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9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탁자는 오랜 세월을 대변하는 것처럼 무척이나 낡아 있었다. 나이테가 무척이나 크고 동그랬다. 갈색 물결이 꽤나 고풍스럽게 느껴졌다. 신선들이 앉아 바둑이라도 둬야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모인 사람들의 옷차림은 탁자와 어울리지 않았다.
이 곳은 2013년 대한민국.
그리고 태극문파이다.
속가라 하여 꼭 무당산의 도사들처럼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었다. 본디 무당파가 욕정을 멀리하고 도를 추구하여 신선이 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런 것은 무뎌진지 너무 오래 되었다.
마치 동그랗게 물결치고 있는 나무의 나이테처럼, 단면이 싹둑 잘라져야 보이는 그 것처럼 그들은 그 목표를 이미 머릿속에서 잘라내 버린 것 같았다.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다고 도사가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멋쩍었지만, 그들의 얼굴에 흐르고 있는 기름기나, 눈알을 굴리는 그 모습이 확실히 도사라 하기에는 어딘가 경박스러운 면이 있었다.
특히 오른쪽 상석에 앉아 있는 노인의 눈은 뱁새처럼 쭉 찢어진 것이 그 작은 눈에도 욕망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순간이었다.
그 욕망이 사라지고 옅은 미소로 바뀌는 것은.
“오셨습니까, 장문인.”
문파의 존립이 걸렸다고 할 만큼 너무나 크나 큰 문제가 일어났고 그 것은 곧 위기였다. 비각, 무각, 정각. 금각, 태극문파는 크게 네 각으로 나눠져 있었고 비각은 현대 사회와 타문파, 그리고 정부 무인에 대한 정보 담당을, 무각은 말 그대로 태극문파의 힘을 모아 놓은 곳이었고, 정각은 신인 문도들을 받아들이고 교육 시키는 곳이었다. 금각은 도사 역시 먹고 살아야 했기에 문파의 예산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그 전에는 수 갈래로 나눠져 있었지만 문을 열고 자리를 잡고 있는 장문인 세대에 네 가지로 통합 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어느 한 곳에 권력이 치우치지 않도록 지금의 장문인은 각고의 노력을 했다.
비각의 각주, 무각의 각주, 그리고 정각의 각주, 금각의 각주가 있었고,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종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뱁새처럼 찢어진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 역시 무각의 각주 자격으로 지금의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다.
장문인이 자리에 앉았지만 무거운 침묵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작금의 상황은 꽤 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장문인, 김갑수는 가장 유력한 장문인 후보였던 사형이 돌연 은거함에 따라 어찌 보면 자신의 떠밀리듯 장문인 자리를 맡게 되었다. 무의 끝을 보리라, 라는 말 한 마디와 함께 언제나 사문과 함께 하겠으니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져 버린 태극문파 최고의 천재라 불리던 사형 대신 장문인 자리에 올랐으니 그 부담감이 언제나 막중했다.
본디 신중한 성격에 문도들의 신망도 사형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받고 있었으니 그가 장문인을 맡는 것에 불만을 표하는 제자는 거의 없었다.
단지…
“꽤가 아니라 엄청난 위기이지요. 진선도인은 본문의 본파라 할 수 있는 무당파 장문인의 사제입니다. 사사롭게 사제이기만 했다면 어쩌면 야인에 불과한 그의 강함을 핑계로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무당파 내에서도 요직이라 할 수 있는 동양 무인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진선도인이 깨어나 봐야 알 수 있기는 하지만…평소 그의 성격으로 볼 때 결코 이 일을 그냥 좌시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우리 문파 역시 걸고넘어질 것이고, 무당파 역시 요직에 앉아 있는 진선도인의 체면을 외면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절정고수가 손 하나 쓰지 못하고 패했다는 것은 치욕적인 일이니까요. 그 것도…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한국의 무인에게 말입니다.”
제법 긴 말이었지만 노인, 이명우는 말끔하게 말을 마쳤다. 정보를 담당하는 비각의 각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렇습니다. 최근 국제적인 발표를 앞두고….”
“잠깐, 각주 국제적인 발표라 함은?”
창현이 언덕에서 소란을 일으킨 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비각의 각주 입에서는 막힘없이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부에 심어 놓은 아이의 말에 의하면 지난 번 기가 폭발하고, 그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이상 숨기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판단, 국제적인 협의를 순식간에 이뤄내었고, 각국은 곧 무인이나, 서양의 능력자들에 대해서 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발표는 미국에서 하기로 결정했고, 대부분의 국가가 대표 형식으로 한, 두 명씩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쳤군!”
