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 현대 재림기-27화 (27/170)

< -- 27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이런.”

병원에서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는 것은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창현은 지갑이 아직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이나 난처했다. 설마 금전 문제로 자신이 곤란스러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즐겁고 새로운 기분이 들었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의사는 수희가 많이 놀란 상태고, 군데군데 타박상이 무척 심하다고 했다.

영력으로 치유를 해 줄 수 있었지만, 아직 그 정도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였고, 아쉽게도 내공 한 점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갈 수밖에 없네.”

“왜…그래요?”

창백한 안색이었지만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짓고 있는 수희가 얼굴을 찌푸린채 혼자 중얼 거리고 있는 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꼬맹이한테 던져 버린 지갑을 거기에 두고 왔어.”

“아!”

“원무과? 인지 뭔지 그 곳에서 되도록 빨리 해달라고 했거든. 그래야 입원을 할 수 있다고.”

내공이 만능은 아니었다. 물론 자연의 기로 치유를 하는 것이 최고의 치료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것은 내공이 적어도 사갑자 이상은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였다. 물론 그보다 적은 양의 내공으로도 자연 치유를 할 수 있기는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

그 것이 타인에 대한 치료라면 두 말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창현은 병원을 당연히 찾은 것이었고, 기억 속에 있는 의학적인 지식과 실제로 눈에 보이는 병원의 모습 덕분에 무척 놀라기도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발전한 시대였으니까. 새삼 엄청난 세월을 뛰어 넘었다는 것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갑을 놓고 온 것이지만.

“갔다 올게. 혼자 있을 수 있지?”

“…응.”

수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완전히 변해버린 창현이었지만, 자신을 향해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슥슥, 쓰다듬는 손길에 얼굴을 붉히는 것도 잠시, 곧바로 병실을 나가는 창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보여준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무척 듬직하기도 했다. 뒷일이 걱정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창현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또 무엇인가 대비가 되어 있기에…그리고 그런 양아치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 굳게 믿기 시작했다.

“오빠…금방 올 거지?”

조심스레 말을 놓아 보았다. 의식적으로 존댓말을 하기는 했지만, 역시 십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익숙한 것을 단 번에 바꾸기는 힘든 것 같았다.

“좋아, 너는 예외로 해 주지.”

“응?”

“뭐 그냥 편하게 말해도 된다.”

“…고마워.”

오히려 변해버린 것은 수희인 것 같았다. 정확하게 말 하면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이지만. 창현은 씨익 웃고는 병실을 나갔다.

곧바로 영력을 끌어올려 한 구석에 반지보다 작게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건드렸다.

잠시 벤치에 몸을 앉혔다. 곧 오소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 것은 오소리와 연결 된 일종의 그릇 공유체였고, 그 것이 있기에 오소리는 창현의 충실한 부하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소리 입장에서 꼭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현과 그릇이 어느 정도 공명을 이루면서 남들보다 혼탁한 귀력을 좀 더 맑게 바꿀 수 있으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한 냄새군.”

모습은 덩치가 큰 개와 흡사했기에 사람들은 그리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이곳이 병원이라는 것이 조금 문제였을 뿐. 창현 역시 오소리가 도착하자마자 몸을 일으켰고, 병원 밖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지 주인?”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잡귀와 요괴의 다른 점은 여기서부터 차이가 났다.

잡귀는 혼의 형태가 많았기에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요괴는 짐승이나 호프집 여주인처럼 간혹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기에 영력을 수련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그 모습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소리가 말을 하는 그 걸걸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요망한 계집을 만났어. 다음에 보기로 했는데….”

“느낀 모양이군? 아까부터 계속 쫓아오고 있었는데.”

병원에서부터 이미 누군가가 뒤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소리였지만, 창현이 모르는 척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찡그리는 표정으로 보아 이제야 깨달은 듯 싶었다. 이미 호프에서 영력을 꽤 많이 소모했기에 감 자체는 둔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그 곳으로 가는 것은 여자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더불어 오소리의 존재 때문이었다.

겨우 단 하루였지만 오소리는 제법 강해져 있는 상태이니까.

