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9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태극문파에서 파문당한지 벌써 10년. 일반인들조차 손가락질 하는 곳에 몸을 담고 있기에 사형제들의 손가락질은 당연했다. 아니, 태극문파 문하들은 대길에게 손가락질조차 하지 않았다.
파문을 당한 그 순간부터 이미 그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근골이 다 굳은 나이에 들어와 배분조차 삼대 제자들보다 낮았다. 근골이 굳었으면 재능이라도 좋아야 하건만 재능조차 좋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공을 보는 눈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그런 눈도 없었다.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던 대길은 그저 정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다.
자, 우리도 이렇게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여 문하를 기르고 있다! 꼭 다른 문파들만이 선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무림방파들을 은밀하고 관리를 하고 있는 것에 협조를 하는 것은 물론, 복지부 예산까지 덜어주고 있으니 그만큼의 성의를 보여 달라!
그렇게 희생당한 사람 중 한 명이 대길이었다.
‘운이 좋았지.’
오래전을 회상하는 대길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짙은 연기를 뿜어내었다. 담배에 들어 있는 수 많은 썩은 성분들이 내공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대길은 그닥 상관하지 않았다.
일류 수준에 오른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정부에 자신의 실력은 삼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조폭 두목 노릇을 하고 있어도 아무런 간섭이 없는 것이다. 삼류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것은 일반인들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었다.
흔히 말하는 이종격투기 선수들도 그 본연의 실력으로만 삼류취급은 받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들은 내공을 느끼고 그 것을 활용할 줄 아는 진정한 삼류무사에게는 한 주먹거리도 되지 않지만, 어쨌든 그 것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경수야.”
대길 자신이 태극문파에서도, 그리고 정부에게도 버림받은 무림인이라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네, 형님.”
대길이 생각 할 때 경수는 제법 똘똘한 동생이었다. 10살이나 어린 사숙에게 반 말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문을 당한 대길은 곧바로 산을 내려와 먹고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 만난 것이 경수였고, 재능과 무공을 보는 눈 그리고 근골까지 굳었지만 그래도 수련 좀 했다고 건달 중에서도 꽤 알아주던 경수를 단 번에 때려 눕힐 수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무공을 익힌 것과 익히지 않은 것은 차이는 엄청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그 때 만난 경수가 대길을 형님으로 모시면서 이 곳 거리까지 흘러 들어왔다. 그 때도 10년 전 재개발을 들어가려다 실패했던 지역이 있었다. 그 곳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아무래도 흙을 쌓아 놓았다 오래 방치되어 그렇게 되버린 것 같았다.
그 곳에서 대길은 이름 그대로 대길을 맞았다.
번쩍이는 물체가 궁금하여 다가갔는데 그 것은 지금 창현이 알고 있는 그 언덕 주인이 모아 놓은 일종의 귀력이 담긴 나무열매였다.
태극문파에서 늘 배고픔에 시달리던 대길은 경수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도 먹을 것만 있으면 일단 먹고 보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고, 생각 없이 그 것을 삼켰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일주천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해 보았고, 막혀 있던 혈들이 뚫리면서 단 번에 반갑자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30년을 꾸준히 수련 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을 한 번에 얻은 것이다.
근골은 굳었고, 혈맥은 막혔지만 본래 그 근골과 혈맥의 크기가 나쁘지 않았던 대길이었기에 열 살 보다 어린 사숙들에게 얻어맞아 가며 배웠던 무공들이 함께 어우러져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고 곧바로 귀력을 흡수 할 수 있었다.
언덕의 주인은 일류급으로 강해진 대길을 함부로 건들 수 없었고, 분만 삭혀야 했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대길은 고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태극문파로 달려가 자신을 괴롭혔던 어린 사숙들에게 복수하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일류 고수 정도야 태극문파 이대 제자 중에서도 널렸기 때문이었다.
대신 대길은 경수와 함께 다니며 조직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정부가 문파들을 따로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에 실력을 철저하게 숨겼다.
본디 힘이 있으면 쓰고 싶은 법!
하지만 대길은 절제했다. 정부보다 더 무서운 것은 태극문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부들이 말이 좋아 문파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문파들이 정부의 사정을 봐주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는 수많은 방파가 있었고, 태극문파는 그 중에서도 다 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문파였다. 그리니 이대 제자 중에서도 일류고수들이 널린 것이다. 실력을 발휘하는 그 순간 대길은 태극문파의 눈길에 자신이 걸려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이미 일류 초입을 밟고 있었던 어린 사숙들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장문인이나 장로들 앞에서는 한 없이 천진한 미소를 짓던 10대 청년들이 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쾌감을 얼마나 즐겼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 즐거움을 깬 것은 물론 여기저기 얻어터지고, 팔까지 부러졌던 그 때 미친 척하고 장문인이 있는 곳에서 울고불며 애원을 한 덕분에 그 사숙들 중 두 명은 1년 면벽이라는 중벌을 받아야했다.
눈가리고 아옹인 중벌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적어도 3개월은 하산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고 그 악랄한 것들은 그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이미 정부에게도, 문파들에게도 실력을 숨기고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기에 대길은 굳이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삼류 초입의 실력으로도 얼마든지 왕 행세를 하며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다른 식구들이 노른자위 재개발권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지만 대길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힘으로 붙으면 모두 무릎 꿇린 자신이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였지만 무공을 아예 잊고 살면서 이미 건달이 되었고, 여기 저기 걸쳐 놓은 인맥이 꽤 많았다.
모두 경수 덕분이었다.
“애 하나 작살냈더라?”
