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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62화 (62/170)

< -- 62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8벽은 견고하고 높았다. 도무지 부수지도, 통과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커다란 산이었다면 차라리 오르리라 결심할 수 있었겠지만,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이었다. 산을 보는 것과는 다르게 답답함이 있었다.

단전에 갈무리 해 놓은 내단은 쥐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광길은 알고 있었다. 그 내단에 담겨진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순간 몸의 내부는 태풍에 휩싸일 것이 분명했다. 놀라는 여자를 뒤로 하고 바로 삼키고 그대로 그 곳을 빠져 나온 것은 내단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설사 잘 못 되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든다면 주위에 누군가 지켜 보아주는 것이 좋겠지만, 이광길은 자신이 있었다.

‘끽 해야 요괴의 내단이 아닌가.’

최소 300년의 귀력을 담고 있다고 셀린이 평가 했다면 틀림이 없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본래 주인이 사악한 존재로 알려져 있던 뱀의 내단이라는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 정제를 거치기는 했지만, 온전히 정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지금까지 한국 무인 협회 무인들이나, 또는 이것을 관리하고 있었던 군무인(군대에 소속된 무인들의 줄임말)이 손을 대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도 이광길은 자신이 있었다.

정부 소속 최고의 무인이라 불리는 자신이 아니던가. 뱀 따위의 내단에 굴복할 자신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거처에서 이광길은 크게 숨을 들여 마셨다. 지금까지 단전에 작게 펼쳐 놓은 내공이 막을 없애고, 내단을 향해 저돌적으로 내공을 쏟아 부었다. 몸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지만, 마치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것 같았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몸이 파르르 떨렸다.

콰앙-!

소리가 들렸다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둥그런 구슬에 이광길의 내공이 부딪혔고, 곧 귀력을 단단히 감싸고 있었던 내단 껍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실금이었다. 절정고수가 쏟아 붓는 내력은 엄청 났지만, 그만큼 내단의 껍질 역시 단단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실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곧 이광길의 단전에서 내단은 쩌억, 하고 갈라졌다.

“!!!”

노도와 같은 기운이 쏟아 붓던 내력을 밀어내고 이광길의 몸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그의 떨림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땀이 비 오듯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열기는 점점 확산되고 있었다. 혈맥을 타고 흐르는 귀력을 이광길은 잡으려 애썼다. 마치 혈맥이 전부 타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뜨거움과 고통을 동시에 주고 있었지만, 그는 끝내 입을 벌리지 않고 손바닥이 찢어질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콰콰콰콰-!

절정고수이기에 막혀 있는 혈맥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내단의 귀력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손가락 끝에 있는 혈까지 모두 태워버렸음에도 마치 다른 자리를 찾는 것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이광길의 몸을 훑고 있었다.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는 귀력을 따라잡고는 이광길이 자신의 내력을 도리어 몸속에서 폭발 시켰다.

이제는 싸움이다.

자신의 내력이 몸의 주인인가, 귀력이 몸에 주인인가를 결정 할 때인 것이다.

만약 내력으로 귀력을 제어 하지 못한다면 내부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버린 귀력이 밖으로 분출 되면서 몸이 마치 폭발하는 것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사실은 이광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덜덜 떨리는 몸을 지그시 누르며 이광길은 이제 귀력을 살살 달래는 것처럼 자신의 내력으로 감싸안기 시작했다. 경주를 하는 것처럼 달리던 내력과 귀력은 이제 나란히 손을 잡고 이광길의 혈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방심 했을까?

이광길은 순간적으로 내력을 다시 한 번 폭발 시켰고, 조그맣게 구멍이 나 있던 백회혈을 향해 내력과 귀력을 단번에 밀어 넣었다.

“크어억!”

결국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지만 이광길은 엄청난 환희를 맛보고 있었다. 백회혈이 뚫리면서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내력과 귀력은 온 몸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기운이 한 꺼번에 다시 단전에서 충돌을 하면서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안돼!’

이광길은 혀를 깨물었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끝장이었다.

진득한 핏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높고, 단단하고 끝이 없어 보이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내단의 껍질이 쩌억, 하고 갈라졌던 것처럼 단 번에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황홀경이었다.

두 번째 환골탈태는 허물을 벗는 것처럼 껍질을 벗지 않아도 된다.

온 몸의 구멍을 통해서 열기가 빠져 나오고 있었고, 내력과 귀력이 몸 안에서 폭발 하면서 근골조차 바꾸어 놓았다.

이광길이 번쩍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 안광이 강하게 흘러나왔다.

“…냄새는 좀 많이 나는 군.”

절정고수임에도 몸에 이토록 많은 노폐물이 남아 있었던 것은…오욕칠정에 한 없이 가까운 삶을 살았기 때문일까?

