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갈치 형님 완전 이상하지 않냐?”
“그렇습니다, 형님 완전 이상해졌어요.”
두 명의 남자의 대화에 다른 두 명의 남자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혀를 찼다.
“나참, 술을 얼마나 펐으면 벌써부터 그 나이에 헛것을 보냐고.”
“근데 경수 형님도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경수라는 존재는 조금 건드리기가 애매했는지 혀를 차던 남자가 짐짓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수 형님이야 워낙 완벽함을 추구 하시는 성격이니까.”
“네, 무척 꼼꼼하신 분이죠.”
말을 나누던 남자 역시 경수는 뒤에서 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곧바로 응수를 하고 있었다. 가로등이 조금씩 드문드문 떨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거리는 무척이나 어두웠다.
낯익은 거리였다.
지난 번 창현이 경수의 살인을 목격한 곳이었고, 지현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당연히 창현의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부터 좀 더 지나가면 언덕이 시작 되고 그렇게 달동네 풍경은 시작 되고 있었고, 가뜩이나 드문 인적은 해가 떨어지면 아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남자들이 언덕을 조금 올라가자, 밑으로 훤히 보이는 곳은 화려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퇴폐업소를 저렇게 대놓고 광고해도 될 정도인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노골적인 문구들이 마치 그들의 눈앞에 바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아오 힘들어! 미친 오피스텔 맞아?”
“…네.”
지현의 집이 분명 오피스텔인 것은 사실이다. 단지 언덕 하나를 넘어 바로 다음 언덕을 끼고 그 위에 있는 것이 우두머리가 짜증을 내는 이유였다.
“별 그지 같은 기집년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해?”
“그래도 경수 형님이 직접 가보라고 했으니….”
“진짜 술 퍼먹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거면 아예 찢어 놓아야겠다.”
우두머리의 짜증 섞인 말에 부하로 보이는 세 명의 덩치가 흐흐, 하고 웃음을 흘렸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막상 멀쩡하면 혼을 내준다는 이유로 바지춤을 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몫도 분명히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지현은 경수가 특별히 아끼는 여자도 아니었다.
경수가 따로 가보라고 하는 것은 둘 중 하나였다. 제법 반반한 여자는 신경을 어느 정도 쓰는 편이었고, 가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그 관리가 폭력이라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였다.
그리고 지현은 후자에 속하는 경우였고, 그 경우에는 우두머리는 자신의 재량으로 어느 정도 아가씨들 문제를 처리해도 그다지 문제가 없는 위치였다.
“저기 저 건물입니다.”
부하의 말에 우두머리는 달동네에 있는 오피스텔 주제에 제법 겉모습은 그럴싸하다고 느꼈다.
“…응?”
“….”
“….”
“….”
네 명의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오피스텔이 이제 코앞이건만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문을 피웠지만, 마치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는 것처럼 동시에 몸을 돌렸다.
뚜벅-뚜벅-!
남자들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이 살짝 풀려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그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그들은 쉴 새 없이 내뱉던 음담패설조차 하지 않았다.
“뭐지?”
우두머리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흐이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지현의 집 앞에 있었건만 이곳은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였다.
“…혀, 형님?”
“씨발 나 술 마셨냐?”
“아, 아닙니다.”
“아, 아닙니다.”
우두머리가 격하게 외쳤다.
“니들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착각을 했다면 그 것은 착각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네 명이나 되는 건장한 남자가 착각을 했다면 그 것은 어쩌면 착각이 아닐 수도 있었다. 경수의 부하들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자신들은 지현의 집 앞에 있었건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언덕입구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눈앞에서 느꼈기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갈치가 헛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것이 이제는 헛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간다.”
그래도 제법 강단이 있는 모양인지 우두머리는 곧 이를 갈았다.
“갈치 형님처럼 비웃음을 살 수는 없잖아?”
경수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갈치를 비롯한 세 명은 그 날 이후 완전히 호구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경수야 워낙 거물이고, 형님이었기에 아무도 함부로 못했지만 갈치 정도의 위치는 그 거리에 꽤 많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시에 호구를 잡힌 것이다.
그 것은 치명적인 타격이었고, 더 이상 갈치 밑에 있는 동생들까지도 갈치를 형님으로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갈치는…그 날의 타격이 제법 컸던 듯 다른 두 명보다 여전히 공포심에 질린 채 전전긍긍하는 중이었다.
이미 조폭으로써의 경력은 끝이 났다고 보아야했다.
우두머리는 절대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번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현의 집으로 향했다. 다시금 밝게 칠 해 놓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는 내리막 길이었고, 다시 오르막이 시작 되기 직전에 지현의 집이 떡 하니 서 있었다.
제법 많은 아가씨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도 달동네 치고는 건물이 깨끗했고, 낡은 빌라나 곳곳에 있는 판자집보다는 훨씬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일 터와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단지 오는 길이 좀 음습하기는 했지만, 이 동네 자체가 그러니 아가씨들은 딱히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은 아니었다.
각설하고, 우두머리는 신중히 걸음을 옮겼다.
