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3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수희는 괜스레 손톱을 질끈 깨물었다. 집으로 돌아 올 때마다 하더라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한 시간, 두 시간…그리고 이제는 세 시간.
“아 진짜 언제 와!!”
물어 뜯고 있던 손톱을 퉤, 하고 뱉어 버린 수희가 거실에서 혼자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창현만을 기다리고 있건만 세 시간이 지나도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평소라면 야간 자율 학습도 아직 끝나지 않을 시간이었다.
자율 학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창현이 반겼다. 다니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집에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창현이 집에 없었다. 수희는 당연히 그가 금방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모의고사 성적에 따라 부탁을 들어주기로 약속을 했고, 오늘은 그 모의고사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성적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모의고사이기에 충분히 성적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지난 시험을 완전히 개판 쳐 놓았기에 점수가 오른 것은 당연했고, 창현에게 선물을 받을 일만 남은 것이다. 히죽히죽 웃으며 얼굴을 붉히는 것도 한 시간이 지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잔뜩 기대감을 안고 집에 돌아왔건만 휑한 거실은 아직까지 따뜻한 창현의 기운으로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후우…!”
열을 내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수희는 소파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전화를 해 볼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언제까지 들어오지 않나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오기라 할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문득 티비 위에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
수희는 혼잣말은 하지 않았다. 짜증이 나는 것도 잠시 그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 괜스레 눈물이 나 올 것만 같았다.
“하필이면….”
나지막한 중얼거림에는 물기가 묻어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는 물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창현의 아버지 또한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원망했었던…그래서 엄마까지 미워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사실 그 누구보다 따뜻한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와 결혼을 한다는 그 사실을 알린 순간부터 창현의 아버지는 가장 미운 어른으로 바뀌어 버렸다.
‘슬퍼, 하지만 그 때와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어.’
두 분이 혼인 신고를 하기도 전에 돌아가신 것은 수희 역시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은 결코 다행이 아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직도 창현과 수희는 법적으로 남남이었다.
강창현, 김수희!
성씨부터 달랐으니까.
띵동!
“왔어?”
수희는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창현은 자신의 방에도 노크를 하지 않고 벌컥벌컥 들어온다는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오….”
수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탐스러운 갈색 머리의 여자는 한 눈에 보아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깔끔한 검은 정장이 매끄러운 몸매를 가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례한 것은 알지만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집에 찾아 온 적이 없었기에 수희는 거의 본능적으로 여자의 위아래를 훑어 내리고 있었다.
그 눈길에도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기요!”
여자는 소개 대신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한국 무인 협회 실장 차수연.
정장 못지않게 깔끔하고 심플한 명함이었다. 수희는 작게 무인 협회…? 라고 중얼 거린 뒤 다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하는 곳…이죠? 왜 저희 집에?”
사기꾼들이 판치는 세상이었다. 19살이지만 이미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알고 있는 수희였다.
그리고 동네의 특성상 사람을 잘 믿기 힘들었다.
눈앞에서 구타를 당하고 있어도, 도움을 주는 사람보다는 지나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신고조차 하지 않는 주민들이었다. 흉흉한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고,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결코 적용되지 않는 동네였다.
그렇지만 싱긋 웃는 여자의 눈빛에는 무엇인가 사람을 끌리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사설 단체 같은 곳에서 나 온 것이 아니고요.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저희는 정부 부서 중 한 곳입니다.”
수희가 창현의 동생이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여자는 그래서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 정보에 의하면 창현을 부서에 끌어 들일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동기가 눈앞에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무인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부서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정식 무인으로 등록이 된다면 그 혜택은 막대했다. 당연 할 수밖에 없었다. 고수가 곧 국력인 시대이다. 핵무기 하나보다 절정 고수 한 명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훨씬 강한 시대! 일반인들이야 아무 것도 모르고 있지만 각 정부 기관과 고위층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비단 고위층들만이 아니라 문파들을 후원하고 있는 기업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문파라고 땅에서 돈이 솟아나는 것도 아니고, 무공만 익히며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 그대로 돈이 필요한 것이고, 가장 쉬운 것이 후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정부 기관에 관리는 받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은 대문파 대부분이 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예로 태극문파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기업과 아주 친밀했다.
돈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고, 가장 쉬운 것으로 재능이 있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는 것이었다.
노력하는 천재는 현대 무인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말이었다.
일반인들은 알지도 못하는 무인! 하지만 그 것 역시 일종의 직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루기는 어렵지만 이루기만 한다면 자신의 인생은 물론 후대까지 떵떵 거리고 살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기회!
집안에서 절정 고수 한 명이라도 나온다면 그 집안이 광명을 얻는 것은 아주 쉬웠다.
하지만 절정 고수의 조건은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재능은 기본이 되어야 했고, 혈맥이 굳기 전이라고 알려진 5세 이전부터 수련을 해야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절정고수의 길은 요원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창현의 존재는 굉장한 것이었고, 아무런 문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정부에서 군침을 돌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오빠 분을 만나러 왔어요. 혹시 집에 계신가요?”