뭐 상관없었다.

“크하하하핫…응?”

웃음을 터뜨리다 이광길은 곧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간사한 지렁이 같으니라고!”

뱀의 내단이었지만, 여전히 지렁이로 하찮게 표현한 이광길은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을 두고 해결 하면 그만.’

그 역시 영력을 느낄 수 있었고,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다. 그래보았자 창현이 나눈 단계   두 번째에 불과한 혼일공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내단의 귀력의 기운이 모두 흡수 된 것이 아니라, 선천지기와 일부가 섞여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상관없었다.

넘치는 힘을 이광길은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황…! 조만간 한 번 만나야겠군.”

한 중년인을 생각하는 그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스치고 있었다.

****

벅벅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절정고수의 날카로움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주인님!”

수연의 그 호칭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큰 가슴을 팔짱을 끼고 받치고 있는 것이 묘하게 섹시해 보였기에 창현은 TV를 끄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주인님.”

그 열기를 느낀 것일까? 잠시 몸을 흠칫 떨었던 수연이었지만, 이내 창현을 부른 이유를 깨닫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대로 계실 거예요?”

“계집, 본좌가 지금 매우 즐거운 취미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자꾸 앙앙 거리지?”

“후! 지금 모두가 주인님을 주목하고 있어요. 최근 근처에서 늘어난 기운이 몇 개나 되는지 저보다 훨씬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사냥개…취급의 대가는 확실하게 받아 내신다면서요!”

“네 할아버지이니까 조금 고민중이다.”

수연의 몸이 다시 한 번 떨렸다. 경박한 말투로 자신의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 느껴졌던 열기와는 전혀 다른 어떠한 느낌 때문이었다.

“…주인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리고 슬슬 수희가 불편해 하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우리집에 눌러 붙어 있을 거야?”

제법 현대적인 어투에 많이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좀 경박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간간히 사용하는 본좌라던가, 계집이라던가 그런 단어들조차 무겁지 않고 오히려 그 경박스러움에 가벼움을 더하고 있었다.

도무지 절정고수라는 사실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 말투 때문이었지만 수연은 알고 있었다. 하나의 상황만을 놓고 거의 사실에 가까운 짐작, 특히 할아버지가 자신을 어째서 내쳤는지, 그리고 창현이 그 존재만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기존의 무인들이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태극문파에서 그토록 난리를 쳤던 것 역시 모두 계획 된 것임을 알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경박스럽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은 무서운 실력이었다.

‘후우! 그래도 너무 야망이 없으시니….’

수연은 이미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쓸 만큼 창현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비단 처녀를 그가 가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다른 여자와 함께 관계를 나눈 그 상황이 현대 여성인 수연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분명했다.

흡정대법 역시 지현의 경우처럼 창현이 직접 영력의 그릇을 귀속 시키고, 사술을 이어나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관계가 끝이 난 이후 이성을 찾는다면 충분히 벗어 날 수 있었다. 지현은 맨 처음부터 일반인이었기에 그 관계를 통해서 점점 길듦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상황들이 창현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끔 되어 있었지만 수연의 경우는 전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일류 고수였기에 한시적인 효과에 불과한 것 무공에 휘둘릴 까닭이 없었다.

단지, 어려서부터 강한 남자를 동경하는 마음과 색공, 20년 동안 처녀를 간직 하면서 마음먹고 있었던 일종의 관습적인 생각 덕분에 창현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무척이나 빨랐다. 그리고 방금 전처럼 간간히 던지는 느끼하면서도 경박스런 말투 속에 숨어 있는 진심 아닌 진심들…에 가벼운 감동까지 느끼면서 이제는 완연한 주인님으로 창현은 수연의 마음 속에서 발전하고 있었다.

‘내 취향이…좀 이상한 탓도 있지만…상관없어. 어차피 그와 영원할 것이니까.’

생각에 빠져 있을까? 고운 턱선이 강조되고 턱을 괴고 있는 창현을 보면서 수연이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하려던 말을 이었다.

“말씀 하신대로 할아버지는 주인님을 제거 하려 들 거에요. 그 것은 문파들도 마찬가지이고…국제적인 발표가 이뤄지면 그 혼란 속에서 주인님에 말씀대로 주인님을 이용해 그동안 거슬렸던 사람들을 제거 하려 들 것이고요.”

“내가 전부 해 주었던 이야기이잖아.”

단 한 번 만나 본 적도 없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속내를 그대로 짐작해 내는 것은 물론 거의 확신에 가까운 말을 했으니 수연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자신은 너무나 순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있지. 그 때 언덕에서는 색목인들이나 중원인들 그리고 일본인들도 보이더군.”

