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5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도환은 무척이나 다급했다.
“자, 잠깐!”
창현은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손에 혈마지기를 두른 상태였다. 요괴는 겉에서 흐르는 진물만으로도 콘크리트를 녹일 정도로 강한 독성을 가진 놈이었다. 그런 놈의 내부야, 두 말 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고 있었지만, 창현은 무척이나 집중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단단한 껍질, 그리고 진물에 포함되어 있던 독성은 물론이고 도괴를 통해 전해져오던 녀석 몸속을 이루는 귀력들은 의외로 정순했다. 조금만 정제를 해서 수희에게 준 이후 자신이 컨트롤을 해준다면 충분히 반갑자 정도의 내공은 얻어낼 수 있었다.
수희의 자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영력의 그릇이 깨끗하기는 하지만 근골이나 다른 여러 가지 조건들이 지현이나 수연보다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요괴의 강함에 비해서 그리 썩 많은 양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정도로 정순한 내단은 구하기 쉽지 않았기에 창현은 당연히 집중을 함과 동시에 마음이 약간 급할 수밖에 없었다. 내단은 특성상 몸속이 아니라 공기에 노출이 되면 노출이 될수록 혼탁해지기 때문이었다. 효능이 엄청나게 감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연 그대로의 모습이 언제나 가장 좋은 법이었다.
“뭐하는 겁니까?!!”
도환은 여전히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요괴의 내부 안으로 들어갈 듯 보이는 창현의 모습에 무섭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10미터도 넘는 신장을 가지고 있던 요괴였고, 몸통 부분이 무척이나 동그란 것이 마치 공과 같은 모양이었기에 창현이 들어가기란 크게 무리가 없었다. 사실 내단이 의외로 가까이 위치해 있어 손만 넣어도 충분히 취할 수 있었지만 도환에게는 창현이 내단이라는 말을 중얼 거린 뒤 요괴의 내부를 헤집으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체 역시 꽤나 귀중했기에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꼬맹이.”
“….”
창현은 시선을 돌렸다. 무서운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본좌를 한 번만 더 방해하면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
“….”
도환은 헛웃음을 삼켰다. 창현이 절정고수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괴를 두른 강기가 완연한 검기, 도이니 도기라 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강기가 병장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유형화 되어 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창현에 관한 신상정보는 정부 소속 요원들에게 아직 공개가 되지 않았다. 수연을 더불어 고위층들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너무 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창현의 존재 자체는 이광길과 그 직속 수하들만이 알고 있을 뿐 발표와 더불어 일이 급작스럽게 늘어난 현장 요원들에게는 아직 전부 전달되지 않은 탓이었다.
“오늘 발표가 있었으니, 혼란스럽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리고…A급 요괴를 단신으로 퇴치하신 것 역시 추후에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것입니다. 하지만 내단은 국가 재산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무슨 말이죠?”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수연은 지현에게 수희를 부탁한 뒤 재빠르게 다가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실장님.”
“요괴를 무찌른 것은 주…창현님인데 어째서 내단 소유를 국가가 주장하는 거죠?”
“국제적 협약입니다. 각국은 내단은 물론이고 요괴나 형태를 가지고 있는 귀 역시 마찬가지로 그 사체를 국가 자체에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이나 사설단체들이 그 엄청난 물건을 소유한다면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에….”
도환은 말을 잇다 놀라 황급히 창현에게 다가갔다.
“접근…커억-!”
도환의 비명과 함께 스무 명이 넘는 요원들이 한 장소에 도착하고 있었다. 방어막을 치고 있었던 서양인 세 명도 함께였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안색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실장님!”
수연을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커어억-!”
창현에게 가슴을 얻어맞은 도환이 다시 한 번 피를 토해내자 우람한 덩치를 자랑하는 남자가 창현에게 나섰다.
“당신, 지금 이게 무슨 짓….”
수연 역시 같이 나섰다.
“창현님이 나서지 않았으면 전부 죽었을 거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요? 일단 감사의 인사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발표 첫 날에 무능한 정부로 낙인찍히는 것을 막아준 것은 물론, 수백 명은 넘는 일반인들의 목숨까지 구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수연의 말을 지적하자면 일반인들의 목숨부터 논할 수 있었다. 요괴를 제압하는데 요원들이 피해를 입었을 수 있었겠지만, 세 명의 서양인이 펼친 방어막은 수준급이었다. 공격력은 없어 보이는 그들이었고, 방어마법만을 집중적으로 익힌 사람들로 보였다. 느껴지는 내공,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마나는 꽤 방대했기에 아마 일반인들은 처음 대처를 하지 못했을 때 입었던 피해말고는 거의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창현 덕분에 오히려 인명피해는 훨씬, 그 것도 중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요원들의 피해는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수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앞으로 있을 혼란에 대해서 국민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은 뒷전이고 눈앞의 내단만이 중요한가요? 정작 요괴를 무찔러준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요.”
수연의 파직은 창현의 존재와는 다르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실장님 저희는….”
“위에서 내려 온 명령이라 변명하지 마요.”
차갑게 기세를 풍기는 수연은 정부인원들과 마찰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스무 명의 요원과 세 명의 방어마법 전문 서양인…서양인들이 끼어들면 상당히 힘들어지고, 끼어들지 않아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현은 내공만 강했지,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던 요원들에겐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고 창현이 절정고수이기는 하지만 상대해야 하는 요원들의 수가 많았다.
“아 거참 왱왱 거리네.”
“!!!”
창현은 왼손으로 귀를 후비고 있었다.
수연이 요원들과 대치를 하고 있던 사이 이미 내단을 취한 뒤였다. 진물과 비슷한 색깔인 초록빛을 띠고 있는 내단에서는 마치 드라이아이스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연기와 같은 짙은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내단을 바라보고 있는 요원과 서양인들의 눈길에서 순간적으로 탐욕의 빛이 흘렀다.