“죄송합니다 형님.”
수완은 경수가 훨씬 뛰어났고, 부하들을 다루는 것 역시 경수가 뛰어 났다. 하지만 경수는 수완이 뛰어난 만큼 대길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건달들이 아무리 비즈니스적으로 진출을 많이 하고, 가끔 그럴듯한 타이틀을 내걸어 회사를 차린다 하더라도 그 근본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깡패는 깡패다!’
경수는 그 것을 언제나 상기하고 있었고, 깡패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길이 중심을 잡아주고 자신이 수완을 발휘한지 어느 덧 10여년이 지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백골파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진짜로 전쟁이 나면 대길이 모두 정리를 한다는 것을 경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내 선에서 처리되는 것이 깔끔하지만.’
“제법 심부름을 똘똘하게 하던 애였는데 왜 그리 팼어?”
탓하는 듯 보이는 대길이었지만, 경수한테 죽살나게 얻어맞은 덩치의 믿음이 불쌍할 정도로 피식 웃고 있었다.
“너무 건방져서 그만….”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무슨 일이야?”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길이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담배를 비벼 껐다. 경수가 좀처럼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
“네.”
“무슨 문제인데? 저 번에 네가 누구 담궜다면서 그게 문제야?”
이미 지역 경찰들과도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길의 조직이었다. 그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돈이 상당했다. 지역 경찰들은 물론 검사, 지역 국회의원에게까지 발을 넓혀 놓은 상태였다.
언뜻 후진 동네였지만 퇴폐 문화가 상당히 발달 되어 있었고, 한국 사람들만이 아니라 가끔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많았다. 대부분 섹스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들이었다.
주택 밀집 지역이 후졌지, 유흥업소가 몰려 있는 곳은 상당히 그럴 듯 하게 잘 닦아 놓았다.
더구나 지방이기 때문에 사람도 적었다.
여러모로 노른자위 지역에다 재개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기에 대길이 굴릴 수 있는 돈은 상당했고, 그 것을 전혀 아까워 하지 않고 인맥을 넓히는 곳에 썼다.
악어와 악어새.
그 입장만 확실히 해도 대길이나 경수 정도의 위치 조직원들이 철창에 들어가는 일은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고 봐야 했다. 발이 국회의원까지 넓어지면서 대길은 웬만한 지역 유지 못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제가 관리하는 가게 한 군데에서 일을 하던 웨이터 한 놈과 계집 한 명이 있었는데 그 두 연놈들이 문제입니다.”
“…응?”
대길은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조직과의 전쟁도 아니고 겨우 웨이터와 아가씨라니?
하지만 경수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진지했다.
“그…아무래도…형님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길의 눈은 이제 찢어질 것 같았다. 경수와 초창기부터 함께 다녔기에 무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그에게 말을 해주었고, 경수는 그 순간부터 대길을 쭉 밀어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믿지 않기에는 한 조직을 혼자서 정리 해 버리는 일은 단연코 할 수가 없는 일이니까.
“무인이라는 말이냐?”
무인들은 절대로 일반인들을 건들지 않는다. 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방파가 있고, 모두 깊숙한 산속에 있지만 꼭 산 속에만 무인들이 모여 사는 것은 아니었다.
존재를 숨기고 일반인들과 섞여 살아갔고, 정부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했다.
그 것이 정부와 방파들이 공존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고수의 숫자는 핵무기 숫자보다 강국을 뜻하는 지표가 되었다.
그 것을 물론 일반인들은 알지 못했다.
“그….”
경수는 자초지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길에게 오기 직전에도 스무 명이나 갔던 부하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또다시 당했다고 밖에 생각 되지 않았다.
경수의 판단은 빨랐다. 창현이나 지현의 존재가 자신의 손을 벗어났다는 것이고 그동안 부하들이 했던 말을 미루어 짐작 해 보건데 분명 언젠가 대길이 언급했던 무인들이나 고수의 존재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그 전에는 왜 조용히 살았는지까지 일일이 설명 할 필요는 없지….’
경수의 생각대로 대길은 창현이 경수에게 살해 당 할 뻔 한 사실도 알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경수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사술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방파라면…대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술을 사용하다 걸리면 태극문파가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현 시대에 사파는 없었다. 중국에는 아직 사파의 뿌리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현대에 들어서면 그 뿌리조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국가 기관이 생기고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당연히 무기 역시 발전했다.
절정에 들지 않는 이상 군대가 사용하는 무기를 당해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총에 대적 할 수 있는 일류고수의 존재 역시 그리 쉽게 탄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태극문파는 확실히 굉장한 문파임에 틀림없었다.
“지금 어디 있냐?”
“부하들을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대길이 몸을 일으켰다.
“일단 만나봐야겠어.”
뿌리가 희미해진 만큼 고수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대길은 쓸 만한 부하가 생겼다고 짐작했고, 그 중 하나가 여자라는 사실에 집중했다.
‘요괴나 잡귀는 아니다. 인간이니…사술을 쓴다면 요괴나 잡귀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지. 그나저나 사술을 익혔으면…쿡쿡! 삼류정도만 제대로 됐으면 좋겠군.’
대길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경수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창현 역시 알지 못했다.
그 생각이 창현을 만나고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창현은 또 대길로 인해서 무엇을 얻게 될지…많은 것들이 변하려고 있는 오후였다.
============================ 작품 후기 ============================
재밌게 보고 계시나요..?
후후 이제는 본격적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39회가 지나서야.........초반이 이렇게 길었던 적은 단연코 처음!
하지만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