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5 회: 일반인 속에 혈마. -- >
불나방 한 마리를 거미가 웃으며 실로 칭칭 옭는 것처럼 창현의 기세는 민정의 몸을 옭고 있었다. 지금의 창현의 경지로는 그 기세를 내공을 이용해서 형상화 할 수는 없었지만 민정의 몸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적어도 민정이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춘 무인이라면 자신을 옭고 있는 그 기세의 강력함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면에서는 민정이 무인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일 수 있었다.
육체의 그릇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력의 힘은 비단 꼭 그 영력 자체를 이용해야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생각’을 하고 그 것은 유형화 시킬 수 있다면 영력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더 큰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물론 그 것보다는 내공 수련을 통한 무공을 익히는 것이 훨씬 쉬웠기에 창현이 살던 무인들은 대부분 자연의 기를 이용하여 내공을 수련했다.
각설하고, 잭나이프를 쥐고 덜덜 떨고 있는 민정은 그 때의 무인들에 경지에 발끝도 미치지 못했지만, 창현의 차가운 눈빛과 천천히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굉장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민식을 제압하고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목격했다. 벽에 부딪혀 테이블 밑에 나둥그러져 있는 민식의 손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덜렁거리는 손은 현실 같지 않았다. 얼굴을 한 대 맞았을 뿐인데 얼굴 역시 성치 않았다. 주변에서 꽤 친다고 알려져 있는 민식의 현재 모습은…처참하다고 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비릿한 미소를 물고는 자신에게 다가오기에 민정이 느끼는 압박감…은 점점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주, 죽여 버릴 거야.”
“그래?”
창현의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자 민정이 발악적으로 손을 휘둘렀다.
턱-!
“!!!”
“내가 말했지?”
휘두르는 손을 그대로 잡아 버린 창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리 육체가 그 시절과 같지 않아도 이제 겨우 19살의 어린 여자아이의 힘을 이기지 못 할리 없었다. 휘두르는 요령이 없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두려움과 분함에 휘두르는 몸짓에 불과했다.
얇은 민정의 손목을 잡고 있는 창현이 호오, 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의 눈빛에 스치고 있는 것은 분명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지금 상황에 대한 분노였다.
그 작은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군림했던 민정이 갑작스레 그 세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란 사실은 창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손을 살짝 놓으면서 도리어 창현은 민정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재밌는 계집이군?”
말과 함께 창현이 주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민지네 호프집 주인인 민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개 같이 박살내려 했지만….”
창현은 말과 함께 민정을 지나쳐 쓰러져 있는 민식에게 다가갔다.
“네 놈 사타구니로 봐주도록 하지.”
빠악-!
남학생 둘과 민정이 그 소리에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커어억, 하고 게거품을 물기 시작하는 민식의 교복은 또다시 더럽게 물들고 있었다.
“너!”
창현이 종환을 가리켰다.
“옙 형님!”
역시 약삭빠른 종환이었다. 힘의 강함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았고, 대세가 어떻게 기우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껄렁껄렁 다니며 학생들을 괴롭히는 축에 속했고, 싸움도 제법 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만 종환은 본래 이렇게 줄타기를 좀 더 잘 하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을 의원…아니, 병원에 데려다 줘.”
창현의 말에 종환이 조심스럽게 민식을 부축했다. 토사물과 게거품 등으로 더러워진 민식이었지만, 창현의 말을 거역 할 수는 없었다.
“니들도.”
두 명의 남학생들도 한 마디에 혼비백산하며 민식에게 달려들었다. 곧 민식과 남학생 둘 그리고 종환까지 호프를 나가자 난장판이 되어버린 호프에는 창현과 민정 그리고 주방에 있는 호프 주인 여자와 수희만 남은 상태였다.
“수희야.”
“…오빠….”
수희가 황급히 주방을 나와 창현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도 마치 안길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살짝 수희의 이마를 짚은 창현의 손 때문에 그녀의 의도는 성사되지 않았다. 여전히 미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자를 보면서 창현은 말을 이었다.
“계집 공부 하라고 학교 보내 놨더니.”
“…미, 미안해.”
울먹이는 수희의 눈가를 창현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기저기 찢긴 교복이 풍만한 몸매를 강조하며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남는 옷이 있으면 하나만 빌려주지?”
“…그래요.”
“그리고 너.”
주방에서 또 어디론가 이어진 곳이 있는지 여자는 사라졌고, 우두커니 서 있는 민정은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단 번에 역전 된 상황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이 남자 아이들처럼 힘이 강해서 소위 일진 무리에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두고 봐!”
창현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때나 잘난 것 하나 없이 그저 자신이 잘났다고 믿고 있는 바보들은 전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피식 웃는 창현이 수희에게 물었다.
“저 계집이 괴롭혔어?”
“…오빠.”
죽일 듯 미웠던 민정과 민식 무리였지만 막상 창현에게 당한 것을 보자 조금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그가 없었다면 그들에게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고, 소중한 몸을 빼앗길 뻔 했어도 이미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수희는 생각하지 않았다.
폭력으로 여기저기 망가지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창현이 와주었고, 혼자 걸을 수조차 없어 보이던 민식의 그 곳은 창현의 발길질 한 번에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 같았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올랐다.
“괜찮은 거야?”
“음…너도 병원을 가봐야 하나?”
사실 민식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엄청나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창현은 지독한 고통을 주는 급소에 자극을 주었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급소들도 급소들이었지만 일단 사타구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픈 곳이니 그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고, 실질적으로 민식이 다친 곳이라고는 부셔져 버린 손등 밖에 없었다.
그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붙을 뼈이고, 창현이 살던 시절보다 의학은 훨씬 발전 되어 있는 시대이니 치료도 어렵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단지 내면 깊숙이까지 침투한 창현에 대한 두려움은 민식은 영원히 잊지 못 할 테지만.
