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1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평화로운 오후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라는 법은 없었다.
“…어떻게 이…럴수가.”
이광길은 이제 조금이나마 느끼는 것 같았다. 창현이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화면을 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경악이 스치고 있었다. 카메라에 담겨져 있는 화면은 그저 칼슨 용병대원들이 쓰러지는 모습만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카메라는 분명히 창현의 모습도 담고 있었다.
무인들의 다툼이라는 소식에 초고속 카메라까지 준비했지만, 아나운서는 그 카메라로도 창현의 움직임을 잡아낼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저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을 포착했다.
“전문가는 지금까지 나온 카메라로는 절정 이상급 고수들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유감을….”
그 현장에 방송국 카메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수백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관련 동영상만해도 수 십개가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것은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마치 한국과 미국의 자존심 대결 양상을 번져 나가고 있었고, 창현은 한국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너무나 심하게 했기 때문에 칼슨은 같은 미국인들이나 서양권 사람들에게조차 보호를 받지 못했다.
미개한, 원숭이 등등 직설적인 단어들 덕분에 미국 정부 역시 유감을 표하기는 했지만 한 발 물러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식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무인 협회와 칼슨 용병대가 직접 협의를 한 사항이고 미국 정부는 그 어떠한 개입은 물론 압박도 하지 않았다. 물론, 양국 간의 동맹관계를 생각해서 한국 정부에 공식적인 수사 부탁은 했었다. 어쨌든 자국민이 그 곳에서 죽고 정신 이상 상태에 빠진 것은 사실이었고, 우리는 그 것을 동맹관계에 따라 한국 정부에게 자료를 넘겨받을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발효된 국제 법에 따라 능력자들간의 문제였고, 한국에서 승인한 공식 기관인 한국 무인 협회와 직접 협의를 해 그 문제를 당사자들간의 문제로 일단락 하기로 마무리했다.”
한국인들은 그 발표를 듣고 차갑게 식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정부가 아무런 개입과 압박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한국 정부가 초절정 고수를 미국 용병대에 팔아 넘긴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시대의 흐름은 바뀌고 있고, 사람들은 그 것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도심 속에 출연하는 미친 요괴들, 귀들, 그리고 바다를 통해서 가끔 들어오는 서양의 괴생명체들까지!
무인 협회 요원들과 문파의 무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일반인들의 불안감은 점점 높아만지고 있었다.
특히 한국은 무인의 수에 비해 유독 사건 사고가 많았다.
셀린의 존재가 없었다면 벌써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리라는 사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고, 초절정 고수 한 명의 존재가 얼머나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 일반인들 역시 충분히 이제는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분노 할 수밖에 없었다.
덜컥-!
“뭔가! 노크도 하지않고….”
“각하께서 지금 당장 오시랍니다.”
“….”
남자의 말에 이광길은 은은한 분노를 내비쳤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당장입니다.”
“….”
이광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주먹을 말아쥐고 몸을 일으켰다.
청와대까지는 금방이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
이광길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소파에 몸을 앉혔다.
곧바로 날카로운 말이 쏟아져 나왔다.
“난 이번에 어떻게 발표를 하면 되나요?”
성난 민심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게 느껴졌다. 대통령이 도리어 고소해 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이광길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억누르고 말했다.
“방법을 생각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은 한 발 빠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요. 이건 그 고수에게도 굉장한 호감으로 다가가겠죠. 그의 입장에선 어쩌면 그 나라가 자신을 귀찮게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 역시 협회장님처럼 강자니까요.”
“….”
“그런데 우리나라에 대한 불만은 커지겠죠. 듣지 않으려야 듣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지금 모두가 그를 정부가 용병대 따위에게 팔아넘겼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칼슨 용병대는 그렇게 약하고 영향력이 작은….”
“그렇지만 손도 못 쓰고 당했죠.”
“….”
대통령은 편안하게 등을 기댔다. 완벽한 실책이다. 권력은 그렇게 쉽게 움켜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힘으로만 움켜 쥘 수 있는 것이 권력이라면 자신의 아버지는 결코 대통령을 하지도, 또 무인들을 그렇게 휘어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싱긋 웃었다.
“아주 공교로운 타이밍에 셀린이 이 번 세계 무인 랭킹 시스템을 전면 업데이트하기 시작하고 있어요. 발표가 오늘 자정이라고 하더군요.”
“그깟 기계 따위가….”
“마법사들의 본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인정한 시스템이에요. 그 것은 어느새 국력을 재는 기준이 되어 버렸고, 각국의 고위층들은 그 랭킹 시스템에 따라 투자할 나라를 결정하는 척도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전 세계가 위협을 받고 있는 지금 강자가 많은 나라가 안전하다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요.”
대통령은 이광길을 한 번 달래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협회장님은 그 시스템에서 한국 랭킹 2위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계십니다. 그건 분명 정부의 축복이지요. 그리고 듣기로는 발전을 이루셨다 들었으니 이제 무황에게도 그리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전 무공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한국 최고의 고수가 사설 문파가 아니라 정부의 공식 기관인 무인 협회 소속이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이 협회장님이라면 더더욱 좋겠죠.”
“….”
“내가 사과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광길은 입맛이 썼다.
‘젠장, 늙은 여우에게 당해버렸군.’
“협회장님은 대신 들어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건부이군요.”
이광길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정이 되면 시스템은 업데이트됩니다. 그래서 말인데…협회장님께서 그를 직접 정부 인원으로 섭외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창현과 싸우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이광길은 몸을 움찔 떨었다.
