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2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대길은 웃었다.
이제는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 오래 전의 일이라면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연륜이 있는 나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그 지독했던 모욕과 고통은 그리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르르 떨리는 손을 느끼며 대길은 그렇게 웃고 있었다.
“대사숙은 언제나 따뜻했던 분이셨죠.”
종욱 역시 대길보다 한참이나 어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명우의 제자들보다도 어린 것 역시 사실이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제, 사질을 보면서 종욱은 딱히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기에도 하루하루 바쁜 나날이었다. 사제들이 사질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도, 인간적인 모욕과 수치심도 쉼 없이 주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괴롭힘을 당하는 제자들을 따뜻하게 품지도, 괴롭힘을 주는 제자들을 엄하게 혼내지도 않았다.
그저 무관심했다.
“물론 나 같이 미천한 놈에게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대길의 말은 거의 사실이라 할 수 있었다. 종욱은 대길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정부의 정책으로 들어 온 고아인 대길이 쓰레기처럼 던져진 삼류 무공을 죽어라 익혀야 했던 것도, 사제들에게 악독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가끔 알게 된다면 무능한 대길에게 혀를 찰 때도 있었다.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나이도 많으면서 독기조차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것이 그리 썩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한 문파의 수장이 되려면 모든 제자들을 포용할 필요성과 내쳐야 하는 악독한 뿌리도 있다는 이중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을 때 대길의 생각을 잠시나마 했었다.
다시는 문파의 제자들끼리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는 일종의 예방적인 생각으로 말이다.
“그래서 저 놈들보다 가끔은 대사숙이 더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대사숙을 더 원망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자질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는 했으니까. 지금은 무슨 가면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대길의 말에 종욱의 몸이 크게 떨리고 있었다.
“고수 옆에 있다고 네가 뭐라도 된 모양이구나? 뭐 내단이라도 얻어 쳐 먹었어? 철면 무슨 공? 그딴 무공도 있었냐?”
그의 나이도 이제 사십 줄이다. 그런데도 경박스러운 말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대길은 피식 웃었다. 밤 세계에서 구른 자신보다 더 천박하게 느껴졌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양복을 보면서 대길은 한 번 더 웃었다.
“형님은 절정고수라고 알려져 있을 텐데…그런 고수를 잡으러 왔다면서 양복 빼입고 자가용 몰고 온 당신이 더 우스워 보입니다. 나보다 훨씬 더.”
“이 미천…!”
대길이 가볍게 발을 내딛었다.
철갑외면피공은 그 이름답게 외공이다.
태극문파에서 정부 정책으로 받아들인 고아 중에서도 가장 삼류로 취급받는 무공, 아니 무공 축에도 끼지 못하는 철갑외면피공을 받았다.
그의 말대로 쓰레기처럼 던져 준 것이다.
귀찮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창현은 종사의 자질을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비록 육체는 그 시절이 아니지만(지금은 그래도 많이 가까워졌다) 그의 기억과 오성이 어디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성, 즉 재능은 영혼이 동화가 되면서 떨어졌지만, 기억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기억들을 토대로 철면외면피공을 대길에 맞게 수정했고, 이미 내공은 충만한 상태였던 대길은 한층 더 강한 무공을 접함으로써, 그리고 어린아이도 익힐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 놓은 창현의 설명 덕분에 훨씬 강해질 수 있었다.
눈앞의 사숙이라 부르는 인간들보다 훨씬 더!
쿠앙-!
한 발, 한 발 딛을 때마다 대길의 기세가 점점 강하게 눈앞의 남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네….”
남자는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대길의 모습을 떨쳐내려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자는 대길에게 먼저 쇄도했다.
퍼억-!
태극문파는 무당파의 속가이다.
당연히 무당파 무공을 주로 익혔고, 그 정수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무당태극권을 익힌 남자는 주먹을 뻗었고, 정통으로 대길의 복부에 꽂혔다는 사실을 느끼고는 피식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크억!”
마치 돌덩어리를, 아니 돌덩어리를 이 정도의 내공으로 때렸으면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도리어 자신의 손을 감싸 쥐고 있었다.
“그 쓰레기 같은 무공을 형님께서 손 봐주셨습니다. 그리고…여러 가지 것들이 달라졌죠.”
외공을 밑바탕에 두었기에 철갑외면피공은 권각술도 당연히 함께 이뤄져 있었다.
쓰레기 무공이라 취급 받았던 이유는 그 권각술이 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단순한 격투술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누군가와 싸우게 되면 본능적이게 움직이게 되는 그런 움직임들.
무공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움직임들이었다.