그리고 여자에게 다른 능력까지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도 있었다. 그래야 허투루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까.

“계집인가?”

바람에 섞여 오는 이 시대 여자들 특유의 화장품 향기에 오소리가 얼굴을 찌푸렸다. 창현이 갑작스럽게 몸을 돌리며 여자를 바라보았고, 곧 움찔 떠는 여자가 재빨리 몸을 돌렸다.

“만나보지 않을 생각인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한 눈에 보아도 평번한 인간이었다.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저 여자를 만나는 것이 아니군?”

“그래. 꽤 강할 거야. 지박귀보다는 몇 배는 더.”

“싸움인가?”

오소리는 살짝 몸을 떨었다. 강하다는 그 말에 오히려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본래 요괴끼리의 싸움 이후에는 상대방의 귀력을 흡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 것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 시절보다 혼탁한 귀력을 자신의 몸에 맞게 정화 시키는 기술이 많이 퇴보한 상태였다.

자연의 기가 약해진 덕분에 인간만이 아니라 요괴나 잡귀들 역시 약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 이외에 귀력을 흡수 할 수 있는 것은 싸움을 벌이는 일이었고, 실제로 종종 요괴들이나 잡귀들은 서로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곳을 침범하는 무리가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싸움을 벌이는 편이었다.

“뭐 싸우지 않을 수도 있어.”

창현이 곧 깨달았다는 듯, 손을 마주쳤다.

“오소리 지금 그냥 내 동생에게 가서 내 동생을 지켜줘.”

“…그러지.”

오소리는 아쉬웠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곧 오소리가 몸을 돌려 빠르게 병원 근처로 향했다.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근처에서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기운을 감지하는 것은 오히려 오소리가 창현보다 더욱 뛰어났고, 영력이라는 것은 인간 본래의 기운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것들을 알려주었다.

수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본래 동물이었고, 그만큼 후각이 뛰어났다.

그리고 창현이 영력의 그릇에 공명을 해주었기에 이미 창현의 경험을 어느 정도는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호프에는 없었지만 일종의 간접 경험을 한 것이었다. 눈으로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력은 그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로운 능력이었으니까.

창현은 오소리와 헤어진 이후 조금은 여유롭게 걸음을 옮겼다. 만약 여자와 싸우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질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귀력만을 이용하는 요괴가 아니라 색공이라는 무공까지 갖추고 있는 요괴였다.

“아니, 이제는 사람인가?”

간혹 그 사람 자체에게 깃들어 귀력을 모으는 요괴들이 있었다. 잡귀와는 또 다른 형태의 혼으로 떠돌던 존재들이 사람의 몸에 깃들고 그 사람의 몸에서 영력을 깨닫는다면 여자와 같은 경우가 일어난다.

그 것은 아주 간혹 일어나는 경우였다. 요괴가 귀력이 강해져 사람의 모습으로 일종의 도술을 부릴 수는 있지만, 아예 그 사람 자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혼대법과는 또 다른 형태의 빙의지. 그리고 사람이니 제법 귀력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창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보았자 그들은 혼탁한 ‘귀력’을 쌓는 존재들이었다. 진정한 의미에 영력은 인간만 쌓을 수 있는 신의 혜택이었다.

그리고 예외는 오소리와 같이 자신이 그릇을 공명하면서 쌓는 귀력을 정화 시켜주는 경우 밖에 없었다.

끼익-!

생각을 정리하고 문을 열자 내부는 훨씬 깔끔해져 있었다. 협소해 보이는 공간이었지만 인테리어에 제법 신경을 쓴 티가 났다. 동네 아줌마 혼자 하는 호프집 하고는 조금 거리가 먼 세련 된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오랜 세월 전에 살아 온 창현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금방 다시 보네?”

“물건을 찾으러 와서.”

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창현의 낡은 지갑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주황색 조명 덕분일까?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약간은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가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곤 지갑을 살며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핏덩어리의 귀력을 흡수 했군?”

“역시 넌 달라.”