****
“그 정도 돈까지는 없어요. 주인님.”
수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님.”
“융통할 수 있는 인간의 현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님. 정말 죄송합니다.”
크흐흠, 창현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이내 피식 웃었다.
“윤미야 너 내단 많이 가지고 있잖아.”
“내단요?”
수연이 되물었다.
“아! 그렇군요. 그걸 팔면 되겠군요.”
피콜로는 사방으로 뛰어다녔고, 창현의 취향에 맞는 집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은 새로 짓는 것이 빠르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파는 서울 중심부에 건물을 세울 예정이었기에 그 곳과도 가까워야 했고 되도록 아예 중심부 부지를 사버린 후 문파 자체를 창현 집의 정문으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제안을 하자 창현은 만족해했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 중심부에 그런 건물과 집을 지으려면 한 두 푼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존 건물들도 있고, 그 곳에는 여러 회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건물을 사는 것도 아니고 아예 새로 짓는 것이 창현의 생각이었으니, 그 것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라 할지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못한다는 것이 당연했다.
딱히 그럴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 돈이 수 십억대는 우스울만큼 넘어설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창현이 원하는 집의 형태는 전통적인 한옥 형태였다.
“정문으로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풍수하는 놈을 데려다가 문파를 일종의 담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어.”
“….”
“….”
피콜로와 윤미조차 말을 잃었다.
지금 창현은 서울 한 가운데에 자신의 성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왜 불가능해? 내단이 부족한가? 들어보니 그 마나석인가 뭔가하는 것도 돈이 꽤 된다며?”
윤미는 년도 별로 내단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것을 다 팔면 백억을 넘는 돈을 쉽게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좀 아까운 것은 사실이었다.
파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그 내단이라면 차후 창현이 문파를 세웠을 때 제자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모인 사람들도 초 엘리트이지만 윤미는 창현이 문파를 세우는만큼 전 세계 어떤 단체에도 밀리지 않는 문파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반 무인들조차 강해야한다.
그건 창현 역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여자만 받아들여서 전부 주인님과 동침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최소 지현이 급은 되어야지.’
윤미가 지현을 힐끔 쳐다보았다.
창현의 은혜를 받아 나날이 예뻐져가고 있는 그녀만한 인물을 찾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문제였다.
“내단을 한, 두 개 팔면 대충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서양이나 근처 나라에서 나타나는 괴생명체들에 비해서 요괴의 내단은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특히 수련을 높이 쌓은 요괴들은 이미 그들끼리 모여 있고요.”
다 때려 부술 수 있지만 창현은 윤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비틀린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는 창현이었다.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은 사양이었다.
물론, 방해를 하거나 거슬리면 거침없이 손을 써야 하겠지만.
수연이 이내 무릎을 쳤다.
“홍보 영상 하나를 더 딸 수 있고, 일반인들에게 이미지까지 좋아지고 마나석까지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주인님!”
창현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독도 근처에 러시아 쪽에서 흘러들어온 괴생명체가 가끔 나타난다고 해요. 1급이라고 하니 그 마나석만 취할 수 있으면 오 백억은 거뜬히 받아낼 수 있어요.”
피콜로가 툭 던지듯 말했다.
“내가 지켜 본 결과 그래도 주인이 원하는 것을 다 지으려면 그 정도로는 턱도 없을 걸.”
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 많이 부족했다.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하던 중 TV에서 대통령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따라 직접 고개 숙여 사과 하는 바이니…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있었다.
일개 개인에게.
창현은 호오,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수연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저 TV 화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그 바뀐 세상의 중심에는 절대강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창현은 그들 중 가장 강자라 할 수 있었다.
이제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독도 건과 함께 점점 더 드러날 것이다.
“재밌군. 협회장이 직접 사과의 뜻을 전달하러 온다라.”
“….”
수연이 몸을 떨었다.
“약속대로 죽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본좌의 계집 가족이니까.”
“…고맙습니다. 주인님.”
“하지만 벌을 받아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
“할아버지가 자초하신 일이니까요.”
“네 가문도 제법 유명하다 들었는데 그럼 네 가문의 주인은 이제 네가 되는 것인가?”
이미 이광길을 정리한다는 사실을 창현은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수연이 무릎을 쳤다.
“아! 가문의 재산을 정리하면 제법 많이 될거에요. 할아버지께서도 많은 검을 가지고 계시니 그 것만 팔아도 모자라는 돈을 충분히 메꿀 수 있어요.”
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나가는 듯 말했다.
“그 때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일단 돈이라는 것도 많아야 하군.”
윤미가 가볍게 창현의 머리를 자신의 풍만한 가슴으로 이끌었다.
“독도에 있는 괴생명체를 보시면 제법 흥미가 동하실겁니다.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고 한국은 인력이 부족하니 정부에게서도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을 거에요.”
“그건…”
“애국심이 중요하니 주인님이 중요하니?”
수연의 말을 끊은 윤미가 싱긋 웃었다.
수연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당연히 주인님이죠! 언니.”
“그래, 착하지. 동생.”
“네?”
조용히 있던 대길이 화들짝 놀랐다.
“피콜로랑 오소리 데리고 서울 부지 좀 정확하게 알아보고 오렴?”
“네, 누님!”
한 지역구의 패자 50대 조폭 두목은 자신이 심부름을 받은 것을 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따라와 나메크성인.”
“…인간 따위가….”
“오소리 똥구녕에 입구녕 쳐 박는다?”
“….”
상하 질서는 제법 잘 잡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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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세이프.
월요일 힘차게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