여자는 짙게 미소를 지었다. 살짝 내공을 운용했다. 눈빛에 신뢰를 담았다. 신뢰가 가는 눈빛! 그 감정은 표현 할 순 없지만 진짜였다. 내공의 효과는 무궁무진했다. 수희는 일반인! 일종의 최면술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여자의 무공에 대항할 수 없었다.
“아직 안 왔어요. 금방 돌아올 거니 안에서 기다리실래요?”
창현 이외에는 그 누구도 잘 믿지 않는 수희는 아주 쉽게 여자를 집 안으로 들였다.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현관문으로 들어섰다.
“집 안이 아주 따뜻하네요!”
한 여름인 8월이다. 따뜻하다는 표현은 어색했다.
하지만 수연은 느낌 그대로 말을 한 것이다.
‘강창현이 남겨 놓은 기운은 아니야. 의념의 일종이지! 굉장하군. 강창현이 어째서 갑자기 절정 고수가 되었는 지 알 것 같아!’
창현의 아버지가 집에 남겨 놓은 의념!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잡귀의 존재와 요괴들로부터 근본적으로 창현과 수희를 보호하고 있던 그 의념을 수연 역시 느낄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의념은 그 어떠한 결계보다 강한 효과를 발휘했다.
‘내가 정말 나쁜 의도로 접근을 했다면 몸속에 선천지기 요동 쳤을 테지.’
수희가 권하는 소파에 가볍게 엉덩이를 붙인 수연이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직도 영력의 그릇이 찌릿찌릿한 느낌이었다.
20살에 실장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단 것이 아니었다.
수희는 무공으로는 일류 초입이었고, 무엇보다 영력의 경지가 2단계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력의 단계는 말 그대로 선천지기 자체가 강해지는 단계!
추후에 절정고수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수연의 어머니 아버지가 무인은 아니었지만, 꽤 뛰어난 선천지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정부 조직은 알고 있었다. 수연의 할아버지가 일류 끝자락에 이른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이미 할아버지가 정부 조직에서 일을 하던 사람이었고, 당연히 어렸을 적부터 재능 검사를 받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정확하다고 신뢰 받는 슈퍼컴퓨터에 의해 선천지기의 양과 혈맥의 넓이까지 모두 고수가 되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받았다.
수연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십대에 일류로 발돋움함으로써 추후 무인협회의 협회장으로 가장 유력한 인사였다.
그런 수연이 직접 창현을 찾을 정도로 창현은 굉장한 존재였다.
절정에 이른 것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3단계 영적 능력자는 채 1%도 되지 않았고 그 것마저 슈퍼컴퓨터가 판단하기에 ‘최소’ 라는 말이었다.
‘이런 능력자들을 세린이 발견하지 못한 것은 분명 의외의 일이야.’
수연은 수희가 가져다 주는 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빙긋 웃었다. 지금에 와서 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창현을 수많은 문파들보다 먼저 발견 했다는 사실이었다.
‘골치덩어리 귀가 이럴 때 도움이 될 지는 몰랐어.’
재개발 덕분에 생긴 언덕의 주인은 정말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리고 수희는 한 편으로는 창현의 실력을 더욱 높이 볼 수밖에 없었다. 이기적이기로 소문이 난 그 귀가 선뜻 자신들에게 창현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은 그 자신의 실력으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슈퍼 컴퓨터의 측정 결과, 그리고 귀의 증언!
그 것이 창현을 최소 ‘절정’ 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증거였다. 전 세계적으로 채 0.1%도 되지 않는 고수의 존재!
반드시 끌어들여야 할 존재였다.
“계집 시험 잘 봤어?”
창현의 목소리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빠!”
수희가 가장 먼저 반기며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 수희의 머리를 쓰다듬은 창현은 이미 수연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시험은?”
“잘 봤어!”
배시시 웃는 수희를 보면서 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손님 오셨어!”
수희의 말에 창현은 마치 그제야 눈치라도 챈 것처럼 시선을 수연에게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저녁은?”
중간에 가볍게 말을 끊는 창현의 목소리에 수연은 잠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눈치 채지 못했던 척 하고 있지만 기운을 갈무리 하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창현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몇 수 위의 고수라는 것은 창현도, 수연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아직 안….”
“수희야 저녁 먹었냐고.”
“….”
수연은 잠시 몸을 떨었다.
“…아! 나? 아직 안 먹었어.”
“나도 안 먹었어. 그럼 저녁 준비부터 해라. 오늘은 네가 해 줄 거지? 부탁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응응!”
수희가 기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창현은 수연에게 입을 열었다.
“그 쪽도 전이지?”
무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수연은 다시 몸을 떨었다. 초면에 말을 놓는 것은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았다. 엘리트의 삶을 살면서 모두가 자신을 떠받들었지만, 창현은 그러지 않았다.
“…네.”
하지만 수연은 말을 높였다. 창현이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이라 스스로 위안했다.
“그리고 기운 좀 갈무리 하지? 스스로 떠 벌리만한 실력도 아닌데 부끄럽지도 않나?”
창현의 목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운이 그의 몸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절, 절정이다! 아니야! 그 이상이야!!!!’
수연의 눈이 크게 찢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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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살인 더위
이거 휴가 한 번 더 가야 하나요?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