“네.”

“그들을 네 할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역시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을 면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일본인이나 중국인들은….”

“아아, 그건 네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기억 속을 더듬다 보면 대충 답이 나오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너무 조급증을 가질 필요도 없어. 지금 네 할아버지라는 인간이 날 사냥개 취급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발발 거리며 돌아다니길 바라고 있을 거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보고 자신에게 거슬리는 인간들과 나를 붙이려 들겠지. 나야 네 할아버지처럼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도 거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잘 아시면 준비를 하셔야죠! 그리고…그 정도 무공을 가지고 계시고 또 더 발전하실 수도 있으면서 왜 굳이….”

“수희 대학부터 가고. 그리고 주말에 같이 놀이공원 가기로 했어.”

수연의 얼굴에 황당함이 스쳤다.

놀이공원이라니? 지금 시국이 어느 시국인지 알고나 있는 것인가? 수연은 창현이 정말 그 모습 그대로 바보가 아닐까, 라는 의심마저 순간적으로 들었다.

“주인님, 지금은 한가하게…”

창현은 잘라 말했다.

“운수대통 아저씨, 너, 지현이, 세 명과 개 한 마리, 요망스러운 요괴계집 한 마리, 피콜로.”

“….”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운수대통 아저씨 역시 너에게 전혀 밀리지 않아.”

“!!!”

수연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김대길씨는 태극문파에서 쫓겨난 삼대 제자에 불….”

“숨기고 있었던 거야.”

“….”

“일류 셋, 물론 지현이는 네가 좀 더 가르쳐야 하겠지만 어쨌든 일류 셋, 인간으로 치면 이류 끝자락에 있는 개 한 마리, 그 요망스러운 계집은 다시 한 번 만나봐야 정확하게 알 것 같고 피콜로 역시 일류 초입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런 니들이 한 꺼번에 덤벼도 상대도 안 되는 나.”

“…그렇군요.”

듣고 보니 엄청난 엘리트 집단들이었고, 소수 정예로는 가히 대문파 최정예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절정고수 한 명, 일류 고수 세 명에서 네명으로 소수 정예를 꾸리는 것이 일반적으로 100년급 요괴나 귀를 상대하러 갈 때의 인원이었으니까.

“아! 요즘들어 요괴나 귀들이 점점 극랄해지고 있어요. 아마 발표와 더불어 전세계가 본격적으로 그들과 전쟁을….”

“그건 나중 일. 주말에 놀이공원부터 가고.”

수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힘을 가지고 숨기고만 있는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인님.”

확실히 지현과는 다른 수연이었다. 지현이야 무인도 아니었고, 소위 엘리트적인 삶을 산 것도 아니었다. 늘 순종하면서 살면서도 속으로는 독기를 품으며 살 수밖에 없었기에 수연처럼 미래를 그리거나, 직접적으로 조언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늘 물심양면으로 묵묵히 돕는 스타일이라면 수연은 앞서 나가서 진두지휘하고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더 나은 방향을 나서서 찾는 스타일이었다.

공통점은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

“뭐 어쨌든 놀이공원부터 가고 생각 할 거야.”‘

“저기 주인님….”

“왜?”

“저도 가도 되죠?”

창현이 가볍게 얼굴을 찡그렸다.

“너도?”

“네? 또 누가?”

“지현이도 가고싶다던데?”

“….”

“몰라 둘 다 수희한테 물어 봐라. 걔 시험 잘 봐서 데리고 가는 거니까.”

수연은 자신이 정부에서 뛰쳐나온 것이 처음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는 이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주인님 힘을 드러내시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시면 정부에서 알아서…아!”

“사냥개가 아니라 범이라는 것을 알면 알아서 긴다, 뭐 그런 말이잖아. 내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수희 대학 문제도 단 번에 해결 되고.”

수연은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창현은 몸을 일으켰다.

“내가 범이다 말하고 다니는 것은 본좌에겐 어울리지 않아. 그들은 곧 알아서 깨달을 거야. 범은 그 존재만으로도 압도적이거든. 하룻강아지들이 아직 몰라서 그런 것이니 내가 너그럽게 이해해주고 있는 거니까.”

“….”

“놀이공원부터 갔다 오고 모여서 인사나 한 번 하지. 앞으로 계속 마주 칠 일도 많고 여러 가지를 함께해야 할 것 같은데.”

일류 고수 셋, 버금가는 인간체 요괴 두 명과 동물형 요괴 한 명 그리고…초절정조차 귀찮아서 이루지 않고 있는 절정고수.

수연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놀이공원…재미있겠지?’

도약을 한 번 10M까지도 단 번에 도약을 할 수 있는 고수이지만 수연도 아직은 20살에 불과한 어린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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