단 번에 상태를 꿰뚫어 보는 창현의 말에 여자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호오? 색공을 익히고 있는 요망한 계집이 아니랄까봐 특이한 방법으로 귀력을 흡수했어.”

창현은 여자의 몸에 흐르는 기운은 느낄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귀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여자의 경지가 좀 더 높았다면 어림짐작도 하지 못했겠지만 여자는 딱 짐작할 수 있을 정의 경지였다.

그 것만으로도 창현을 충분히 제압 할 수 있었지만, 창현과 같은 경지를 짐작 할 수 있는 ‘눈’ 이나 영력을 다루는 일종의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있는 여자는 창현을 그저 자신과 비슷하거나 좀 더 높은 경지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 것은 아마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 자신의 목덜미를 찔렀던 창현의 한 수 때문인 듯 싶었다.

“잡귀가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것은 아닌 모양이야?”

창현은 자연스레 여자의 반대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지현보다 풍만하고 매끄러워 보이는 가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영력을 몸에 두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까 이미 많은 힘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들어오자마자 흐르는 호프 집 안에 요사스러운 기운에는 전혀 대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창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응, 심어 놓았다 꼬맹이의 기운이 더 흐려지면 잡아먹을 생각 이었나 봐.”

“이 곳은 생각보다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나 잡귀들이 많은 가?”

근처의 정보는 여자가 훨씬 잘 알고 있었다. 당연했다. 따지고 보면 창현은 이 시대에서 살기 시작한지 아직 3일도 되지 않았다.

“몰랐어? 인간을 잡아 먹는 것이 훨씬 귀력을 쌓기 쉬운데 뭐 하러 조금씩 갉아 먹니?”

“그 누구도 용이 되지 못하겠군.”

“응?”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창현은 혀만 차고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지갑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시에 여자가 창현의 손을 붙잡았다.

“넌 분명 끝내 줄 거야. 도사를 만나 본 적이 있었지만, 겨우 햇병아리 수준이었어. 하지만…너는 달라 그렇지?”

아까와는 다르게 자신의 색공이 먹혀들고 있다고 확신하는 여자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창현은 여자의 몸에서 시선을 계속 떼지 못했고, 가끔은 거친 숨도 몰아쉬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인간이었다면 진작 달려들었을 것이다.

딱히 색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여자 본래의 기운이 상당히 뇌쇄적이었기에 요괴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남자들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여자는 잘 이용했고, 그로 인해 귀력을 좀 더 쉽게 쌓을 수 있었다.

“인간이 되기 전에도 상당히 요망했던 계집의 혼이었나 보지?”

“뭐…남자 없이 살지 못하는 몸이긴 했어.”

여자가 창현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난 알아. 넌 말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 경험이 없다는 것을. 적어도 그런 것은 내가 더 뛰어 날테니까.”

창현이 싱긋 웃었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여자가 다시 색공을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은 그 것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현은 이곳으로 오길 주저 하지 않았다.

“수희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끝내도록 하지.”

창현이 곧바로 여자의 몸을 돌렸다. 여자는 끈적한 눈빛에 한가득 욕망을 담고는 오히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고 곧바로 테이블을 짚고 쑥 내밀었다.

가슴만 지현보다 풍만한 것이 아니었다. 지현 역시 하체는 상당했지만, 여자는 몸매 하나는 그 옛날 창현의 수많은 여자들과 비교해도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매끈하게 이어진 다리와 그 위에 탄탄한 허벅지…그리고 마치 기다리고 있다는 듯 들어 올리는 원피스 안에는 달덩이 같은 엉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자가 스스로 팬티를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빨리…!”

여자의 미소가 점점 진해지고 있었다. 쾌락과 동시에 또다시 귀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늙은 도사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 그리고…귀력을 창현이 선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 것이 어쩌면 실수였을까?

아니면, 이미 한 번 스스로 해결을 해 보려 했지만 아쉬움이 가득해 쾌락에 대한 갈구가 좀 더 심해져서였을까…여자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있는 창현의 목소리보다 바지를 끌어 내리자 튀어 나오는 늠름한 창현의 분신에 침을 삼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