최하 100년 이상의 귀력을 가지고 있던 요괴! 내부에서 진탕되어 흐르고 있는 귀력은 150년 이상이라고 들었다.
수희가 취한다면 반갑자 뿐이지만 서양인들이나 요원들은 그보다 훨씬 높은 효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물론, 정제 과정을 거치고 가공까지 거친 이후 위력이 많이 감소한 뒤에나 취할 수 있겠지만 반갑자 이상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프하!”
수연은 그 찰나의 눈빛을 놓치지 않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창현이 도환을 강하게 친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피를 한 번 토한 이후 내부를 천천히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하나 새로운 현장 리더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내단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국제적 발표까지 있었던 마당에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썩었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수연은 그래도 한 때 몸을 담았던 곳이고 애국심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기에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뭐야?”
창현의 말에 요원 중 한 명이 나섰다.
아까 수연에게 말을 끊긴 그 남자였다.
“발표를 아직 못 들으셨기에 이해를….”
창현은 말 대신 기세를 끌어올렸다. 붉은색 혈마지기가 다시 한 번 원기둥을 만들어내려는 듯 천장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이미 전투를 모두 목격한 그들이었기에 창현이 정말 독하게 마음을 먹는다면 모두가 덤벼도 양패구상이 최상이라는 결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세는 나섰던 남자에게 천천히 집중되었다. 이제 막 일류에 들어선 그였지만 창현의 차가운 기세가 온 몸을 덮치기 시작하자 손가락 하나 까닭할 수 없었다.
두 눈에 공포심이 스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 죽는다!’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기 시작하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뚜벅뚜벅-.
창현은 천천히 걸었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입구 쪽에 모여 있었던 사람들은…이제 거의 대부분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용기가 있는 사람들, 다르게 해석하면 오지랖이 넓거나 쓸데없이 영웅심에 취해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진물이 없는 곳으로 창현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저 개새끼를 처리하는데 너희가 한 일이 뭐지?”
“….”
“사람들의 목숨이야 정부기관이라는 것들이니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러라고 무지막지한 돈을 걷어가는거잖아?”
세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발표를 하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목숨 값이 명목인데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창현은 그 핵심을 곧바로 찌른 것이다.
“한 번만 더 본좌 앞에서 왈왈 거리면 저 녀석 위장속에 전부 쳐 박아 버릴테니 그렇게 알도록.”
창현은 말과 함께 냉정하게 돌아섰다.
천장까지 치솟았던 혈마지기는 다시 창현의 몸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창현님!”
“수희는?”
“저기요!”
수연이 가리킨 곳에 지현이 수희를 안고 있었다.
창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저 개새끼 덕분에 수희가 꽤 상심이 크겠군.”
“다음에 또 오면 되잖아요. 그리고 놀이공원이 여기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마음에 수연이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창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들고 있는 도괴의 입을 향해 초록색 내단을 그대로 쳐 박았다.
“처먹으면 피콜로와 오소리는 물론이고 개새끼 똥에 평생을 구르게 해줄게.”
“…컥! 주, 주인 근데 이건….”
“오소리와 피콜로가 있는 언덕으로 가 있어. 피콜로보고 잘 보관하고 있으라고 해. 제법 똑똑한 녀석이고 언덕에서 오랫동안 살았으니 내단이 혼탁해지지 않는 장소 하나 쯤은 만들어 놓았을테니까.”
하나 밖에 없는 눈알을 심하게 굴리던 도괴는 곧 갈라진 땅바닥으로 사라졌다.
“그들에게 맡겨도 될까요?”
“오소리의 그릇…내단은 나에게 종속되어 있어. 도괴가 더 강하기는 하지만 그 녀석 역시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오소리랑 마찬가지이고. 피콜로 역시 오소리랑 백중세이기는 하지만 허튼 짓은 못할거야.”
“…네.”
창현은 지현에게 수희를 받아들고는 가볍게 들쳐 업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렸다.
“도괴 녀석처럼 눈깔 한 번 더 본좌 있는 곳으로 돌리면 다 찢어 죽일테니까 내 앞에서 사라져라.”
“….”
그 말은 월롯데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미 도환과의 처음 대화가 몇 배는 부풀려져 퍼져나가고 있었고, 방금 그 말은 불붙여가고 있는 소문에 기름을 껴얹었다.
“우와 저 사람 진짜 고수인가봐?”
“소드맛스터인가?”
“병신, 우리나라나 동양권은 예전 무협지처럼 경지를 나눈다 했잖아. 마법사도 거의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그게 중요하냐? 어쨌든 저 사람이 지금 우리 말이 구라가 아니다! 니들 목숨값이니 불만 가지지 말고 돈이나 더 내라! 라고 생색 내려 왔던 인간들 개발랐다는 거 아니야?”
어린 학생들이었다.
가볍게 말을 했지만 그들의 말은 은근히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정부 요원들이 눈살을 찌푸리던말던 창현은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이곳을 나가고…갈 때는 경공으로 가지. 놓치지 말고 쫓아와 계집. 천천히 갈 테니까.”
“네, 창현님.”
“그리고 수연이 너.”
“네, 주인님.”
주목하고 있는 시선은 많았지만 수연은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그냥 편안하게 쓰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운수대통한테 가 있어. 그리고 운수대통이랑 만나면 오소리랑 피콜로도 데려와서 함께 있어.”
“…네. 그리고….”
창현은 수연이 무슨 말이 하고싶은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색목인들도 하나의 변수인가?”
창현은 자신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지그시 자신을 바라고 있는 그들에게 옅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