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4 회: 최상급 능력자 혈마 -- >
심드렁한 표정만큼이나 무료한 얼굴이었다. 창현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송아, 네가 지금 나한테 안 된다고 하는 것이냐?”
노인과도 같은 말투이지만 뒤로 갈수록 무척이나 통통 튀는 것이 꼭 약 올리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종욱은 그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이런 소란이 일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대 장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 미약하게나마 창현을 제어 할 수 있는 사람이 태극문파에서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스승은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는가….’
아무리 은거를 하셨다 하지만 진선도인이 문파 내에서 죽어나간다면 그건 문파의 존립 자체에 큰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욕의 눈빛으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사숙이나, 그저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이는 장문인이 종욱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3대 문파로 손꼽히기는 하지만 몰락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3대 문파이고, 무엇이 대 문파인가! 그저 눈에 거슬리면 치워버리는 속가 문파보다 못한 존재인데!’
회의가 치밀었다.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질 것을 지금까지 아등바등하며 어떻게든 옛 영광을 찾아보자 몸부림 자신조차 종욱은 우습게 느껴졌다.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약관이 막 지난 젊은 청년 한 명의 의지에 문파의 모든 것이 달려 있었다.
“부탁…드립니다. 진선도인을 죽이시는 것 자체가 저희 문파에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어쨌든 그는 본파에서 저희 문파를 방문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도 엄청난 문제인데…만약 산문 내 앞마당에서 죽어나가는 사실까지 퍼져 나가면 무당파는 저희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겁니다.”
“무당파에서 이 녀석 위치가 꽤 중요한 가?”
창현은 마치 더 들어주겠다는 듯 도로 진선도인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진선도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생사가 지금 종욱의 말 한 마디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참 이 상황에서도 꾸준하게 통역을 하고 있는 남자 역시 대단했다.
“난 무당파 장문인의 사제인 것은 물론, 무당파 내에서 중요 요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야! 네 놈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진선도인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꺄아!”
짧은 단발마의 비명은 진선도인에게서 흘러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고왔다. 수연도 입을 벌렸고, 비명을 지른 혜화가 입을 가리고 덜덜 떨고 있었다.
종욱은 재빨리 혜화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도 끝날 부터 중간까지 그대로 진선도인의 입을 뚫고 뒤통수까지 이어져 있는 것은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어버버, 라는 신음소리를 내는 것처럼 진선도인의 눈동자가 끊임없이 흔들리며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창현은 그대로 도를 비틀었다.
“커어억!”
입과 뒤통수가 동시에 뚫려 있는 상태에서도 비명은 터져 나왔다. 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여기서도 이 더러운 돼지는 살릴 수 있어.”
“….”
“제법 강한 도구로 만들 수도 있어.”
“….”
창현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에 종욱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 혈마지기를 볼 때부터 그의 뿌리가 정파가 아님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단체도 트집을 잡지 않았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창현이 강자이기도 했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그 어떤 무공보다 깊고 맑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정파의 무공이 극을 이룬 것일 때처럼.
하지만 창현이 방금 한 한마디는 그런 모든 것들을 뒤집기 충분했다.
물론 말은 했지만 들은 것은 종욱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종욱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수연조차 의문스러운 눈길로 자신과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뭐 그런 눈으로. 그냥 공간을 차단 했을 뿐이야.”
“그, 그게 가능합니까?”
창현은 피식 웃었다.
“내공으로 호신강기도 두르는데 일정 공간을 가르는 것 역시 가능하지. 진정하게 공간을 찢어버린다는 말이 아니라 내공의 범위를 넓혀서 차단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
종욱은…아주, 아주 조금이나마 창현의 실력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화경의 경지에서 그런 것도 가능….”
“응, 이 돼지 역시 가능하지. 근데 지가 못하는 거야. 이를테면 효율의 차이랄까?”
“효율?”
창현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똑같은 검이 있어. 하지만 권각술의 대가가 사용하는 것보다 검법의 대가가 사용하는 것이 그 검을 사용 했을 때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지.”
“….”
“적절한 비유는 아니었네. 내공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기운이니까. 어째서 내공이 자연의 기운을 단전이라는 그릇에 모으는지를 원초적으로 생각 해 보면 의외로 쉬운 문제지.”
“!!!”
종욱의 눈이 크게 찢어졌다.
종욱은 창현에게서 전혀 다른 방법의 내공 사용법을 알게 되었고, 그 것은 엄청난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공은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 숫자는 늘었지만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이 적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종욱은 고개를 숙였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본론은 그게 아니지. 이 돼지를 살려줄 수 있다. 그리고 오로지 너만 알 수 있게 너의 입맛대로 조종 할 수도 있고.”
“…그 말씀은….”
“이 시대 사람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었지? 정확히 보았어. 역시 도사 놈이라 그런지 눈치가 빨라.”
“….”
“하지만 내가 강창현인 것도 전혀 변함이 없다. 난 배교 32대 교주임과 동시에 강창현이니까.”
“!!!”
종욱의 눈에 경악이 스며들었다.
“혀, 혀, 혈마 강세찬?”
“호오? 내 기록이 남아 있어? 족히 500년은 넘게 흐른 줄 알았는데?”
종욱은 창현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고 보니 저건…혀, 혈마지기! 말도 안 돼! 그저 소설이라 여겼거늘!’
