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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 현대 재림기-34화 (34/170)

< -- 34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수희는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언어 영역은 역시 준비 했던 대로 나왔고, 높은 성적은 아니지만 지난번보다 높은 점수가 나올 것은 확실했다. 아니, 전체적으로 지난번 시험은 거의 찍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전부 높게 나오기는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창현이 했던 잘 보면, 이라는 말이 지난 시험이 기준이 아니라 본래 유지했던 성적의 기준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창 성적이 높을 때보다 가장 잘 보았다고 생각하는 언어영역 점수도 낮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수희는 재빨리 문제를 다시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주위에 모든 아이들은 잠에 빠져 있었다. 드문드문 빈자리도 보였다. 심지어 감독을 하는 선생님까지도 졸고 있었다. 정말 막장 학교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광경은 굳이 수희의 반만이 보여주는 광경이 아니었다.

다른 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 시험장의 풍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신경조차 쓰지 않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핸드폰이나 전자기기로 컨닝을 시도할 법도 하지만, 아이들은 애초에 시험지에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단지 수희네 반은 수희가, 그리고 각 반에 1~2명만이 시험지를 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띵동-띵동-!

“걷어와.”

중년의 남자 목소리에는 잔뜩 귀찮음이 묻어 나왔다. 맨 뒤에 있는 학생이 어기적거리며 일어났다. 수희가 살짝 눈치를 보고는 마지막 문제 답안지에 동그랗게 색을 칠했다.

선생님이라 짐작 되는 중년의 남자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있을 뿐, 그런 수희의 행동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음 교시가 막교시니까 웬만하면 찍고라도 집에 가라.”

잠만을 자던 아이들 중 몇이 가방을 싸고 있었고, 중년의 남자는 스치듯 말했다. 아이들 역시 그 말을 그저 스쳐 듣고 있었다. 몇 명의 학생이 다시 교실을 빠져 나갔고, 빈자리가 더욱 많아진 교실에는 수희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말, 전학이라도 가야 하는 걸까?”

잠시 그 모습에 수희가 고민을 했다. 내신을 따기에는 너무나 쉬운 학교이지만 평판은 전국에서 최악의 학교라 할 수 있었다.

‘수능을 잘 보는 수밖에 없겠어.’

월등한 내신을 자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몇 번의 시험을 민정 패거리 덕분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적어도 이 정도의 평판을 가지고 있는 학교라면 수석은 기본적으로 해줘야 먹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학을 가기에는 벌써 3학년 중반이었고, 쉽지도 않았다.

후우, 하고 한숨을 가볍게 내쉰 수희가 문제를 하나 끝마치고 앞으로 수능까지 남은 일수를 계산 해 보았다.

어쨌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혹시 몰랐다. 모의고사 하나에도 부탁을 들어준다고 했던 창현이 앞으로 성적에 따라 좀 더 많은 것을 해줄지.

****

그 시각 창현은 지현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지만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슉-슉-!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 같았다. 창현은 분명 사람들이 있는 거리를 스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창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초상비의 경지보다 훨씬 상승 경지인…그 이름조차 붙어 있지 않은 경공술이었다.

마치 사람이 일직선으로 쭈욱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었고, 잔상이 흐릿하게 남았지만 너무나 빨랐기에 사람들이 인식을 하기도 전에 잔상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창현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좋군.”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창현은 만족스러운 듯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며 미소를 지었다. 내공으로인한 반쪽짜리 화경의 경지가 아니었다. 이미 얻었던 깨달음이었고, 그 것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진정으로 화경의 경지였다.

몸속의 내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검기, 권기 등 병장기나 신체를 이용해 내공을 밖으로 뿜어내 형상화 할 수 있는 경지!

다른 말로는 절정의 경지라 불렀고, 창현이 살던 시절에는 이때부터 초고수급으로 분류했다.