폭력을 행사 할 때 그저 무자비하게 때린다고 두려움이 깃드는 것은 아니었다.
“대충 맞을 거예요.”
옷을 건네는 여자의 모습에 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씩씩대고 있는 민정에게서 이미 관심이 멀어졌다.
“날뛰지 마라 계집. 네가 주동자라는 것은 이미 들어 올 때부터 알고 있었어.”
“…너, 너!”
“한 번만 더 하대를 했다가는 그 예쁜 입을 찢어주지.”
수희에게는 따뜻한 창현이었지만 민정에게 쏟아내는 말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날카로웠다. 움찔 몸을 떨며 창현의 눈빛을 피하는 민정은 애써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호프를 나가려 했다.
‘두고 보자!’
지금은 창현이 기고만장하고 있지만 곧 그가 자신의 앞에서 무릎 꿇고 빌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그가 일을 하는 곳에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소위 깡패라 불리는 그들이 자신이 부탁하면 창현 한 명 정도는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말 우스운 것은 그렇게 민정이 굳게 믿고 있는 그들이 정작 창현을 죽이려 했었던 경수 무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동네 양아치들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야 경수 무리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다녔지만 애초에 자신들이 유일한 조폭마냥 행세를 하고 다니는 그들에게 민정이 알고 있는 양아치들은 조무래기에 불과 했으니까.
가끔 심부름이나 시키는 인간들에 불과 한 것이다.
창현도 민정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민정은 그들을 굳게 믿고 있었고, 창현은 그 누가와도 두렵지 않았다.
대충 민정이 누군가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파의 철부지들은 비무에서 죽을 듯이 맞고 쫓겨나면 늘 자신의 사형이라던지 사매 등등 실력이 뛰어나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을 대동하고 다시 나타났으니까. 하지만 그 것도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사라졌다.
애초에 상식 이상의 무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그렇게 덤벼 보았자 철부지들은 물론 철부지들이 데리고 온 무인들까지 모조리 복날에 개처럼 얻어터지고 배교 정문에 버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무가 아닌 그저 맞으러 간다는 인식이 중원에 팽배 해져 버렸고, 창현은 한동안 지루한 나날들을 보내야했다.
초절정 이상 경지의 무인들도 감히 비무를 청할 생각도 못했으니까.
“적어도 그들은 본신의 무력이 꽤 강하기라도 했지.”
창현은 혀를 찼다. 눈앞의 19살 소녀는 철부지를 뛰어 넘어선 바보에 불과했다. 자신이 잘났다고 믿으며,
“장난감 칼인가?”
여전히 손에 들고 있는 잭나이프를 창현이 아무렇게도 않게 뺏으며 중얼 거렸다. 무인들이 사용하는 검이 지금 남아 있을 리는 없고, 민정이 들고 설쳤던 것을 보아서는 아마도 살상용이라고 보여졌는데 너무나 조잡했다.
“쓰레기군.”
마치 민정이 유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는 창현이었다. 질끈 입술을 깨물고 있는 민정은 앙칼지게 말했다.
“두고 봐 너!”
“내가 언제 가라고 했냐?”
“….”
민정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 가닥 믿었던 것은 자신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것도 꽤 예쁜 여자였고, 나이도 어렸다. 민정은 창현을 너무 자신이 믿고 있는 양아치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늘 그랬고, 민정이 알고 있는 남자들이 대부분 그랬다.
그래서 창현도 당연히 똑같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한 대 얻어맞기는 했지만 그 것으로 끝나리라 생각했다. 민식이 당한 것은 그가 남학생이었고, 적어도 이 무리의 리더는 그로 보였기 때문이라 믿었다. 나서서 창현에게 깝죽거린 것은 벌써 잊은 모양이었다.
인간이란 본디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기 마련이고 아직 어린 여학생인 민정은 훨씬 자신의 입장만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냥 넘어 갈 줄 알았나 보지?”
창현의 차가운 목소리에 민정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의 옷을 입고 있는 수희를 힐끔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붓고 멍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수희는 이제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듯 따뜻한 눈빛으로 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한 줄기 걱정이 묻어났다. 아마 뒷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창현보다는 수희가 자신들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희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라고 민정은 생각했고, 그 사실이 떠오르자 떨렸던 몸은 어느새 수희처럼 안정을 되찾았다.
“저년이 우리가 누구인지 말…”
쫘악-!
“아악!”
여학생이라 그런지 민식과는 또다른 비명이었다. 싸대기를 한 대 날렸을 뿐인데 민정의 몸은 크게 휘청 거렸다. 아까처럼 벽에 쳐 박히는 꼴은 면했고, 통증도 훨씬 덜 했지만 그 것은 창현이 일부러 그렇게 때린 것이었다.
소리만 큰 싸대기는 아프라고 때리는 것이 아니라 굴욕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니까.
“네 년이 누군던 나랑 무슨 상관이지?”
“…네가 잘 모르는…”
턱-!
“컥!”
민정의 목덜미를 창현이 부여 잡자, 그녀가 곧 숨이 막히는 듯 컥컥 대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창현이 이 번에는 살짝 영력을 끌어 올렸다. 자신의 팔 힘만으로는 날씬 해 보이는 민정이라 할 지라도 사람 한 명을 들어 올리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창현이 민정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그대로 들어 올리자 수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민식과 그리고 보지는 못했지만 종환까지 제압한 것도 놀라운데, 민정을 한 손으로 그대로 들어올릴 정도로 창현의 힘이 셀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계집,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발버둥 치고 있는 민정을 올려다 보면서 창현이 가볍게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호프집 주인 여자는 이젠 완전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