인간의 경지를 뛰어 넘은 자! 신선의 경지조차 뛰어 넘은 자! 그런 절대자가 반란에 의해 잠들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었기에 그 기록조차 믿지 못했다.
정파는 잊지 않았다. 단지 드러내고 있지 않을 뿐.
창현은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그들은 그저 배교라는 사악한 무리에 의해 중원이 호령되던 시절을 굴욕이라 생각했다. 정작 창현이 정사대전을 일으킨 적도 없건만, 오로지 중원 제일의 고수가 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수치스러워 했다.
“…자세히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저도 무당산에 갔을 때 우연히 본 것에 불과한지라….”
종욱은 재빠르게 수습했다. 상대는 배교 교주다. 그 것도 전설로만 전해지는. 그렇다면 진선도인의 처리는 쉽게 생각 할 수 있었다.
가능한 것인지 의심은 갔다.
“활강시는…많은 시간과 더불어…”
창현은 여전히 공간을 차단한 채 종욱과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만들려는 것은 그런 조잡한 강시 따위가 아니야. 활강시 정도는 당장이라도 대량 생산 할 수 있다.”
“….”
눈앞의 남자는 세계를 뒤엎을 힘을 가지고 있다. 종욱은 그 것이 느껴지자 도리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렇군요.”
“예전에 심심해서 만든 적이 있던 일종의 사술인데 네가 원한다면 이 녀석을 넘겨 줄 수 있다는 거야.”
다시금 꺄악, 꺄악 하는 비명 소리와 심성이 약한 아직은 실전경험을 해보지 못한 제자들의 토악질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도를 한 번 비틀 때 마다 피는 계속 해서 솟구치고 있었고, 진선도인의 얼굴은 점점 망가져가고 있었다. 세로로 그어지는 도를 보면서 종욱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받겠습니다.”
“좋은 결정이야. 물론 공짜는 아니야.”
“…네?”
“설마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난 그냥 여기서 이 녀석을 죽이고 대문파라는 곳이나 정부로 들어가면 그만이야. 내 능력의 일부만 보여도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당장 정부는 날 잡으려 안달일걸? 그 기회를 네게 주겠다는 거야.”
“…네.”
이 것 저것 잴 시간이 없었다. 종욱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창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계집의 부탁은 들어 주었군. 더불어….’
무엇을 약속 했을까?
수연의 얼굴을 힐끔 보던 창현이 도를 뽑아내었다. 종욱은 움찔 몸을 떨었고, 공간 차단이 풀리자 푸슉, 하는 그 불쾌한 소리가 모두의 귀를 때리고 있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짧은 주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도가 아니라 창현의 왼손 끝에서 붉은색 혈마지기가 뿜어져 나갔다.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 영력도 함께 뿜어져 나간 것이니까.
진선도인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다. 무릎에 박혀 있던 작은 줄기의 혈마지기는 사라져 버렸고, 크게 구멍이 뚫려 버린 입과 뒤통수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원형이 둥근 막 속으로 들어가 버린 진선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곧 원이 찢어지면서 진선도인이 툭, 하고 떨어졌다. 여전히 넝마와 같은 몸이었고, 피 역시 온 몸을 덮고 있었지만 모두가 미약하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무인이었기에 옅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진선도인을.
“데려다 치료해.”
“….”
창현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태극문파 사람들 중 장문인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뭐, 뭣들 하느냐! 어서 모시지 않고.”‘
복잡한 눈길로 창현과 수연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은 장문인은 서둘러 진선도인을 들쳐업는 통역과 더불어 빠르게 산문위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뒤를 종욱의 사숙, 즉 진선도인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던 장문인의 사제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 역시 뒤 따랐다.
“추후에 묻겠네.”
창현이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은 아마 자신들은 듣지 못했던 창현과 종욱의 대화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듣지는 못했지만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정산하지.”
“…이 자리에서 말입니까?”
“아니, 네놈 말고. 저 자식은 한동안 깨어나지 못할 거야. 본파 눈치는 보지 않아도 될 거다. 이 계집 말에 의하면 조마간 굉장한 일이 일어날 테니까. 하지만 그 혼란도 오래가지 않겠지. 모든 것이 정리 될 때쯤이면 저 돼지도 깨어날거다. 그 때 날 찾아 오도록 해.”
“….”
창현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수연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남은 거 정산해야지?”
“그런 표현 쓰지 말아요. 이미 끝난 일을.”
종욱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간드러지게 들렸다. 마치 사랑하는 님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그리고 평범한 방법인 전음이 귓가에 꽂혔다.
‘네 뒤에 있던 계집…잘 키워라. 아니면 내가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
종욱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그 자리에서 잔영을 남기며 사라지고 있는 수연과 창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보이지 않음에도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너 따위는 비교도 될 수 없을만큼 훌륭한 근골을 가지고 있는 계집이니까. 흐르는 기운을 보니 네놈이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제법 좋은 것도 처 먹인 모양이고.’
진정…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과 그와 이미 엮어 버렸다는 사실에 종욱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호재일지 악재일지보다 일단 당장 급한 일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진선도인이 사라진 곳으로 종욱 역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단전 부근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창현의 것이라 짐작되는 그 기운이 진선도인이 자신의 입맛대로 움직일 열쇠라는 것 역시 느끼고 있었다.
결국 입 밖으로 내고 말았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혈마이든 강창현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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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하는 월요일입니다.
물론 저는 아니에요.
전 전업이라서요.
....죄송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