한 번 더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내공이 저절로 백회혈을 뚫고 정수리에 가득 찬다. 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고 다시 한 번 환골탈태를 하게 되어 무공이 아니라 영력을 익힐 완벽한 신체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경지를 현경이라 일컬었지만, 실제로 수많은 인재들 중에서도 현경을 이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창현의 시절에는 오로지 창현만이 그 경지에 올라섰고, 또 그동안 현경에 이르렀던 고수들과는 다르게 다시 한 번 하게 된 환골탈태가 내공의 그릇이 커지기 위해 허물을 벗는 것이 아니라, 영력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신체로 탈바꿈 된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그가 고금제일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어찌 되었든, 창현은 지금의 시절이라면 일류정도면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다. 무공은 이미 책에서나 나오는 전설적인 이야기였고, 기억에 의거하면 도사들의 존재는 사이비 종교 취급이나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적당히 무공을 높이려 했지만, 무리하게 쓴 영력과 더불어 그 것이 지현이나 여자 그리고 오소리를 종속 시키는 과정에서 몸속을 빠르게 돌면서 저절로 끌어다 쓴 자연의 기운이 상호작용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환골탈태와 더불어 지금의 경지를 이룬 것이다. 그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띵동-! 띵동-!

벌컥 문을 열 수도 있었지만, 현대인이니 창현은 현대인답게 살아가려고 했다-물론 무공과 영력은 예외이다. 그 건 그의 능력이었으니까-초인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지현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창현님!”

“무겁다 계집.”

화경의 경지까지 이른 창현이 지현의 몸무게 정도를 견디지 못할 리 없었지만, 창현은 피식 웃으며 괜스레 그녀의 머리를 헝클였다.

따뜻한 손길이 기분이 좋다는 듯 강아지처럼 킁킁 거리던 지현이 곧 창현의 손을 자신의 볼에 부비적거렸다.

“일주일 만에 오셨어요!”

짐짓 토라진 듯 고개를 홱 돌리는 지현이었지만, 창현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꽤나 섭섭한 듯 지현이 옹알 거렸다.

“치이….”

“잔망스런 계집, 거기 있지 말고 얼른 들어와라.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가잖아.”

창현은 그러면서도 신기한 듯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기가 흘러나오는 기계라…역시 참 신기한 세상이야.’

무공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영력 수련자는 보이지도 않고 잡귀와 요괴들이 강성한 시기에 자연의 기운까지 미약하다. 하지만 기계라 명명해진 것들은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었는지 생활편의는 훨씬 좋았다.

학문이 더욱 세세하게 발전을 하면서, 과학은 진화했고 인간은 자연의 기운 없이도 심지어 자연을 다스리면서까지 살고 있었다.

“창현니이임!”

물론 그 것이 지금 앞에서 몸을 베베꼬고 있는 여자의 존재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사실에 창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 놈들이 왔었지?”

“네 그저께까지는 매일 같이 왔는데 어제부터는 안보이더라고요.”

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만들어 낸 부적은 최면을 가미한 일종의 결계술이었다. 아주 초보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덩치만 큰 그들이 풀어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자신의 집에도 몇 번이나 왔었고, 수희 곁에 접근도 했었지만 모두 차단한 상태였다.

집 근처에는 결계술로 그리고 수희는 오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호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수희 스스로도 백보신권을 익히고 늘어나는 부하들을 시켜 지키게 할 생각이었기에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너도 배워야 한다.”

“네?”

창현이 오면 일단 침대에서 몸을 섞는 것이 당연할 줄 알았던 지현은 쏟아져 나오는 눈빛에 그제야 창현을 다시 보고 있었다.

‘뭐, 뭐지?’

현묘한 기운이 흘렀고, 잡고 있는 그의 팔뚝은 훨씬 굵어져 있었다. 우람해졌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슬림한 근육이 매끈하게 보였다.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 확실히 몸매의 테가 잘 나타나는 것 같았다.