집 앞으로 다가가도 여전히 자신들은 멀쩡하다는 생각에 누군가가 크게 후우,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까는 좀 정신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당히 더우니까요.”
인간은 스스로 변명거리를 참 잘 만들어내는 동물이다. 그리고 그 것이 집단 내의 ‘공통점’ 이라면 그 것에 또 잘 동의하는 동물이기도하다.
“그렇습니다. 형님.”
“맞습니다. 너무 덥습니다.”
우두머리가 부하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었다.
****
지현은 무척이나 불안 했었다. 담배를 한 대 피우려 창문을 열고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정신없이 핸드폰을 찾았다. 창현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언덕에서부터 내려 오는 남자들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히히낙낙 거리며 오는 그들이 만약 경수의 말을 듣고 왔다면 자신은 그냥 몇 대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다시금 창현이 끌려갔던 그 날이 떠올랐다. 차가웠던 경수의 눈빛이 자신은 온 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쥐고 통화를 걸었지만 신호음만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어?”
다시금 몸을 돌리는 남자들을 보면서 이미 끊겨버린 핸드폰을 끌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지현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곧 깨달았다는 듯 아, 하며 탄성을 내뱉었다.
창현은 집에만 있으면 된다고 했고, 혹시나 나갈 일이 있으면 부적을 가지고 나가라며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창현님….”
그제야 인간 같지 않았던 그의 능력이 떠올랐다. 말을 하는 동물을 부리는 것이나, 그와 섹스를 하고 난 이후에 마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는 듯 윤기가 흐르기 시작하는 피부는 물론이요, 가슴까지 조금 커진 것 같았다.
외양적인 것만 아름다워 진 것이 아니라 며 칠 지나지 않았지만 늘 숙취 비슷한 통증에 고생하던 것도 말끔이 사라지고 가슴 밑에 있었던 거슬리는 멍울까지 사라졌다.
그 것이 꼭 창현과의 섹스를 했기 때문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지현은 확신하고 있었다.
달랐던 점이라고는 창현과의 섹스 밖에 없었고, 그가 이미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섹스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 했다는 것 역시 지현의 생각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창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충만해지면서 뜨거워지는 기분 까지도.
곧 다시 나타나는 경수의 부하들이 보였지만 지현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집앞까지 와 놓고 또다시 거짓말처럼 몸을 돌리는 그들을 보면서 창현이 어떤 장치를 해 놓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능력에 대해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지켜주는 한 자신은 그들로부터 안전할 것이라 확신 할 수 있었다.
‘담배도 끊어야겠어.’
첫 번째 여자라는 그 말이 머릿속을 스치자 피식 미소가 새어져 나왔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고, 더군다나 첫 번째라 혜택도 많다고 했으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까지 들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건가?”
29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자를 사랑해 보지 않았다. 지현은 몸을 거쳐간 남자는 많고도 많지만 마음을 거쳐간 남자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창현에게 괜스레 미안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음이었지만, 자신은 그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올랐다. 왜 몸을 그렇게 굴렸을까, 하고 후회도 했다.
돈을 쉽게 버는 재미도 있었지만, 그만큼 몸이 많이 망가지는 일이었는데 라는 후회가 가슴을 후볐다.
남자들이 또다시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현은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다. 도리어 서랍을 뒤졌다.
“돈이 얼마나 있더라?”
일을 정리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
“형님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남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벌써 네 번째다. 지현의 집까지 왔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언덕 입구인 경우가 벌써 네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갈치가 헛소리처럼 떠들었던 말들은 진실이고, 귀신이라는 존재가 진짜로 있다고 믿어지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번이나 반복 되었는데!
“…다시 간다.”
우두머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소름이 끼치도록 두려운 것은 사실 우두머리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황당하고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무서운 일인가?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다른 곳에 와 있다.
그렇지만 우두머리는 그 두려움보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삶이 끝난다는 것이 더 두려웠다. 어떻게 경수 바로 밑까지 올라간 자리인데 갈치처럼 허망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갈치가 밀려 나면서 경수는 자신을 찾았고, 이 것은 완벽한 기회였다.
장미 빛 앞날이 멀지 않았는데 보이지도 않는 귀신 따위에 밀려 그 자리를 포기 할 수는 없었다. 우두머리는 이를 악물었다.
“한 번만 더 간다.”
다행인 것은 그저 되돌아만 오고 있을 뿐,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진짜로 귀신이 있다면 해코지라도 해야지, 이렇게 되돌려 보내는 것만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혀, 형님.”
가장 어린 남자가 두려움에 찬 목소리로 우두머리를 불렀지만 그는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 했을 때 한 가지 변화점이 생겼다.
“후우, 진짜 멍청한 인간들이군.”
“흐이이익!”
결국 두려움에 가장 많이 차 있던 어린 남자는 오소리가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기절을 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히히히 휴가 왔습니다!
출발 하기 전에 새벽에 예약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휴가가 끝이나면 본격적으로 빠른 템포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승부의 신 5권 역시 함께 써야 하지만..어쨌든 휴가철인데 독자분들도
휴가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