한 달 정도의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 작품 후기 ============================
지현이의 교육
추신
이벤트는 창현이 개파를 하는 시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2~3편 후 쯤 될 것 같네요.
추신2
두 번째 이벤트입니다.
추천 200, 댓글50(이벤트에 참여하는 댓글 포함) 넘으면
한 편 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신3
너무 종교적인 이름이 아니더라도 됩니다.
창현은 배교에 딱히 큰 애정은 없습니다.
그의 배경이 배교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혈마지기가
배교 무공이라는 설명은 나오지 않았으니까요!ㅋ
그럼 연휴 하루 전인데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