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3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호오!”
창현은 순수하게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오빠가 이런 경치를 좋아하는 줄 몰랐어.”
여전히 굳게 팔짱을 끼고 있는 수희가 싱긋 웃었다. 한 마디라도 걸어보려고 창현을 쫓아다니고 있는 여학생들은 그제야 피콜로가 눈에 들어온 듯 그에게도 시선을 힐끔 거리고 있었다. 마치 수행원처럼 창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요괴라고는 하지만 잘생긴 서양인이었다.
창현 역시 그에 못지않았고, 팔짱을 끼고 있는 수희도 범상치 않은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시선이 몰리고 호기심이 가득한 고등학생들이 모일 이유는 충분했다.
“우, 우와와와와!”
아이들은 물론 통솔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선생들, 경복궁의 고즈넉함을 즐기러온 일반인과 경복궁 안내 관계자와 통제 관계자까지 모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챙, 챙, 챙!
물결이 퍼지기 시작한다.
창현이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물론 팔짱을 끼고 있던 수희의 손을 잡은 채로 말이다.
파르르 떨리는 물결은 자신의 위를 걷고 있는 인간의 존재를 알리는 듯 잔잔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것을 보는 사람들은 그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무인들이 인간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물 위를 걷는다니!
경복궁 관계자들은 경회루로 향하고 있는 창현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멍청한 인간들, 저건 무인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콜로도 꽤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무인들은 다 저런 것 아니었나요?”
제법 용기를 낸 사람은 수희의 담인 선생님이었다. 찰랑이는 단발을 바라보는 피콜로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했다.
이내 크음, 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하려 했지만 대답은 다른 목소리였다.
“마법사들은 하늘도 날아다니지만 그 것과 주인님이 보여주시고 있는 모습은 조금 다르지. 내공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어느 정도의 수준만 된다면 물 위를 걷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렇게 천천히 땅에서 사뿐한 걸음으로 걸어가는 것처럼 걷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경공의 극의를 깨닫고 물의 기운을 받아 물이 받아들이게끔 하시면서 걷고 계시는 거야.”
“…오셨습니까. 대모님.”
피콜로가 공손히 인사했다.
한 학생이 말했다.
“그런데 잘생긴 서양 오빠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왜 저분에게 주인님이라 부르는 거죠?”
“주인님이시니까.”
윤미는 간단한 대답과 함께 싱긋 웃었다.
구경하고 있던 남학생들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힐끔 거리며 윤미의 몸매를 훔쳐보고 있었다. 폭발적인 염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것은 인간 시절부터 일종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봉인을 하고 다니는 윤미였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이 곳이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
“…그러신 것 같습니다.”
“흐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서울에 부지를 사고 건물을 올리고 한옥을 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야. 일반인들의 반발도 생각해야 하니까.”
“여론을 생각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습니까?”
피콜로의 대답에 윤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주인님께서는 인정이 많으신 분이야.”
“….”
‘인정이 많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개 박살 내나?’
그 말은 삼켜 두었다.
“응징과 인정은 다른 거다,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 딴 불경한 생각을 하면 오소리 똥구녕에 입을 쳐 박아 버리겠다.”
“…네!”
피콜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윤미는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피콜로는 정말로 저들의 말 대로 된다면 오소리의 똥구녕은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창현은 경회루에서 수희와 함께 주변의 경관을 즐기고는 다시금 나오고 있었다.
“하단전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지지?”
“…응? 응.”
창현은 싱긋 웃으며 수희의 손을 통해서 그 내공을 조금 씩 움직여 주었다.
“모든 자연에는 의지가 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저 그 것을 모르고 그 기운을 자신이 가두려고 하니까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야.”
창현은 말과 함께 수희의 내공을 발끝으로 모았다.
“물의 의지를 느껴봐.”
“…아!”
엄밀히 말하면 창현 역시 경회루 연못과 동화를 한 것은 아니었고 지배를 했다는 편이 더 옳았다.
훨씬 더 강한 자연의 기운으로 말이다.
“…오빠 뭔가….”
창현은 싱긋 웃었다. 수희의 손을 가만히 놓았다. 그녀가 빠질 염려는 없었다.
“꺄아!”
잠시 비명을 질렀지만, 수희는 자신이 물에 빠지지 않는 기적을 느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뭐야 수희도 무인이었어?”
“어리석은 인간들아 주인님께서 수희님을 봐 주시고 계신 거란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은 경회루 연못을 나와 천천히 궁을 둘러보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피콜로에게 대충 들었나?”
“그렇습니다.”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미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주 오랫전 윤미와 비슷했던 녀석의 얼굴이 스쳤다.
윤미는 여자였지만 그와 여러모로 비슷했다. 말투도 비슷했고.
이제는 백골이 되어 그토록 원하던 선계에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는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배교임에도 도를 추구하던 웃기던 놈이었다. 그나마 그 덕분에 30년 정도가 무척이나 재미 있었다.
“이제는 없지만.”
창현은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풍족한 자연의 기운이 괜스레 감상적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뭐지?”
창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재밌군.”
이내 창현은 씨익 웃었다.
“너는 본 적이 있나?”
피콜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창현의 뒤를 언제가부터 따르고 있었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수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네. 몇 번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렇군. 하늘을 담은 연못이라!”
창현은 향원정 연못을 보면서 경회루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고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한 번쯤…그들을 만날지도 모르겠군.”
“이 곳에 살던 무인들은 정말로 강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가장 빠르게 약해진 축에 속하기도 합니다. 아마 기존의 무공을 절반만 보존 했더라도 세계 역사는 많이 바뀌었겠죠.”
윤미의 말에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 쪽에서 아우르며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산은 이 곳의 기운을 본질적으로 충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스르지 않고 이런 건물을 지었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다.
피슉-!
“!!!”
“!!!”
아이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본좌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갓 스무 살이 되었다 들었는데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어른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것을 모르나?”
이광길이었다.
한국 무인 협회 요원들도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이광길 역시 창현만큼이나 유명 인물이었다. 정부 소속으로 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가볍게 향원정의 연못을 거니는 창현의 모습에 이광길은 물론 도착하고 있는 한국 무인 협회 인원들까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물 위를 걷는다는 그 자체에 놀란 것이지만 이광길과 무인협회 인원들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니까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크음….”
창현의 몸에서는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라고 이광길은 생각했다.
‘나보다 강하거나…아니면 특수한 무공으로 완벽하게 갈무리를 하거나.’
이광길은 후자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두었다.
“이 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어른의 대한 예의도 모르니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는 건가?!”
드잡이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광길은 괜스레 소리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창현의 모습에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수연과 오소리는 물론 대길까지 경복궁 향원정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런 녀석과 함께 다니라고 네가 뛰쳐나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었던 줄 아느냐?”
이광길이 매섭게 눈을 흘기면서 말을 이었다.
“일반인들을 전부 내보내라.”
“아니 지금 아무리….”
수희의 담임선생님은 반항하려 했지만 무인들의 살벌한 기세를 느끼며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수희 너도 따라가.”
“…오빠.”
수희는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꼈지만 곧 창현의 미소를 본 뒤 학생들의 뒤를 따랐다.
“본좌가 정한다.”
창현이 연못에서 가볍게 뛰어 올라 이광길 앞에 섰다.
“앞으로 본좌가 살 곳이다.”
“….”
이광길과 한국 무인 협회 요원들은 황당함에 말을 잠시 잃었다.
============================ 작품 후기 ============================
어제 큰 일이 하나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자정에는 잘 모르겠네요 올릴 수 있을지 없을지ㅋ
그건 그렇고
드디어 만났네요 이광길하고요.
어떤식으로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