김갑수의 입에서 기어이 거친 말이 흘러 나왔다.
“그 혼란을 어찌 감당하려고…!”
일반인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혼란은 자명했다. 국가관은 새롭게 정립 될 것이고, 국력은 절정고수와 초절정고수 보유 숫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 역시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까지보다 더욱 막대한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습니다. 사숙. 아마…우리나라 역시 무인들에 의해서 권력이 재편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요.’
종욱은 그저 생각만 하며 숨을 깊게 몰아 쉴 뿐 말에 끼어들지 않고 있었다.
이명우는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는 현대식 무기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그 것조차 적어도 100년 이상은 귀력을 쌓은 요괴나 귀의 내단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니 오히려 그 혼란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실 터졌어도 진즉에 터졌어야 했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참아 온 것뿐이지 않습니까. 장문인.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젊은 아이들에 대한 통제가 점점 힘들어지는 마당에…중요한 것은 그 것이 아니라 진선도인의 문제이죠.”
화제를 다시 돌리는 그의 목소리에 갑수는 답답한 심정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제는 차후에 논의를 다시 해야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장 닥친 문제는 진선도인의 문제였으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진흙탕을 일으키며 기회를 만들고 있다. 큭큭! 양패구상이 최상의 시나리오니….’
이명우는 비릿한 미소를 애써 숨겼다.
“불똥이 튀기 전에 저희가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
“…사제.”
강창현을 처리하자는 그의 주장은 정석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보았듯 그는 보통 고수가 아니다.
“…사형을 찾아뵙기로 이미 결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당장 움직임을 보여야 합니다. 통역관은 벌써 무당파에 연락을 취한 것 같았고, 그는 본 그대로 말을 전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어물쩍 거리고 있다는 것까지 보고가 들어갔으면…본파의 화를 누그러뜨리기 쉽지 않을 겁니다.”
“….”
이명우는 몰아쳐야 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가볍게 테이블을 쳤다. 둥그렇게 물결을 치고 있는 탁자 나무의 나이테가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각 문파들은 뿌리가 어떻고, 자신들이 한국의 전통 무인 어쩌고 내세우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 것이 그들에게 주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뿌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를 추구하는 무당파의 속가로 시작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외면하기 힘들만큼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받아 왔습니다. 이것은 변절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의 문제입니다. 당장 새로 들어온 문도들을 위하여 내단을 대량으로 보내주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죠. 그 내단이 없었다면 태극문파가 과연 삼대 문파로 손에 꼽히겠습니까? 최고의 후기지수라 평가받고 그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성장하고 있는 종욱 사질만 보아도 당장 그 사실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비각의 각주는 물론, 이번에는 금각의 각주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무지막지한 돈과 함께 한 번 둘러본다는 핑계로 올 때마다 여제자들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그 내단으로 키운 제자들의 목숨까지 잃고 있지요.’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종욱은 내뱉지 않았다.
어쩌다 이 문파가 이토록 썩어가고 있는지…자신의 사문이 이토록 타락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간단했다. 열변을 토하고 있는 이명우에게 어느새 동조하고 있는 비각의 각주와 금각의 각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머리부터 썩으니 새로운 씨앗이 깨끗할 리가 없었다.
그 때 비각의 각주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정보에 의하면 이광길 역시 그를 제거하려 한답니다. 대혼란에 앞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다 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그는 중국을 택한 것 같았고 그 줄을 무당파로 택한 것 같습니다. 당장 손녀라 할 수 있는 이수연을 오늘 진선도인의 서울 여행에 동참시키려 했으니까요.”
장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이광길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명우가 적절하게 비각 각주의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연계를 할 수도 있겠군?”
김갑수는 옅은 신음을 흘렸다. 개인적으로 이광길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분이 어째서 그런….”
“장문인, 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추적대를 맡도록 하겠습니다.”
종욱의 말에 김갑수는 물론, 원래 그 방향으로 몰고가려 했던 이명의 눈도 커지고 있었다.
“무각 각주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야 한다면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고, 그가 절정고수이니만큼 정부 무인들과 연계를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사질?”
종욱의 눈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창현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스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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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차 추천 200개 넘으면
다친 손목이 부서져도 연참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