그리고 악필로 철갑외면피공은 그 끝을 맺었다.
‘단순한 힘과 빠르기. 대성을 한다면 그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금강불괴? 그딴 하류 외공 따위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신체는 돌보다 더 단단해질 것이고, 돌이 빠르게 날아간다면 그 힘이 배가 되는 것은 당연하니까. 단단해진 너의 신체가 엄청난 빠르기까지 가지게 될 것이니까. 의심하지 말고 죽어라 익히기는 해라. 본좌의 은혜로움에 감사하고 쿠하하하핫’
대길은 그 문구가 머릿속을 스치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창현은 꽤 괜찮은 말이라고 했고, 훼손된 것과 단점을 조금만 보완하면 정말 그 문구대로 될 수 있다고 했다. 대길은 자신을 위해 피콜로의 내단을 정제해 주는 것은 물론, 본래 갖고 있던 선천지기마저 정화시켜 준 창현의 말을 굳게 믿었고, 영원히 따르기로 결심했다.
개구리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를 향해 대길이 말을 이었다.
“일어나십쇼. 사숙. 한 방에 끝나면 너무 싱겁지 않습니까. 내가 당한 지난 세월이 있는데. 미천한 놈 앞에서 그렇게 널브러지면 어떡합니까.”
종욱은 대길의 침작함 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들끓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그가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아니 오히려 더 위라는 사실을 느끼고 창현에게 슬쩍 시선을 돌렸다.
문파에서 쫓겨 날 때만 해도 삼류에 지나지 않던 무인이었다.
무인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그저 일반인에 불과 했다.
그런 그가 어느새 절정 초입의 고수가 되었다.
‘그 때 그 내단을 넘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설명이 돼…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이 건 분명 믿을 수 없는 일이야. 저 무공은 나 역시 알고 있는 무공인데…그저 단순한 빠르기와 힘으로 승부하는 무공이라 부를 수조차 없던 것인데….’
종욱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공원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 도괴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그를 보면서 모든 것이 비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흥, 비천한 놈이 한 방 먹였다고….”
이명우의 제자 중 다른 한 명이 나섰다. 몸을 일으킨 남자 역시 다시 쇄도하면서 동시에 두 명이 대길에게 달려들었다.
대길은 가볍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주먹에는 풍만한 내공이 담겨 있었고, 무당태극권 특유의 부드러운 기운도 담겨있었다.
한 번 피한다고 끝이 아니라는 듯 주먹은 부드럽게 믿을 수 없는 각도로 휘어졌다.
퍼억-!
이번에는 가슴을 강타 당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컥!”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에 남자가 대경질색 하여 물러서려 했지만 대길의 손이 남자의 가슴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였다.
퍼어억-!
“커어어억!”
대길의 가슴에서 나던 소리와는 차원이 다르게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뒤로 튕겨진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털썩 쓰러졌다.
가슴에 마치 회오리라도 맞은 것처럼 옷은 비틀려져 있었다. 그 것은 살갗 역시 마찬가지였다. 빙글빙글 회전하고 한 듯 보이는 살갗은 안에 있는 뼈 역시 그렇게 비틀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커억-!”
끊임없이 피를 토하는 남자를 보면서 이명우의 제자 중 다른 한 명의 눈빛에 두려움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십쇼. 나 역시 당신들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았죠. 제발 살려달라고, 그러지 말라고.”
“…이, 이봐 대길이…그 때는 우리가 많이 어….”
“사숙들은 그랬었죠.”
대길은 말 대신 남자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 그래 그 때는 미…크아아아악!”
남자는 피콜로가 아니었다.
종욱은 남자의 피가 얼굴에 전부 튀고 있음에도 닦지 않았다. 그저 멍한 눈으로 무심한 눈길로 뽑힌 남자의 팔을 바닥에 버리고 있는 대길을 마찬가지로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손이 어디까지 늘어나나 뼈가 부러지면 다시 붙이고, 살이 찢어지면 지혈 해 주고.”
대길은 말과 함께 가볍게 남자의 혈도를 눌렀다. 팔이 그대로 뽑혔음에도…신기하게도 피는 나지 않았다.
창현이 가르쳐 준 인체의 숨겨진 혈도까지 전부 알고 있는 탓이었다.
남자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어깨부터 허전한 자신의 왼팔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명우의 제자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대길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가볍게 들어 올리고는 단전을 향해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
남자의 몸이 크게 떨리며 눈이 치켜떠지고 있었다.
창현과는 다르게 아예 단전을 파괴 시켜 버렸다. 배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버렸고, 그 곳으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다.