그 것만이 아니라 반들거리는 피부와 큰 눈망울에서 나오는 눈빛 덕분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너무 흥분해서 잠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차, 창현님 언제 이렇게 운동을….”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에 운동이라고 밖에 납득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지현은 창현이 알 수 없는 초능력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의 몸도 점점 바뀌어가고 있는데 창현이 그 스스로의 몸을 바꾸지 못 할 까닭이 없었다.

‘훨씬 멋있어졌어.’

본판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변화만으로 외양적인 것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껍질을 한 번 벗었으니까.”

“정말 멋있어요!”

굳이 외적인 모습이 아니더라도 창현은 이미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현이었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자신의 일인 마냥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가볍게 끌어당긴 창현은 곧바로 풍만한 가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응…!”

“먹히고 싶지 잔망한 계집?”

“…네, 먹어주세요 창현님!”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곧바로 창현이 자신의 안으로 무자비하게 파고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전희를 잘 하지 않았기에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예상과는 다른 창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부좌부터 틀어라.”

“네?”

창현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뒤 흥분에 몸을 떨고 있는 지현을 억지로 앉혔다. 이상한 체위라고 생각한 지현이 붉게 볼을 붉혔지만 곧 자신의 다리를 꼬는 창현의 손길에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꺄! 아파요 창현님!”

“하여튼 허약해가지고. 기다려.”

창현은 유연성이 참 없다는 생각에 혀를 차면서도 힘을 이용해 지현이 가부좌를 트는 것을 이어나갔고, 곧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지현의 몸에 살짝 내공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 것은 따뜻함을 불러 일으켰다.

청량한 기운이 몸을 타고 흐르자 지현이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앞으로 내가 없어도 해야 해.”

“…이게 뭔가요 창현님?”

여전히 어색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덜 아픈지 지현이 궁금증을 띄웠다.

“혼탁한 시대이다. 잡귀는 물론 요괴 그리고…화경에 오르니 제법 재밌는 인간들이 많아.”

창현의 설명에도 지현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당연히 그의 필요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창현은 자신의 주인이었으니까.

아프다고 주인의 말을 어기고 싶지 않은 지현이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창현이 원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때문에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그래도 순수한 호기심은 들었다. 창현이 말을 하는 재밌는 인간들이나 요괴나 잡귀들이 경수와 같은 인간들보다 훨씬 무서운…존재와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창현은 제법 머리가 명석하다고 느꼈다.

“계집 제법 똑똑해. 사실 네가 크게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너보다 강한 것들을 복종 시키거나 근골이 뛰어난 계집들은 많으니까. 하지만 넌 첫 번째이거든.”

“아…!”

“운 좋은 줄 알아.”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창현은 무엇을 해도 되는 능력자 같았고, 정말 자신은 운이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자신이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잘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은 그를 영원한 주인이라 생각했다.

창현이 자신의 존재를 하찮게 여겨도 상관 없었다.

“창현님…!”

찾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단 번에 일류까지는 힘들겠군. 명석은 하지만 근골은 확실히 쓰레기에다가 노폐물도 많이 쌓여 있으니까.”

창현은 곧바로 지현의 상의를 찢었다.

“하아!”

그 작은 손길에 지현이 어떠한 기대감을 품고 창현을 바라보았지만, 창현은 그저 옷을 돌돌 말고는 지현의 입에 물렸다.

‘거친 플레이…좋아….’

금세 창현이 섹스가 아니라 다른 것을 하려한다는 것을 잊고, 얼굴 한가득 욕정을 담았지만 지현의 귓가에 들려 온 것은 차가운 창현의 목소리였다.

“이제부터는 절대로 입을 벌리지 마라.”

창현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재밌어…계집들로 채우는 것도 재미 있겠군. 교가 아니라 방파를 한 만들어 볼까?’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수많은 기운들…영력의 경지가 낮아 몰랐지만 내공을 채우고 화경에 이르니 확실히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창현은 그 시절에도 없던 진정한 화경을 이룬 무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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