대길이 다시 다른 혈도를 짚었다.
“대사숙, 이들은 죽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 것이 대사숙에게 더 유리 할 수 있겠죠. 그 인간은 이들을 버리지 못 할테니까. 보는 눈이 있고, 오늘 대사숙이 살아 돌아갈 테니까요.”
“….”
“그리고 대사숙 역시 곤란하겠죠. 이들이 대사숙의 의도를 알았으니까요.”
대길은 말과 함께 도망치려는 남자를 뒤쫓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잡혀 버렸다.
“사, 살려…!”
그 말을 무시하고 대길은 나머지 오른손도 그대로 뽑아버렸다. 실로 엄청난 힘이었고, 크아악, 이라는 큰 비명이 다시 터지고 있었다.
지혈을 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단전을 파괴 하는 것도.
종욱은 털썩 바닥에 주저 앉았다.
“큭큭! 어쩌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나?”
“뭐 부정하지는 않지.”
지켜보던 창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왜 그랬지? 당신과 같은 강함이라면…정말 말조차 나오지 않는군. 아무리 혈마의 영혼이라 하지만….”
“난 혈마가 아니야. 강창현이지.”
종욱은 그 날과는 다른 창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난 강창현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영혼이 두 개이기는 하지만 난 강창현이다. 수희의 오빠 강창현.”
“…그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그 날 그냥 진선도인을 죽이고 우리 문파는 물론 무당파와 척을 지는 일을 두려워 할 당신이 아닌데…이미 초절정이었으니.”
“생각보다 멍청하네. 그제 강원도에서 폭발한 기운을 느끼지 못했나? 일부러 전 세계 고수들은 다 느끼라고 기운을 폭발 시킨건데.”
“…그, 그럼 그제 초절정에….”
“응.”
“그보다 더 높은 경지 역시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군. 하하하하하핫!”
종욱은 허탈함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희들의 기준에 날 맞추지 마라. 무식하게 단전에만 내공을 때려박는 것이 제일인 줄 아는 너희들과 나는 시작부터 다르니까.”
창현은 말과 함께 가볍게 손을 저었다.
바람이 갈라졌다.
말 그대로 공간이 갈라지면서 바람이 갈라지고 있었다.
“중단전과 상단전…전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멍청한 것들아. 중원의 무공은 정수가 아니야.”
“….”
비사(祕史)였다. 창현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말들은.
“중원이 아니라 오히려 이 곳이 시초라 할 수 있지. 역사는 우스워. 가장 강대한 민족이었건만 늘 힘겨워 했으니.”
창현은 그 시절을 살았기에 현대의 역사적 사실을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네놈들이 멍청하다는 거야. 겨우 무당말코 도사들 따위나 따라다니고 쯧쯧.”
“나에게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그런 거 없다. 넌 날 사냥개로 사용하려 했고, 그 대가를 받은 것뿐이야.”
창현의 행동에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었고, 그 스스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미 한 번 호의 비슷한 목적을 무시한 종욱이었기에 창현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 일은 그저 하나의 지표였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
“너희들이 날 사냥개로 사용하려고 하니 나 역시 비슷하게 사용하려 하는 것이지. 운수대통 그만 가자.”
“네 형님.”
대길 역시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이명우의 제자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풀린 듯 고개를 숙였다.
“근데 이 요망한 계집은 뭐하는 거지?”
잠시 시선을 돌리는 곳에는 윤미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더 유명해지는 것은 아니겠지?”
이미 초절정의 벽을 뚫었다는 것을 숨어 있는 정부 요원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한껏 드러낸 창현이 할 말은 아니라고 대길은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긴 그녀 역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부요원이라 짐작되는 인간들을 도륙하고 있는 윤미의 역시 상당히 주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대길은 수연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고 도괴를 빙글빙글 돌리며 윤미에게 가고 있는 창현의 뒤를 따랐다.
“자, 꼬마야 친구들이 다 죽어 버렸네? 네가 냄새난다고 경멸했던 한국 정부 요원들만 남았고? 쟤들에게 아랫도리를 까고 박아달라고 하면 내가 살려줄지도 모르는데.”
윤미의 목소리에 대길은…어쩌면 자신은 참 얌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은 물론 얇은 심맥까지 모조리 끊어져 폐인보다 더 폐인이 되어버린 창현이 처리한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난 관대해.’
한 지역구를 풍미했던 조폭 두목의 깨달음이었다.
============================ 작품 후기 ============================
야식에 습관 들었더니
상당히 배가 고프네요..
비사 할 때 한자 제 한글에 없어서 사전에서 복붙했는데 조아라에서
못 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